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호

적은 돈으로 여유 즐기는 프랑스풍의 도시

  • 최영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yj@donga.com

    입력2004-11-09 15:1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몬트리올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다정다감하고 순하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식으로 시간에 대한 여유도 많다. 이는 잘 갖춰진 도시 인프라 탓도 있지만 민족성도 무시할 수 없다. 퀘벡주 소속인 이 도시에는 앵글로색슨보다는 훨씬 정감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민족성이 녹아 있다.
    1997년 말 스위스의 컨설팅사인 기업전략그룹(CRG)은 세계 192개 도시를 대상으로 정치적 안정성과 사회복지, 범죄율 등 42개 기준을 적용해서 ‘살기 좋은 도시’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캐나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로 평가됐고, 몬트리올은 북미지역에서 세번째로 살기좋은 도시로 거론됐다. 미국의 도시중에는 제일 상위에 오른 애틀랜타가 겨우 26위다.

    몬트리올은 주거 수준에 비해 집값과 생활비가 싸기로도 유명하다. 2000년 세계적인 부동산 중개 프랜차이즈업체인 ‘센추리 21’은 세계 각 도시에서 미화 25만달러로 구입 가능한 주택의 넓기와 교통, 주거환경을 조사했다. 이 조사에서는 멕시코시티가 1위, 필리핀의 먼틴루파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가 뒤를 이었다. 몬트리올은 선진국 도시인데도 상위권인 6위를 차지했다. 반면 집값이 비싸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도시로는 홍콩과 파리가 공동 1위고, 도쿄, 런던, 보스턴이 뒤를 이었다. 서울은 세계에서 여섯번째로 집값이 비싼 도시다. 1995년 유엔(UN) 조사를 보면 몬트리올은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생활비가 적게 드는 도시 순위로 1위였다. 이 조사에서 생활비가 가장 많이 드는 도시 1위는 도쿄이고, 홍콩, 제네바가 그 뒤를 잇는다.

    적어도 공식적인 지표상으로 몬트리올은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다. 그러나 통계지표와 실제생활이 그대로 일치할 수는 없다. 여행자와 이민자들이 처음 느끼는 기후, 공해, 도시 분위기, 언어, 친절도, 청결도, 인심 같은 것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몬트리올에서 받은 첫인상은 사람들이 여유가 있고, 다정다감하고 순하다는 것. 같은 북미대륙이지만 미국에 동양인이 처음 내리면 공항에서부터 주눅들기 쉽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달랐다. 몬트리올 도버공항 직원들은 이방인이 어디로 갈지 몰라서 두리번거리면 다가와서 가르쳐주고, 마주서면 미소로 대한다. 말을 빨리 하지 않아도 끝까지 들어준다. 공항 직원들의 표정부터 다르다. 미국인들처럼 무표정하지 않고 생글생글 웃는다. 아시아 사람이라고 무시하고 거만하게 구는 법도 없다. 한마디로 ‘어떻게 하면 이 사람에게 잘해줄 수 있을까’ 고심하는 태도다. 그게 눈에 보인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태평스런 몬트리올 도버국제공항 대합실을 빠져나온 기자는 택시를 타지 않고 공항버스를 타기로 했다. 도시 분위기를 익히는 데는 버스나 전철이 최고다. 버스 타는 곳을 몰라, 차를 세워놓고 있는 택시 운전사에게 표 파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이 운전사는 버스의 종류와 가격, 행선지, 타는 곳을 친절하게 일러주었다.



    어렵지 않게 탄 공항버스의 흑인 운전사는 유쾌하고 발랄했다. 퀘벡주 남부의 몬트리올은 불어를 주로 쓴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도 하기 때문에 불어를 못하더라도 지장은 없다. 버스 손님이 많지 않아서인지 그는 백미러를 통해 쉴새없이 말을 걸었다. “몬트리올이 처음이냐?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심장이요 관문이다…” 대답하기 귀찮을 정도로 그는 질문을 하고, 몬트리올 자랑을 늘어놓았다. 묵묵히 운전만 하고, 묻더라도 잘 대답하지 않는 다른 도시의 버스운전사와는 사뭇 달랐다.

