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계절 내내 쾌적한 초여름 날씨가 이어져 특히 중년층의 으뜸 휴양지로 손꼽히는 하와이에는 120여 개의 골프장이 있다. 한국에선 추위로 옴짝달싹 못하는 계절에도 마음껏 관광과 라운드를 즐길 수 있으니 겨울 골퍼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바람이 심하고 그린이 딱딱해 코스 공략은 결코 쉽지 않다.
동서가 만나는 교차점인 호놀룰루는 언제 찾아도 환상적이다.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아열대 섬이라 상시 무역풍이 불어오고 습기도 적을뿐더러 연중 23℃의 쾌적한 초여름 날씨가 계속돼 시니어들의 으뜸 휴양지로 꼽힌다. 호놀룰루시가 있는 오아후 섬은 하와이 8개 군도 가운데 세 번째로 큰 섬으로, 면적이 제주도보다 약간 작다. 하와이 인구 121만 중 87만이 이곳에 산다. 널리 알려진 와이키키 해변엔 유명 호텔과 유명 브랜드 상점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가장 위치가 좋다는 할레쿨라니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창문을 여니 해안 왼쪽 끝에 다이아몬드 헤드가 우뚝 서 있고 정면에는 넓고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온다. 수평선 멀리 크루즈선이 유유히 지나가고 눈앞에는 흰 요트가 빠르게 물살을 가른다.
골프를 즐기기 위해 연간 약 80만명의 관광객이 하와이를 찾는다. 120여 개의 골프장이 있는 골프 천국답다. 하와이에는 해변에 자리잡은 골프장이 있는가 하면 깊은 산속이나 검은 용암 벌판에 만들어진 골프장도 있다. 아놀드 파머, 그렉 노먼, 잭 니클라우스,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 등이 설계한 명 코스는 연중 골퍼들로 붐빈다.
하와이에서는 매년 마우이의 PGA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을 비롯해 오아후의 소니오픈과 LPGA 터틀베이 챔피언십, 그리고 빅 아일랜드의 PGA 마스터카드 챔피언십 대회 등 6개의 굵직굵직한 프로대회가 열린다. 특히 이곳 출신인 미셸 위가 참가하는 대회엔 수만명의 갤러리가 몰려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그린피는 현지 거주인과 외부 방문객을 확실하게 구별해 징수한다. 프라이빗 코스의 경우 코스 등급에 따라 외부 방문객은 미화 150∼200달러, 하와이 현지 거주인은 ‘가마이나’라고 해서 미화 80∼100달러를 낸다. 하와이의 골프장은 관리 및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경치도 수려한 곳이 많다.
하와이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미국 본토와 마찬가지로 11월 넷째 목요일인 추수감사절이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 주정부 건물이나 주택가,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모형의 크리스마스트리가 들어서고, 12월1일을 전후해 정부 관청에서 크리스마스 점등식 행사를 하면 호놀룰루시 전체가 흥겨운 캐럴과 형형색색의 전구로 불야성을 이룬다. 하와이 최대의 크리스마스 트리는 호놀룰루 시청 광장에 세워진 산타할아버지, 산타할머니 동상이다. 날씨가 덥다보니 산타 모자와 털구두를 벗어버리고 반바지에 짧은 소매의 크리스마스 복장을 한 산타 동상은 하와이 원주민이 ‘환영한다’는 뜻으로 취하는 손짓, 즉 주먹을 쥐고 검지와 약지를 세운 채 웃음 지으며 앉아 있다.
“멜레 칼리키마카”
크리스마스 첫 팀이라 골프장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카트를 내주었다. 덕분에 이동할 때마다 다른 골퍼들로부터 성탄축하 인사가 끊이질 않았다.
호놀룰루 컨트리클럽은 1977년 아놀드 파머와 프란시스 듀엔이 함께 디자인해 만든 18홀 파72, 백티 기준 6615야드의 프라이빗 코스다. 비교적 거리가 짧은 코스이지만 페어웨이가 좁고 코스 전체가 물로 둘러싸여 있을 뿐 아니라 그린이 작고 기복이 심한 것으로 유명하다.
1번 티에서 티샷을 한 후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된 카트를 타고 달리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이다. 지나가는 골퍼들이 “알로하! 메리크리스마스!”를 연발하면서 손을 흔들어준다. 이런 흥분된 분위기에서 플레이를 해서인지 네 번째 홀까지 보기의 연속이다. 파(par) 잡기가 수월치 않았다.
