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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공동기획 - 문명의 교차로에서 ⑬

베트남 신부는 세계화의 하녀일까, 첨병일까?

  • 정현주│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지리학 jung0072@gmail.com

베트남 신부는 세계화의 하녀일까, 첨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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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여러 국가에서 이민자 수용과 시민권 부여를 둘러싼 정치문화 담론을 형성했던 다문화주의는 20세기 말 불어닥친 경제위기와 그에 따른 민족주의의 재강화, 신자유주의의 부상으로 그 정치적 동력을 상실했다. 최근 유럽 등지에서 인종갈등이 재현되고, 다문화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성토가 불거져 나오는 것을 볼 때, 다문화주의는 ‘미완의 프로젝트’로 서구 정치철학사에 남을 공산이 크다.

역설적이게도 다문화주의를 공식적으로 채택했던 국가에서 다문화주의 폐지론이 한창일 때, 단일민족 국가임을 표방해온 한국에서는 느닷없이 다문화주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다문화’라는 것이 아직 대중에게 생소할 때 정부가 나서서 다문화 의제를 만들어나가고 시민사회는 이를 좇아가는 형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관 주도 ‘다문화주의 대세론’은 인도주의의 탈을 쓴 정치적 수사라는 인상이 짙다. 진정한 다문화주의를 주창하기엔 다문화주의에 대한 시민사회로부터의 자발적인 토의도, 다문화사회에 대한 진지한 합의나 청사진 마련도, 심지어 시행되는 소위 다문화정책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사수렴도 미미한 가운데 행정적 차원에서 다문화정책만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관(官) 주도 다문화주의는 정치적 수사

많은 이가 한국의 ‘수상한’ 다문화주의를 보여주는 사례로 다문화주의 담론이 결혼이민여성들과 그 가족만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꼽는다. 다문화정책 집행의 핵심적인 근거가 되는 ‘다문화가족지원법’(2008년 9월 시행)은 정책의 대상이 되는 다문화가족을 ‘국적을 소유한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배우자’로 규정한다. 특히 각종 다문화 지원 프로그램은 이들 한국인-외국인 국제결혼 가정 중 외국인 아내와 한국인 남편으로 구성된 가정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외국인 아내는 전체 국내 거주 외국인 113만여 명 중 14%(약 18만 명)를 차지한다. 나머지 86%를 주로 구성하는 이주노동자나 유학생, 전문직 외국 노동인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가장 오래된 이민자 집단인 화교(華僑)도 다문화가족지원법의 정책대상에서 제외된다. 즉, 외국인은 한국인과 결혼해 가정을 이룰 때에만 다문화 성원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특히 여성은 아이를 출산했거나 2년 혼인관계 유지 후 한국인 남편이 보증해야만 국적을 신청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수행하는 조건으로 시민의 자격을 획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수많은 외국인 체류자 중 결혼이민여성만을 선별해, 그것도 혼인관계 유지와 출산 등 전통적인 성역할을 유지하는 게 입증되어야 시민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다. 더구나 유교적 가부장제라는 전통을 일방적으로 이주여성에게 강요하고, 그 여성의 국적 취득 권한을 남편에게 위임함으로써 국가 간 경제력 차이를 가족 내의 위계관계로 전이시키는 민족 차별 양상을 띤다.



다문화주의가 내세우는 가치와도 동떨어진 성·민족 차별적인 시민권에 대해 그동안 여성계를 중심으로 비판 여론이 일었지만, 지금까지 시행되어온 이유는 한국적 다문화주의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온정주의적 가부장제에 기반을 두고 정립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결못남’(결혼 못한 남자)을 구해주고, 한국인 아이까지 낳아 저출산 문제도 해결해주고, 노부모까지 공양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다보니 결혼이민여성에게만 쏠려 있는 온정주의적 시선은 다른 이주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에게로 옮겨가지 못한다. 또한 그들이 왜, 어떤 이유로 한국에 오게 됐고,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얼마나 한국적 며느리 역할을 잘하는지가 더 큰 관심이다. 한국에서 다문화 담론을 촉발시킨 주역인 그들은 다문화가족이라는 가족 테두리 내에서만 아내와 며느리로 거론될 뿐이다.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해서 국제결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초국가적 이주자로서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하는 여성도 크게 보면 ‘이주의 여성화’ 현상의 한 부분이다. 이주의 여성화란 산술적으로 여성 이주자가 남성과 대등하게 많아지는 현상으로, 여성 이주자의 성격 변화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개념이다. 과거 남성 이주노동자의 가족 자격으로 국경을 넘던 여성들은 1980년대 이후에는 생계부양자로서 초국가적 이주자가 되는 경향이 현저히 짙어졌다. 과거 이주 노동의 전통적인 송출지였던 남미와 남유럽을 대신해 아시아가 여성 이주를 주도하게 되었고, 그 목적지도 북미와 유럽에서 점차 아시아 내의 다른 지역(주로 중동과 동아시아)으로 다원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제3세계 여성, 특히 아시아 여성이 ‘성별화된 이주’ 통로를 통해 이주하고 있다.

‘이주 여성화’를 바라보는 세 가지 틀

‘성별화된 이주’란 여성적 노동이라고 인식되는 ‘돌봄 노동’이나 단순·비숙련 노동 부문으로 여성들이 국경을 넘어 흡수되는 현상을 일컫는데, 오늘날 한국 결혼이민여성처럼 국제적 매매혼을 통해 이주하는 ‘우편주문 신부’(mail order bride), 가사노동자, 간병인, 육아도우미, 일선 생산직 등이 대표적인 성별화된 이주 통로다. 이주의 여성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현상을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한다.

첫 번째 관점은 이주의 여성화를 세계화와 글로벌 정치경제 관계의 변화로 설명한다. 여성들을 해외로 내몰고 있다는 얘기다. 신자유주의로 대변되는 경제의 세계화는 국제통화기금(IMF) 및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세계은행)이 주도해 저개발국가의 산업구조를 수출 지향 산업구조로 변화시켰고, 동시에 공공부문 축소를 가져왔다. 초국적기업이 점령한 수출공단은 기존 남성 노동력의 상당부분을 저임금 여성노동력으로 대체했고, 노동의 유연화는 남성 가장의 대량실직을 야기했다. 공공부문 축소로 아내와 딸들은 생계부담을 지고 하층 부문 노동시장으로 편입했다. 가부장제 전통 아래에서 많은 여성은 실질적 생계부양의 의무를 지면서도, 여전히 가사노동을 담당하는 이중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성별 불평등에 대한 탈출 욕구도 증가했다. 따라서 이들 중 상당수는 신분하강을 무릅쓰고 부유한 선진국의 하층 부문으로 편입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들 여성이 향하는 선진국과 글로벌 도시에서는 탈산업화와 서비스 직종 확대로 여성들이 대거 노동시장으로 진입한 반면, 신자유주의로 인한 공공부문 축소는 아이와 노인부양의 책임을 개별 가정에 전가시켰다. 그러자 저개발국 이주여성이 이들 가정에서 가사도우미, 간병인 등의 역할을 하게 됐다. 국제적인 이주를 견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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