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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 크로스(CROSS) 인문학 ⑨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장석주| 시인 kafkajs@hanmail.net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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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사회는 ‘불안증폭사회’다. 끊임없이 증폭되는 불안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섰다. 저출산, 청년실업, 물가, 주택난, 범죄, 북한의 핵위협, 기후변화… 등 모두 불안요인이다. ‘한국 사회 자체’가 불안의 원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다가오는 ‘빙산’을 예측하지 못하는 타이타닉과도 같다. 그러나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불안은 종종 사람을 마비시키지만, 또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때로는 불안이 생존을 보장한다.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일탈 꿈꾸는 50대, 외로움에 빠진 20대.

눈을 감아도 잠이 쉬이 오지 않는다. 온갖 일이 파노라마로 스쳐 지나간다. 불길한 예감과 나쁜 생각들이 스멀스멀 퍼져 뇌를 잠식한다. 나는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를 받은 느낌이다. 이것은 무엇인가? 불안이라는 수수께끼다. 불안은 한국인의 유전자에 각인된 또 다른 본능이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불안에 잠식된 영혼을 갖고 산다. 주변에 늘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은행이 불안해서 돈을 맡길 수 없고, 화재에 대한 불안 때문에 가스레인지의 잠금장치를 거듭 확인하고, 자물쇠를 믿을 수 없어 집을 불안해하고, 살이 찔까봐 불안해서 마음껏 먹지도 못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이의 장래가 불안하고, 부동산이 불안하고, 미래가 불안하다고 한다. 우리는 불안을 먹고 불안을 낳으며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불안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평범한 “삶의 조건”이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불안을 또 다른 불안으로 바꿔가는 과정”(알랭 드 보통, ‘불안’)인지도 모른다.

불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위험에 대한 불안과 불합리하고 근거가 없는 병적인 불안이 그것이다. 수험생이 수능시험을 망칠까 걱정하는 것, 집에 불이 날까 염려하는 것, 방금 문을 잠그고 집에서 나왔는데 도둑이 들까 조바심치는 것, 직장에서 해고될까 두려워하는 것, 운전하는 사람이 사고가 날까 걱정하는 것…, 이런 불안들은 현실을 근거로 한 구체적인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다. 반면에 병적인 불안은 비현실적이고 불합리하고 모호한 원인에서 비롯한다. 그런 불안은 불안장애라는 질병을 가리킨다. 비정상적이고 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가 되는 정신질환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어느 정도의 불안과 공포는 건강한 정서 반응이다. 불안과 공포로 인해 교감신경이 흥분해서 두통이 생기고, 심장 박동과 호흡수가 증가하고, 소화 분비계에 이상 증상이 생긴다면, 그것은 불안장애다. 그들은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을 건강하게 꾸릴 수가 없다.

‘타이타닉’은 우리 사회다

‘불안의 시대’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

한국 사회를 ‘불안증폭사회’라고 한다. 심리학자 김태형의 책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심리학자의 진단에 따르자면,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안의 만성화와 총량의 증가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우리가 타고 있는 ‘한국호’라는 배는 지금 저출산, 청년실업, 자살률 세계 1위, 긴 노동시간, 물가, 주택난, 범죄, 만성적인 빈곤, 지나치게 높은 사교육비, 사회의 양극화, 중산층의 붕괴, 자영업에 덮친 불황, 낮은 행복지수, 승자독식사회, 학력차별주의, 신자유주의라는 괴물, 북한의 핵위협, 기후변화, 금융대란 등등의 파도가 몰아치는 불안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중이다. 우리는 배 위에서 불안이라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결국 배는 부서지거나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벼랑 끝에 서 있는 우리 마음 안에는 불안과 공포가 증식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빨리 벗어날 수 있을까? 그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에 불안과 공포는 임계점을 훌쩍 넘어선다. 우리는 점점 더 견딜 수 없다. 남은 선택은 미치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다. 벌써 많은 사람이 불안이라는 바닷속으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

재난영화 ‘타이타닉’을 떠올려보자. 사람들은 다가오는 ‘빙산’을 예측하지 못한 채 호화 유람선 ‘타이타닉’에 탔다는 사실만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즐거움과 행복들은 돌연 사라지고 현실은 악몽으로 바뀐다. ‘타이타닉’에 승선한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귀중한 것을 한꺼번에 다 잃는다. ‘타이타닉’은 곧 ‘우리 사회’다. 자크 아탈리는 이렇게 적는다.



“‘타이타닉’은 우리다. 거들먹대는, 제 잘난 듯한, 눈뜬 장님인, 위선에 가득 찬 우리 사회다. 불쌍한 구성원들에게 냉혹한 사회, 모든 것이 예측되지만, 예측의 수단만큼은 예측되지 않는 사회다.…우리는 모두 우리 앞에 빙산이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고 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미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결국 우리와 충돌하고, 우리를 장엄한 음악 소리와 함께 물밑으로 가라앉힐 것이다.”(자크 아탈리, ‘Le Titatanic, Le mondial and nous’’, 르몽드, 1998. 7.3. 여기서는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재인용)

우리가 왜 불안한지 분명해지지 않는가? 파도는 더욱 난폭해지고 그에 따라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타이타닉’호에 함께 타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타이타닉’이 ‘우리 사회’라고 말한다. 그 우리 사회는 “모든 것이 예측되지만, 예측의 수단만큼은 예측되지 않는 사회”다. ‘한국호’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바다를 항해한다. 미래는 불확실한데, 그것은 우리 삶이 예측불가능한 위험들 속에 있다는 반증이다. 그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들이 우리 삶을 집어삼킬지도 모른다. 이 ‘불확실성’이 우리 마음에 불안을 키운다. 어느 때보다도 불안하고 우울하며 무기력하고 분노하는 한국인을 주목하고 경제위기 이후 큰 정신적 외상을 겪은 한국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대한 보고서로 썼다는 김태형은 ‘불안증폭사회’에서 우리의 불안이 개인의 일탈이나 가족관계, 혹은 유전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는 문제가 ‘한국 사회 그 자체’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강제하는 부정적 감정의 양이 적어도 가족관계나 유전자 등이 유발하는 부정적 감정의 양보다 더 클 거라고 확신”해 “한국인들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주범은 한두 명의 이웃이 아니라 잘못된 한국 사회 그 자체”(김태형, ‘불안증폭사회’)다. 우리는 날마다 불안하고, 짜증이 나고, 낮은 행복감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간다. 부정적 감정이 불안을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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