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매일 생각해요, 이젠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세상 끝에 선 희귀·난치병 환자들

  • 글: 정호재 demian@donga.com

    입력2003-01-30 11: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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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내에는 적어도 10만명, 많게는 100만명에 이르는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살아간다. 실낱 같은 희망을 붙들고 있지만, 죽음의 너울이 늘 눈앞에 어른거린다. 병만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 모자라는 의사, 엄청난 약값, 주변의 따돌림이 이들의 하루하루를 더 힘겹게 만든다. ‘사는 게 죽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이들에겐 결코 빈말이 아니다.
    “매일 생각해요, 이젠 이  땅을 떠나고 싶다고…”

    1.정기 모임을 가진 ‘다발성 경화증’ 환우들<br>2.‘신경 섬유종’ 환우회의 김대호씨(cafe.daum.net/sky399)<br>3.영동 세브란스병원 근육병 클리닉 문재호 교수와 어린이 환자<br>4.‘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을 앓는 이용우씨(www.crps.co.kr)<br>5.식약청 산하 한국희귀의약품센터(소장 장영수,www.kodc.or.kr)

    1월9일 오후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재활치료실. 100여 명의 근육병 환자와 가족들이 3층 대강당으로 모여들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근육병 클리닉이 있는 이곳에선 매달 근육병 환자들의 정기 모임이 열린다. 환자들은 자신의 제2의 삶터인 병원에서 의사, 물리치료사, 자원봉사자들이 들려주는 의학정보를 챙기고, 굳은 몸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진지한 자세로 따라했다. 이날 근육병재단이 휠체어와 보조구를 전달하는 행사도 마련됐다.

    모임이 끝난 뒤 환자 부모들은 다과를 함께하며 안부를 묻느라 시끌벅적했다. 언뜻 보면 유쾌한 사교모임 같기도 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환자들을 살펴보면 보통 심각한 상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휠체어를 타고 모임에 참석한 해운이(16)는 근육병의 일종인 근위축증 환자다. 네 살 때 갑자기 장딴지가 딱딱해지더니 이후 전신의 근육에서 힘이 빠져갔다. 처음엔 발육이 늦는 것이려니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문제가 심각해졌다. 부산에 살던 해운이네는 병을 고치려고 백방으로 돌아다녀도 뾰족한 수가 없자 아예 생업을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11세 되던 해에야 근육병 확진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무렵엔 해운이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부모는 24시간 아이 곁을 떠나지 못한다.

    “잠도 혼자서는 못 잡니다. 한쪽으로만 누워 있으면 답답해지니까 20분마다 한 번씩 몸을 뒤집어줍니다. 온몸에 욕창이 생겨 성한 곳이 없어요. 혀가 굳어 말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옆에서 돌보는 사람이 없으면 하루도 살아내기 어렵습니다.”

    어린이 근육병이란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죽음에 이르는 난치병이다. 3∼4세 때 발병, 어깨와 엉덩이 근육이 무력해지다가 13∼14세 때는 걸음을 못 걷게 되고, 16∼17세 때는 호흡근육마저 마비돼 죽음에 이른다. 초기에 병을 발견하면 약물치료와 재활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한 경우도 있다.



    선천적인 염색체 이상, 태아기의 알콜 및 약물중독, 출생 후 신진대사 이상, 바이러스, 간염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지만, 어느 것도 확실하지는 않다. 전국에 1만∼1만5000명의 어린이 근육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을 위한 이렇다할 대책이 없다.

    희귀병·난치병·불치병

    해운이는 얼마 전 장애등급이 2급에서 1급으로 올라갔다. 부산에서 초등학교를 마칠 때까지는 엄마가 교실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함께 생활했다. 지금은 누워서 TV를 보거나 어렵사리 움직이는 손가락으로 컴퓨터에 몰두하는 것 말고는 해운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내장 운동을 담당하는 근육마저 힘을 잃고 있어 소화와 배변까지 힘들어한다. 물리치료로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일까.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병원을 오가며 온몸을 만지고 주무르기를 그치지 않는다.

