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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진전 이뤄낸 외교 결단” “주역 배제된, 소통 없는 惡手”

한일 위안부 협상 합의 후폭풍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큰 진전 이뤄낸 외교 결단” “주역 배제된, 소통 없는 惡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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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1월 8일 오후 3시
장소 : 동아일보 충정로사옥 회의실
패널 : 조희용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소장,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사회·정리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사회 ‘신동아’ 대담 초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24년간 한일 양국 간 ‘난제 중 난제’이던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보십니까.
조희용 지난해는 광복 70년이자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었습니다. 최근 2, 3년간 한일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가장 나쁘다는 지적을 받아왔죠.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양국 간에 매우 중요한 현안으로 부각됐습니다. 따라서 1991년부터 공론화한 위안부 문제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부 간 협상 타결로 일단락된 건 분명 큰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봅니다.



사할린 동포와 원폭 피해자

위안부 문제가 과거 일제 식민지시대의 여러 현안 중에서 갖는 상징성, 위안부 피해자 46명이 살아 계신 동안 문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 한반도를 둘러싼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서 한일관계의 개선 필요성, 양국의 국내외 사정 및 사회 변화 등 주어진 현실적 여건과 제약을 충분히 감안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뤄낸 시의적절한 외교적 결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정부가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물론 현재 많은 분이 지적하듯 위안부 문제가 지닌 본질적 문제, 즉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대한민국 국민의 명예와 존엄에 끼친 상처를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어떤 타협안이나 해결 방안도 충분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도 더 받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주어진 현실적 여건과 제약을 최대한 감안해서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양기호 24년을 끌어온 위안부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무려 1212회에 걸친 ‘수요집회’를 거듭하면서 쟁점화해 지금껏 끌고 온 겁니다. 그런 만큼 한일 양국 간 중요한 숙제였죠. 이번 협상 타결로 이 문제가 일단락된 점에 대해선 우리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못한 3가지 문제, 즉 위안부 문제와 사할린 동포 및 원폭 피해자 문제를 비교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할린 동포 문제의 경우 일본 시민단체 등이 노력해서 이미 여러 분이 귀국했고, 미진하긴 하지만 한일 양국 간에 일정한 합의 지점을 찾아냈습니다. 원폭 피해자에 대해서도 지난해 9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 1세대들에게 일본인과 동등하게 치료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이에 비해 가장 중요한 쟁점인 위안부 문제는 합의가 지나치게 졸속으로 이뤄졌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이 이 문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봐요. 현 정부 초기부터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의 목표를 추구하며 ‘허들’을 설치하다 보니 여러 복잡한 외교 어젠다 중 하나의 전제가 돼버렸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법에서 일보 진전이 없으면 한일정상회담도 없다고 할 정도로. 노무현 정부 때 한일정상회담이 열린 게 대통령 취임 4개월 만입니다. 이명박 정부 땐 2개월여 만에 열렸어요. 박근혜 정부 들어선 무려 33개월 만에 열렸습니다. 박 대통령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라는 분기점에서 반드시 위안부 문제에 대한 타협안을 도출하라고 한 뒤 최종 결단을 내린 게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한일관계에 대한 외교적 철학과 비전, 경륜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이번 협상 타결은 한마디로 ‘장고(長考) 끝에 악수(惡手)’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시민단체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와 대한민국 외교사에서 이 문제를 30년, 50년 뒤의 세대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 나름대로 자숙하는 자세로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봅니다.





“끝이 아닌 스타팅 포인트”

