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호

‘온실 재벌’ SK 초일류기업 가능할까

  • 글: 이나리 byeme@donga.com

    입력2002-11-06 11: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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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기업민영화 전문기업’ SK. ‘10년 후 먹고살 길’을 찾아 맹렬한 기업 인수전을 벌이고 있다. 기업 신뢰도 저하로 뒤숭숭한 요즘, SK텔레콤의 그룹 ‘병참기지화’는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데…. 내부 문건을 통해 본 ‘과다 내부거래’의 실상,
    • 플랫폼 사업·중국 진출에 사활 건 최태원 회장의 야망과 고민.
    ‘온실 재벌’ SK 초일류기업 가능할까
    각종 정보지에 SK그룹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지난 5월 SK텔레콤이 한국통신의 대주주가 된 이후 나타난 현상이다. 초기에는 인천상륙작전을 방불케 하는 SK텔레콤의 한국통신 지분 인수 과정 낙수(落穗)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정보통신부 대 SK, 한국통신 대 SK의 갈등과 알력이 주 관심거리로 등장했다. 요즘 화제는 단연, 무서운 속도로 몸집을 불려가고 있는 SK의 공격 경영이다. 최근 몇 달 새 SK가 지분을 사들였거나 인수를 추진중인 기업은 한국통신, 대한송유관공사, 두루넷, 라이코스코리아를 비롯 7~9곳에 이른다. 방송과 신용카드업 진출도 가시화했다. 한국전력 발전자회사 및 가스공사 인수전에도 적극 뛰어들 예정이다. 가히 ‘공기업민영화 전문기업’이라는 닉네임에 어울리는 행보다.

    정보지 ‘단골 메뉴’ SK

    정보지는 대중매체가 아니다. 그러나 물밑에서 여론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시류를 비교적 정확히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좋건 나쁘건 정보지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관심을 끌고 있으며 영향력도 크다는 증거다. 지금의 SK그룹처럼 말이다.

    SK는 이런 세간의 관심이 몹시 부담스러운 눈치다. 애써 쌓아올린 좋은 기업, 젊은 기업의 이미지가 손상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요즘 SK에 대한 재계 안팎의 시선은 냉랭하다.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나가는 휴대전화 요금이 SK를 대한민국 재계 순위 3위 기업으로 끌어올리는 데 결정적 요인임을 잘 아는 국민들 또한, SK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토록 왕성한 ‘기업사냥’ 활동을 벌이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SK텔레콤이 기업인수나 지분 매입을 위해 쓴 돈이 올해 들어서만 2조원을 넘었다.

    SK는 흔히 ‘온실 재벌’로 통한다. 기술개발이나 수출보다는 정유·이동통신 등 국영사업 민영화를 통해 도약해온 그룹이라는 뜻이다. 그러한 성장 배경은 SK의 현재와 미래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 “돈은 많다, 문제는 신뢰와 비전”이라는 우려의 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SK텔레콤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룹 구조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SK텔레콤이 그룹의 ‘화수분’ 노릇을 하고 있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SK텔레콤을 중심으로 한 과도한 내부거래 발생이라는 문제를 야기한다. ‘신동아’가 입수한 한 문건은 SK텔레콤과 관계사 간 거래 규모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93년에 선경그룹이 발간한 사사(社史) ‘선경사십년사’ 말미에는 계열사 현황이 자세히 수록돼 있다. 당시 계열사 수는 30개.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그룹 초기 슬로건에 걸맞게 직물·화학·정유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중 핵심은 종합무역상사인 ‘주식회사 선경’과 정유사인 ‘주식회사 유공’. IT 관련 업체라고는 각각 1990년, 1991년에 설립된 선경정보시스템(주)과 대한텔레콤이 있을 뿐이다.

    그로부터 9년이 흐른 지금 SK는 총 62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그룹이 됐다. 그중 통신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IT관련 기업이 19곳, 에너지 관련 기업이 17곳이다. 에너지 관련 기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각 지역 도시가스 회사임을 감안할 때, 그룹의 축은 역시 통신관련 사업임을 알 수 있다.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일어난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현재 SK그룹의 핵이 SK텔레콤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9개 계열사 중 8개 계열사(SK증권은 상반기 실적 산출 안돼 제외)의 올 상반기 순수익을 비교해보면, SK텔레콤이 무려 9046억2100만원으로 전체의 59.45%를 차지한다. 반면 9년 전 주력 기업이던 SK(주)(舊 유공)와 SK글로벌(舊 주식회사 선경)의 비중은 각 24.63%와 9.88%로 크게 줄어들었다.

