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호

노숙인대학 연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어려워도 남을 돕고 배우려는 마음을 세워 주고 싶어요”

  • 안기석│출판국 기자 daum@donga.com│

    입력2010-04-05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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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은 하지 않고 받기만 한다는 통념을 깨고 아이티 지진 참사 때 자그만 성금을 모아 보내고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배우려는 노숙인들이 있다. 이들의 변화를 북돋워주는 ‘키다리 아저씨’ 이주연 목사를 만났다.
    노숙인대학 연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폭설이 전국을 뒤덮은 3월9일 오후 6시경 서울역에서 공덕동로터리로 넘어가는 만리재에는 어둠이 깔리면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리재길 옆에 나지막하게 자리 잡은 상가건물 2층에 있는 산마루교회의 이주연(54) 담임목사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비가 오면 그분들이 오기가 힘들 텐데…”라며 걱정스러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40대로 보이는 두 명의 노숙인이 비를 맞은 채로 교회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섰다. 콧수염을 기른 한 노숙인이 파카 점퍼에 달린 모자를 깊이 쓴 다른 노숙인을 앞세우며 “목사님, 저 학생 한 분 모시고 왔어요”라고 활기차게 말했다. 그 자랑스러운 표정에 이 목사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같이 저녁을 듭시다”며 식탁에 앉기를 권했다.

    이 목사는 자신이 먹기 위해 챙겨놓았던 컵라면을 새로 온 노숙인에게 먼저 권했다. 그 노숙인은 컵라면을 먹고 식탁에 있는 빵에 잼을 발라 먹은 뒤 노숙인대학 안내서인 ‘산마루해맞이학교 핸드북’에 나오는 커리큘럼을 읽어보았다. 기대와는 달라 실망했는지 그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이런 쓸데없는 짓은 왜 해요?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강의를 해야지….”

    ‘산마루해맞이학교 핸드북’에 적혀 있는 강의 주제는 ‘영문학 입문, 서양의 역사, 일상생활 속의 인류학, 법과 시민생활, 언어의 기원 연구, 미디어와 사회’ 등이었다.



    노숙인이 몇 명 더 들어와 자그마한 식당이 가득 차자 저녁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됐다. 강사는 최주리 이화여대 영문학과 교수였다. 최 교수는 강의 자료를 나눠준 뒤 바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자료에는 한글이라고는 단 한 자도 없고 에즈라 파운드, 윌리엄 셰익스피어, 조지 허버트, 윌리엄 워즈워스 등 영미 문학가들의 시가 이들의 사진과 함께 영어로 적혀 있었다. 영국에서 공부한 최 교수는 “시는 뜻보다도 소리입니다”라고 말한 뒤 단 두 줄로 구성된 에즈라 파운드의 시 ‘지하철역에서’를 감성 어린 목소리로 낭송했다.

    최 교수는 번역은 하지 않고 간단하게 의미만 전달한 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물었다. 한 노숙인이 손을 들고 “까만 가지는 지하철이고요, 꽃잎은 사람들 얼굴이에요. 지하철 창문에 얼굴이 비치는 거죠”라고 대답했다.

    최 교수가 셰익스피어의 시 ‘소네트 18’을 읽어준 뒤 “셰익스피어가 짝사랑했던 ‘젊은 남성’에게 바친 이 시의 주인공은 실제로 누구였을까”라고 묻자 한 노숙인은 “자기 자신이 아닐까요”라는 답변을 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워즈워스의 시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에 나오는 무지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자, 노숙인들은 앞 다투어 ‘약속’ ‘희망’ 등의 단어를 쏟아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노인도 있었지만 최 교수의 강의내용을 일일이 받아 적는 노숙인도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강의 주제에 불만을 터뜨렸던 노숙인에게 강의 평가를 부탁하자 “뭔지 잘 모르지만 참 좋았다. 계속 나오고 싶다”고 대답했다.

    바깥은 이미 비가 눈으로 바뀌었다. 노숙인들과 강사를 배웅한 이 목사를 산마루 교회 사무실에서 만나 얘기를 나눴다.

    교수와 노숙인이 서로 배운다

    ▼ 오늘 영시에 대한 강의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습니다. 영어 알파벳도 모르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숙인의 교육수준이나 필요성을 배려해서 커리큘럼을 짰습니까.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교수님들과 준비과정에서 여러 번 논의한 끝에 노숙인이 인문학과 사회과학적인 강의와 예술적인 경험을 통해 자존심을 높이고 정체성을 찾고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자고 했어요.”