    지나친 친절

    도심 한가운데 있는 공항버스 종점에서 호텔로 가기 위해, 다시 셔틀버스로 갈아탔다. 이 셔틀버스 운전사는 더욱 친절했다. 호텔 정문에 도착한 뒤, 짐을 내려주며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 호텔 주위에는 레스토랑이 많다. 호텔은 비싸니까, 나와서 먹는 게 낫다. 오른쪽 길로 가면 이탈리아 레스토랑과 프랑스 레스토랑이 많고, 뒤쪽 길에는 중국 레스토랑과 일본 레스토랑이 있다. 이 길로 곧장 가면 재즈 공연장이다. 7시에 재즈 공연이 있으니 놓치지 말라”라며 손으로 이리저리 가리킨다. 대답하지 않고 눈웃음만 지으니 “Do you understand?”를 연발한다. 대답을 해야만 보내주겠다는 태세다. “Of course”고 대답하고 나서야 이 운전사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몬트리올 사람들의 친절은 도착 이튿날에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한 도시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자동차 관광보다는 다리품을 파는 것이 최고다. 이튿날, 기자는 지도 한 장 들고 몬트리올 구시가지로 나섰다. 인도를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다리가 아프면 벤치에서 쉬고, 배가 고프면 레스토랑에서 밥을 사먹고, 목이 마르면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셨다. 그러면서 건축물, 교통시스템, 도로 상태, 하수도 상태, 강물과 다리, 가로등, 지하철, 휴지통, 공중전화, 쇼핑시설을 살피고, 듣고, 만지고, 느꼈다.

    선진국 도시가 다 그렇지만, 몬트리얼 역시 걷기 편했다. 보행을 방해하는 노점상, 입간판은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도 없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헉헉대며 계단을 올라야 하는 육교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생각하는 거지만 육교는 서울에만 있는 시설물인 듯하다. 그저 횡단보도를 건너면 되는데, 보행자는 무단횡단을 밥먹듯이 한다. 무단횡단은 선진국 도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선진국일수록 자동차에게는 엄하고 보행자에게는 관대하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시작하여 자크 카르티에광장, 뷔에 포르(구 항구), 생 아마블거리, 드라 코뮌거리를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기웃거리고 어슬렁거렸다. 몬트리올은 연간 100만 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의 화물(부산항은 연간 700만 TEU)을 처리하는 캐나다 제2의 항구도시다. 도시 북쪽의 강과 남쪽의 세인트 로렌강이 대서양으로 바로 연결된다. 자크 카르티에광장에서 뷔에 포르(구 항구), 드라 코뮌거리는 바로 이 세인트 로렌강을 따라 형성된 강변길이다.

    그런데 거추장스런 것이 시민들의 과도한 친절이었다. 조용히 사색하며 혼자 즐기고 싶은데 지도만 빼들면, 10초도 지나지 않아 말을 걸었다. “목적지가 어디인가? 길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기에 “그냥 둘러보고 있는 중이다”라고 대답하면 못미더운지, 염려스런 눈빛으로 훑어보다가 가던 길을 가는 것이다. 이 적극적인 배려와 친절이 신기해서 곳곳에서 ‘지도 빼들기’ 실험을 해보았다. 평균 10초 안에 지나가는 행인이 길을 가르쳐 주겠다며 다가왔다.

