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장

“인터넷 시대에는 판결문 온라인 공개가 헌법정신에 맞다”

  • 공종식│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kong@donga.com│

    입력2010-04-02 11: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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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장
    대한변협은 올해 1월 법원이 이른바 ‘강기갑 의원 공중부양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렸을 때 성명을 내고 “판결이 대법원 판례에 부합하는지 의심스럽고, ‘바람직한 지도이념’과도 어긋난다”며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변협이 1심 판결에 대해 강도 높은 성명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변협이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성명을 내면서 회원들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며 성명 철회를 요구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

    3월4일 김평우 변협 회장을 만났을 때 성명을 낸 배경을 물었다.

    “지난해 1월 국회에서 의원이 폭행을 당했을 때에도 변협은 성명을 냈습니다. 법을 제정하는 국회에서 폭력이 계속되면 법치주의의 발전이라고 할 수 없어요. 변협은 이 문제에 대해 계속 경고를 해왔습니다. 강기갑 의원 사건에 대해 양형(量刑)상으로 경감해주는 것은 몰라도 그 자체를 무죄라고 하는 것은 국민의 일반적인 법률상식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판결문을 구해 임원들과 함께 봤어요. 31쪽에 달하는 판결문이었는데 놀라운 사실은 한 구절도 선례를 인용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판사는 무엇보다 판례를 존중해야 합니다. 주관적인 재판을 계속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 성명을 냈습니다.”

    ▼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아닌 만큼 비판을 자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우리나라에선 법원 판결에 대해 당사자 이외에 다른 사람이 의견을 표시해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그런데 재판은 공적인 일입니다. 정의가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면 이야기하는 게 옳아요. 대법원 확정 판결은 비판을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끝났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1심 판결이 나왔을 때 문제가 있다면 시정해야 합니다.”



    ▼ 외국에서도 1심 판결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나요.

    “물론입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은 비판에 익숙해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 법원은 싫은 소리에 익숙하지 않아요. 그래서 변호사단체가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 최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관련 판결을 보면 판사에 따라 비슷한 사건에 다른 판결이 나왔습니다.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사건, 그리고 세계관이 충돌하는 사건에서 판사가 자신의 세계관과 견해에서 독립해 판결을 내리는 것이 가능한가요. 판사도 인간인 이상 자신의 견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요.

    “결국 선례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우리는 판사의 의견을 듣기 위해 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판사는 선례를 따라야 합니다. 선례와 다른 판결을 내린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줘야 합니다.”

    ▼ 히스패닉 출신으로 미국 최초 대법관이 된 소냐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상원 청문회에서 ‘본인의 배경에 좌우되지 않는 판결을 내리겠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법관이 자신의 세계관에 좌우되지 않는 판결을 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요.

    “우선 선배들이 한 재판을 많이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항상 자문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지만 법관은 심판관입니다.”

    판사는 심판관

    ▼ 재판을 통해 이상적인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게 왜 이상하지요.

    “그것은 위험합니다. 흔히 그런 견해를 사법적극주의라고 하는데, 판사도 정치인처럼 사법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입니다. 전세계적으로 드문 생각입니다. 판사는 선수도 코치도 아닌 심판관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심판관으로 만족하기가 어렵습니다. 40대라는 나이는 기가 펄펄 살아 있습니다. 젊은 사람에게 심판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합니다. 운동경기에서도 젊은 사람이 심판을 보지 않잖아요. 그런데 판사는 선생 역할을 해서는 안 됩니다.”

    ▼ 왜 한국에는 젊은 판사가 많지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젊은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합니다. 이런 체제를 지금 바꿀 수 없어요. 일본과 독일도 젊은 나이의 판사를 뽑지만 우리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아요. 판사들이 중간에 퇴직을 하지 않거든요. 일본은 대부분의 판사가 정년을 마치는데 한국은 45세 이전에 70% 이상이 그만둡니다. 그래서 매년 법관을 150명씩 증원합니다. 악순환입니다.”

    전관예우(前官禮遇)

    ▼ 왜 도중에 나가지요.

    “저는 여기에는 전관예우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전관예우가 있는지 누구도 증명을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제게는 전관예우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관예우가 없다면 아마 판사들이 나가지 않을 겁니다. 전관예우가 없는 일본 법원의 걱정은 젊은이들이 판사를 지망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입니다. 대신 변호사를 선호하지요. 사실 판사는 힘든 일이에요. 그렇다고 젊은 나이에 할 수 있을 만큼 재미가 있는 일도 아닙니다.”

