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일본 경제의 위상 하락은 중국 등 신흥국의 부상에 따라 선진국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비교해서도 일본 경제의 하락은 급격한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에 대두된 일본 몰락론은 미·일 패권 경쟁에서 탈락하는 일본의 상황이 대상이 되었던 데 반해 최근에는 일본 경제가 쇠락의 길로 빠질 것인지(NDC·New Declining Country, 신쇠퇴국)가 초점이 되고 있다.
물론 일본 경제는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에서도 엔화가 강세를 보이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해 금융부문의 건실함이 부각되었으며, 1990년대 장기불황과 같은 금융과 실물경제의 복합 불황을 어느 정도 극복한 것은 사실이다. 지난해 5%를 넘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경제는 올해 1% 이상의 플러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상장기업의 영업이익도 제조업을 중심으로 큰 폭의 증가가 예상된다. 그린기술, 우주기술, 부품·소재 분야 등에서는 세계 어느 기업도 따라갈 수 없는 압도적인 기술력을 가진 일본 기업도 많다. 우리나라는 작년에도 276억달러를 넘는 대일(對日)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잠재력에도 일본 경제 및 일본 기업이 고전하는 것은 의아스러운 일이다. 버블 붕괴에 따른 장기불황을 극복한 일본 경제지만 만성적인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저성장의 장기화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던 일본 기업에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일본 기업은 1인당 소득수준이 3만달러를 넘는 1억2700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발전해왔다. 높은 품질과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일본 기업의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내수시장이 계속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 이후 인구 감소 및 고령화 문제에 시달리면서 저성장을 면치 못하자 일본 기업도 신흥시장 개척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용 절감 요구가 강해지고 품질 저하 문제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정체된 일본 시장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본 기업은 과거와 달리 해외 부품 조달을 늘리면서 가격절감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다운그레이드(Down Grade) 전략은 기존의 과잉품질을 과소품질로 전락시켜버릴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약점의 지속, 강점의 약화
일본 기업은 브릭스(BRICs) 등 신흥시장의 기회를 선점하지 못했고 1990년대 이후 반도체, LCD 산업 등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신속하게 결정하지 못했다. 일본 기업은 현장기술력에 강했지만 리스크가 큰 투자 결정을 신속하게 내리지는 못했으며 한국, 대만 기업의 부상으로 산업의 주도권을 잃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은 신자유주의적 개혁에 주력하면서 주주를 중시하는 경영을 강화하긴 했지만 구미 기업과 같은 창조형 리더를 육성하고 이들의 전략적 결정에 따라 신속하게 행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결과 단기수익에 대한 강박관념이 강해지면서 장기적인 안목의 과감한 투자를 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