    한 도시에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있는 콘크리트 빌딩과 자동차 뿐이라면 그 도시를 찾는 외국인은 없을 것이다. 도시의 매력은 역시 그 도시만이 가지고 있는 전통건축물, 음식, 춤, 음악, 의상에 있다. 북미의 파리라고 불리는 몬트리올에서도 구시가지가 관광명소다. 이곳에는 17∼19세기 프랑스풍의 아름다운 건물이 곳곳에서 버티고 있다. 이곳은 1642년 프랑스의 메종뇌브가 식민지를 개척한 이래, 프랑스인들이 몰려들어 상업 중심지로 번성한 곳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몬트리올은 북쪽과 동쪽으로 시가지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구시가지는 시대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창고로 쓰이거나 버려지고 파괴되기 시작했다. 또 커다란 화재가 일어나 시가지가 잿더미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몬트리올 사람들은 이곳을 서울의 강북처럼 무조건 불도저로 밀어버리지는 않았다. 몬트리올시 리클레어 홍보관은 “1960년대 초에 이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바이저위원회를 세우고 구시가지의 고유한 특성과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법령을 제정했다. 그렇게 해서 옛 건물을 보수하고 파괴된 건물은 원형을 살려 복원했다. 도로망도 옛 형태를 살려 구축했다. 그렇게 해서 자크 카르티에 광장, 드라 코뮌 거리, 생 아마블 거리 같은 관광명소가 탄생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인구의 대다수가 프랑스계인 몬트리올은 그 민족성 탓인지 담배와 술에 대해서 지극히 관대하고 개방적이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물고 다니는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담배꽁초도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린다. 술도 웬만한 슈퍼마켓에서는 밤 11시까지 살 수 있다. 영국계 백인들처럼 엄격하지 않다. 몬트리올에서 가까운 토론토만 가더라도 담배와 술에 대한 규제가 몬트리올보다 훨씬 엄격하다.

    몬트리올 사람들을 이처럼 느긋하고 개방적이고, 다정다감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도시 인프라 탓이 큰 것 같았다. 사람을 먼저 배려한 도시 인프라가 결국 시민들을 순하게 만들고,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요인이었다. 우선 몬트리올은 생활, 문화공간에 여유가 있다. 도시 면적에 견주어 인구가 적기 때문에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 많다. 동네마다 공원과 축구 야구 하키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시설이 있다. 또 시의 구청에 해당하는 카운티(County) 지역내에서도 행정 건물보다 주민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이 더 크다.

    둘째 대중교통시스템이 북미주 어느 도시보다 뛰어나다. 미국을 가본 사람은 느끼겠지만, 미국에서는 자가용 승용차가 없이 움직일 수가 없다. 미국의 어느 대도시를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몬트리올은 동네 골목골목마다 버스가 들어가고, 시내의 모든 시설이 지하철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자가용 승용차를 갖기 어려운 사람들도 아무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다. 또 시내 모든 시설이 보행자에게 불편하지 않게 설계되어 있어, 걸어서 도시를 구경하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그래서 몬트리올 사람들은 자가용 승용차가 없더라도 ‘BMW’가 있기 때문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한다. ‘Bus(버스)를 타고 Metro(지하철)로 갈아타고, Walking(걸어서)’하면 편하게 일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버스와 메트로(지하철)는 갈아타는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캐나다달러로 2달러(한화 1600원 정도)만 가지면 하루종일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기간 동안 쓸 수 있는 승차권도 있어 캐나다달러로 48달러(한화 3만8400원 정도, 학생과 노약자는 할인됨)짜리 티켓만 사면 한 달 내내 메트로(지하철)와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대중교통은 쾌적하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인데, 고무바퀴로 굴러가는 것이 특징이다. 쇠바퀴라면 도르레처럼 궤도를 따라 굴러간다. 고무바퀴는 도르레처럼 바퀴를 만들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면을 구르며 차량을 떠받치는 바퀴와, 지면과 수평으로 붙어, 레일 안쪽을 구르며 궤도를 이탈하지 않게 버티는 바퀴 등 이중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무바퀴로 달리는 전동차는 소음과 흔들림이 적었다.

    셋째, 범죄율이 낮다. 세계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슬럼가와 외국인이 밤 늦게 다니면 안되는 지역이 있다. 하지만 몬트리올에 사는 한 한국 교민은 “밤늦게 여학생이 길거리를 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슬럼가에서 흑인들이 모여서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많지만, 몬트리올의 흑인들은 순하다.

