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호

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지금 조세 피난처에선…

  • 김영미 │프리랜서 PD

    입력2013-06-20 1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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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세피난처에 계좌, 법인을 만든 재계 인사들의 명단이 공개돼 한국 사회가 요란하다. 조세 체계가 무너지면 화폐권력, 금융체계가 붕괴한다. 그들은 왜 조세피난처를 기웃거린 걸까? 미국, 홍콩, 케이먼 제도의 ‘세금 디자이너’ 3명을 인터뷰했다.
    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버진아일랜드 토트톨라 해변.

    홍콩은 내로라하는 세계 각국 은행이 둥지를 튼 금융 허브다. 홍콩의 은행들은 그동안 중국에 관심을 가진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들이면서 호황을 누렸다. 최근엔 해외 투자에 관심이 높은 중국인 투자자를 고객으로 유치해 수익을 높이고 있다. 홍콩 금융당국은 투자자의 비밀 보호를 강조한다. 홍콩의 은행들은 세금을 회피하려는 이들에게 조세피난처로 가는 첫 관문 구실을 하고 있다.

    미국계 중국인 여성 비비안(가명)은 홍콩 금융계에서 일한다. 30대 후반의 미혼인 그는 자신의 직업을 ‘금융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세계 각국 고객을 상대하는 터라 밤낮 구분 없이 일하는 데다 휴가도 마음대로 못 간다고 했다. 비비안은 홍콩에 조세피난처와 관련된 법인을 세우려는 개인과 기업에 회사 설립 및 법인 관리 대행 업무, 회계결산 및 감사, 세무 업무 등 토털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팅 업체 소속이다.

    조세 회피의 천국 카리브 해

    비비안이 회사에서 주로 하는 일은 조세피난처 관련 업무다. 조세피난처에 합법적으로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세워주는 일을 돕는다. 법인 실제 발생 소득의 전부 또는 상당 부분에 대해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나 지역을 가리켜 조세피난처라고 한다.

    비비안이 받는 수수료는 최소 수천 달러에서 많게는 수십만 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는 원래 미국 마이애미 주 소재 은행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은행원이었다. 친절하고 성실하기로 소문이 나면서 이 은행의 VIP 담당 업무를 맡았다. 마이애미는 카리브 해 지역과 가깝다. 카리브해에는 조세피난처로 불리는 섬나라가 즐비하다.



    비비안은 VIP 고객의 조세 피난을 도우면서 비밀스러운 업무에 눈을 떴다. 홍콩의 컨설팅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것은 10년쯤 전이다. 그는 “우리가 하는 일은 철저한 비밀주의와 깔끔한 일처리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조세피난처로 자산을 옮기려는 개인이나 법인이 비비안의 고객이다. 그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우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기업들이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외국 기업과 합작 사업을 벌일 때 페이퍼컴퍼니를 활용하는 것은 비즈니스 과정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우는 것은 합법이다. 다만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세금 회피 목적으로 재산을 빼돌리거나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은 국가에 따라선 불법이다. 합법을 가장한 ‘돈의 해방구’라는 싸늘한 시선이 조세피난처에 쏟아진다. 독재자가 조세피난처의 유령회사를 통해 비자금을 축적하는 수도 있고, 내야 할 세금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조세피난처가 이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각국의 조세당국은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합법을 가장한 탈세의 거점으로 보곤 한다.

    비비안의 회사처럼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등록, 관리해주는 대행 회사는 세계 각지에 퍼져 있다. 아시아의 기업이나 개인은 주로 홍콩, 싱가포르의 에이전시를 이용한다.

    사람보다 법인이 많은 곳

    조세피난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테네를 비롯한 도시국가가 외국산 물품 거래 때 약 2%의 세금을 물리자 무역상들은 거래세를 내지 않고자 지중해의 섬들을 물품 창고로 이용했다.