    SK텔레콤을 핵으로 한 통신사업 중심으로의 그룹 개편은, 재벌그룹의 ‘문어발 확장’이 여전히 문제시되고 있는 요즘 긍정적 측면이 더 많아 보인다. 문제는 SK텔레콤이 엄청난 현금 확보력을 바탕으로 그룹의 ‘병참기지’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 이는 외국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이동통신 요금에 시달리는 고객이나, SK텔레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주주들이나, 또 그 회사에 기술 혹은 제품을 판매해 살아가는 중소 IT업체 모두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신동아’는 올 상반기 SK텔레콤과 관계회사 간 거래 명세를 수록한 문서를 단독 입수했다.

    이에 따르면 SK텔레콤은 올 상반기에만 SK건설 등 16개 관계기업과 총 7608억7700만원어치의 거래를 했다. 이는 같은 기간 SK텔레콤 매출 4조447억6900만원의 18.81%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SK텔레콤은 자사 매출의 20% 가까운 돈을 관계사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SK텔레콤과의 거래에서 올리는 매출이 각 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SK건설은 올 상반기 매출의 무려 26.15%를 SK텔레콤과의 거래를 통해 달성했다. SK씨앤씨 또한 매출의 12.86%를 SK텔레콤과의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 SK글로벌의 경우에도 상반기 매출의 4.23%가 SK텔레콤을 통한 것이다. 엔시테크놀로지, 더컨텐츠컴퍼니, 이노에이스 등 중소규모 IT업체들도 예외가 아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SK텔레콤에서 쓰는 각종 외산 장비는 상당부분 SK글로벌을 거쳐 들어온다. SK건설의 경우에는 011 서비스에 필요한 기지국 및 망건설 사업을 도맡아 하고 있다. 한참 공사가 많을 때는 연 3000억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한다. IT 관련 계열사들의 경우 SK텔레콤의 각종 기술 및 제품 구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내부거래 관행에 대해 SK측은 “같은 조건이라면 식구 물건 사주는 것이 뭐 나쁜가. 또 업체에 따라서는 SK 계열이라는 이유로 타 통신업체와 거래를 트기 힘들거나, 아예 SK텔레콤 업무의 외주를 위해 설립된 회사도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업계 반응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 먼저 불만을 토로하는 건 중소규모 IT업체들이다.

    “SK 계열인 데이터베이스 관련 기업 A사와 거래하고 있다. 우리가 납품하는 제품(혹은 컨텐츠)은 A사가 아니라 SK텔레콤에 들어가는 것이다. SK텔레콤과 우리가 직접 거래하면 될 걸 중간에 괜히 A사가 끼여들어, 우리에게 돌아올 매출의 상당부분을 떼어가고 있다. 일종의 ‘통행료’를 받는 것이다. 설사 그 돈이 우리한테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생산비를 낮춰 소비자의 부담을 낮추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는가. 이는 또 SK텔레콤의 주주를 기만하고 회사 이익을 편취하는 행위다. 마음 같아서는 한번 화라도 내보고 싶지만 워낙 큰 거래선이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한 IT 벤처기업 대표의 주장이다. 업계에서 문제 삼는 건 또 있다. SK(주) 최태원 회장이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벤처기업이 워낙 많다 보니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다’는 비난을 듣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IT 관련 계열사 중 최태원 회장 개인 지분이 크게 들어가 있는 SK씨앤씨, 더컨텐츠컴퍼니, 이노에이스, 와이더덴닷컴 등은 예외 없이 SK텔레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에서 알 수 있듯 거래액도 큰 편이다.

    참고로 1999~2001년 SK는 160여 개 벤처기업에 1700여억원을 투자했다.

