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2월호

인도의 영광 간직한 낭만의 도시

‘동양의 베니스’ 우다이푸르

  • 입력2002-12-03 09: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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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의 영광 간직한 낭만의 도시

    피촐라 호수에서 바라본 시티 팰리스와 시가지 전경. 호수와 궁전이 어우러진 우다이푸르는 이국적인 인도에서도 가장 매력있는 도시다.

    우다이푸르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 인도 전역을 헤매고 돌아다니던 필자가 남서부의 이 아름다운 도시를 찾은 것은 카오스와도 같은 인도의 혼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릭샤왈라(인력거꾼)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서로 손님을 태우려고 아우성치는 그들을 뿌리치고 비교적 ‘순해 보이는’ 릭샤왈라를 잡아 호수 옆에 위치한 레이크 피촐라 호텔로 향했다. 극심한 혼돈 후에 찾아온 달콤한 휴식. 며칠을 빈둥거리며 있는 대로 게으름을 피운 후 비로소 호텔을 나서 도시 구경에 나섰다.



    사람이 그러하듯 도시도 첫인상을 갖고 있다. 우다이푸르는 한눈에 ‘로맨틱한 도시’라는 느낌을 주었다. 언덕 위의 궁전과 도시 한가운데 있는 피촐라 호수는 ‘낭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라자스탄주에 이렇게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호수를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니 빨래하는 여인들이 보였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 등 형형색색의 사리를 입은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광경은 이방인의 시선을 붙잡는다. 빨래하는 방식도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마치 농부들이 도리깨질을 하듯 돌이나 콘크리트 바닥에 옷을 팽개쳐 두들긴 후 물에 한 번 담그면 그걸로 끝이다. 빨래를 마친 여인 가운데 몇몇은 호기심 어린 이방인의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큰 가슴을 드러낸 채 목욕을 한다. 물은 그리 깨끗해 보이지 않지만 수도 시설이 없는 가난한 이들에겐 호수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선물인 듯했다.

    구시가지 한복판에 있는 자그디슈 사원 앞에선 걸인들이 구걸하고 있었다. “박시시(적선)!”를 외치는 이들의 얼굴에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몇백원으로 겨우겨우 이어가는 삶의 피로가 역력하다. 필자가 말을 붙인 젊은 걸인 옴프리카스는 두 다리를 쓸 수 없는 장애인이었다. “적선을 받지 못해 며칠을 굶는 경우도 있다”고 말하면서도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에게서 처연한 슬픔이 묻어났다. 필자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고작 몇 푼의 돈을 쥐어주는 것뿐이다. 카스트 제도의 굴레가 아직까지 남아 있는 인도에서 신분 상승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걸인들이 다른 삶의 기회를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반면 구시가지 언덕에 있는 ‘시티 팰리스’는 이 도시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준다. 우다이 싱 2세 때 건축된 이래 수세기에 걸쳐 마하라자(영주)의 궁전으로 사용된 시티 팰리스는 인도의 영광을 한눈에 보여준다. 라자스탄 지방 특유의 화려한 장식이 인상적인 궁전 내부는 페르시아와 유럽 곳곳에서 수입한 가구, 그림, 조각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특히 유리를 사용한 실내 장식은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상깊다.

    시티 팰리스 옥상에 올라서자 시내와 호수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였다.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레이크 팰리스 호텔의 경관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재클린 오나시스 등 세계적인 명사와 부호들이 머물렀다는 바로 그 호텔이다. 굶기를 밥 먹듯하는 걸인과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다는 호텔이 공존하는 아이러니야말로 이 ‘아름다운 만큼 슬픈 도시’가 갖고 있는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돈을 피해 찾은 도시에서 만난 혼돈

    해질 무렵 호수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의 레스토랑을 찾았다. 우다이푸르의 호텔은 대부분 호수 주변에 4∼5층 규모로 지어져 있는데 어느 호텔이나 옥상에 루프 카페를 운영한다. 이 루프 카페에 앉아 시티 팰리스 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시는 짜이(차) 한 잔의 감흥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태양이 마지막 붉은 기운마저 다 소진해 이윽고 밤이 찾아오면 호수 주변은 ‘동양의 베니스’라는 찬사에 부족함이 없는 낭만적인 야경을 연출한다.

    도시가 여행객에게 베푸는 안온함은 낮에 만난 사람들의 가난한 미소를 잊게 할 만큼 사랑스러웠다. 과연 진짜 인도는 어떤 것일까. 먼 나라에서 날아온 여행객은 인도의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되새겨야 하는 것일까. 생각 다발은, 혼돈을 피해 찾은 우다이푸르에서도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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