    21세기 조세피난처도 상당수가 섬이다. 룩셈부르크 등은 육지에 있지만 버진아일랜드, 버뮤다 제도, 쿡아일랜드 등 50여 곳의 섬이 조세피난처로 각광받고 있다. 버진아일랜드가 조세피난처로 이용된 것은 콜럼버스가 대서양 항로를 발견한 직후부터라고 전해진다. 15세기 말부터 조세피난처 구실을 했다. 버진아일랜드를 시작으로 카리브 해의 많은 섬나라가 조세피난처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카리브 해의 휴양지 케이먼 제도. 마이애미에서 비행기로 1시간 30분쯤 걸리는 이곳은 신혼여행지로 인기가 많다. 케이먼 제도의 수도 조지타운은 관광지답게 늘 활기차다. 기념품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비치타월을 허리에 두른 연인들이 오고간다.

    합법 가장한 ‘돈의 해방구’ 빛의 속도로 추적 따돌려

    6월 3일 인터넷 매체 뉴스타파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 명단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들 전재국 씨를 공개했다.

    하지만 이 섬은 관광산업으로만 먹고사는 곳이 아니다. 거리를 오가는 인파 중엔 고급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 대다수가 은행원이다. 조지타운 시내에는 크고 작은 은행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관광과 더불어 이 섬의 또 다른 대규모 수익사업이 은행업이다.

    개인이나 법인은 금융 중심지로 부상한 이곳에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하면서 수수료를 낸다. 이 수수료가 케이먼 제도의 주요 수익원이다. 조지타운의 은행들은 고객의 비밀을 철저하게 보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케이먼 제도엔 시민보다 법인이 더 많다. 인구는 5만 6000여 명(2011년 기준)에 불과하지만 등록기업은 은행 230여 개, 보험사 730여 개, 뮤추얼펀드 1만여 개 등 9만2000여 개에 달한다. 케이먼 제도에 설립된 회사들의 대부분은 직원이 한 명도 없는 서류상의 회사다. 세금이 없는 이곳에 서류상으로만 회사를 차려놓고 실제 영업이나 투자를 한 것처럼 회계 처리를 해 세금을 회피하는 개인이나 법인이 적지 않다. 케이먼 제도에서는 이들 페이퍼컴퍼니를 IBC(International Business Company)라고 한다.

    케이먼 제도의 한 은행에서 일하는 마이클(가명·45)은 이곳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공부했다. 비비안 같은 이들이 고객을 확보해 정보를 제공하면 마이클 같은 이들이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해준다. 지구 반대편의 홍콩과 케이먼 제도의 금융인이 손을 잡고 일하는 것이다. 마이클은 “홍콩 등에서 고객 정보를 보내주면 우리가 여기서 법인 설립을 위한 행정 조치를 대행해준다”고 말했다.

    “2주면 법인 등록 마무리”

    홍콩의 비비안은 발로 뛰는 영업 방식을 갖고 있다고 했다. 세계 각국의 은행과 회계사, 금융 관련 변호사와의 네트워크를 구축해놓았다. 조세피난처에 신규 법인을 설립하는 데는 2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등록에 필요한 서류도 간단하다. 회사 설립 신청서, 등기이사 및 주주의 여권 사본, 주소지를 증명할 수 있는 영문서류만 구비하면 된다.

    고객이 등록에 소요되는 2주일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기존의 등록법인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이때는 정상적으로 등록할 때보다 수수료를 많이 받는다. 비비안은 “이혼 직전 아내에게 위자료를 주기 싫어 자금을 옮기는 경우도 있을 테고, 부도 직전 회사 자금을 급하게 옮기는 사례도 있겠지만 고객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케이먼 제도의 마이클 같은 이들은 잠재 고객을 위해 유령회사를 미리 설립해 둔다. 마이클의 컴퓨터 안에는 옷장에 옷을 쌓아놓듯 법인들이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마이클은 “회사 이름을 짓는 것도 힘들다. 하루에 열댓 개의 이름으로 법인등록을 하는 날도 있다. 동료 한 명은 소설책을 임의로 펼쳐 가장 먼저 나오는 단어로 이름을 짓는다”고 전했다.

    미국의 많은 기업이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세웠다. 합법적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 예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것이다. 2002년 대형 회계 부정이 드러나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에너지 기업 엔론의 경우 케이먼 제도에 692개의 자회사를 설립했고, 이 자회사들을 이용해 1996~2000년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대표적 사례다.