    ▼ 취지는 좋지만 강의가 실제로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저도 이분들을 이해하는 데 몇 년이 걸렸어요. 하물며 노숙인과는 생전 처음으로 만나는 강사도 있는데 어떻게 강의할지 궁금했지요. 그런데 오늘 강의만 하더라도 이분들이 영시는 물론이고 영어를 몰라도 최 교수와 대화가 가능하잖아요. 상상력은 더 뛰어나기도 하고요. 사실 이 과정을 통해 교수와 학생이 서로 배워요. 강사들도 나름대로 자극을 받고 의미가 있다며 좋아해요. 이분들도 받아쓰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해요. 한 할아버지는 ‘내 일생에 이런 교수님의 강의를 언제 다시 들을 수 있겠느냐’며 꼬박꼬박 참석해요.”

    노숙인대학 연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영문학자 최주리 이화여대 교수(왼쪽)가 노숙인과 영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산마루해맞이학교’라고 이름을 붙인 노숙인대학은 3월2일 개강해서 11월에 강의를 끝낼 예정이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이 목사의 부인인 전혜영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조성남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상만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 조영규 법제처 법제심의관 등 서울 시내 대학 교수들과 전문직 20명이 주요 강사다. 수강을 신청한 노숙인도 20명이다. 강의 주제는 문학, 역사, 철학, 음악, 영화, 법학, 정치학, 행정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선정했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강의를 진행한다. 개근자와 B학점 이상의 수료자에게는 제주도 올레길 여행을 ‘선물’로 준비했다.

    ▼ 노숙인대학을 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몇 년 동안 이분들을 만나면서 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소 만나는 이웃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분들도 손을 내밀 때마다 속으로는 자존심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키워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어요. 자존심을 세워주면 자활의식이 생길 거라고 기대하는 거지요. 이분들이 평소에는 주변으로 밀려난 소외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도 저분들과 다른 인간이 아니구나, 대화가 가능하구나’ 하는 자각과 용기가 생기는 거지요. 지난해 가을에 새해부터 이것을 실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노숙인대학의 교육 목표로 자존심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자리나 건강과 관련된 실용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실용적인 정보는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농장에서도 일할 기회를 주고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서 의사들이 건강진료도 해줍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높여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은 남자들이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순간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인정받지 못하죠. 그러면 괴로워서 쫓겨나듯이 도망쳐 나오는 거지요. 돈을 벌어야만 사람이 되고 남편이 되고 가장이 되는 겁니다. 결국 밖에 나와 생활하면서 손을 내밀게 되면 자존심이 통째로 무너져요. 이런 경우를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용서? 용서 좋아하네. 야 나가자”

    이 목사는 애당초 노숙인을 염두에 두고 목회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1981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육군 군목과 창천감리교회와 아현중앙감리교회 부목사로서 목회의 길을 걸었다. 그후 개신교 월간지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기독교서회 출판국장 등을 맡고 감리교신학대와 명지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 21세기 문화와 영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함께 산마루교회를 세운 뒤 수도자처럼 가정에서도 절제된 생활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생명과 평화운동을 하는 ‘공동체’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7명이 모여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교인이 늘어나 오피스텔을 얻어야 했고 교인이 늘어나 두 달 만에 넓은 장소를 찾아 만리재로 왔어요. 그때가 2006년 8월경인데 여기서 노숙인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낯선 사람 7,8명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어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그 후에도 매주 찾아왔어요. 우리 교회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이들에게 적은 돈을 주면서 기왕에 왔으면 기도를 하고 가라고 권유했던 거지요.”

    ▼ 노숙인을 위한 특별한 내용을 말씀했습니까.

    “당시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공부했는데 그분들을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한 번은 용서에 대한 강의를 하니까 듣는 것 같았는데 그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 벌떡 일어나 ‘용서? 용서 좋아하네. 야, 나가자’며 일어나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성경공부 분위기는 엉망이 됐죠.”

    노숙인대학 연 이주연 산마루교회 목사

    한 노숙인이 강의 노트에 메모한 뒤 강의를 듣고 있다.