페어웨이가 좁다보니 드라이브 샷이 정중앙을 향해 똑바로 나가지 않고 조금만 벗어나도 공은 워터해저드나 숲 속으로 떨어진다. 두 번째 샷으로 그린을 직접 겨냥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빠져 나오기조차 어렵다. 그린은 벙커로 무장돼 있고 화산 지대라 지면이 딱딱하기 때문에 그린에 직접 공을 올려놓으면 튕겨 넘어가기 일쑤다. 여기에다 수시로 방향을 바꾸며 불어대는 코나(Kona·하와이에 부는 시원한 바람을 일컫는 말)는 그린까지의 거리와 방향 측정을 어렵게 만든다.
특히 70야드 전후의 어프로치는 정말 어렵다. 그린을 오버할 것 같아 짧게 치면 그린 앞 벙커에 떨어지고 중앙에 직접 떨어뜨리면 튕겨 넘어가버린다. 반면, 내려치는 칩샷은 공이 굴러가는 것이 너무 느려 항상 컵 앞에서 멈춘다. 그린 또한 모두 바다로 향하는 오션 브레이크(ocean break)의 미묘한 퍼트 흐름이 있어 스리 퍼트, 포 퍼트하는 게 예사이다.
골프가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아 속에선 화가 치밀어오르지만 새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와 화사하게 피어난 꽃들, 기이한 아열대 나무들을 보면 저절로 기분이 풀어진다. 18홀을 돌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하와이도 제주도처럼 산에서 바다를 향해 잔디가 누워 있기 때문에 샷을 하기 전에는 반드시 산이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고 거리를 계산한 후 클럽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나 산의 위치를 확인했다 하더라도 바람과 각 홀의 방향이 교차되기 때문에 골프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6번홀은 150야드 파3 홀로 왼쪽이 워터해저드인데 티샷한 공이 왼쪽으로 감겨 수풀 속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하와이의 숲엔 뱀이 없어 안심이다. 잠정구를 치고 공을 찾으러 수풀을 헤치니 서너 마리의 흰 오리가 놀라 물속으로 들어간다. 오리가 떠난 둥지를 보니 흰 오리알과 골프공이 함께 있다. 오리알을 만져보니 따끈따끈하다. 이렇게 골프공을 찾는 데 신경을 쓰는 사이 이곳에 서식하는 몽구스와 새들이 번갈아 골프 카트를 습격해 핫도그와 바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우고 숲 속으로 달아났다. 점심을 건너뛰는 수밖에 없었다.
각 홀에는 스포츠맨, 정치가, 연예인 등 하와이 주와 관련된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6번홀(구 15번홀)은 ‘이승만 대통령 홀’이다. 골프장 매니저는 “30년 전 골프장 오픈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와 가장 연관이 많은 화제의 인물이었다”라고 설명해준다.
세계 곳곳의 골프장은 인간이 각각 다른 얼굴에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곳이 처한 지형과 연관돼 나름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와이처럼 지반이 현무암인 곳은 물을 저장하지 못하고 그대로 지하로 통과시키기 때문에 그린이 딱딱하다. 또한 늘 바람이 분다. 이런 지형과 환경을 고려해 그에 맞게 샷을 구사하는 골퍼가 정말로 골프를 잘 치는 골퍼다. 이런 여건에서도 마음먹은 대로 샷을 치는 분과 함께 라운드하는 행운을 얻게 됐다.
40년 노장이 들려준 지혜
하와이 골프장처럼 그린이 딱딱해 바운스가 잘되는 화산지대 코스에서는 그린 앞면에 공을 떨어뜨린 다음 굴려서 온 시키는 것이 좋다. 특히 뒷바람이 불 때는 공을 5~10cm 앞에 떨어뜨리는 게 요령이다.
