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각 개인에게 공동체 의식을 부여하고,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는 일은 매우 어렵고 중요한 과제다. 국가 존속의 근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서 바로 이 사회 통합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요인이 스포츠다. 미국 프로 스포츠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발전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단순한 문화 상품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제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야구와 미식축구는 모두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다. 특히 미식축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6개월이 넘는 기간 매일 경기를 하는 미국 프로야구(MLB)는 미국인에게 생활의 일부나 다름없다. 반면 매년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매주 일요일에만 경기를 하는 미식 프로축구(NFL)는 세계에서 오직 미국인만 즐기는 미국인만의 특별한 축제다. 즉 야구가 매일 먹는 ‘밥’이라면 미식축구는 명절에 먹는 ‘명절 음식’에 비유할 수 있다. 역사와 저변은 야구가 훨씬 깊고 넓지만 흥행성과 스타성은 미식축구가 앞선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미식축구는 미국 내에서 이미 1970년대부터 야구를 제치고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이 역시 단순히 운동에 대한 선호도의 변화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변화의 과정은 미국 사회 구조의 변동과 새로운 정체성의 등장을 의미한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은 단연 야구였다. 특히 야구는 미국의 아버지와 아들 간 남성적 유대 관계를 상징했다. 아버지와 아들이 공을 던지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친밀한 부자 관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미식축구의 인기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2010년 여론조사기관 해리스 인터랙티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가장 선호하는 스포츠로 미식축구를 꼽은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1%였다. 야구는 17%에 불과했다. 25년 전인 1985년에는 이 비율이 각각 24%와 23%로 별 차이가 없었다. 왜 최근 몇 십 년간 야구의 인기는 떨어지고 미식축구의 인기만 급상승했을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TV 보급과 여가 문화의 변화다. 1960년대를 지나면서 미국 가정의 텔레비전 보급률이 급격히 높아졌다. 야구는 정해진 시간이 없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고, 진행 속도가 느리며, 텔레비전 화면으로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어려운 경기다. 게다가 야구 시즌인 여름은 가족들이 집보다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시청자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반면 미식축구는 짧은 시간에 ‘화끈한’모습을 빠른 전개로 보여줄 수 있어 텔레비전 중계에 적합했다. 게다가 미식축구 기간이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가을과 겨울이어서 더욱 안성맞춤이었다. 미식축구 기간인 매년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는 일요일 낮에 집에서 미식축구 경기만 종일 시청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카우치(Couch) 족이다. 카우치는 몸을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소파를 말한다. 주말에 소파에 드러누워 감자 칩을 먹으며 뒹굴뒹굴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둘째, 강력한 남성성의 구현이다. 야구는 비가 오거나 날씨가 나쁘면 경기를 미루기도 하고 중단하기도 하지만, 미식축구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빗속에서도, 눈 속에서도, 진흙탕에서도 뒹굴었다. 서부 개척의 역사를 지닌 미국은 육체노동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 바로 강력한 남성성의 구현이다. 그러나 산업화와 더불어 남성의 정체성은 위기에 직면했다. 기업의 위계적 조직구조는 남성성의 핵심인 개별성과 독립성도 위협하기 시작했다. 즉 미식축구 같은 운동 경기는 사그러드는 남성성을 확인시키는 수단이다.
이런 연유로 미식축구의 인기는 날로 높아졌고, 슈퍼볼은 사실상 미국의 비공식적인 명절로 자리 잡았다. 보통 슈퍼볼은 미국 남부, 즉 겨울에도 따뜻한 플로리다나 텍사스에서 주로 열린다. 미국인들은 단 하루 열리는 슈퍼볼 경기를 보기 위해 아예 며칠 휴가를 내고 가족끼리 놀러가는 일을 즐긴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슈퍼볼에 진출했건 안 했건 별 관계가 없이 따뜻한 휴양지에서 슈퍼볼 결승전을 열심히 시청한다. 월드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나 보스턴 레스삭스와 같은 전국구 팀이 붙어야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식의 걱정을 하는 메이저리그와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이날을 위해 많은 사람이 텔레비전과 가구를 구입한다. 추수감사절 못지않은 명절인 셈이다. 광고비가 비싼 만큼, 기업들은 이 행사를 위한 텔레비전 광고를 별도로 제작한다. 광고는 흔히 경기의 절반이 끝난 하프타임(halftime)에 집중적으로 쏟아진다. 보통 프로 미식축구 경기의 중간 휴식 시간은 15분이지만, 슈퍼볼은 그 두 배인 30분이다. 광고를 조금이라도 더 넣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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