    희귀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처음부터 성장과정이 비정상적인 아이도 있지만,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이상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고통스러워 하면 부모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병원쇼핑’에 나선다. 그러나 이런저런 검사를 다 받아봐도 결과는 분명치 않다. 병을 모르는 의사는 눈뜬 장님과 다를 바 없다. 의사들은 신경성이니, 체질이 어떠니 얼버무리며 대충 처방전을 써준다. 아픈 것도 고생인데, 왜 아픈지도 모르니 이보다 딱한 일이 또 없다. 그저 고통을 참아내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

    희귀병에 대해서는 확실한 정의가 없다. 정하기 나름이다. 인구가 2억 정도인 미국은 환자수가 20만명 이하인 질병을 희귀병으로 본다. 한국에서는 대개 환자수가 2만명 이하인 경우를 희귀질환으로 규정한다.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밝혀진 희귀질환은 5000가지 이상으로 추정되는데, 그 가운데 900여 종의 치료제가 시중에 판매되고 있다. 완치가 어려워 평생 약을 끼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희귀병이 ‘난치병’이라는 말과 혼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희귀병은 병명은 있지만 원인과 치료방법을 모르는 병, 병명과 원인은 알지만 치료방법이 없는 병, 치료방법은 있어도 잘 치료되지 않는 병들이다. 난치병과 불치병의 구분도 애매하다. 불치병은 치료할 수 없는 병을 뜻하지만, 어떠한 병도 치료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난치병과 불치병도 혼용되는 개념이다.

    혈우병, 신부전증, 백혈병 등은 환자가 많아 비교적 잘 알려진 난치병이다. ‘로렌조 오일’이라는 영화의 소재가 되어 관심을 모은 부신백질이영장증(ALD)이나 레트증후군(RETT), 고셔병, 왜소증, 베체트병, 파킨슨병, 모상세포백혈병, 골형성부전증, 백색증, 크론병 등 이름조차 생소한 희귀질환도 많다. 최근 들어 새롭게 발견되는 돌연적 유전병 중에는 환자수가 수백명, 혹은 단 한 명이 보고된 경우도 있다.

    희귀병은 극심한 통증, 사회적 고립, 엄청난 치료비 부담으로 환자와 가족을 옴쭉달싹 못하게 옭아맨다. 신경계통의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한 환자는 “어릴 때 조용히 죽어버렸으면 지금 같은 고통을 겪지 않을 텐데…”라며 한탄했다. “어차피 ‘시장’이 해결해줄 수 없다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암도 난치병이긴 마찬가지지만, 환자수가 워낙 많다보니 암 치료를 위한 의료체계는 제대로 갖춰져 있다. 암 환자에게는 최상의 의료 서비스가 제공될 뿐 아니라 거듭된 연구의 결과 치료제도 빠른 속도로 개선되고 있으므로 암은 이제 불치병이 아니다. 그러나 환자가 적어 이른바 ‘시장성’이 낮은 희귀병은 사정이 그렇지 못하다.

    환자가 적다보니 희귀병은 전공 의사도 없거니와 치료제도 제대로 개발된 경우가 드물다. 유전성 질환이 많아 게놈프로젝트가 웬만큼 진전된 최근에야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 병명은 달라도 증상은 비슷한 경우가 많아 환자들은 확진을 받기까지 갖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지난해 7월, 희귀병 환자 가족의 아픔을 세상에 널리 알린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광주에 사는 윌슨병 환자 김모(59)씨가 자신과 같은 병을 앓는 것으로 추정되던 아들을 살해했다. 반신불구에 눈까지 멀어가던 아버지는 자신이 평생 겪은 고통을 아들이 대물림한 것으로 알고 신세를 한탄해오다 이런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윌슨병은 유전되지 않는 병으로 밝혀졌다. 윌슨병은 상염색체 열성 유전병으로 형제간에는 나타날 수 있으나,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대물림되지는 않는 병이라는 것. 전문가들은 김씨 아들의 병이 상염색체 우성 유전병으로, 시각장애가 있는 것으로 봐서 망막색소증을 겸한 소뇌(小腦) 위축성 실조증(윌슨병과 증상이 유사)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결국 아버지는 아들의 병도 모른 채 아들을 죽인 것이다.