    한국 기업도 케이먼 제도에 경쟁적으로 법인을 설립했다. 4월 한국은행이 정성호 민주통합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케이먼 제도, 버뮤다, 버진아일랜드,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 조세피난처 4곳에 대한 국내 법인(금융제외)의 투자 신고액이 지난해 말 현재 16억2290만 달러(약 1조8000억 원)에 달한다. 2011년 말 신고 잔액보다 56.8%, 금액으로는 5억9000만 달러(약 6600억 원) 증가한 규모다.

    섬나라로 국적 바꾸기도

    또한 삼성, 현대차, 롯데, 한화, 효성 등 30대 그룹 계열사들이 케이먼 제도에 설립한 역외 금융회사 14곳에 송금된 돈이 2010년엔 4억1710만 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12억2940만 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도 2004년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설립했다. NHN 측은 인수한 중국 게임업체의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을 위해 미국과 동일한 회계기준을 적용하는 케이먼 제도에 법인을 설립했다고 해명했다. NHN은 9년간 유지해온 케이먼 제도의 법인 청산작업을 최근 거의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비안은 케이먼 제도는 물론이고 사모아, 쿡 제도 등 여러 조세피난처에 비즈니스 파트너를 두고 있다. 케이먼 제도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특정 기업의 자산을 옮겨놓은 후 3년가량 지나면 그 회사의 자산을 다른 조세피난처에 새로 등록한 페이퍼컴퍼니로 조금씩 옮긴다. 특정 기업 혹은 개인과 한번 거래를 튼 후 조세피난처를 옮겨 다니면서 수수료를 계속 챙기는 것이다. 대기업이 세운 페이퍼컴퍼니는 비비안 같은 컨설턴트, 조세피난처의 변호사, 회계사가 함께 관리해야 한다. 비비안은 이렇게 설명했다.

    “특정 조세피난처에 오랫동안 자산을 묻어둘 수는 없다. 수년 단위로 옮겨 다니는 게 좋다. 우리 역시 여러 지역을 로테이션 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미국에서 일하는 벤저민(가명)은 이 방면에서 뛰어난 회계사다. 그는 어떤 식으로 자금을 분산해 세금을 회피하는 게 유리한지를 잘 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는 부동산을 주로 이용했다고 한다.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동산을 매입하라고 고객들에게 권유했다. 골프장이나 시내 중심가의 빌딩에 투자하는 이도 많았다고 한다. 글로벌 부동산 경기가 하락한 후에는 골동품이나 그림을 구입하는 방식이 이용되곤 했다. 벤저민은 “우리가 하는 일은 보안이 최우선이다. 고객의 취향과 사업의 종류에 따라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전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의 명의로 미국 현지에 재단을 설립하는 방식도 이용된다고 한다. 이런 유령 재단은 초기에는 실적을 쌓는 데 주력한다. 재단은 각급 학교 스포츠 행사, 노숙자 돕기 캠페인 등을 후원한다. 재단이 자리를 잡으면 고객에게 부동산 등을 이 재단에 기부하게끔 한다. 부동산 소유주가 기부를 통해 1차 세탁돼 재단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후 조세피난처에 재단 산하의 또 다른 재단을 만든다. 지원금 형식으로 재단의 돈을 조세피난처에 등록된 재단으로 옮긴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재단은 조세피난처의 재단으로 통합된다. 조세피난처의 재단은 부동산을 기부한 고객이 지배하도록 설계돼 있다.

    25만 달러 정도만 지불하면 카리브 해 섬나라의 영주권을 얻을 수 있다. 국적 변경도 어렵지 않다. 세금을 적게 내거나 재산을 도피하고자 별별 방법이 다 동원되는 것이다.

    세계 최고 조세피난처는 미국?

    미국에도 조세피난처가 있다. 델라웨어 주가 그곳이다. 델라웨어 주 윌밍턴의 한 단층건물은 아메리칸항공,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카길, 코카콜라, 포드, 제너럴모터스, 구글, 월마트 등 28만 5000개 기업의 법적 주소지다. 델라웨어 주는 인구가 약 90만 명인데, 기업 수는 94만 개나 된다. 델라웨어 주는 소득세는 물론이고 상속세, 주식 이전세 등도 없다. 회사 실소유주의 비밀도 보장해준다.