    ▼ 그 사람이 노숙인 ‘대장’이었습니까.

    “그 대장이 용서라는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거죠. 이 일이 저한테 도전이 된 겁니다. 저는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하다가 그 다음주에 그 사람들이 또 왔기에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습니다. ‘인생에서 실패해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나?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실패한 경험이 있다. 실패로 끝나면 인생이 실패한 것이고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면 성공한 것이다. 누구든지 마지막에 일어서면 성공한 것이다’고 했더니 귀 기울이기 시작했어요. 그 후에도 ‘고독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버림받아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들만 특별히 가혹한 운명을 타고난 것은 아니다. 일반 사람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어차피 지구에서 잠깐 살다 가는 노숙인의 삶이다’ 그런 이야기를 계속 했더니 50분짜리 성경공부 강의를 다 들어요.”

    ▼ 노숙인들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겁니까.

    “그렇죠. 강의를 다 듣고 제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밤늦게까지 설교 준비를 한 다음날에 그들을 만나면 그분들이 먼저 ‘목사님, 피곤해 보입니다. 건강하세요’라고 걱정을 해줘요. 그때 감동을 받았어요. 그분들이 2,3년 동안 계속 교회에 나왔어요. ‘야, 나가자’고 한 분이 권씨 할아버지인데 당시 71세였어요. 점점 친해졌어요. 나중에는 노숙인이 20명으로 늘어났어요.”

    이 목사는 이들과 친하게 된 뒤부터 자활을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서울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부근의 북악산 기슭에 기도실 겸 서재가 있었는데 그 주위에 비닐하우스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꽤 많았다고 한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던 이 목사는 교인들, 인근 부대의 군인들, 기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고 채소를 재배하고 있었다.

    “2008년 봄이었어요. 그분들에게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농사일을 도와주면 하루에 3만원 주고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더니 하겠다고 해요. 큰 기대는 안 했는데 막상 첫날부터 와서 일하는데 얼마나 열심히 하는지 놀랐어요. 오전 7시 넘어서 온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어요. 이때 큰 감동을 받고 깨달은 게 있어요. 노숙인은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열악한 조건에서 생활하느라 노동을 감당할 체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기 좋은 곳에서 풀 뽑고 농사를 지으니까 건강이 회복되고 보람도 느껴요. 권씨 할아버지가 특별히 열심히 일했어요. 그분이 잡초를 뽑은 곳은 일주일 동안 깨끗해요. 서울역에서 부암동 산기슭까지 오고갈 때는 차비가 있어도 걸어요. 제가 ‘차비 아끼려고 그래요?’라고 물었더니 그분이 ‘차 타면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잖아’ 그래요, 자기 몸 냄새가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싫었던 거지요.”

    화장실 청소하는 노숙인들

    산마루교회는 1부 예배를 노숙인을 위한 예배로 드리고 있다. 2부는 청년들, 3부는 일반인이 예배를 드리는데 전문직 종사자가 주축을 이룬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을 지원하는 사회봉사단체는 지하철역 등에서 음식을 나눠주거나 옷과 양말 등 의류를 지급하고 있다. 산마루교회가 교회 안으로 노숙인을 받아들이고 이들을 위해 예배 시간까지 마련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상반기부터 노숙인이 60, 70명씩 교회로 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120명으로 늘었어요. 당시 신종 플루가 유행하니까 노숙인을 돕던 단체에서 문을 닫아버렸어요. 그래서 이 조그만 교회로 몰린 겁니다. 우리 교회는 120명이 모이면 꽉 차는데 비좁아서 더 이상 같이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오전 7시30분에 예배를 드리면 오겠느냐고 했더니 오겠다고 해요. 늦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정말 조용히 예배드려요.”

    ▼ 노숙인이 늘어나면서 지역 주민들의 반발도 있었을 텐데….

    “오전 10시에 노숙인 예배를 드릴 때는 상가 상인들의 반발이 있었어요. 특히 미장원에서는 노숙인에 대해 제일 민감했어요. 여성 손님들이 혐오감 때문에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노숙인이 상가 화장실도 지저분하게 쓴다고 불평이 많았어요. 예배 시간에 이분들에게 이 문제를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랬더니 자발적으로 오전 7시 이전에 와서 상가 주변의 담배꽁초도 치우고 예배를 마친 후에는 화장실 청소도 깨끗하게 하는 거예요. 그 후로 상인들의 불평이 사라졌어요.”