사회 두 분의 시각차가 작지 않은데, 우리 정부가 이번 협상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특히 주안점을 뒀다고 봐야 할까요. 아울러 우리가 얻은 성과라면?
조희용 위안부 문제가 1991년 공론화한 이래 박근혜 정부만큼 이 문제를 정말 심각한 현안으로 거론해서 일본 측과 진지하게 해법을 찾아보려고 한 정부가 있었나요. 현 정부가 대일(對日)은 물론 거의 모든 외교 전선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에 우선순위를 둔 건 틀림없는 사실이죠. 그렇기에 국제사회에 이 문제를 환기하고, 특히 미국을 움직여 결국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14년 4월 한미정상회담(서울) 후 연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끔찍하고 매우 지독한 인권침해 문제’라고 말한 것 아닙니까. 미국 대통령의 입으로 국제사회에 위안부 문제 정의를 내려준 거죠. 덕분에 위안부 문제에 대한 주요국들의 인식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 문제를 협상 타결로까지 끌고 간 지난 3년간의 외교활동은 나름대로 의미 있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협상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도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여겨져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 정상과 외교장관들이 하나의 큰 틀을 만든 스타팅 포인트(starting point)라고 봅니다. 따라서 이젠 양국 정부가 협상의 합의사항을 함께 성실히 이행하고, 피해자 할머니 및 시민단체와 어떻게 합심해서 문제를 풀어갈 것인지 하는 측면을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현 단계에선 이 문제와 관련한 어떤 합의라도 당연히 비판받을 것이라 봅니다. 다만 그것에 관한 우리 시각을 이제 어떤 식으로 정리해나갈지가 중요합니다.
또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되는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약 97억 원) 출연은 하나의 패키지로서 위안부 문제를 극복하는 틀을 마련한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위안부 문제는 이번 합의로만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본 측의 부적절한 언행, 위안부 문제는 이제 완전히 해결됐다고 보는 그들의 시각을 경계해야 합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어찌 보면 시작인 거죠.

“외교 담합” “국제 공약”

양기호 본질적 측면에서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 사죄하고 배상한다는 것에 대해선 인정합니다. 그동안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우리 정부의 복지·의료 지원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합니다. 박 대통령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던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한일관계에서 도덕적 측면의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이번 협상은 이런 문제를 쟁점화해 한일 양국 간 현안으로 다룸으로써 첫 단추를 끼운 거죠.
그런데 잘못 끼운 겁니다. 일본은 현재 법적 책임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법적 책임은 한일청구권협정 그대로라는 주장을 폅니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지만, 통감한다는 건 감정의 문젭니다. 책임을 통감할 뿐 책임을 인정하는 게 아니거든요. 사죄와 반성 또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이죠. 심적(心的)인 거예요. 논리적이거나 법적인 게 아닙니다. 10억 엔 출연에 대해서도 기시다 외상이 이번 회담 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일본이 잃은 것은 10억 엔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합의의 문구를 보면 이런 조치가 성실히 이행될 경우 이번 발표로써 ‘최종적·불가역적 해결’로 한다고 돼 있잖아요. 문구 그대로 보면 일본 정부는 책임을 다한 것이고, 그다음의 후속조치는 전혀 없어요. 제 개인적 견해로는 2014년 4월부터 12차례 양국 외교부 국장급 협의가 있었던 만큼 이번 외교장관회담에선 위안부 문제의 기본 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내년 상반기 중 그와 관련해 피해자 할머니들과 국민의 여론을 들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회담은 양국 정부가 외교 담합으로 위안부 문제를 서둘러 끝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봐요.
조희용 아쉬운 부분이 없을 수 없다는 점은 동감합니다. 다만 국민에게 정확히 알릴 부분도 있다고 봅니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문구를 놓고 10억 엔만 출연하면 일본 측 조치가 다 끝나는 거라고 오해하는 듯한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출연이 성실히 이행된다는 전제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걸로 이해해야 합니다.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건 쌍방적이고 상호주의적인 겁니다. 만일 일본 측에서 위안부 문제의 배경이나 성격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이 나온다든지 하면 이번 합의의 정신에 맞지 않는 겁니다. 그건 합의를 지키지 않겠다는 걸 뜻하거든요. 신의성실과 국제법상의 이른바 ‘금반언(禁反言) 원칙’(행위자가 일단 특정한 표시를 한 이상 나중에 그 표시를 부정하는 주장을 해선 안 된다는 원칙)에도 반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피해의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박 대통령도 1월 7일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아베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번 합의와 관련해 “언론을 통해 합의 정신에 맞지 않는 언행이 보도돼 피해자들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면서 잘 관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 않습니까.
또한 위안부 문제를 한일 정부 간에 협의하기 시작한 건 2014년 4월 양국 외교부 국장급 협의부터인데, 외교 협상이란 상대방이 응하지 않던 의제를 일단 협상 테이블에 올리는 데까지의 힘든 과정, 그리고 그걸 올린 다음부터 어떤 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할 것인가 하는 외교당국의 전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번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이 자국 국민과 외신 기자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언한 일종의 국제적 공약입니다. 그렇기에 오바마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환영 성명을 발표하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 유수 언론이 사설에서 이번 합의의 성격에 관해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소통, 스킨십 소홀”

