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 무선통신 서비스의 핵심인 CDMA(코드분할다중접속) 원천기술로 세계를 장악한 IT(정보기술) 기업, 퀄컴. 1985년 군사통신 기술을 개발하는 무명 벤처기업으로 출발한 퀄컴은 이제 세계적으로 2억명이 사용하는 CDMA 기술을 독점 공급하는 글로벌 정보통신업체로 비상했다. 북미, 라틴 아메리카, 동유럽,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등지에서 퀄컴의 CDMA 기술이 상용화됐다.
퀄컴의 직원은 세계 40여개국 7400여명. 여느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하지만 이들 ‘소수정예’가 올린 2004년 연 매출은 약 48억달러, 순이익은 17억달러로 수만 명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퀄컴은 물건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제품 생산의 기본이 되는 원천기술을 파는 ‘지식공작소’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휴대전화 단말기 생산업체들은 CDMA 기술을 사용하는 대가로 지난 6년 동안 퀄컴에 7억5700만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했고, 핵심 칩 구입비용으로 18억2600만달러를 사용했다. 100개가 넘는 기업이 무선기기와 무선망 인프라 장비 구축을 위해 퀄컴으로부터 CDMA 사용을 인가받았다. 퀄컴의 저력은 이렇듯 독보적인 지식경쟁력에서 나온다.
퀄컴이 짧은 시간에 고도 성장을 일궈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생산성을 중시하는 합리적 기업문화와 누구도 믿지 않았던 꿈을 현실로 증명해 보인 뚝심에 있다.
CDMA 관련특허, 퀄컴에 집중
새해맞이로 분주하던 지난 1월6일, 퀄컴 본사는 도약을 위한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한 손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연구실로 향하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얼굴엔 열정이 넘쳐흘렀다. 기후가 온화한 샌디에이고에 들어선 퀄컴 본사 건물은 기능적인 설계와 깔끔한 디자인이 돋보였다. 따스한 햇볕을 흡수하는 통유리창, 은빛을 머금은 23동(棟)의 빌딩. 건물 사이로 길게 난 산책로와 곧게 뻗은 야자수 나무, 여가를 위해 마련된 야외 수영장은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퀄컴의 기업 분위기를 말해주는 듯했다.
편안한 노타이 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제레미 제임스 퀄컴 코포레이트 마케팅 및 홍보담당 상무는 “CDMA 기술을 빼놓고는 퀄컴을 논할 수 없다”고 했다. 퀄컴을 알기 위해선 먼저 CDMA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
휴대전화 기능을 제어하고 무선신호를 아날로그 음성신호로 바꿔주는 ‘통신 칩셋’인 CDMA는 또 다른 통신기술인 GSM과 함께 세계 이동통신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GSM은 범유럽 디지털 셀룰러 통일규격(Global System For Mobile Communications)의 약어. 상호 호환성이 없던 유럽 각국의 다양한 아날로그 시스템을 표준화한 것이다. 반면 코드분할다중접속(Code Division Multiple Access)으로 불리는 CDMA는 퀄컴이 개발한 원천기술. 1996년 한국에서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CDMA는 GSM보다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점차 시장을 확대해가고 있다.
동기식으로 분류되는 CDMA는 송·수신 상대가 직접 시간을 일치시켜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방식인데 비동기식으로 분류되는 GSM에 비해 도·감청이 어렵고 전송효율이 높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4년 중반 현재 25개국 32개 업체를 통해 2억1300만명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CDMA를 이용하고 있고, 116개국 292개 업체를 통해 약 11억800명의 가입자가 GSM을 이용하고 있다. 시장점유율에서는 GSM이 CDMA에 비해 7대3으로 우위를 점한 상태.
그러나 중요한 것은 GSM의 특허기술이 모토로라, 루슨트 등 다수 업체에 분산돼 있는 데 비해 CDMA 관련 특허는 퀄컴 한 곳에 집중돼 있다는 사실이다. 퀄컴의 공동 창립자이자 CEO인 어윈 제이콥스 박사는 2300여개에 이르는 방대한 CDMA 관련 미국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 이동통신시장에서 GSM의 특허를 보유한 어떤 업체보다 ‘CDMA의 절대강자’인 퀄컴의 영향력이 막대하다는 이야기다.
사실 퀄컴만이 CDMA 칩을 생산해온 건 아니다. 한국에선 이오넥스와 삼성전자가, 외국계 기업으로는 TI와 ST마이크로가 CDMA 칩을 개발했다. 그러나 퀄컴의 강력한 시장지배력으로 인해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들 업체가 개발한 칩은 가격경쟁력이나 기술경쟁력 면에서 아직은 퀄컴에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