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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상징적 존재로 세워 남조선 먹어치우려 했다”

反김정일 쿠데타 ‘프룬제 군사 아카데미아 사건’ 내막

  • 글·구술 김일철 | 前 북한 노동당 간부 정리·송홍근 기자 | carrot@donga.com

“김일성 상징적 존재로 세워 남조선 먹어치우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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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붕괴 현장 목격

5년간 소련 크라스노다르의 전투기 비행사 양성소에 20여 명, 레닌그라드의 잠수함 군관 양성소에 20여 명이 나갔다. 모스크바에 있는 프룬제, 주코프, 보로실로프 군사 아카데미아에는 고급 군관들이 파견됐다.

북한 유학생들이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나라에서 온 동료들에게 ‘사회주의 조선’의 우월성에 대해 선전하면 다른 나라 유학생들은 그것을 반박하면서 자신들의 나라와 비교하며 북한은 ‘스탈린식 독재국가’라고 말했다. 북한 유학생들은 김일성이 20세 때 항일 유격대를 창건했고, 1937년 6월 4일 150명의 병력으로 양강도 보천보를 기습했으며, 1937년 6월 30일에는 600명을 거느리고 일본군 1500명, 위만군 500명을 궤멸시켰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을 패망시키고 조국을 해방시켰으며, 해방 후 당과 군대를 창건해 나라를 세웠고, 지금은 해마다 2월 16일과 4월 15일에 전국 어린이들에게 김일성과 김정일 이름으로 1㎏의 당과류를 선물로 주는 은정을 베푼다고 선전했다.

그러면 소련 군사대학 교수들과 다른 나라 유학생들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을 부정하면서 김일성이 소련군 대위로 있었으며, 김일성·김정일의 수입이 얼마기에 그렇게 많은 아이에게 선물을 주느냐고 비꼬면서 일본은 소·미 연합군에 의해 패망했다고 설명한 후 북한은 개인 숭배의 독재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유학생들은 소련에 와서 공부하던 동독, 헝가리,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 쿠바 등 다른 나라 군인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이 붕괴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그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유학생들은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조 봉건(조선 왕조) 시기처럼 오직 한 가문이 대를 이으면서 정권을 이어가야 하는가 하는 불만이 싹트기 시작했다.



위로차 군사칭호 한 등급 높여줘

소련 사회주의가 붕괴한 후 유학생들에게 평양으로 들어오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잠시 귀국했다가 소련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1000명 넘는 사회 유학생들은 소환되지만, 군사 유학생은 국가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유학생들은 소련에 짐을 두고 귀국했다.

평양에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침이 바뀌었다. 인민군대의 기둥과 골간이 돼야 할 유학생이 사회주의를 내다버린 소련의 자본주의 황색 바람과 날라리풍에 물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유학생들은 각 부대와 각 군사대학으로 재배치됐다. 소련에서 돌아온 이들은 “우리를 믿지 못해 이러는 것 아니냐”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인민군 총정치국은 유학생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군사 칭호를 한 등급씩 높여줬다.

소련 체류 시절 유학생들은 장령급 대우를 받았다. 군사 유학생들은 매달 장학금 110루블을 받았으며 지하철, 버스 등 교통비, 영화 관람 및 방학 기간 관광비용 등을 제공받았다. 군사 유학생이 아닌 사회 유학생에게는 장학금 85루블만 줬다. 사회 유학생은 다른 모든 것은 자부담으로 처리해야 했다. 군사 유학생은 매년 7월 방학 때 대사관 무관부에 모여 비행기를 타고 평양으로 귀국했다. 방학이 끝나고 소련으로 되돌아갈 때에도 비행기를 이용했다. 사회 유학생은 2년에 1번씩만 여름방학에 기차로 평양에 다녀왔다. 매년 1월 1일에는 군사 유학생에게만 최고사령관 이름으로 인삼 술 1병과 달력 2개가 선물로 내려왔다.

군사 유학생들은 이렇듯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나 장학금이 적어 부득불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불만이었다. 장령급 대우였으나 110루블로 소련에서 한 달을 생활하기는 어려웠다. 대학 구내식당 한 끼 식사비가 1루블쯤 했다. 담배도 사 피워야 했다.

유학생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장사를 했다. 방학 때 평양에 가 고려인삼 정액, 고려인삼 인단, 고려인삼차, 수지연필, 사슴표 운동신, 일본산 테이프 녹화기, 세이코 손목시계 등을 가져다 소련인과 다른 나라 사람에게 팔아 생활비에 보탰다. 방학을 맞아 평양으로 되돌아갈 때는 소련제 냉동기, TV, 사진기, 사진인화종이, 카메라 필름, 사진 현상액, 손목시계, 각종 옷가지와 식료품들을 구입해 북한에서 팔았다.

인민무력부 보위국에서는 3인조, 5인조, 7인조로 이뤄진 각 조의 1명을 골라 첩보원으로 삼은 후 매달 조에 속한 이들의 사상 상태를 편지로 보고하게 했다. 보위국이 스파이로 고른 이들은 동료들을 고발하지 않고 “다 잘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1993년부터 이뤄진 소련 유학생 청산 당시 이들은 유학생들의 변질 상태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장 먼저 숙청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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