    이 사건은 복지국가를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의료사각지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난치성 희귀병 환자가 충분한 치료는커녕 자신이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진단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정부 차원의 희귀병 관리·지원대책은 아직 초보 수준이다.

    혈우병은 가장 널리 알려진 난치성 희귀질환이다. 모계에 의해 남자에게만 전해지는 혈우병은 혈액 속의 여러 혈액응고인자 가운데 제8 인자(혈우병A)나 제9 인자(혈우병B)가 부족해 작은 출혈에도 피가 멎지 않는 병이다. 때문에 평생 혈액응고인자제제를 투여받아야 하는 만성 유전질환이다.

    서울 서초동 서울교대 앞에 자리한 혈우병 환자 모임 ‘코헴회’에서 만난 김승근씨는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 첫눈에 환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희귀병 치료제가 다 그렇듯 혈우병 치료제도 값이 만만치 않다. 한 달 약값이 1000여 만원에 이른다. 2001년 이전에는 혈우재단이 치료비 일부를 부담했고, 이후에는 정부의 희귀·난치성 질병 의료비 지원사업에 포함되어 환자들이 약값 걱정을 덜게 됐다. 약값의 80%는 건강보험에서 지원되고, 나머지 20%는 국고에서 지원된다. 혈우병은 국가적 지원체계를 갖춘 몇 안되는 희귀질환 중 하나다.

    하지만 환자들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김승근씨의 말.

    “정부가 지난해부터는 환자 모두에게 약값을 지원하지 않고, 수입과 재산상태 등을 조사해서 선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환자 집안의 금융자산까지 찾아내서 선별한다는 거죠. 가뜩이나 혈우병 환자라고 하면 취업하거나 결혼하는 데 지장을 줘 가족끼리도 쉬쉬하는 형편인데, 이렇게 하면 누가 환자라는 게 다 드러날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약값 때문에 온 집안이 망할 지경에 이른 환자만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이 사람은 혈우병 환자’라고 꼬리표를 붙이는 격이에요.”

    약값에 치이는 환자들

    보건사회연구원은 2000년 건강보험 청구 자료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국내 난치성 희귀병 환자가 111종 108만6800여 명이라고 추산했다. 그러자 숫자가 너무 부풀려졌다는 반박이 잇달았다. 숫자의 정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희귀병의 개념과 범위에 대한 규정이나 합의도 없거니와 정부 차원의 정확한 실태조사조차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희귀병을 관리하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과는 난치성 질환 11가지에 대한 지원정책 이외는 이렇다할 방안을 갖고 있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정청 산하 희귀의약품센터도 예산과 홍보 부족으로 50여 가지 질병을 앓는 1000여 명 정도의 환자만 이용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2001년 초부터 몇몇 희귀질환에 대해 의료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액수가 미미할 뿐 아니라 배분 방식의 실효성도 떨어져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크게 덜어주지 못하고 있다. 홍보가 제대로 안돼 지원금을 찾아가지 않은 수혜대상 환자도 많다.

    보건복지부는 2001년 1월부터 만성 신부전증, 근육병, 혈우병, 고셔병, 베체트병, 크론병 등 6개 희귀성 질환에 대해 총 440억원(지방비 220억원 포함)의 의료비를 지원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5개 질환을 추가했지만, 환자의 재산상태에 따라 선별 지원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기 때문에 예산은 더 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최저생계비(4인 가족 기준 99만원)의 3배를 넘지 않는 월평균 297만원 미만 소득자에게만 해당된다(고셔병, 혈우병 환자는 제외). 이 때문에 지난해에 의료비 지원을 받은 희귀병 환자는 7500여 명에 불과했다.

    “난치성 희귀병은 근육병처럼 환자가 무기력해 전적으로 주위에서 돌보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거나 혈우병처럼 평생 약을 끼고 살아야 하는 병입니다. 어느 편이나 그대로 방치하면 당장 생명을 위협받기 때문에 도움과 비용이 요구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어려움은 비싼 약값이죠.”

    희귀병 환자를 돌보는 한 의료인의 말이다.

