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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함께하는 우리 산하 기행 ③

천년의 미소 찾아가는 길

서산

  • 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천년의 미소 찾아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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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다. ‘나무가 몸을 베푸는 방식’이라는 시의 표현은 이래서 더욱 정겹고 생생하다. 그러나 읍성의 회화나무는 타고나면서부터 형틀의 운명밖에 지닌 것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제 먼 과거의 일이긴 하지만 그 처절한 비명과 낭자한 선혈을 몸으로 지켜보고 듣던 나무로서는 스스로 눈멀고 귀 닫을 수밖에 없었다. 하여, 오늘 이 시간에도 어둠밖에 베풀지 못하는 나무를 마음속에 새겨달라고 마음씨 어진 시인이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새로 단청을 해 그윽한 맛이 사라진 진남루에 오르면 평지 성곽의 특색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음은 물론 돌벽 하나를 두고 문명을 달리하는 안팎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안전 구역을 확보한다는 발상이야 인류의 시작 때부터 있었겠지만 그 구체적 형물로서 동서양 구분 없이 성을 만든 인간들이 나는 참 재미있다. 자못 황당무계하기까지 한 만리장성에서도, 거대한 해자를 두른 채 위엄을 뽐내는 오사카 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특한 인간들이 지어낸 가장 바보스러운 문명물이 바로 성곽이 아니고 뭔가. 그 점에서는 되레 웬만한 높이뛰기 선수라면 쉽게 넘을 수 있을 만한 담장을 쌓아놓고도 태연할 수 있었던 우리네 조상들의 어리숙함이 어여쁘다.

해미읍성 또한 이런 어여쁨을 모두 갖고 있는데, 서해안 방어 문제가 중요시되던 조선조 성종 때 처음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다. 오래 버려졌던 성인데 1970년대 초부터 성안에 있던 학교며 관공서, 민가 등을 철거하고 옛 모습을 되살리는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새 단장을 하는 김에 초등학교 하나쯤은 다시 끌어들여 읍성 하나를 온전히 아이들의 교실로 삼아도 좋았겠다는 감상은 ‘성문 밖에 묶어둔’ 내 말에 몸을 싣기 전 잠깐 가졌다.

주책없이 설레며 마애불 찾는 길

해미에서 운산으로 가는 길, 즉 어둠의 나무 곁을 떠나 햇살 같은 미소를 찾아가는 길은 내륙의 서산 땅을 확인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더러 먼 데 큰 산이 바라보이기도 하지만 찻길은 대개 완만한 산들을 타넘는다. 그런데 이 길의 정취가 남달라 자못 이국적이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산언덕에서 언덕으로 이어지며 펼쳐진 젖소 목초지 때문이다. 계절로 인해 초지의 색깔은 바랬지만 산책을 즐기는 소들의 움직임이 한가롭다.



647번 국도, 고풍저수지를 지난 뒤 옹색한 터널 하나를 통과하면 마애불을 받들고 있는 용현계곡이 나타난다. 터널을 통과한 덕에 아연 별세계로 진입했다는 느낌이다. 아직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청정한 골을 따라 좁은 찻길이 이어진다.

물가에 차려진 작은 구멍가게 하나를 보곤 차를 세운다. 골 너머의 가파른 산비탈과 울창한 수림을 봐서도 이쯤 그 천진한 웃음을 가진 백제 마애불이 모셔져 있을 것임이 짐작 간다. 햇살은 여전히 고운데 주위는 인적마저 드물어 더없이 고즈넉하다. 팔을 벌려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신 뒤 냇물을 건너는데 까닭 없이 가슴이 뛴다. 주책없는 이 설렘은 뭐란 말인가. 그 사이 또 여러 해가 흘렀다 해도 이미 두 차례나 와봤던 터이니 초면부지의 상면이라고 할 수 없는데 돌에 새겨진 불상 하나 만나러 가는 일이 마치 뜻밖의 전화 한 통을 받고 예전에 헤어진 여인네를 만나러 가는 것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 될 줄은 나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르자 단출한 절간 하나가 나타난다. 마애불을 연분 삼아 근대에 세워진 절집이다. 절간 아랫도리를 돌아가는 산길을 걷다보면 금세 천공으로 불쑥 튀어나온 바위 벼랑을 보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마애불 본래의 몸통이 되는 인(印) 바위다.

마애삼존불, 그 웃음 진정 좋아라

층계를 오르자마자 마주 대하게 되는 마애불. 그 사이 눈비를 막겠다고 세웠던 보호각(保護閣)이 치워졌음을 알았다. 제비집 같은 전각마저 사라져서 거침없이 불상을 마주하는 일이 내겐 되레 낯설다. 심호흡을 하며 전각 안으로 들어섰던 때의 기억이 선연해서 더욱 그랬다. 오호라! 그때 내 입에서도 절로 탄성이 나왔다. ‘바로 이것이야!’ 식의 무슨 광고가 있었던 것을 기억하는데 옛 불상을 처음 대하는 순간에 속세의 광고 문구를 되풀이하는 것이 한심스럽긴 했지만 달리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었다. 다른 말은 모두 군더더기가 될 성싶었다. 한량없이 그냥 좋았다.

바닥에 앉은 채 나는 은은한 인공의 조명을 받고 있는 삼존불과 눈을 맞춰보려고 애를 썼는데 도무지 시선이 부딪치질 않았다. 날 언제 봤다고 저렇게 푸근히 웃고만 계시는가. 날 놀리시는가? 따져볼라치면 그런 빛도 아니었다. 너희들 아랑곳없다 하여 방만히 웃으시는가 하면 또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무량한 세월을 간지럼 타다 오신 듯 그렇게 웃고 계시는데 그 웃음이 우스워서 쳐다보는 사람마저 따라 그렇게 웃지 않고는 배길 도리가 없었다. 나를 웃기는 부처님을 생전 처음 만났다! 그 발견 하나만으로도 복된 느낌이었다.

이제 본래대로 천연의 빛 속에 선 불상, 그 밝고 푸근한 웃음이 여전하다. 둘레에 막힘이 없어서 보는 이의 집중도가 덜할 수는 있어도 그 미소의 천연스러움을 살리기에는 이게 제격이란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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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학│우송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jegang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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