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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에세이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 김홍신│ 소설가, 건국대 석좌교수 hongshink@hanmail.net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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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고 기다란 군용 지프 두 대가 들어왔다. 두 시간 동안 수시로 드나들던 지프였기에 으레 그러려니 하고 눈여겨보지 않았다. 지프는 단상 근처에 멈췄고 훌쩍 큰 키에 상하가 붙은 공군조종사복을 입은 카다피가 내렸다. 선글라스 때문에 그의 눈빛을 가늠할 수 없었다. 박수소리와 함성이 요란했다. 그 순간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형형색색의 전통복장과 군복차림의 기마경호대가 로마의 기마병처럼 밀어닥쳤다. 중무장한 경호 차량들이 밀려들자 행사장은 각종 차로 가득했다. 마치 황제가 친정한 대전투에서 승전고를 울리며 돌아오는 장엄한 행렬이 연상되었다.

그는 당당한 걸음으로 최원석 회장에게 다가섰다. 두 사람은 포옹했다. 그리고 카다피는 주먹을 쥐고 ‘리비아 만세!’를 세 번 외쳤다. 그럴듯한 축사, 민족주의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아프리카인 모두에게 식량을 줄 수 있게 사하라 사막을 곡창지대로 만들겠다며 쩌렁쩌렁하게 외칠 줄 알았는데 그는 연호하는 군중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카다피의 옆자리를 꿰차다

단상에서 내려온 카다피는 최원석 회장의 손을 잡고 현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을 푸른 초원으로 만들겠다는 카다피와 현대의 불가사의라는 대수로 공사를 도맡은 최 회장의 그 당당함이 참 멋졌다. 두 사람을 뒤따르는 경호요원들의 복장은 참으로 가지각색이었다. 기관총을 든 백인여성들의 미모가 출중했고 베두인 전통복장을 한 흑인여성들도 각기 옷 모양과 총기가 달랐다. 갖가지 총기와 복장을 한, 눈매가 부리부리한 남성 경호요원들도 두 사람을 따랐다.

연호, 함성, 박수소리가 뒤엉키고 경호대와 뒤따르는 사람들이 뒤섞여 질서라곤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가원수를 경호하는 게 아니라 마치 함께 축제를 즐기는 것 같아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건 기우였다. 우리 일행을 제외한 리비아 국민과 경호원들은 국가원수 카다피의 희망과, 리비아의 발전과 국민을 아끼는 카다피의 애국심을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듯 하나가 되어 열렬히 환호했다.



그때 최원석 회장이 뒤돌아섰다. 그리고 나를 가리키더니 어서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글을 쓰려면 가까이에서 사진도 찍고 그의 모습도 눈여겨봐야 한다며 기공식 행사장에서는 카다피 바로 옆자리에 앉혀주었던 그는 연신 뒤돌아보며 내 움직임을 살폈다. 제2의 ‘인간시장’을 집필하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 찬 나는 경호원과 군중의 틈을 비집고 거의 돌진하듯 카다피와 최 회장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카다피의 근접 경호대이자 여성 경호대인 아마조네스의 벽을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성무사족인 아마존(Amazon)의 복수형인 아마조네스를 본뜬 여성 경호대는 그 누구의 접근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조네스는 여자만의 부족인데, 아이를 얻기 위해 때가 되면 이웃나라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남자아이면 거세해 이웃나라로 보내거나 죽였다고 한다. 여성을 전사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 오른쪽 유방을 절제해 활을 쏘기 편하게 했다고 한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 때 트로이 편에서 싸우다 그의 손에 죽은 아마조네스 여왕이 너무나 아름다워 제 손으로 죽인 그 여왕을 사랑했다고 한다. 1500년경에 스페인 탐험대가 아마존 강을 탐험하다가 여전사를 만나는 바람에 ‘아마존’ 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아마조네스의 일격

카다피의 여성 경호부대 아마조네스는 카다피가 직접 선발한 수백 명의 최정예 대원으로 모두 미혼이며 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최근접 경호요원 중에 프랑스의 미녀들이 유독 눈에 띄었고 흑인 중에도 눈에 띌 만큼의 미모를 자랑하는 경호요원도 꽤 많았다. 카다피를 근접 취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뚫고 들어가려고 여기저기 살폈지만 팔과 팔을 엮어 둘러선 아마조네스 요원들의 장벽을 공중부양하기 전에는 통과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비교적 허술한 틈을 찾아내어 있는 힘을 다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내 가슴을 멍들게 한 그녀
金洪信

1947년 충남 공주 출생, 논산에서 성장

건국대 국문학과 졸, 동 대학원 석·박사

‘인간시장’ ‘대발해’ ‘인생사용설명서’ 등 저서 다수

15,16대 국회의원

제12회 한국소설문학상, 제6회 소설문학작품상 등 수상


그 순간 나는 왼쪽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유독 큰 눈이 아름다운 검은 피부의 아마조네스 요원이 경호원의 무리를 파고드는 내 가슴을 팔꿈치로 정확히 가격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내 원초적 욕망이 그릇에 가득 차고 기울어져 엎어져버린 순간이었다. 생생하게 현장감 넘치는 글을 써보려고 그리도 안달했던 나는 리비아 최고미인이라는 아마조네스의 일격에 쓰러지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도 철벽같은 경호대를 뚫지 못한 아쉬움이 아프기만 하다.

신동아 201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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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소설가, 건국대 석좌교수 hongshin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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