    식당에서 봉사하는 산마루교회 교인들은 노숙인에 대해 전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컵라면을 끓여주고 직접 만든 빵과 잼 등으로 편하게 대접했다. 평소 일요일 아침은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며 음식도 만들어 와서 대접한다고 한다. 그러나 신종 플루가 유행할 때는 자녀들과 함께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의 우려도 있었다.

    ▼ 어떻게 설득했습니까?

    “선한 사마리아 사람 비유를 들었어요. 우리가 이 교회를 세우면서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강도를 당한 사람을 만나게 됐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이를 외면한 당시 제사장처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찾아온 사람을 내보낼 수는 없다고 제 생각을 밝혔어요. 그래서 일단 받아들이고 이후 생기는 문제는 해법을 찾아보자고 했더니 교인들도 찬성했어요.”

    ▼ 어떤 해법을 찾았습니까.

    “데톨이라고 수술실에서 사용하는 소독약이 있어요. 이것을 뿌리면 냄새도 제거되고 소독도 돼요. 그리고 손 씻는 세정제도 샀어요. 그런데 데톨을 노숙인들에게 뿌릴 생각을 하니 막막해요. 노숙인들이 ‘우리가 더럽다고 차별하느냐’고 반발하면 뭐라고 하겠어요. 고심하다가 예배 시작 전에 먼저 제 몸에 데톨을 뿌린 후 ‘이것은 데톨이라는 건데 이것을 뿌리면 0.03초 만에 세균이 죽는다. 서울대병원이나 세브란스병원에서 의사들이 사용하는 소독제다. 원하는 사람 있으면 손들라’고 했더니 모두 손드는 거예요. 노숙인들 본인이 신종 플루를 더 걱정하고 있었는데 제가 몰랐던 거죠.”

    일종의 ‘데톨 세례식’이 벌어진 셈이다. 심지어 어떤 노숙인은 배낭까지 열어 뿌려달라고 하고 혁대까지 풀어 속옷까지 뿌려달라고 했다고 한다.

    아이티 지진 참사에 2만7000원 성금 보내

    ▼ 노숙인들이 헌금도 합니까.

    “헌금도 합니다. 평소에는 헌금이 4000원가량 모이는데, 아이티 지진참사 때 성금을 모았더니 2만7000원이 나왔어요. 우리도 어렵지만 아이티는 더 어렵다. 우리들은 그래도 먹을 것이 있지만 그분들은 먹을 것이 없다. 우리는 먹을 물이 있지만 그분들은 먹을 물도 없다. 우리는 힘들어도 목숨을 걱정하지 않지만 그 사람들은 식구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 지구상에는 우리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오늘은 우리가 마음을 모아 헌금을 하자. 그랬더니 그 헌금 바구니에 1000원짜리도 들어 있는 거예요. 이 성금을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그분들 형편에서는 굉장히 큰돈입니다. 100원짜리 동전도 아쉬운 분들이지요. 이분들은 200원을 벌기 위해서 2시간도 걸어 다니는 분들입니다.”

    이 목사는 ‘산마루서신’(www.sanletter.com)이라는 e메일편지로 꽤 알려져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물씬 풍기는 사진과 함께 마음을 일깨우는 단문을 매일 아침 온라인으로 보내는데 현재까지 25만명이 이 편지를 받아보고 있다. 이 산마루서신을 받아보는 사람들로부터 모금한 아이티 참사 성금은 1000만원을 넘었다. 그중 770만원은 세이브더칠드런에, 250만원은 월드비전에 보냈다고 한다.

    밤 10시를 넘겨 인터뷰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자 눈발은 더욱 거칠어졌다. ‘키다리 아저씨’처럼 큰 키에 마른 몸매를 지닌 이 목사는 검은 테 안경 너머로 눈 내리는 바깥 풍경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비가 오거나 아프면 교회에 못 오는 분이 있어요. 특히 오늘처럼 눈 오는 날에는 저녁 수업에 참석하면 쉼터에 들어가 쉬기가 쉽지 않아요. 저녁 7시까지 쉼터에 가야 하거든요. 앞으로 자금이 생기면 옆 건물을 빌려 그곳에서 하루라도 쉬게 하고 싶어요. 목욕도 하고 잠잘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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