사회 우리 정부가 피해 당사자들과의 소통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양기호 굉장히 안타까운 부분이죠. 박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를 중시하고 피해자들의 아픔에 많이 공감했기에 이 문제를 쟁점화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이 문제를 지금까지 공론화하며 끌고 온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배제됐어요. 외교부는 그들을 사실상 방치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24년간 쟁점화해온 이들이 엄연히 있는데, 어떻게 회담 내용을 발표하면서 질의응답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끝냅니까.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가 절반이고 국내 문제가 나머지 반입니다. 마땅히 피해자 할머니들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스킨십을 해야 신뢰관계가 생기고 서로의 고충도 아는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겠습니까. 솔직히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란 게 우리가 설정한 타이밍일 뿐이지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2012년이 중일수교 40주년이었는데 그때 중일관계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사태 등으로 최악이었어요. 물론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이라도 더 생존해 계실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해결’이라면 박 대통령이 직접 말한, 피해자들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전혀 아닙니다.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들도 분노할 겁니다.
따라서 이번 합의에 따른 국내 반발은 이미 예상된 거라고 봐요. 지금이라도 외교부 장관이 질의응답을 통해 이번 회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고,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 관계자를 만나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이와 관련해 1월 11일부터 위안부 문제 주무부처인 외교부 동북아시아국 관계자들은 개별적으로 생활하는 피해자 할머니들을 비공개로 찾아가 이번 협상의 합의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편집자).
조희용 결과적으론 정부의 설득이 부족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런 절차적 측면에서의 부족함에 대해선 정부도 심각하게 여길 거라고 봅니다. 우선 제일 급한 것은 외교당국이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 이번 합의에 대해 정중히 설명해 이해를 구하는 등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겁니다.



“반대와 우려는 건강하다는 뜻”

사회 합의 결과에 대한 부정적 국민 여론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양기호 문제는 뭐냐 하면,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란 문구가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겁니다. 이미 일본 공교육 역사교과서들에선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이나 조선인 강제징용에 대한 기술(記述)이 많이 사라졌어요. 게다가 ‘위안부 문제는 10억 엔 주고 정부 차원에선 끝났다’는 게 대다수 일본 국민의 여론입니다. 일본 언론의 시각도 거의 일치합니다. 가장 중시하는 게 바로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죠.
또 하나는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 알린 상징물인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위안부 평화비)의 이전 여부죠. 그에 대해선 양국 정부가 이면합의는 없다고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가 절대 깨져선 안 된다는 조 소장님의 말씀엔 동감합니다. 약속이니까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데, 실질적으론 파기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을 직접 만들고, 일본 정부의 지원금 10억 엔을 받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어요. 그렇다면 과연 일본이 10억 엔을 지원해서 어떻게 할 건가요.
지금 우리 내부는 상당히 분열된 상태입니다. 정부는 정부대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한 지원재단을 설립할 수도 있고,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그대로 수요집회를 계속하겠죠. 소녀상 이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일본이야 이번 회담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돼 위안부 문제를 끝낼 수 있지만 우리 내부에서 이번 합의 내용이 다시 그 어떤 갈등의 요소로 재생산된다는 점이 무척 유감스럽습니다.



조희용
그런 지적이 여기서 이렇게 논의된다는 것 자체가 매우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이번 회담 결과가 발표되고 나서 우리 국민 전체가 박수를 쳤다면 그건 우리가 그동안 일본을 잘못 다뤄왔다는 방증밖에 안 되거든요. 저는 당연히 이번 합의에 대한 우려와 반대 의견이 나오고, 그것이 일본으로 하여금 더 성의 있고 진정성 있게 위안부 문제에 대응하라고 전하는 메시지가 되는 게 옳다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 외교부와 청와대도 제대로 듣고 파악하고, 그동안 미진한 게 있으면 좀 보완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24년을 끌어온 문제가 양국 외교장관 둘이서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고 해서 다 해결됐다고 박수 친다? 그런 한일관계였으면 이전 정부에서 누구라도 해냈겠죠.