그는 골프 경력이 40년 가까이 되지만 지금도 자신의 골프에 대해 늘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특히 쇼트게임 연습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고 했다. 골프를 한 날이면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눈을 감고 그날의 미스 샷을 떠올리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그의 골프채는 17년 전 모델인 윌슨 드라이버, 25년 전 출시된 동제(銅製) 핑 아이언이다. 어프로치 전용 샌드웨지는 하도 낡아서 숫자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링스의 ‘골동품’이다. 퍼터는 40년이 된 이름도 없는 골프 메이커 제품인데, 지금껏 한 번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골프는 클럽보다는 스윙 폼이 우선이고, 그 다음은 홀 공격 전략을 잘 짜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즉 수성(守城)이냐 공략이냐를 결정하고 그 다음은 지형과 주변 기상, 그린 주위의 상황을 파악해 벙커나 워터해저드, 깊은 러프 같은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동반자의 샷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고유의 골프를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공의 구질과 탄도를 알아야 하고 본인의 아이언 클럽 하나하나의 비거리를 정확하게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신참 골퍼들은 대개 골프메이커의 광고에 현혹되어 드라이버의 비거리에 집착하고 그저 거리가 많이 나가는 것이 최고인 줄 아는데, 거리보다는 방향성과 페어웨이 키프가 중요하다. 그는 “골프에서 60%는 퍼트가 차지하기 때문에 어프로치로 붙여 원퍼트로 마무리하는 것이 골프의 매력”이라고 했다. 장타는 그저 통쾌한 기분만 안겨주고 다음 샷에 유리한 고지를 점유할 뿐이지 스코어 메이킹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그는 하와이의 골프장을 공략할 때 도움이 될 만한 몇 가지 조언도 해주었다.
이 일대는 화산암 지반이라 페어웨이가 딱딱해 조금만 슬라이스가 나거나 훅이 걸리면 OB가 나거나 해저드에 빠지기 쉽다.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는 티샷을 드라이버 대신 3번 또는 4번 우드로 공략해야 공을 안전하게 페어웨이에 올릴 수 있다.
그린이 딱딱해 바운스가 잘되는 화산지대의 코스에서는 그린 앞면에 공을 떨어뜨린 다음 굴려서 온 시키는 것이 좋다. 특히 뒷바람이 불 때는 5∼10m 앞에 떨어뜨리는 것이 요령이다.
그린에 공을 잡아두기 위해서는 골프공은 되도록 딱딱한 투피스 공보다는 부드러운 스리피스 공이 유리하다.
하와이 골프장은 그린이 바다를 향하는 오션 브레이크이므로 퍼트를 할 때는 항상 바다가 어디에 있는지 미리 파악해야 스리 퍼트를 예방할 수 있다.
섬에 있는 골프장은 시시각각 바람 부는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에 늘 바람의 강도와 방향을 참조해야 한다.
화산지대는 비가 내리면 곧바로 지하로 스며들기 때문에 지면이 딱딱하고 페어웨이의 잔디가 두텁지 않다. 따라서 아이언이나 페어웨이 우드를 칠 때 토핑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로프트가 큰 클럽으로 정확하게 타구해야 하고, 손목이나 어깨부상을 조심해야 한다.
존 레이씨와 라운드하면서 배운 것 중 무엇보다 의미있는 것은 퍼트에 대한 자세이다. 그는 짧은 퍼트라도 대단히 신중하게 한다. 그때껏 필자에겐 퍼트를 기분에 따라 대충 하는 습관이 있었으나 그와 라운드한 후에는 자세를 바꾸어 앞뒤에서 그린의 고저를 보고 공의 브레이크를 읽고 난 후 가상 연습 퍼트를 하고 실제 퍼트를 하는 것으로 습관을 바꿨다. 그 결과 스코어가 평균 2점은 줄어든 것 같다. 이래서 골프를 비롯한 모든 운동은 고수와 함께해야 어깨너머로 한 수 배우는 것 같다.
값진 크리스마스 선물
18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 식당으로 들어가니 나지막하고 평온한 음성의 빙 크로스비가 부르는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온다. 흰눈 위를 사슴이 힘차게 끄는 산타할아버지만을 보아온 우리에게 이 아열대 지방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왠지 어색하고 낯설다. 하지만 ‘하와이 산타’로부터 골프 기술과 요령에 대한 특별 선물을 받았기에 더없이 값진 추억이 될 것 같다.
붉은 산타 모자를 쓴 종업원이 부어 주는 맥주에 칠면조 고기를 먹으면서 골프에 대한 레이씨의 철학과 인생역정을 들으니 골프는 정말로 정복되지 않는 어려운 운동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클럽하우스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연발하며 문을 나서자 하늘 먼 곳에 선명하게 떠 있는 쌍무지개가 동방의 이국에서 온 여행자를 반기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