    특히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SI(시스템 통합)업체 SK씨앤씨는 SK텔레콤뿐 아니라 각 계열사의 용역 및 장비납품을 ‘싹쓸이’함으로써 큰 매출을 올리고 있다. SK씨앤씨 측에서도 “전체 매출의 70~80%를 관계사와의 거래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1999~2000년에는 이보다 더 높은 85~90% 수준이었다. 국내의 다른 SI업체 역시 계열사 거래 비중이 높긴 하지만 평균 50% 안팎에 불과하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온실 재벌’ SK 초일류기업 가능할까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에서 산업기술정책론을 강의 중인 SK(주) 최태원 회장. 요즘 최회장의 관심은 온통 차세대 성장 엔진 개발에 쏠려 있다.

    SK씨앤씨에 대한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은 최태원 회장의 SK 지배구조 강화와 직결된다. 비공개 기업인 SK씨앤씨의 대주주가 최태원 회장이기 때문이다(최회장 49%, SK텔레콤 30%, 최회장 여동생 11%, 관계사 10%). 최회장은 계열사들의 지원을 통해 형성된 SK씨앤씨의 자금으로 기존 지주회사인 SK(주) 지분을 매입함으로써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을 공고히 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그룹에 에버랜드가 있다면 SK그룹에는 SK씨앤씨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SK텔레콤과 SK씨앤씨 간 아웃소싱 계약 건에 대한 집중 문제제기와 함께 이를 공정거래위에 고발하는 등, SK측에 투명경영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항간에는 SK가 지난 8월 청와대로부터 투명경영에 대한 경고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SK의 한 임원은 “금시초문이다.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위와 같은 지적에 대해 SK의 한 관계자는 “SK텔레콤의 납품 및 기술지원 업체 중 상당수가 우리 그룹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우리는 이윤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기업이다. 제품이나 서비스 수준이 낮다면 그 쪽을 택하겠나. 또 납품과 관련해서는 늘 철저한 감사를 시행하고 있으며 하자가 있을 경우 가차없이 퇴출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SK 그룹 홍보실에서도 “SK텔레콤과 관계회사 간 거래는 액수가 100억원을 넘을 경우 사외이사의 승인을 받게 되어 있다. 이제까지 사외이사의 승인 없이 이루어진 (100억원 이상 규모) 거래는 한 건도 없다”며 투명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SK 임원 출신인 한 벤처기업인도 “SK텔레콤이 중소기업과의 거래에 다른 관계사를 끼워넣는 건, 그것이 더 효율적인 유통방식이기 때문”이라며 SK를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 “정유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정유사도 주유소와 직거래하면 좋을 텐데 왜 마진 줘가며 대리점을 경유하나. 그 편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대리점을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고 비용도 절감되기 때문이다. SK텔레콤이 중간다리로 활용하는 기업들은 모두 그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또한 외주 가능한 업무는 아웃소싱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기본 아닌가. SK텔레콤과 관계사들의 적극적인 업무 분담은 그런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가능한 시각이다. 그러나 “SK텔레콤은 1500만명의 고정고객을 가진 사실상의 국민기업이다. 오너나 그룹의 이익 확대에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국가 IT산업 발전과 벤처기업 활성화에도 기여할 의무가 있다”는 업계의 지적을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한편 한 SK 관계자는 “솔직히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회사 이익에 반할 소지가 있다. 별 노력 없이 SK텔레콤이라는 안정적 수요를 확보한 탓에 창의력과 치열성이 떨어지는 업체가 더러 있다. 또 엄연히 위로 ‘회장님’을 모시고 있는 터라 벤처 특유의 도전정신을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계업체와 거래를 틀 때마다 ‘이쪽 단가가 제일 낮다’는 점을 강조하는데, 일류기업을 지향한다면서 싼 물건 샀다고 좋아하는 것은 난센스”라는 말도 덧붙였다.

