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호

현실성 없는 유럽공동채권, 국채 매입 G2까지 위험하다

유럽경제의 위기

  •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eungyoo@lgeri.com

    입력2011-12-20 14: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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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성 없는 유럽공동채권, 국채 매입 G2까지 위험하다

    아일랜드 더블린 시내에서 노동자와 시민 5만여 명이 정부의 긴축재정과 구제금융 협상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로존 위기가 다른 경제권으로 전이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는 유로존 내의 재정취약국인 포르투갈과 아일랜드로 전염되는 데 1년가량 걸렸다. 하지만 지난 여름부터 경제대국인 이탈리아로 전염되더니, 순식간에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유럽의 최대 경제 강국인 독일까지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그 사이에 서유럽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과 발칸국가로도 위기가 전이됐으며, 미국과 중국 등 세계 경제의 중추국까지 위기 전염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1월2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보고서를 내놓았다. 무디스는 “유로존 회원국이 연쇄적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져 유로존이 붕괴될 가능성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으며, OECD도 “결정적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미국 경제는 재침체에 빠지게 돼 결국 세계 경제의 느린 회복세마저 꺾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위기의 전염은 한 지역의 위기가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특정 경제 영역의 위기가 다른 경제적 영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포함한다. 현재 유로존 일부 국가의 재정위기로 발화된 경제적 혼란은 이웃 국가를 넘어 다른 경제권으로, 재정과 금융 부문에 그치지 않고 실물 부문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금융 부문을 통한 전염

    남유럽 재정취약국과 아일랜드가 재정위기를 맞이한 뒤 유럽재정안정기구(EFSF)의 지원이 이뤄졌지만 재정건전도는 계속 악화됐다. 결국 위기는 유로존 핵심국으로 퍼졌다. 그중 재정상태가 나빴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2011년 가을부터 위기에 감염돼 두 국가의 국채 가격이 크게 하락하고 수익률이 급등했다.



    유럽연합(EU)은 남유럽 전체가 재정위기에 휩싸이자 EFSF의 기금을 증액하고 구제효과를 배가하기 위해 기금의 레버리징(가용 재원 확대)을 결정했지만, 투자자들은 오히려 핵심국가의 안정성을 의심했다. 투자자들은 자금이 지원돼도 강도 높은 긴축정책 때문에 경제 침체가 불가피해 결국 자금 공여국까지 재정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벨기에의 경우 진작부터 국가채무 비중이 높았고 프랑스와의 합자은행인 덱시아가 파산하자 국가신용등급은 최고 수준인 AAA를 상실했다. 이탈리아가 위기상황에 빠지자 EFSF의 기금 가용 재원을 확대하더라도 위기 확산을 저지하지 못할 우려가 대두됐고 마침내 유로존의 두 지도국가인 프랑스와 독일까지 국가신용도 의심을 받았다.

    프랑스는 자국 은행이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이른바 PIIGS 국가들의 위기에 크게 노출돼 있기 때문에 신용평가사로부터 신용도 하락 경고를 받았다. 더구나 유로존 국가들이 위기 타개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거듭하자 독일도 재정적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인식이 제기됐고 결국 독일 국채 발행도 실패했다.

    신용경색으로 동유럽 위기 전염

    위기가 처음으로 전염된 지역은 금융부문의 서유럽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이다. 헝가리가 유로존 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한 첫 사례가 됐다. 동유럽은 사회주의 진영이 붕괴한 후, 경제발전을 위한 자본을 대부분 서유럽에 의존해왔다. 동유럽 은행의 약 80%가 서유럽 은행의 지점들이다. 따라서 유로존의 신용경색으로 채무의 만기연장이 중단되면 동유럽도 자금 부족 상태에 빠지게 된다. 유로존 은행들은 PIIGS 국가 채권투자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규제당국이 자기자본비율(BIS)을 높일 것을 요구하자 대외신용업무를 크게 줄였다.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대규모 자금이 회귀했지만, 현재의 추이는 당시보다 규모가 크고 속도로 빠르다. 2011년 들어 서유럽으로부터의 차입금액은 20%가량 줄어들었다.

    오스트리아의 정책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오스트리아는 신용등급이 강등될 상황에 처하자 2011년 말까지 재정적자 400억유로를 삭감하는 것을 헌법에 명시했으며, 거대 상업은행들은 동유럽으로부터 자금 회수에 나섰다. 이탈리아 최대 은행 유니크레디트(Unicredit)도 동유럽 사업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독일의 제1 민간은행인 코메르츠은행(Commerzbank)도 동유럽 중 폴란드에만 대출 하고 있다.

    하지만 2012년 헝가리는 GDP 대비 18%의 차입이 필요하며, 불가리아는 13%가 필요하다.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는 이미 주요 은행에 대한 구제조치를 취했다.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는 건전한 국가로 평가되고 있지만 서유럽 은행들은 철수하고 있다. 더군다나 동유럽은 서유럽을 주요 수출시장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하다.