    백혈병 치료약 ‘글리벡’ 파문에서 보듯, 희귀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약은 몇몇 대형 제약회사에서만 생산한다. 막대한 개발비용을 회수하고도 이윤이 남을 만큼 시장이 넓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약값이 비싸질 수밖에 없기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에도 부담을 준다. 또한 거의 전량을 해외에서 공급받는다. 요즘은 사정이 좀 나아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외국에서 새로 개발된 약을 수입하려면 필요한 절차를 밟느라 몇 년씩 기다려야 했다.

    고셔병은 태어날 때부터 지방분해 효소 글루코세러브로사이드(GC)가 부족해 관절통, 빈혈 등에 시달리는 질환이다. 제때 골수이식을 하지 않으면 간과 비장이 커지거나 혈소판이 줄어드는 데 따른 출혈, 뇌신경장애로 대부분 열 살 이전에 사망하는 무서운 병이다. 세계적으로 환자수가 2000여 명뿐인 희귀질환인데, 국내 환자수는 4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진 ‘세레자임’은 1년분이 2억5000만원에 이른다. 약값의 80%를 건강보험에서 지원받는다고 해도 환자의 부담은 크다. 얼마 전까지는 환자 부담 20% 중 10%를 아주대병원의 고셔기금에서 지원받았지만, 민간 기금인 고셔기금이 최근 고갈되자 정부는 2001년부터 환자 1인당 연 400만원의 지원금을 건강보험 혜택과는 별도로 지급하고 있다. 그래도 환자가 부담하는 약값이 연 2000만원을 넘는다.

    가장 많은 비용이 드는 질환의 하나인 백혈병은 무균실 입원과 고가의 항암제 및 골수이식 치료에 1억원 가까이 든다. 백혈병 환자의 60%는 글리벡으로 치료효과를 볼 수 있어 골수이식이 필요없지만, 글리벡은 한 달분이 300만원이 넘는다.

    희귀병 환자의 약값 80%를 건강보험에서 충당하기 때문에 환자 한 명이 1년에 거의 1억원에 가까운 보험료를 소진하기도 한다. 1만여 명이 사흘 동안 감기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돈이 보험 재정에서 빠져나가는 셈이다.

    고셔병이나 백혈병처럼 억대의 치료비가 드는 병도 있지만, 상당수 희귀병은 종합검진과 입원, 물리치료와 합병증 치료에 드는 돈이 한 달에 100만원 안쪽이다. 하지만 이 액수도 수입이 변변치 못한 환자 가족에겐 결코 작은 부담이 아니다.

    장애인 인정도 못 받아

    “보건복지부는 물론, 국회 보건복지위, 국가인권위원회, 언론사 등을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 대책을 세워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늘 ‘고려해보겠다’고만 하더군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이용우(34)씨는 ‘복합부위 통증증후군’을 앓고 있다. 국내에 환자가 단 두 명만 보고된 희귀질환이다. 그는 이 병으로 장애인 인정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고 있다. 그러나 통증을 증명해 보일 수 없어 매번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3년 사이에 버스와 관련된 세 차례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손목이 꺾이고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을 입고 통원 치료를 받아왔는데, 지난해 이맘때 갑자기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왼팔에 찾아들더니 이내 사지(四肢)로 퍼졌다.

    “바늘로 온몸을 찌르는 것 같죠. 그땐 정말 ‘죽고 싶다’는 말밖엔 안 나옵니다. 이런 고통이 하루에 한 번꼴로 찾아듭니다. 온갖 괴성을 질러대면서 방안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다행히 아내가 간호사 출신이라 그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엄살쯤으로 여겼는지, 아니면 확실히 진단을 내리지 못해서인지 그저 “두고보자”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는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의 내로라하는 신경과 전문의와 마취과 전문의를 찾아다녔다. 결국 미국 UCLA대학병원까지 찾아간 끝에 ‘복합부위 통증증후군’ 진단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이 병을 앓는 환자들을 장애인으로 인정한다고 했다.