    넷째, 문화적 혜택을 누리기가 쉽다. 몬트리올은 캐나다의 대도시인 밴쿠버와 토론토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문화행사가 많고 다양하다. 몬트리올 한국 총영사관에서 3년째 근무중인 최동환 부총영사는 “신문의 주말판을 보는 게 가장 즐겁다. 음악, 연극, 영화, 무용, 미술 등 세계 각 문화권의 온갖 공연이 이 도시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그 공연에 대한 해설을 읽어내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의 직장인들이 소주와 삼겹살, 텔레비전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면, 몬트리올의 직장인들은 재즈 연주회와 발레 공연을 즐기며 피로를 푼다. 몬트리올에 이처럼 문화예술이 활짝 꽃피는 것은 이 도시가 다민족 복합문화를 인정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모든 문화예술 행사는 그 자체가 소수민족들이 이루어내는 국제적인 행사다. 한국의 전통 살풀이춤을 몬트리올에서 공연하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비싼 입장료를 내고 와서 공연을 관람한다. 몬트리올의 도시홍보관인 리클레어씨는 “공연에 대한 정부 지원도 많다. 유명 공연이 한 번 벌어지면, 공연티켓을 사기 위해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밤을 새는 일도 허다하다. 몬트리올영화제 덕택인지 이곳에서는 영화산업이 번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영화를 찍기 위해서 몬트리올로 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다섯째, 교육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다. 이곳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이중언어 교육을 한다는 점이다. 프랑스어를 기본으로 가르치지만, 그렇다고 영어를 도외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몬트리올에서 교육을 받으면 불어는 기본 언어로 하고, 영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할 때도 영어권 대학과 불어권 대학에 모두 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보장시스템을 들 수 있다. 캐나다가 세계에서 사회보장 제도를 가장 잘 갖춘 나라이지만 몬트리올이 속한 퀘벡주는 캐나다에서도 사회보장이 으뜸이다.

    몬트리올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최근 한 교민이 자동차로 몬트리올에서 나이애가라폭포까지 가다, 차가 뒤집혀 뇌를 크게 다쳤다. 사고가 나자, 퀘벡주 정부는 곧바로 이 교민을 헬기에 태워 몬트리올의 병원으로 후송해서 응급처치를 했다. 이 교민은 3주간 병원에서 단계별로 치료를 받은 뒤, 재활치료는 집에서 받는 것이 낫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퇴원했다. 놀라운 것은 퀘벡 주정부가 이 교민의 집 구조가 재활치료를 받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이유로, 집의 화장실 등을 환자가 쓰기 편하게 고쳐준 것이다. 물론 헬기 후송에서 집 화장실 개조까지 모든 비용은 퀘벡 주정부가 부담했다.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것이 이 도시 사람들의 성품이다. 시간에 대한 여유가 많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식이다. 도시 인프라 탓도 있지만 민족성도 무시할 수 없다. 퀘벡주 소속인 이 도시에는 앵글로 색슨보다는 훨씬 정감있는 프랑스 사람들의 민족성이 그대로 녹아있다. 또 이 도시에서는 영어와 불어를 같이 쓰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지 못하더라도 전혀 주눅들 필요가 없다. 영어를 잘 못하면 불어를 잘 하는 줄 알고, 불어를 잘 못하면 영어를 잘 하는 줄 알기 때문이다. 영어를 잘 못하면 바보 취급하는 미국과는 딴판이다.