    SK텔레콤의 신사옥 건설과 관련한 논란도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SK텔레콤은 지금 서울 중구 을지로에 지상 33층 규모의 사옥을 건립중이다. SK텔레콤 측은 “연초 신세기통신과 통합해 직원수가 급격히 증가한 데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본사기능을 통합,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사옥을 건립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속사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SKT 사옥에 얽힌 사연

    사옥 문제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위기의 여파로 기업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을 즈음, 뜻밖에도 SK텔레콤은 종로구 서린동 신사옥으로 이전을 계획한다. 원래 서린동 빌딩은 SK건설이 SK(주)를 위해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구제금융 여파로 SK(주)의 자금사정이 나빠진 데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임대조차 불가능해지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SK건설이 SK텔레콤에 긴급 지원을 요청한 것이었다. 이에 SK텔레콤 사외이사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사옥 이전을 강력히 반대했다. 급해진 SK측은 “현재 입주해 있는 남산 그린빌딩을 1년 안에 매각해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고 사외이사진은 이를 수용했다. 그러나 사옥 이전 후 4년 여가 흐른 지금까지도 SK텔레콤은 그린빌딩을 매각하지 않고 있다.

    “아직 수요가 많고 적당한 매각처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SK텔레콤측의 설명. 그러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이런 와중에 다시 을지로 사옥 입주 계획을 듣고 나온 것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SK글로벌이다. 애초 을지로 사옥 건립을 추진한 것은 SK글로벌이었다. 그런데 이 회사 역시 4000여억원에 달하는 건축비를 감당하기 힘들어진 것. 또 다시 사외이사들의 반대가 이어졌으나 SK측은 “SK글로벌의 자금 사정이 안 좋은 데는 SK텔레콤의 책임도 있다. 텔레콤의 경영 안정과 주가 관리를 위해 상당액의 SK글로벌 자금이 SK텔레콤 주식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지친 사외이사들이 ‘이번에 이사가면 다시는 새 건물 사자는 말은 안 하겠지’라며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는 후문이다.

    내부거래 문제 이상으로 요즘 SK 경영진을 곤혹스럽게 하는 건 이른바 ‘기업 신뢰성’에 대한 세간의 문제제기다. ‘장학퀴즈’, 합리적 오너(최종현 선대회장), 전문경영인(손길승) 등용, 첨단통신산업의 리더 등으로 대표되는 SK의 이미지는 그 동안 각고의 노력을 들여 획득한 것이다. 그런데 요즘 벌이고 있는 여러 형태의 이른바 ‘공격 경영’에 대한 언론과 여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은 것. 신용카드업 진출 논란도 그 중 하나다.

    SK는 휴대전화를 이용한 신용카드업 진출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SK로서는 충분히 욕심을 내볼 만한 분야다. 다만 그 실행 방식에 있어서는 이견이 있다. SK는 최근 SK텔레콤이 직접 신용카드 사업을 운영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금감원은 물론 신용카드 업계, SK텔레콤 주주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SK에 우호적인 인사들조차 “통신사업과 금융사업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신용카드업은 금융사업이다. 그룹 내부에 SK증권 등 5개의 금융관련 업체가 있으나 지금껏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일을 맡아 추진할 만한 전문 경영인도 없다. 이런 상황에 SK텔레콤이 주체가 돼 신용카드업에 뛰어드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선택이다. 가능하면 기존 신용카드사와 제휴를 하고, 꼭 직접 해야겠다면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SK텔레콤 사외이사 중 일부도 이 견해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져 SK텔레콤의 신용카드업 진출은 내부적으로도 적지않은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SK의 이미지에 더욱 큰 그림자를 지우고 있는 건, 이른바 ‘공기업 민영화 전담 그룹’이라는 세간의 인식이다. 잘 알려져 있듯 SK는 1980년 유공(現 SK(주)) 인수와 1994년 한국이동통신(現 SK텔레콤) 인수를 통해 급격히 성장했다. 공개입찰이 아닌 ‘낙점’ 혹은 ‘배분’의 방식을 통해서였다.

    ‘유공’ 인수와 관련해서는 1999년 12월 눈여겨볼 만한 증언 두 가지가 공개된 바 있다. 출처는 산업자원부가 펴낸 역대 상공-동자부 장관 에세이집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다.

