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고된 재앙
2009년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제15차 유엔기후변화당사국총회(UNFCCC COP15)는 의미 있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혁명 이후 2℃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기 위한 전 지구적인 노력이 시급하다는 내용의, 이른바 ‘2℃ 목표’에 합의한 것이다(Copenhagen Accord, 2009). 이러한 합의가 가능했던 것은 지구 온도가 2∼3℃ 이상 오를 경우 지구의 자연·인간 시스템이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에 노출될 것이라는 데 세계 전문가, 정치가, 외교관이 동의했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의뢰로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에서 실시한 기후변화에 따른 우리나라의 경제적 피해액 추정 자료에 따르면, 이대로 기후변화가 계속될 경우 2100년 우리나라의 누적 피해비용은 약 2800조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약 300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적절한 기후변화 적응 정책을 펴면 누적 피해 비용이 800조원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세계 각국이 ‘2°C 안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한다면 기후변화 피해 비용이 580조원으로 급감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정부는 향후 2050년까지 2000년 대비 최소 2℃의 평균기온 추가 상승이 예상됨에 따라 여러 가지 선제적 대책을 마련·추진 중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 의거 2010년 수립된 ‘국가 기후변화 적응대책(2011∼2015)’에서는 보건 분야와 방재(재난/재해) 분야를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에 가장 중요한 분야로 정하고 있다. 방재 분야 기후변화 적응 대책에는 재해 유형별 기후변화 취약성 지도 작성 및 자연재해저감시설물 설계용량 증대 및 설계기준 재설정, 지구단위 홍수방어기준 마련 및 사전재해영향성 검토 강화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국가 차원의 대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지방자치단체의 역량이다. 최근 발생한 집중 호우와 같은 피해를 방지하려면 지방자치단체는 지역별로 상세한 침수지도를 작성하고 공개하며 주민 대피행동요령 교육 및 홍보에 역점을 둬야 한다. 풍수해 예·경보를 강화할 뿐 아니라 하수관거 및 빗물 펌프장 등 도시 배수시설 처리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하수관거 등의 설계 기준을 기존의 10년 빈도보다 훨씬 강화할 필요가 있다. 또 상습침수 지역 등에 우수 저류조 및 침투시설을 확충하고 투수성 도로 포장재 사용을 강제해야 한다. 서울 지역의 경우 아스팔트, 콘크리트로 지면이 바뀌면서 불투수율이 1960년대 7.8%에서 2000년대 47.1%로 증가해 집중강우시 피해가 컸다.

물론 이런 대책을 추진할 때 이해당사자의 요구가 상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침수지도 공개시 뒤따를 지가·건물가격 등 재산가치의 변동, 이로 인한 사회적 논란 등이다. 또 하수관거 등 대규모 도시 배수시설을 건설할 경우 엄청난 재정이 든다. 정치인, 행정가, 관련 전문가 그리고 국민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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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한 것은 기후변화 현상의 진행 속도가 늦춰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반면 이러한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적응 대책 수립 및 이행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이상기후 현상으로부터 보호할 대책 추진은 지금 당장 시작해도 결코 빠르지 않으며,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