    몬트리올의 가장 큰 단점은 춥고 변덕스런 날씨다. 환절기 때는, 일교차가 20도 이상 날 때도 있다. 겨울에 아침에 영하 5℃ 정도였는데, 북극권인 캐나다 북부의 허드슨만에서 ‘스노우 스톰’이란 바람이 5시간 만에 몬트리올에 도착하면 기온이 갑자기 영하 30℃, 40℃까지 떨어진다. 그래서 몬트리올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자동차 트렁크에 두터운 방한외투를 싣고 다닌다.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도로 제설작업 역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뉴욕에 눈이 많이 오면 몬트리올 제설팀이 지원을 나갈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눈을 녹이는 염화칼슘을 뿌려서 그런지 몬트리올 도심의 도로는 곳곳이 갈라지고 파여서 울퉁불퉁했고, 보수공사를 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이런 날씨를 이겨내기 위해 몬트리올 사람들이 고안해낸 것이 지하도시다. 이 지하도시는 신시가지 중심부에 수km에 걸쳐 광범위하게 건설되어 있다. 몬트리올 도착 사흘째 되던 날, 이 지하도시를 탐험하기로 했다. 지도를 들고 루 유니버시티(Rue University, 세인트로렌강에서 맥길대학으로 올라가는 길)에 접어들었다. 지상은 세찬 바람이 불어 지도를 제대로 펴기가 힘들었다. 거리에는 두터운 외투를 껴입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모두가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인지 차림새가 육중한 전사 같았다. 무조건 큰 건물 지하로 들어갔다.

    지하는 별천지였다. 따뜻하고, 편안한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한 쇼핑몰, 일본음식, 중국음식, 태국음식, 베트남음식, 이탈리아음식, 프랑스음식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대리석 바닥으로 연결되는 이 지하도시는 끝이 없었고, 지하철역과 주요 건물은 바로바로 연결되었다. 도심의 시민들은 이 건물에서 저 건물로 이동할 때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 지하로도 얼마든지 이동할 수 있다.

    세련된 몬트리올 시민들은 모두 지하도시에서 살고 있는 듯, 이곳에서야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투피스 정장을 한 오피스걸을 만날 수 있었다. 환절기에 기온 격차가 심하고, 겨울에 몹시 추운 몬트리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아이디어를 기초로 이 지하도시를 설계했다고 한다. 이 지하도시는 냉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여름에도 산뜻하게 지낼 수 있다.

    몬트리올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 도시가 속한 퀘벡주의 분리독립운동이다. 올림픽이 열렸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몬트리올은 캐나다 제1의 도시였다. 지금은 그 자리를 토론토에게 뺏겼는데, 원인은 퀘벡주 독립운동이다. 이 운동이 일어나면서 몬트리올에 들어와 있던 다국적기업과 영국계 대기업이 토론토로 본사를 옮겨버렸다. 당연히 일자리가 사라지고, 경제는 뒷걸음질치고 땅값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기간 동안 한국 교민들도 썰물처럼 토론토로 빠져나갔다. 영어를 쓰지 않고 불어를 강요하는 경향이 짙어 자녀 교육에 민감한 교민들이 영어권인 토론토로 옮긴 것이다.

    경제가 뒷걸음질치자 프랑스계 몬트리올 시민들은 결국 1995년 독립 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투표에서 분리독립에 반대표를 던졌다. 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정치인들이 여전히 그 불씨를 지피고 있다. 분리독립운동으로 경제가 뒷걸음질쳤다지만 몬트리올은 생명공학, IT산업, 우주항공 분야에서 캐나다 제일 가는 곳으로 한국과의 경제교류도 매우 긴밀하다.

    분리독립운동 같은 움직임이 없지는 않지만 몬트리올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은 다민족, 다인종주의 이민사회가 만들어내는 국제성이다. 미국이 비록 다민족 이민사회라고 하지만, 백인우월주의 등 인종편견주의가 심하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주류는 프랑스계지만, 인종편견주의가 거의 없다. 몬트리올에서 주류인 프랑스계 자체가 캐나다에서는 소수라서 다른 민족을 차별할 수가 없다. 언어조차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써 특정 언어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서 몬트리올 사람들은 소수민족과 어울리고 화합하고, 세계의 모든 전통문화를 소비한다. 그 국제성이 다정다감하고 순하고 쾌활한 기질을 만드는 것이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