    회계 및 경제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세정의네트워크(TJN)는 2009년 델라웨어 주가 스위스를 제치고 세계 최고의 조세피난처로 부상했다고 밝혔다. TJN이 전 세계 60곳에서 조세 관련 법률과 금융기관의 영업방식, 유입자금 규모에 대해 조사한 결과 델라웨어 주가 세계 최고의 조세피난처에 이름을 올렸고 그 뒤를 룩셈부르크와 스위스, 케이먼 제도가 이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 세상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고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물론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운 미국 기업 대부분은 탈세가 아닌 절세 수단으로 조세피난처를 활용하고 있다고 항변하지만.

    미국 회계감사원(CRS) 자료는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지난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 중 평균 43%를 조세피난처로 옮겨놓았다”고 밝힌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최근 수년 동안 미국 외 지역의 조세피난처에 최소 100개 이상의 자회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여러 나라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세금을 아끼는 방법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5월 21일 미국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애플이 조세피난처를 활용해 최근 4년간 440억 달러(약 49조 원)의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의원들의 주장에 대해 “해외에서 거둔 수익은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법 규정을 따른 것”이라며 “세금을 탈루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미국 의회회계국(GAO)에 따르면 현재 미국 100대 상장기업 중 83개 회사가 다양한 이유로 조세피난처에 자회사를 두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 유럽발 재정위기가 연거푸 휘몰아치면서 조세피난처에도 위기가 찾아왔다고 한다. 각국 정부가 세금을 더 걷고자 역외탈세 적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한국 국세청도 예외가 아니다.

    TJN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세워 자금을 운용하는 이가 935만 명에 달하고, 9조8000억 달러가 조세피난처에 숨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은닉된 재산에 세금을 부과하면 각국 정부가 부족한 세수(稅收)를 메울 수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세법을 개정하거나 조세피난처로 불리는 나라들에 대한 압박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2009년부터 국세청(IRS) 산하에 ‘역외소득 탈루 전담 조사팀’을 만들었다. 중국과 일본도 다국적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국 국세청도 국제탈세정보교환센터(JITSIC)에 가입해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 자료 확보에 나섰다. 세금을 부과하려는 정부와 세금을 회피하려는 기업 간의 숨바꼭질이 치열해지고 있다.

    회계사 벤저민은 “2008년 이후엔 케이먼 제도나 버진아일랜드보다 인도양의 조세피난처를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나라마다 세법이 각양각색이다. 이를 잘 연구해 합법적인 방법을 찾아낸다”고 귀띔했다.

    조세피난처의 피난

    최근 ICIJ(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버진아일랜드의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개인과 기업의 목록을 발표하면서 세계 각국 세무당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비비안의 업무도 바빠졌다. 그는 “버진아일랜드의 법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조세피난처로 ‘피난’하고 있다. ICIJ의 발표는 수년 전 기록인 터라 후폭풍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세계 언론의 관심 또한 조만간 수그러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이낸셜타임스’ 필진인 조세 전문 저널리스트 니콜라스 색슨은 독일 시사주간지 ‘디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카리브 해의 조그만 섬나라 등을 조세피난처로 떠올리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국가가 역외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빛의 속도로 국경을 옮겨 다니는 대규모 금융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00년 조세 정보교환에 소극적인 파나마 모로코 리히텐슈타인 등 35개 국가 및 지역을 조세피난처로 지목한 후 ‘탈세와의 전쟁’에 나선 바 있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도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로 결의했다. G20 정상들은 금융 비밀주의와 세금 면제 등을 미끼로 외국 자본을 유치하려는 일부 국가에 대해 계좌 내역을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이들 국가가 이런 요청을 거부하면 국제 금융거래 때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했지만 성과는 크지 않았다.

    필자는 자신의 업무가 합법임을 강조하는 비비안에게 “도덕적으로는 비난받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는 “이 직업이 자랑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수요가 있기 때문에 공급이 있는 것 아니겠나. 조세피난처를 원하는 고객이 있는 한 내가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이 에이전트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케이먼 제도의 마이클은 조만간 카리브 해의 또 다른 섬 네비스의 은행으로 이직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

    각국 조세당국과 조세피난처 간 전쟁은 한동안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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