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캐나다 오카나간 하비스트 골프 클럽

배 사과 자두 포도 체리, 다섯 가지 과일 맛 즐기며 상큼 라운드

  • 김맹녕 한진관광 상무·골프 칼럼니스트 kimmr@kaltour.com

    입력2005-09-29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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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프를 즐기면서 주렁주렁 열린 과일까지 맘껏 따 먹을 수 있는 골프장이 있다면? 물론 나무 아래로 떨어진 사과나 자두 사이로 골프공이 들어가면 애를 먹겠지만, 그것 때문에 싫어할 골퍼는 없을 것이다. 골프장이 곧 과수원인 캐나다 오카나간 하비스트 골프 클럽. 그곳에 가면 다섯 가지 과일을 맛볼 수 있다.
    캐나다 오카나간 하비스트 골프 클럽
    골퍼로서 누리는 크나큰 즐거움 중의 하나는 특이하고 차별화된 골프장에서 라운드를 즐기는 것이다. 필자는 항공사에 근무하는 덕분에 세계 주요 도시의 웬만큼 유명한 골프 클럽과 코스를 거의 다 돌아봤다. 미국 마스터스 무대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클럽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오지인 가나 골프 클럽, 중남미 멕시코의 카보텔솔 CC,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페블비치 링크스 코스, 미 뉴저지주의 파인힐 CC, 일본의 최고 명문인 가와나 코스, 중국 쿤밍의 춘성 CC, 아일랜드 둔백 코스, 필리핀 마닐라의 와크와크 CC까지. 하나같이 수려한 경치와 환상적인 코스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장이다.

    하지만 이런 유명 골프장은 골퍼들에게 감동과 함께 흥겨움을 더해주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2% 부족함이 있다. 지구촌에는 바로 그 2%의 재미를 채워주는 이색적인 골프장이 있다. 그중 하나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 있는 하비스트 클럽(The Harvest Culb)이다.

    필자는 지난 7월 캐나다 관광청의 초청으로 그곳에서 라운드하는 행운을 얻었다. 골프장 이름을 직역하면 ‘수확하는 모임’이다. 이름부터 호기심을 자극했다. 잔뜩 부푼 기대감을 안고 클럽하우스에서 코스 전경을 내려다보는 순간 기대감은 곧장 흥분으로 바뀌었다. 골프장 전체가 과수원으로 갖가지 유실수에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코스 안에 사과나 감, 탱자, 귤, 살구, 복숭아 같은 과일나무가 몇십 그루 심어진 것은 더러 봤지만 코스 전체가 과일나무로 가득한 곳은 처음이었다.

    골프장이 자리잡은 오카나간 밸리(Okanagan Valley) 지역은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일조량, 그리고 주위에 호수가 있어 각종 과일과 채소가 자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이곳을 포함해 약 1만ha에 이르는 땅에 수십개의 대형 과수원이 산재해 있다. 따라서 주변 경치와 자연스레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골프장에 갖가지 과일나무를 심는 것이 당연했다.

    체리나무 무대, 포도밭 사열



    캐나다 오카나간 하비스트 골프 클럽

    청포도나무가 골프장 페어웨이 한쪽 능선을 따라 사열하듯 가지런하게 다듬어져 있다.

    라운드를 시작했다. 코스의 1번 홀부터 3번 홀까지는 페어웨이 양쪽에 먹음직스럽게 붉게 익은 사과가 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사과 하나를 따서 한입 베어 먹으니 새콤달콤한 즙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것이 참 맛있었다. 사과나무 아래에는 티샷한 공에 맞아서 사과가 매달린 채 부러져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즐비했다. 플레이 중 슬라이스가 난 공이 그 밑으로 들어갔는데, 바닥에 떨어진 사과 사이에 공이 끼어서 탈출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어 4번에서 5번 홀까지는 자두나무가, 6번에서 8번 홀까지는 미국산 배나무가 탐스러운 열매를 잔뜩 매달고 있었다. 녹색 필드를 스치는 바람을 타고 흐르는 향긋한 과일향에 기분이 상쾌해졌다.