    유로존 회원국인 키프로스도 금융위기의 문턱에 서 있다. IMF는 키프로스가 “그리스 위기에 크게 노출되어 있어 중대한 경제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와 같은 구소비에트 연방국과 발칸국가들도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국 경제는 아직까지 위기에 전염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년에는 재정을 긴축할 예정이어서 경기회복을 낙관할 수 없다. 유로존의 금융 충격의 대상이 될 우려가 높은 것. 12월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 선진국 5개 중앙은행과 공조해 달러 유동성을 확대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영향으로 전 세계의 증시가 예외적인 폭등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는 유로존 위기가 주요 선진경제권에 주는 위협이 얼마나 큰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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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유동성 공급 조치로 위기 차단

    유로존의 주요 은행들은 달러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달러 자산의 대량 매각이 불가피해져, 경제위기가 미국으로 전이될 수 있다. FRB가 달러 스왑 라인의 이자율을 1%에서 0.5%로 낮춘 것은 위기 전염을 막기 위한 조치라 할 수 있다.

    유로존 위기의 파급은 금융 부문에 한정돼 있는 것은 아니다.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 정상화 조치로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추진하고 있어 유럽 경제의 침체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 지역의 경제침체는 수출입 관계로 맺어진 타 경제권까지 침체에 빠뜨릴 수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는 11월29일 “유로존의 10월 경기체감지수(ESI)가 2년래 최저인 93.7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 지수는 9개월 연속 하락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외 기업신뢰지수 등 다른 수치도 모두 악화됐다. OECD도 최근 보고서에서 “2012년 유로존 성장률을 6개월 전의 2.3%에서 1.6%로 낮추면서, 유로존이 깊은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한편 중국은 2009년 글로벌 침체 이후 가장 저조한 경제성과를 기록했다. 중국의 성장 동력인 수출이 유로존에서 촉발된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제조업의 구매자관리지수는 지난 10월보다 1.4 낮아진 49로 하락했다. 이 수치는 지난 32개월 중 가장 낮은 수치로 상당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국이 내수의 위축과 함께 중국제품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수입수요가 줄어 경기후퇴로 접어들 수 있어 우려된다.

    현실성 없는 유럽공동채권, 국채 매입 G2까지 위험하다

    불에 탄 유로화에 ‘무효’라는 뜻의 독일어 ‘ungultig’이 표시돼 있다. 현재의 유럽연합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다.

    경기침체에 의한 위기 전이

    중국이 내수 진작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될 가능성은 낮지만, 성장속도는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 OECD 등 주요 경제기관들은 중국의 성장률이 8.5%를 밑돌 것으로 보고 있다.

    12월1일, 중국당국이 지급준비율을 21.5%에서 20%로 낮추었고 같은 시기에 브라질도 기준금리를 0.5%P 낮추었다. 이러한 양상은 신흥개도국도 이제 인플레이션보다 성장 저조를 우려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미국의 경제지표는 통상적인 기대보다 개선되고 있다. 미국의 산업생산은 10월 상대적으로 좋게 나타났고, 4분기에는 3.0%로 높아질 전망이다. 이 같은 개선은 소비지출이 매우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가 소득의 증가가 아닌 저축률 하락에 의해 뒷받침되었기 때문에 경기흐름이 반전된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한편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의회 슈퍼위원회가 여야 합의에 실패함으로써 2012년에는 재정지출이 자동적으로 1조3000억달러가 줄어든다. 경기 회복에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도 재정적자 감축안 합의 실패로 근본적인 개혁이 지연됐고, 유로존 위기로 인해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양 대륙의 경제침체는 상호간의 무역을 위축시켜 경제침체를 가속할 것이다.

    위기로 미국 경제 호조세 꺾일 수도

    최근 열린 유로존 재무장관회의에서 국채 가격의 20%에 보증을 서는 방식으로 EFSF기금 레버리징을 결정했다. 하지만 벨기에 신용등급이 강등됐고 회원국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아 기금의 레버리징 규모는 1조 유로를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의 재정위기를 수습하기에는 부족한 규모다. 유럽 지도부들도 이 점을 파악하고 유럽중앙은행에 의한 국채 매입과 유로공동채권 발행을 두고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두 방안은 재정건전국이 동의하기 힘들다. 유럽공동채권의 경우 EU위원회의 네덜란드 대표였던 볼케슈타인이 지적하는 것처럼, 유로공동채권 발행은 네덜란드가 매년 70억 유로에 달하는 이자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도 마찬가지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 회원국이 공동으로 자금을 출자한 은행이다. 유로화가 재정위기국을 위해 계속 발행된다면 재정건전국의 유로화 표기 자산 가치는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재정건전국은 출자를 중단하고 자국 통화를 복원해버릴 수 있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트라우마가 있는 독일로서는 채권 매수가 정서적으로 용인이 안 된다.

    유로존 위기의 원인은 유로존의 제도적·구조적 결함에 있다. 현재 유로존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로공동채권을 발행할 수 있도록 재정을 완전히 통합하거나, 유럽중앙은행이 완전히 자율적인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국민국가가 이를 허용하기는 힘들다. 그만큼 유로존은 위기 해소의 길을 찾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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