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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와인 ⑦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484년 농익은 보르도 최고 와인 VS 캘리포니아 고급와인의 젊은 선구자

  • 조정용│와인평론가 고려대 강사 cliffcho@hanmail.net│

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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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 오브리옹 vs 오퍼스원

샤토 오브리옹 건물.

나무를 촘촘하게 심어라

양조 방식에서 오브리옹과 오퍼스원은 공통점이 많다. 왜냐하면 오퍼스원을 창업한 로쉴드 가문에서 양조방식에 많은 지침을 내렸고, 나머지 공동 창업자인 로버트 몬다비 측에서도 이를 환영해 보르도 최고 샤토의 양조법을 상당 부분 따랐기 때문이다. 두 양조장은 모두 발효를 위해 스테인리스 스틸 통을 사용한다. 온도조절이나 위생관리에 최적이라 믿기 때문이다. 포도밭을 구역으로 나누고 구역별로 수확한 포도를 구분해 발효시킨다. 빈티지별로 품종마다 완숙상태가 다르고, 밭마다 품질이 달라서 각기 따로 발효시킨다. 와인을 구분해 여러 샘플을 만들고 실험실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따져 이들을 혼합하는 실험을 통해 최종 아상블라주를 결정한다.

오크통 숙성을 위해서는 오크통을 바닥에 한 층으로 깐다. 바닥면적이 좁은 샤토에서는 보통 2층이나 3층으로 오크통을 쌓아 숙성하지만, 오퍼스원이나 오브리옹은 한 층으로만 오크통을 배열한다. 작업에 용이하고 숙성에도 만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퍼스원은 오브리옹처럼 프랑스산 새 오크통을 쓴다. 수확한 포도의 품질이 완벽하고 타닌이 많으므로 새 오크통에서 숙성하면 오크의 기운이 더해져 훌륭한 와인으로 거듭난다.

포도나무 재배에도 공통점이 많다. 오퍼스원 이전 시대에는 캘리포니아 포도밭은 나무 사이 간격이 2.4m였다. 소출을 많이 올릴 목적으로 나무 사이를 벌려놓았다. 하지만 오브리옹이나 무통 로쉴드는 그 간격이 1.2m밖에 되지 않는다. 포도나무를 더 촘촘히 심어서 나무 간의 경쟁을 유발, 소출을 줄이면서 품질을 높이는 방식이다. 뿌리가 더 깊이 박히도록 해서 포도 완숙을 기하는 재배방법이다. 나무를 촘촘하게 심으면 나무수가 많아지고, 가지치기 일감이 늘어나 노동력이 더 필요해지니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여기서 태양의 열과 빛 중에 무엇이 포도에 더 이로운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열은 포도를 익혀 당분을 높인다. 즉 포도를 농축시킨다. 빛은 광합성을 유발해 껍질을 숙성시킨다. 해서 타닌과 색깔을 만들어낸다. 그러니 빛이 더 중요하다. 오퍼스원의 나무도 보르도 방식을 따라야 한다고 로버트 몬다비가 역설할 때 많은 동료가 반대했다. 오퍼스원의 시도는 전례가 없던 것이지만, 이제는 고급을 지향하는 캘리포니아 포도밭의 규범이 됐다.



수확한 포도의 품질은 다 같지 않다. 품질을 최고로 중시하는 양조장에서 포도의 수준을 따지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기대 이하의 포도는 어떻게 할까? 10년 미만의 어린 포도나무의 포도와 30년 정도 된 포도나무의 포도가 품질이 같다고 볼 수 없지 않겠는가. 이런 이유로 샤토에서는 세컨드 와인을 생산한다. 품질이 떨어지는 포도를 샤토의 대표 와인 생산에 쓰지 않고, 별도의 다른 와인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간판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탈락된 포도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다. 세컨드 와인은 간판 와인과 같은 테르와(Terroir)에서 나왔으므로 소비자로서는 좀 더 저렴한 값에 간판 와인의 일부를 맛보는 의미가 있다. 오브리옹의 세컨드 와인은 르 클라렌스 드 오브리옹(Le Clarence de Haut-Brion)이며, 5000케이스 정도 생산한다. 오퍼스원의 세컨드 와인은 오버추어(Overture)다.

카베르네 쇼비뇽과 메를로

오브리옹과 오퍼스원은 다른 점도 많다. 우선 오브리옹은 동일한 이름으로 화이트 와인도 만든다. 오브리옹이 위치한 페삭-레오냥 마을 자체가 화이트나 레드 어느 것이나 다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조장이 원하면 레드와 화이트 둘 다 양조할 수 있다. 반면 오퍼스원은 화이트를 전혀 만들지 않는다.

두 와인은 같은 보르도 포도로 양조했지만 맛에 차이가 있다. 이른바 스타일의 차이다. 하지만 풍성하고 화려한 아로마는 비슷하다. 오브리옹은 보르도 1등급 와인 중에서 메를로를 가장 많이 혼합한다. 메를로가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거칠고 단단한 카베르네 소비뇽의 날카로움을 메를로의 진하고 풍성한 느낌으로 감싸는 덕분에 오브리옹은 1등급 와인 중에 가장 부드러운 질감을 지닌다. 오퍼스원은 9할 정도를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채우는데, 이상하게도 오브리옹의 느낌과 유사한 데가 있다. 이는 나파밸리의 뜨거운 태양 아래 농익은 카베르네 소비뇽의 농축미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의 카베르네 소비뇽은 보르도의 메를로와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풍부한 일조량속에서 자란 카베르네 소비뇽이 완숙되면서 특유의 거칠고 날카로운 특질이 메를로처럼 부드러워지니 오퍼스원에서 오브리옹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게 무리는 아니다.

두 와인 모두 화려한 바닐라와 초콜릿 아로마 아래로 블루베리와 블랙커런트 향이 배어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오브리옹은 미네랄 향이 강하다. 흙먼지 같은 냄새다. 뿌리가 땅속 깊이 박혀 있어 자갈 토양에서 배어 나오는 광물 향취가 와인에 이식된다. 오퍼스원의 나무들은 길어야 30년 정도 됐으니 오브리옹의 깊은 맛을 따라가기엔 멀었다.

두 양조장의 차이는 포도 이외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다분히 경제적인 측면이라고 보는데, 오브리옹은 일반인이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오퍼스원은 입장료만 내면 언제든 가능하다. 오퍼스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일은 캘리포니아 와인의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것이다. 추억의 첫 페이지는 아마도 로버트 몬다비로 시작될 것이다. 로버트 몬다비는 오퍼스의 공동 창업자라는 이유뿐 아니라 캘리포니아 와인 세계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아드리아 해를 바라보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이 고향인 이민자의 아들로 미국에서 태어난 로버트 몬다비는 미국 와인산업의 나침반 역할을 했다. 그가 정하고 유지하면 그게 곧 규범이 됐다. 일찌감치 포도 품종을 라벨에 표시한 것이 오늘날 신세계 와인의 규칙이 된 점이나 소비뇽 블랑을 퓌메 블랑이라고 이름을 바꿔 품종을 표시했어도 둘이 같다고 여겨지는 점이 그렇다. 결정적으로는 미국 땅에서도 고급 와인 생산이 가능하다는 것을 만방에 증명해 보이기 위해 오퍼스원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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