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BS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중계방송 장면.
방통위가 개입하지 않은 이유는 자명하다. 기본적으로 SBS의 단독중계에 대해 보편적 접근권의 보장과 관련해 큰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SBS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어 대다수 시청자는 손쉽게 SBS TV 프로그램에 접근할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또한 IT의 급속한 발달로 최근 들어 보편적 접근권에 대한 해석이 달라지고 있다. 즉, 방송계에서는 지상파만이 보편적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전통적 개념이 바뀌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시청자는 SBS TV뿐만 아니라 위성DMB,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을 통해서도 올림픽 중계방송에 접근할 수 있었다.
비판론자들은 SBS가 방송3사 간 합의서를 작성하는 시점에 이미 IB스포츠와의 이면합의를 통해 단독계약을 추진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시시콜콜한 진행사항에까지 싸잡아 칼날을 들이대는 것으로 지나친 감정배출에 불과하다. SBS의 독점계약을 두고 ‘국부 유출’이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시장 논리를 간과한 억지라고 하겠다. 이는 광고수익을 주 수익원으로 하는 민영방송의 부담을 국민의 부담과 동일시하는 논리의 비약이기 때문이다.
중계권 확보에 실패한 국가기간방송인 KBS와 공영방송을 주창하는 MBC의 구태의연함이 더 큰 문제다. 이들 방송사는 옹졸하게도 금메달을 목에 건 감격의 순간조차 정지화면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여론의 질타를 받자 서둘러 보완했다. KBS와 MBC는 그동안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현실에 안주해오지 않았는지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최고의 재료로 만든 초라한 요리
그러나 SBS가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크고 작은 여러 전투에서는 패배했다. 전쟁의 승리를 마냥 기뻐할 수 없을 만큼 상처도 컸다. 최고의 재료가 덩굴째 굴러들어왔지만 서투른 요리사는 보잘것없는 초라한 결과물을 식탁에 내놓고 말았다. 가장 큰 문제는 능력이 떨어지는 해설자를 기용한 데 있었다. 대중 스포츠인 야구나 축구와 달리 빙상경기처럼 시청자에게 낯선 종목에서 해설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똑같은 경기라도 어떻게 해설하느냐에 따라 경기를 시청하는 깊이와 재미가 달라진다.
방송 선진국에선 해설자가 미리 흥분하거나 실수를 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해설자는 고함을 치는 서포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 선수 출신이라고 하더라도 아나운서 트레이닝을 받지 않으면 마이크 앞에 설 수 없다. 중요한 경기에선 늘 전문 해설자를 기용한다. 반면 SBS는 검증되지 않은 해설자를 기용하는 바람에 “역시 SBS는 이게 한계야”라는 불명예를 자초했다. 해설자는 관전 포인트를 시청자에게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다. 전문성과 식견이 잘 배어나지도 않는 것 같았다. 특히 해설자의 종교적 발언은 단순 실수라고 받아넘기기엔 그 파장이 너무 컸다.
이번 동계올림픽 중계는 방송의 공익주의와 시장주의가 충돌한 전형적 사례로 남을 것이다. 대체로 공공서비스 전통이 강하고 유료 TV가 발달한 국가에서는 보편적 접근권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경향이다. 미국과 같은 시장주의에 충실한 국가는 입법화보다는 자율적 공정경쟁에 맡긴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독점중계권에 이어 남아공월드컵 독점중계권까지 움켜쥔 SBS의 발빠른 행보는 보편적 접근권의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