    ▼ 일본은 전관예우가 없나요.

    “없습니다. 일본 판사들은 대체로 중간에 퇴직하지 않고 정년까지 일한 뒤 연금으로 살아요. 45세에 변호사를 하겠다고 그만두는 판사는 거의 없어요. 변호사 개업을 법으로 막는 것도 아니지만 변호사로 개업할 경우 사건이 없어서 그래요.”

    ▼ 미국의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몇 년 전에 연방판사 연봉 인상을 추진한 적이 있습니다. 연방판사의 경우 대체로 소득을 비교해보는 대상이 능력 있는 변호사인데, 그럴 때 자신의 보수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느껴져 자꾸 그만둔다며 처우개선을 거론했어요. 한국도 판사 봉급 수준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서 우수 인력 유출을 막을 수는 없나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봅니다. 어찌됐건 한국 법원은 45세를 전후해 판사들이 무더기로 나가면서 중간은 텅 빈 기형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어요.”

    김 회장은 기자에게 법원에서 펴낸 두꺼운 책을 꺼내더니 법관 연령현황을 정리한 통계를 보여줬다. 2008년 12월31일 기준 통계인데 전체 법관 2378명 중 △56세 이상 43명 △51~55세 107명 △46~50세 192명 △41~45세 481명 △36~40세 709명 △31~35세 599명 △30세 이하 247명이었다. 45세를 기점으로 인원이 급감하는 구조다.

    김평우 대한변호사협회장

    김평우 변협회장.

    ▼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결국은 정보공개에서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법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외부 모니터링이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벌금 등 소액사건을 제외한 중요 사건의 경우 3%가 대법원까지 올라갑니다. 나머지 사건은 1심, 2심에서 끝나기 때문에 우리 법원은 3%만 알려주는 셈입니다. 물론 1심, 2심 사건도 정보공개법에 의해 신청하면 열람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법원 바깥에서는 데이터베이스(DB)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변호사, 학자, 로스쿨 학생 등 법률 정보 수요자는 많은데 이 수요를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어요. 만약 미국처럼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법률 정보를 볼 수 있으면 어느 사건에 어느 변호사가 선임됐고, 유사한 사건의 경우 어떻게 판결이 나왔는지가 공개되기 때문에 전관예우가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정보가 안에서만 머물기 때문에 국민은 자꾸 법원을 불신합니다. 헌법 109조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을 공개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이를 근거로 방청을 허용했고, 비용문제 때문에 대법원 판결만 공개했지만, 인터넷 시대에는 공개의 의미가 달라져야 합니다. 미국은 현재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재판기록을 열람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관예우 해결방법은 판결문 공개

    ▼ 판결문을 공개할 때 개인의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된다는 반론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요.

    “그것은 생각의 문제입니다. 금융실명제를 처음 실시했을 때에도 ‘금융정보가 공개되면 사생활이 공개된다’는 반론이 있었어요. 공직자 재산공개가 실시됐을 때에도 사생활 공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은 투명한 사회를 위해선 이런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재판은 역사적인 기록이고, 사회적인 사실입니다. 개인정보가 노출되면 당사자로선 좋은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투명한 사회를 위해선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전화번호, 생년월일, 주소, 주민등록번호, 은행계좌 등은 보호해야 합니다. 보통 사생활침해는 판결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발생하는데, 언론은 공적인 가치가 있는 사건만을 보도하게 마련입니다.

    ▼ 그래도 법원은 사생활침해에 대한 우려, 막대한 관리비용, 외부기관이 법률정보를 운용했을 때 악용가능성 등을 들어 판결문 공개에 대해 부정적인데요.

    “법원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겁니다. 정보는 권력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스스로 내놓겠어요. 결국 판결 정보를 공개하는 법률을 만들어서 공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 변협은 대법관 수를 50명 이상으로 대폭 늘려 대법원을 민사, 형사, 상사, 행정, 특허 등의 전문부로 개편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대법관 50명’이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왜 늘려야 하나요.

