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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 알뜰주유소 표류 내막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바꾸고, 고치고, 압박하고…

  • 배수강 기자│bsk@donga.com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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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기름값 묘하다” MB 발언 뒤 10개월 만에 알뜰주유소 등장
  • ● 시중가보다 60~100원 싸게 공급…“일반 주유소는 고사” 반발
  • ● 과징금 2525억원 받은 업계는 “참여 할 수도, 안할 수도 없고….”
  • ● 사전 논의 없는 정책간담회…“실효성 있는 정책 나오겠나”
  • ● 해외 수입, 온라인시장 개설, 환경기준 완화…줄줄이 무산, 연기, 제동
  • ● 정부와 카드사만 ‘고유가 재미’…“유류세 탄력세율 조정 검토하자”
“면밀한 검토·사전조율 없는 油價정책이 불신 불렀다”
“정부가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일도 중요하다. 기존 유통시장이 있는데 어떡하란 말이냐. 거 참….”(정유사 관계자)

“우린 농협주유소 물량을 싸게 공급받으려 참여한 거다. 현재 지켜보고 있다.”(농협 관계자)

“수의시담(隨意示談)을 통해 입찰가격과 조건 등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눴다. (2011년) 12월 말경 3차 입찰에서는 공급업체가 나올 거다.”(지식경제부 관계자)

기름값을 낮추겠다며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알뜰주유소가 출범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정부와 정유사, 주유소 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설사 알뜰주유소가 본격 운영된다고 해도 후유증이 클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지식경제부(이하 지경부)는 2011년 11월4일 ‘알뜰주유소, 세상 속으로’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냈다.



“2011년 11월3일 석유공사와 농협은 공동구매를 위한 입찰공고를 했고, 11월 중 공급자가 결정될 예정이다. 입찰 계약이 발효되는 12월 중에 물량이 공급될 것이다…국내 정유4사의 독과점 구조로 경쟁이 제한적이라는 판단하에, 알뜰주유소 정책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공급자와 판매자가 활동해, 가격인하를 선도하고 소비자 혜택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한국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국내 정유사로부터 대량으로 기름을 사들여 구입단가를 낮춘 뒤 알뜰주유소에 저렴하게 공급한다는 계획이었다. 동시에 석유공사의 서산·용인기지 저장탱크를 이용해 유통비용을 줄이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는 주유소에는 여신 지원과 셀프주유기 설치 등 각종 지원을 해 L당 100원가량 저렴하게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전국 500여 곳의 농협주유소와 고속도로 휴게소, 주유소 상표가 없는 자체브랜드(자가폴) 주유소 등을 우선 알뜰주유소로 전환하고, 기존 주유소도 신청을 받아 2015년까지 전국 주유소의 10%(1300여 곳)까지 늘려간다는 복안이었다. 소비자의 기대도 컸다.

당장 ‘세상 속으로’ 나올 것 같던 알뜰주유소는, 그러나 현재까지 산통(産痛)만 계속하고 있다. 시작부터 걸림돌이 생겼다. 당장 물량을 공급할 정유사를 선정하지 못한 것. 2011년 11월15일 제품 공급업체 경쟁입찰을 했지만 유찰됐고, 1주일 뒤 예정된 2차 입찰은 12월8일로 전격 연기됐다.

국내 정유4사 중 현대오일뱅크는 “생산수급과 판매 규모를 고려할 때 입찰에 참여할 여력이 없다”며 입찰 불참을 선언했고, 나머지 정유사들도 정부의 예상가보다 높게 써내면서 2차 입찰도 유찰됐다. 일반 주유소 공급가보다 L당 최소 50원 이상 낮은 공급가를 원하는 정부, L당 20~30원의 영업이익이 나는 상황에서 정부의 기준에 맞추기 어렵다는 정유사가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뜰주유소의 산통

기존 주유소 업계와 유관협회도 발끈했다. 한국주유소협회와 정유사별 자영주유소협의회는 “알뜰주유소에만 싼값에 기름을 공급하면 자영 주유소들은 고사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를 성토했고, 석유유통협회는 “민간 영역의 유통시장에 공기업이 끼어들어 불공정 경쟁을 하려 한다”며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예고했다. 석유공사가 석유대리점 역할을 하면 그만큼 시장을 잃게 된다는 우려였다. 국내 석유유통구조는 정유사→대리점→주유소 3단계였지만, 1998년 석유사업법 시행령 개정으로 정유사→주유소 직거래가 허용돼 현재 유통구조는 양분돼 있다. 지경부는 석유공사→알뜰주유소로 직접 공급해, 줄인 비용만큼을 소비자 혜택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계획이다.

지경부는 두 차례 유찰 이후에도 “알뜰주유소를 곧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도 2011년 11월15일 2012년 업무보고에서 “내년에 알뜰주유소를 700곳까지 설정하겠다”고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경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3차 입찰에서는 공급가 인하 같은, 입찰조건이 변경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세부내용은 말할 수 없다. (알뜰주유소가 일반 주유소에 비해) L당 100원까지는 어렵겠지만 60원 이상 싸게 팔지 않을까 하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알뜰주유소가 일반 주유소에 비해 60~100원 싸게 팔려면, 정유사로부터 시중 공급가보다 싸게 사오고, 여기에 사은품 미지급 등으로 20~50원가량 운영비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70~100원 싼 가격에 팔 수 있다. ‘60원’은 3차 입찰에서 정유사 공급가를 조금 올려주겠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유관협회와 업계는 여전히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는 반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1,2차 입찰 때도 ‘마른 수건 다시 짜는 심정’으로 최저가격을 써냈다. 우리 회사 브랜드를 달고 있는 자영 주유소들도 배려해야 한다. 낙찰이 되어도 걱정”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축유 공급권한과 정유사들의 영업정보를 모두 가지고 있는 석유공사와 정부에 ‘찍히면 안 된다’는 현실적인 고충도 있다. 어쨌든 정부로서는 시작부터 체면을 구겼다. 그래서인지 지경부는 1차 입찰에선 보도자료를 내며 입찰 소식을 알렸지만, 2차 입찰은 조용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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