    최동규 전 동자부장관은 여기 기고한 ‘정유산업의 민영화’라는 글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1994년 전두환 대통령이 백담사에서 돌아온 후 내가 초청해 골프를 치던 중 11년 전에 있었던 일이 되새겨졌다.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게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이었던 노태우야, 나도 몰랐어.” 역사는 이렇게 해서 밝혀지게 되고 진실 앞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는 현실에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또 한 증언은 역시 같은 책에 실린 유양수 전 동자부장관의 에세이 ‘공직과 소신’이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80년 6월 중순 모처로부터 유공 민영화 검토 제의를 받았으나 당시 유공의 지분 50%를 소유한 걸프사 지분을 정부가 전량 인수, 국유화하는 것이 최우선책이라는 소신을 밝혔다. 이후 1980년 7월 하순 선경의 C회장이 장관실로 직접 찾아와 단도직입적으로 유공을 자기에게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로 인해 유공 민영화를 독촉하던 고위층의 뒤에 C회장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C회장과의 면담이 있은 2주 후 동자부 차관과 관계실장 및 국장이 국보위에 불려가 유공 불하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작성-보고하라는 지시를 받고 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장관직에 있는 한 유공 불하는 안 된다.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못박았다. 이후 9월에 제5공화국이 출범하면서 나는 3개월이라는 최단명 기록을 세우고 물러났다. 얼마 후 유공은 선경에 불하됐다.’

    한편 두 증언이 나올 당시 SK는 해명자료를 통해 “SK와 노 전대통령의 인연은 1989년에 시작됐다. 유공 민영화 추진은 1980년 최규하 대통령 시절 진행됐다. SK가 유공을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원유공급 능력이 국내 민간기업 중 가장 우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1994년 SK는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다. 그 2년 전인 1992년, SK는 이미 제2이동통신(後 신세기통신) 사업자로 선정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최종현 당시 회장과 노태우 대통령이 사돈이라는 이유로 격렬한 특혜 시비가 일었다. 당시 여당 대통령후보이던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청와대에 “사업자 선정을 다음 정권으로 넘기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이렇게 해서 SK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은 ‘7일 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민영화 핵심은 정보와 네트워크”

    1994년, 미뤄졌던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국영기업인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가 동시에 진행됐다. 정부는 사업자 선정에 대한 전권을 전국경제인연합에 넘겨버렸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SK 최종현 회장은 10여 명의 재벌 총수를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영빈관인 ‘승지원’으로 불러모았다. 최회장은 모두 6차례의 승지원 모임을 통해 제2이동통신 사업자 및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문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SK는 제2이동통신 참여를 포기하는 대신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아무 어려움 없이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다른 재벌그룹들이 신사업인 제2이동통신에만 혈안이 된 나머지 한국이동통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덕분이었다.

    이 과정에 SK는 정부로부터 큰 혜택을 받는다. 당시 재벌그룹이 타 업종에 신규투자를 하려면 ‘자구노력 의무’라는 것을 이행해야 했다. SK 또한 한국이동통신 주식매입에 소요되는 4279억원의 자금을 보유주식이나 부동산을 처분해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 체신부가 이를 5년간 유예해줄 것을 재무부와 경제기획원에 요청해 승인을 받아낸 것이다.

    이에 대해 체신부는 “한국이동통신의 주식값 상승으로 매입대금이 예상보다 커지자 선경그룹이 대책마련을 요구해왔다. 그 타당성이 인정돼 관계부처에 자구노력 유예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자구노력 의무 유예는 대단한 혜택임에 분명했다. 이는 두고두고 ‘SK의 한국이동통신 특혜 인수설’의 빌미가 됐다.

    SK의 공기업 민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5월에는 한국통신 민영화에 적극 참여, 제1대주주가 됐다. 대한송유관공사를 계열화하는 데도 성공했다.

    정유사업과 통신사업의 공통점은 ‘규제사업’이라는 것이다(정유는 현재 자유화). 쉽게 말해 정부가 그 구조 및 가격 결정 등에 절대적인 영향을 행사하는 일종의 독점 사업이라는 뜻이다.