“식민통치 사죄는 세계적 추세”

사회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합의 이행이 관심거리입니다.
조희용 위안부 문제 공론화 초기인 1991년이나 1992년쯤이었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었을 겁니다. 우리 국력이 신장되고 주요 20개국(G20)에 속하는 등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갖게 되니 위안부 문제 등 한일 과거사 청산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거거든요. 미국 또한 우리 요구를 정당하다고 인정하지 않습니까. 미국 정부의 그런 입장만큼 우리한테 큰 힘을 주는 게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아직도 우리 국력이 약하다면 강대국들이 그렇게 힘을 실어주진 않을 겁니다. 식민통치를 당한 나라로서 상대국과의 양자 교섭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씩 외교적 성과를 얻어내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을 겁니다.
양기호 2013년 영국 정부도 케냐 식민통치 시절의 가혹행위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배상도 하고 있고요. 2008년 이탈리아도 리비아 식민통치에 대한 사죄와 화해를 약속하고 50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협력을 추진했어요. 이처럼 과거와 달리 2000년대 들어선 식민국이 피식민국에 사죄하는 추세입니다. 이는 전 세계적 경향이라 일본도 그에 당연히 부응해야죠. 그러니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책임 인정과 사죄가 일본이 우리에게 많이 양보했다거나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는 아니라고 봅니다.
사회 이번 협상 타결이 향후 한일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양기호 기본적으로 한일관계는 개선될 겁니다. 일단 양국의 과거사 쟁점 중 가장 상징적 현안이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정부 간 협상이 타결됐기에 이를 계기로 한일 정부 간 협력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민간 또는 국민 수준에서도 이 문제가 완전히 결론지어졌냐 하면, 그건 그렇게 볼 수 없죠.
일본 내부에서도 박근혜 정부 들어 혐한(嫌韓)·반한(反韓) 감정이 더 악화되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이 최근 2년간 120만 명이나 줄었거든요. 위안부 협상이 타결됐다고 일본의 혐한론이 수그러들거나, 코리아타운이 되살아나거나, 일본인 관광객이 다시 더 들어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미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뒤이은 일왕 사죄 요구 발언 등의 여파로 일본에서 혐한 감정이 빠르게 확산됐기 때문이죠. 위안부 협상이 그 기원은 아닙니다. 따라서 혐한론이 단기간에 가라앉으리라고 기대하진 않아요.
이번 합의 이후 논란이 되고 있는 위안부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 정부는 민간단체가 추진하는 것인 만큼 이번 합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일본은 우리가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자제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일본 측으로선 그것이 이번 합의와 관련해 한국이 약속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의 문제로 비칠  수밖에 없죠.
이번 협상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둔 건 인정하지만 그 결과는 양국 국민의 수용도 또는 인식에 대해 매우 큰 격차를 벌려놨고 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기에 양국 국민 간 화해라든지 어떤 형태의 일보 진전, 예컨대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수준만큼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기점이 되긴 어렵다고 봅니다. 그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일관계는 개선될 것”

조희용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현재 피해자 할머니들과 시민단체의 우려와 반대가 표면화하는 게 향후 한일관계를 풀어가는 데 결코 나쁘지 않을 거라 봅니다. 어찌 보면 그간 우리 외교당국과 관계부처에서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도 있을 수 있죠. 요는 우리가 대비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북한을 늘 신경 쓰는 이유가 뭡니까. 불확실성 때문이거든요. 예측하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이제 한일관계에선 외교장관회담 이후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문제점이 거의 다 나왔어요. 이 문제점들을 한일관계가 한 단계 향상될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최근 한일교류를 보면 제가 1980년대 도쿄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할 때와 비교해 격세지감이 듭니다. 양국 지방 간 교류나 인적 교류를 보면 그래요. 현재 하루에 양국을 오가는 항공기가 100여 편 뜹니다. 상상도 못하던 일이죠.
그런 엄청난 교류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양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라는 하나의 역사 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건 양국 국민에게 심리적으로 대단히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봅니다. 물론 당장 관광객이 50만 명, 100만 명씩 늘어나진 않겠죠. 결국은 이번 협상을 우리 외교와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의 기초 위에서 과거를 직시하며 미래를 지향하는 진정한 한일관계의 발전 계기로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본래 협상이란 모두를 만족시키긴 힘든 것 아닐까요. 그럼에도 이번 대담은 두 가지 시각의 교집합과 합집합을 깨닫게 해준 뜻깊은 자리가 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지속적인 소통이 중요할 듯합니다. 두 분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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