    후반 9번 홀로 들어서니 이번엔 엄지손가락만한 체리를 주렁주렁 매단 검붉은 체리나무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마냥 힘겹게 매달린 체리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고자 체면을 무릅쓰고 달려가 두어 개 따서 입에 넣었다. 한국에서는 비싸기도 하고 맛보기가 쉽지 않아 그 맛을 잘 모르던 차에 입 안 가득히 번지는 달콤한 체리 과즙이 여간 매혹적인 게 아니었다.

    캐나다 오카나간 하비스트 골프 클럽

    간이 데스크에 서 있는 코스 스타터. 그 뒤쪽으로 사과나무가 보인다.

    이 골프장의 매력 중의 하나가 이처럼 플레이를 하면서 과일을 따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코스 스타터가 말해줘서 알았지 몰랐다면 마냥 쳐다보며 침만 삼키다 라운드를 끝낼 뻔했다. 함께 라운드하던 골프장 지배인 피터는 빛깔 좋은 체리를 자신의 모자에 가득 담아 갖고 와서 자꾸만 먹어보라고 했다. 그날처럼 체리를 많이 먹어보기는 난생 처음이다.

    뒤이어 평지에서 호수를 굽어볼 수 있는 산중턱에 이르기까지 페어웨이 양편으로 포도밭이 나타났다. 마치 의장대가 사열을 받기 위해 도열한 것처럼 능선을 따라 포도나무가 빼곡히 심어져 있고, 포도 줄기마다 청포도가 튼실하게 매달려 장관을 연출했다. 순간 한 장의 서양 유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이곳 포도는 화이트와인 제조용으로, 와인의 맛과 질이 훌륭해서 한국에도 수출된다고 했다.

    17번 홀 그린에 도착하니 오른쪽 그린 옆으로 서양 배나무가 일렬종대로 서 있고, 그 뒤로는 함지박만한 흰색 수국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골퍼들을 유혹했다.

    마지막 18번홀의 언덕 위에 올라서서 먼 발치를 내려다보니 적막한 오카나간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호수를 병풍처럼 둘러싼 산에는 캐나다산 전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발 앞에서 먼 호수까지는 가지런히 다듬어진 포도나무와 밭고랑이 안내를 맡았다. 그 진풍경에 일행은 잠시 라운드를 멈추고 감상에 빠졌다. ‘이 머나먼 땅 캐나다에 와서 대자연의 깊은 황홀경에 젖어본 것은 인생에서 크나큰 축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저 붉은 사과보다 더 깊고 무겁게 고개 숙이며 겸손한 마음으로 골프와 인생을 함께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샤워를 마치고 클럽하우스에 들어가니 테이블마다 커다란 과일바구니에 이곳에서 수확한 각종 과일이 수북하게 담겨 있었다. 과일바구니 앞의 안내문에는 ‘이 식당 안에서는 얼마든지 드시되 집으로는 가지고 가지 마십시오’라고 씌어 있었다.

    ‘동구 밖 과수원길…’ 절로 흥얼흥얼

    도시의 일상에 찌든 우리는 가끔 한적하고 풍요로운 시골을 동경하며, 잠시나마 그 품에 안겨 푹 쉬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라운드를 하다 사과나무를 볼 때면 동요 ‘동구 밖 과수원길’이 절로 흥얼거려지고, 포도밭 고랑 사이를 지나노라면 자연스레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로 시작하는 이육사의 ‘청포도’를 읊조리게 된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삶의 치열한 경쟁으로 고달픈 잿빛 콘크리트 도심에서 잠시나마 탈피해 신이 내린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골프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최상의 휴양지가 바로 이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5년 골프인생을 통해 세계의 유명 코스를 돌아봤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과일나무가 심어져 있는 곳은 없었다. 특히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자연이 허락한 범주 내에서 겸손하게, 그리고 환경적인 면을 깊이 고려한 이런 골프장이 너무나도 부럽다. 하얀 사과꽃, 분홍 복사꽃과 체리꽃, 살구꽃, 블루베리꽃이 지천으로 흐드러지게 피는 5월 봄날,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나이스 샷!”을 외치며 라운드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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