    “건국 이후 대법관 숫자는 그대로입니다. 현재 재판을 하는 대법관은 모두 13명입니다. 그런데 사건이 늘면서 일반 판사는 꾸준히 증가했습니다. 결국 3심에서 대법관 1인당 처리건수가 계속 늘어나 1년에 약 2500건에 달합니다. 매일 7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결국 대법원 사건 중 70% 이상이 ‘심리불속행’으로 기각 처리되고 있습니다. 국민으로선 최종심이 대법원인데, 결국 사법부가 불신대상이 될 수 있어요. 이에 대해 대법원은 ‘사건이 많아서 어쩔 수 없다. 미국도 대법관이 9명이다’라고 반박합니다. 그렇지만 미국 대법원은 헌법재판소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우리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대법관도 전문화해야 합니다. 1,2심은 형사와 민사가 다른데 대법원에선 모든 사건을 다 처리하다보니 비능률이 옵니다. 전문화가 필요합니다.”

    판사 평가가 필요한 이유

    ▼ 서울변협은 ‘판사 평가’를 해오고 있습니다. 대한변협도 지난해 판사 재임명, 고등부장 승진, 대법관 임용 등에서 변호사들의 평가의견을 제출한다는 결의를 한 적 있습니다. ‘판사 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요.

    “헌법 103조에 법관의 임기는 10년으로 하고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연임하도록 돼 있습니다. 문제는 그동안 탈락이 없고, 99.9%가 연임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법원은 내부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외부 평가가 없어요. 그래서 변호사에 의한 평가가 필요한 겁니다. 이러한 평가를 활용해 최소 하위 몇%는 탈락시키는 제도가 정착돼야 합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법원에 대한 김 회장의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제3자가 보기에 때로는 ‘일방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도도 높았다.

    “우리 문화에서는 법원을 비판하는 게 금기처럼 돼 있어요. 국회는 법원의 눈치를 보고, 언론도 좀처럼 법원을 비판하지 않아요. 한국 법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가 모인 곳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우수한 사람이 모여도 외부 비판에 눈을 감고 자기만족에 빠지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5세에 법관이 다 떠나는 조직은 분명히 위기입니다. 요즘에는 부인들이 하도 채근해서 판사 남편들이 견디지 못하고 변호사로 개업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는 법원 내에 있는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하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요. 법원 내에 향우회, 교우회를 만들면 안돼요. 일본에서는 판사가 동창회에 나가려면 허가를 받아야 해요.”

    ▼ 물론 법원에도 고쳐야 할 점도 많고 개선할 점도 있지만, 너무 비판적으로만 보는 게 아닌가요.

    “현재 법원은 굉장한 위기에 봉착했는데 이를 직시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도 법원 출신으로 법원이 잘 돼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사법의 주역은 법원이에요. 검사와 변호사가 아무리 잘하면 뭐하나요. 법원은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래서 무작정 칭찬하기보다는 듣기 싫은 소리지만 법조 선배로서, 변협 회장으로서 후배들을 위해 말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어요.”

    미국의 재판기록 공개는 어떻게

    미국 호주 등 선진국들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있는 재판기록을 DB로 만들어 인터넷을 통해 공개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법원행정처(Administra-tive Office of US Courts·AOUSC)라는 기관이 운영하는 PACER(Public Access to Court Electronic Records)을 통해 재판기록을 공개한다. 이용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등록을 하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재판기록을 열람할 수 있다.

    재판기록 중 사회보장번호(주민등록번호에 해당), 납세번호가 편집되고, 미성년자의 경우 이름과 금융계좌번호, 생년월일이, 형사사건의 경우 주소 등이 편집된다.

    이용 비용은 페이지당 8센트(약 100원). 1988년 법원은 미 의회에 재판기록 인터넷공개를 위해 예산을 요청했지만 의회에서 수익자가 비용을 부담하도록 해 유료가 됐다. 이 같은 유료화 정책 때문에 민주주의 사회라면 당연히 무료로 제공해야 할 법률 정보가 충분히 소통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정부도 재판기록을 열람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2000~2008년에 재판기록 열람을 위해 AOUSC에 3000만달러를 지급했다.

    법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되면서 미국에선 법률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규모가 큰 편이다. 이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회사가 웨스트로(WestLaw)와 렉시스넥시스(LexisNexis).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두 회사는 판결 기록을 가공한 다양한 콘텐츠를 판매해 연간 20억달러(약 24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 서비스는 변호사, 로스쿨 학생 등이 주로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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