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문학자 최주리 이화여대 교수(왼쪽)가 노숙인과 영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노숙인대학을 연 특별한 계기가 있습니까.
“제가 몇 년 동안 이분들을 만나면서 빵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들은 특이한 사람들이 아니라 평소 만나는 이웃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이분들도 손을 내밀 때마다 속으로는 자존심이 무너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키워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했어요. 자존심을 세워주면 자활의식이 생길 거라고 기대하는 거지요. 이분들이 평소에는 주변으로 밀려난 소외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교수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도 저분들과 다른 인간이 아니구나, 대화가 가능하구나’ 하는 자각과 용기가 생기는 거지요. 지난해 가을에 새해부터 이것을 실시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 노숙인대학의 교육 목표로 자존심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자리나 건강과 관련된 실용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습니까.
“실용적인 정보는 다른 곳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사랑의 농장에서도 일할 기회를 주고 한 달에 한 번씩 교회에서 의사들이 건강진료도 해줍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자존심을 높여주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세상은 남자들이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순간 가정에서 남편이나 아버지로서 인정받지 못하죠. 그러면 괴로워서 쫓겨나듯이 도망쳐 나오는 거지요. 돈을 벌어야만 사람이 되고 남편이 되고 가장이 되는 겁니다. 결국 밖에 나와 생활하면서 손을 내밀게 되면 자존심이 통째로 무너져요. 이런 경우를 상당히 많이 봤습니다.”
“용서? 용서 좋아하네. 야 나가자”
이 목사는 애당초 노숙인을 염두에 두고 목회를 시작하지는 않았다. 1981년 감리교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뒤 목사 안수를 받고 육군 군목과 창천감리교회와 아현중앙감리교회 부목사로서 목회의 길을 걸었다. 그후 개신교 월간지 ‘기독교사상’ 편집주간, 기독교서회 출판국장 등을 맡고 감리교신학대와 명지대 등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 21세기 문화와 영성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 함께 산마루교회를 세운 뒤 수도자처럼 가정에서도 절제된 생활을 하고 가난한 사람을 돌보며 생명과 평화운동을 하는 ‘공동체’를 이루려고 노력했다.
“7명이 모여 우리 집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교인이 늘어나 오피스텔을 얻어야 했고 교인이 늘어나 두 달 만에 넓은 장소를 찾아 만리재로 왔어요. 그때가 2006년 8월경인데 여기서 노숙인을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낯선 사람 7,8명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어요. 굉장히 당황스러웠어요. 그 후에도 매주 찾아왔어요. 우리 교회 장로님이 개인적으로 이들에게 적은 돈을 주면서 기왕에 왔으면 기도를 하고 가라고 권유했던 거지요.”
▼ 노숙인을 위한 특별한 내용을 말씀했습니까.
“당시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공부했는데 그분들을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한 번은 용서에 대한 강의를 하니까 듣는 것 같았는데 그중 가장 나이 많은 분이 벌떡 일어나 ‘용서? 용서 좋아하네. 야, 나가자’며 일어나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는 거예요. 성경공부 분위기는 엉망이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