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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배우 열전

쌍장검 미녀검객 홍세미 성룡 구한 태권소녀 김정란

액션영화 속 여배우들

  • 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쌍장검 미녀검객 홍세미 성룡 구한 태권소녀 김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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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장검 미녀검객 홍세미 성룡 구한 태권소녀  김정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만든 영화 ‘킬빌’의 한 장면.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우리나라엔 무협 영화의 판타지를 그럴듯하게 설득할 검객의 역사가 없었던 것이다. 홍콩에는 수호지, 삼국지, 사기열전 등에 등장하는 수많은 검객 이야기가 있었고 진융(金庸) 같은 걸출한 신세대 무협 작가가 있었다. 일본에도 에도시대의 야쿠자 무용담과 잔혹한 사무라이 소설들이 액션 영화의 좋은 재료가 됐다. 반면 철저히 유교적이었던 우리나라에는 검객과 관련된 전설과 신화가 없었다.

게다가 홍콩의 무협 영화와 일본 야쿠자 영화에는 자신들만의 독특한 정신세계인 ‘의협’이 있었다. ‘협(俠)’은 강한 기득권에 대항하는 약자들끼리의 약속이면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투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협을 지키는 남성들의 세계는 무협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판타지로 작용했다. 그런데 한국의 액션 영화에서 그려지는 ‘의리’는 이에 비하면 너무 약하고 허술했다.

1960년대 말 한국에서 만들어진 검객 영화에는 긴장감을 높이는 장철의 액션 기술도 없었고, ‘대자객’에서 광기로 가득한 왕우가 보여준, 자신의 얼굴을 칼로 도려내고 배를 가르는 지독함도 없었다. 온몸에 쇠말뚝이 박혀 죽었다가 원념 때문에 벌떡 일어나 다시 싸우기 시작하는 영화 ‘심야의 결투’에서 왕우가 보여준 짐승 같은 연기를 맛본 관객들에게 당시 우리 검객 영화는 그야말로 하품 나오는 것이었다.

춘향이 홍세미의 대변신

그럼에도 우리 영화계는 검객 영화를 꾸준히 만들어냈다. 여검객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도 여러 편 나왔다. 상당한 당수 실력을 갖고 있던 영화배우 이대엽과 1960년대 여성 트로이카의 한 축이었던 윤정희가 주연을 맡은 무협 영화 ‘삼인의 여검객’(최인현 감독, 1969)은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홍콩의 정패패보다 미모가 뛰어난 윤정희가 검객으로 나온다니, 그 얼마나 흥미로운 일이었을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제목만 보면 여성 검객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윤정희는 검객이라고 하기에는 헛웃음이 날 만큼 동작이 둔하고 카리스마도 없어 관객을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더욱이 당시 한국 감독들은 일지매나 흑두건 같은 복면 도둑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꼈는지, 아니면 주연배우의 형편없는 무술 실력을 숨기고 대역을 쉽게 쓰려고 그랬는지, 윤정희의 아름다운 얼굴에 복면을 씌우는 우를 범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장면이다.

여검객 윤정희가 사실상 실패한 뒤 나온 여배우는 홍세미였다. 홍세미는 1968년 김수용 감독의 ‘춘향’에 캐스팅되며 데뷔했다. 당시 춘향은 최고의 여배우에게만 주어지는 역이었고, 흥행 보증 수표였다. 더구나 홍세미의 상대역(이 도령)을 맡은 사람은 당대 최고배우 신성일이었다. 이렇게 화려하게 데뷔한 홍세미는 아름다운 미모와 균형 잡힌 몸매로 1960년대 여배우 트로이카의 아성에 도전하는 촉망받는 배우로 평가받았다. 그녀는 TBC 연속극 ‘조선총독부’ 촬영 도중 키스신을 거부해 출연정지를 당하기도 했지만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이후 홍세미는 권영순 감독의 검객 영화 ‘무정검’(1969)에 여성 검객으로 출연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배우는 액션 영화 출연을 노출 장면 연기만큼이나 꺼린다.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신인 여배우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여배우는 멜로 영화 속 우아한 여주인공을 꿈꾼다. 게다가 액션 영화를 촬영할 때는 부상도 각오해야 한다. ‘무정검’의 감독 권영순은 홍콩과 합작으로 당시 최고의 무협소설 작가였던 김광주의 작품 ‘비호’를 영화화하면서 홍콩 무협 영화의 노하우를 공부하고, 박노식과 홍세미를 주연으로 캐스팅해 야심차게 검객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지 불분명한 장소에서 시작된다. 첫 비무(比武·서로 겨뤄보며 실력을 가늠하는 것) 장면에서 박노식은 탄성이 나올 만큼의 연기력을 선보인다. 홍콩 무협 영화에 조금도 뒤떨어지지 않는 액션이었다. 물론 저속촬영을 한 티가 좀 나는 게 흠이었지만, 충분히 박수를 받을 만했다.

그다음 장면에 드디어 홍세미가 등장한다. 홍세미는 이미 권영순 감독이 연출하고 박노식이 주연한 검객 영화 ‘백면검귀’에 출연한 바 있었다. 그녀는 남성 검객들 사이에 낀 비운의 여인 역을 맡았고, 비슷한 시기에 출연한 ‘암행어사와 흑두건’(김기풍 감독, 1969)에서는 정체불명의 검객 흑두건 장동휘의 애첩으로 나와 가야금을 타는 여인을 연기했다. 액션 영화에 등장하는 곁다리 여주인공에 불과했던 것이다.

여검객의 충격 액션

그러나 ‘무정검’의 홍세미는 달랐다. ‘방랑의 결투’ 정패패가 연상되는 의상에 단검 두 자루를 손에 쥐고 등장한 그녀는 이제껏 본 적이 없는 액션 장면을 연기했다. 1961년 한형모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 ‘언니는 말괄량이’에서 문정숙이 선보인 유도, 만주 독립군 항일영화에서 여배우들이 총을 들고 싸우며 선보인 액션과는 차원이 달랐다. 춘향 출신 여배우 홍세미가 선보인 액션은 정패패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한강 모래사장에서 단검 두 자루를 쥐고 검객 박노식과 대결하는 라스트 신도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1970년 권영순 감독은 홍세미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워 또 한 편의 검객 영화를 만든다. 제목은 ‘유정검화’. 영화가 시작되면 똘망똘망한 얼굴의 홍세미가 장검을 메고 등장한다. 마치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요짐보’에서 험상궂은 얼굴로 카리스마를 뿜어낸 미후네 도시로의 등장을 연상시키는 장면이다. 이제껏 홍콩과 일본의 무협 영화에 등장한 여주인공들이 단검만을 사용한 것과도 비교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제까지 한국 액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여배우 중심의 이야기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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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욱 │영화감독 dook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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