    전직 전경련 임원인 D씨는 “공기업 민영화는 그 자체가 딜(거래)이다. 끈 없이 이루어지는 민영화는 없다. 가격보다 중요한 것이 정보요, 네트워크다. SK가 그런 공기업 민영화를 네 차례나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사실은 SK가 그 방면으로 상당한 노하우와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더구나 모두 정부 규제사업 아닌가. 규제사업을 잘 해나가려면 주무 부처는 물론 정·관계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SK의 힘은 바로 거기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사실 ‘로비에 강한 기업’이란 이미지는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SK로서도 달고 싶지 않은 꼬리표일 것이다. 실제로 SK가 다른 재벌그룹보다 정보력이 뛰어나다거나 유난히 로비에 공을 들인다는 증거는 없다. 다만 이동통신 서비스 업체들만을 놓고 봤을 때 SK텔레콤의 정보업무 관련 인력이나 노하우가 단연 돋보인다는 것은 업계에서도 인정하는 바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한 일각의 따가운 시선에 대해 SK는 늘 동일한 논리로 반론을 제기해 왔다. ‘유공’이나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어쩌다 우연히 이루어진 게 아니라, 10여 년 전부터 그쪽으로 방향을 정해 꾸준히 노력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결과라는 것이다. 사실 SK가 기업 인수 후 보여준 경영능력은 발군이었다.

    SK의 한 전직임원은 “SK는 ‘유공’ 인수 후 과잉투자를 배격하고 내실 있는 경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 한편으로는 미래산업인 IT 분야 진출을 위해 1985년부터 미국 뉴저지에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10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성공가도를 달려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요즘 SK텔레콤이 마치 배타적 자세로 한국 통신산업 발전에 해악이라도 끼치는 양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억측일 뿐”이라며, “아날로그 시스템이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오늘날 세계에서도 손꼽는 디지털 통신왕국으로 성장시킨 것이 SK다. CDMA 상용화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언젠가 한국 통신산업이 해외에 진출하게 된다면 그 주인공은 SK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SK의 앞날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통신산업은 서비스업이고 규제산업인만큼, 통화료나 컨텐츠 사용료가 조금만 내려가도 매출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특히 “3강구도를 포기하고서라도 소비자 권익 보호에 최우선순위를 두겠다”는 최근의 정통부 방침이나,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거세게 일고 있는 통신요금 인하 요구는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서비스 업체들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포화상태에 이른 것도 걱정스러운 점. 아울러 SK는 재계 순위 3위의 대그룹임에도 이렇다 할 ‘월드 베스트’ 상품이 없어 오래도록 ‘국내용 기업’이라는 비아냥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그래서 SK가 선택한 것이 온-오프라인 네트워크에 방송·통신·금융을 싣는 ‘네이트 플랫폼 비즈니스’, 그리고 통신·자동차·바이오 산업의 현지화를 통한 중국시장 진출이다. 최근 SK가 벌이고 있는 현란할 정도의 기업 인수·합병 작업 및 벤처기업 창업은 모두 이를 위한 포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둘 중 어느 것도 성공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것. 특히 플랫폼 비즈니스는 세계적으로도 그 예를 찾기 힘든 모험적인 도전이다.

    유연함·일사불란함 조화 이뤄야

    최태원 회장과 친분이 두터운 한 재계 인사는 “요즘 최회장의 관심은 온통 통신관련 신사업과 중국 진출에 가 있다. 어떻게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경영인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이 강하다. 해외진출과 관련해서는 중국 외에는 없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고 있다. 스스로 공부함은 물론, 아들에게도 중국어 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회장은 섬세하고 꼼꼼한 사람이다.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매일매일 돈과 사람과 정보가 움직이는 사업에 몸담고 싶어한다. 평소 농담 삼아, 개인적으로 소박하게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음식점 경영이라고 말할 정도다. 그런 그에게 플랫폼 사업은 매우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라고 덧붙였다.

    SK의 장점은 토론 중심의 유연하고 비권위적인 문화, 그리고 탁월한 통신·서비스 사업 노하우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보안 의식이 떨어지며, 일사불란한 일처리와 저돌적 돌파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SK로서는 창의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는 살리되, 일의 스피드와 효율, 피드백을 강화하는 쪽으로 새 사업 분야에 걸맞은 기업문화를 창안해야 한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 회복이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결정하는 건 시장과 소비자의 신뢰다. 그런 의미에서 작은 이익에 묶여 관계사 간 거래에 집착한다거나, 신사업 진출을 명목으로 기존 사업자들과 불필요한 긴장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기업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SK 특유의 합리적 사풍은 살려나가되, 대한민국 대표 통신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 완수에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크게 이기는 길일 것이다.”

    한 SK텔레콤 출신 벤처기업가의 고언(苦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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