    이씨는 귀국한 후 신경을 자극해 고통을 줄여주는 ‘경막외 전기자극기’라는 기계를 몸 안에 집어넣는 수술을 받았다. 이 기계는 5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1600만원이 든다. 그래도 강직증세와 통증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긴 어렵다. 자신과 아내, 17개월 된 아이가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장애인 인정을 받아야 보험회사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아 생계를 꾸릴 수 있을 텐데, 이게 되지 않고 있다.

    “저를 치료한 미국 UCLA대학병원 교수가 영구 장애 진단서를 미국의사협회 명의로 발급해줬지만, 국내에서는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선 마취과 의사가 진단을 내렸기 때문인지 소견서로밖에 보지 않더군요.”

    이씨는 미국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올 만큼 영어와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후 미국에까지 가서 치료를 받느라 얼마 안되는 재산을 다 날렸다. 이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장애인 인정밖에 없다.

    “저처럼 후천적인 요인으로 이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아마 대개는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을 겁니다. 이건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병입니다. 그런데도 장애인 인정과 교통사고 후유증에 대한 보상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어요.”

    “5년쯤 됐을까, 오랜만에 목욕탕엘 갔는데, 손님들이 주인에게 달려가 항의를 했나 봐요. 주인이 목욕비를 돌려주더니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그후로 목욕탕에 간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 11월 결성된 신경섬유종 환우회 김대호(24) 회장이 겪은 일이다. 신경섬유종은 말초신경을 싸고 있는 피부 전체에 종양 같은 혹이 자라는 희귀병이다. 환자들의 온몸에는 수천개의 작은 혹과 반점이 뒤덮여 있다. 전염되지는 않지만, 피부병이라는 오해를 사 싸늘한 시선을 받기 일쑤다.

    “19세 때 입대영장이 나와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비아냥거리듯 물어요. ‘군대 가고 싶냐?’고. ‘합병증만 생기지 않으면 군 복무에 지장이 없으니 가고 싶다’고 했더니 의사는 모욕을 주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어요. ‘너 하나 때문에 군 전체가 혐오의 대상이 되면 좋겠냐’고 합디다.”

    김씨 가족들도 이 병을 앓고 있다. 어머니가 환자였는데, 모계 유전 때문인지 김씨와 여동생에게도 병이 찾아왔다.

    “어머니는 계속 민간요법에 의지했습니다. 얼굴에 난 혹을 가위로 자르기도 하는 등 별별 고생을 다 하셨어요. 저도 마찬가지였고. 저는 학교생활을 제대로 한 기억이 없습니다. 친구들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대해준 적이 없어요.”

    19세 때야 처음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혹이 계속 자라기 때문에 웬만한 크기가 되기 전에 잘라내지 않으면 혈관을 막을 수도 있다. 어지간히 치료를 받은 후 직장을 구하려고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면접을 보러 가면 예외 없이 ‘전염되는 병 아니냐’고 묻더군요. 그 사람들에게야 당연한 절차일지 모르지만, 저를 쳐다보던 그들의 차가운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러다 어렵사리 취직을 했다. 밸브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1년 남짓밖에 일하지 못했다. 머리에 쇳덩이를 맞고 쓰러졌기 때문. 그런데 치료를 받고나니 몸은 멀쩡했지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회사측은 이 증상이 지병인 섬유종 때문이라고 우겼고, 결국 김씨는 산업재해 판정도 받지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

    시력 잃고 직장도 쫓겨나

    산재 판정은 아직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지만,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먹고 살 길을 찾기 위해 맹학교에 들어가 안마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에게 안마를 가르치는 사람도 그가 이 일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한다.

    “누가 저한테 안마를 받겠다고 몸을 맡기려 하겠어요. 피부병 옮는다고 도망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김씨는 돈이 좀 모일 때마다 혹을 하나하나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연금 월 28만원이 소득의 전부. 설상가상으로 지난해부터는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 크기가 1cm 이하인 종양에만 보험 급여를 적용시킨 것. 평생 수천개의 혹과 가려움증, 그리고 이것이 초래할지 모를 합병증과 싸워야 하는 그로서는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환우회를 중심으로 함께 힘을 모으려 합니다. 인터넷 모임에 300명 정도가 모였는데, 그 전에는 다들 고립된 채 고민하고 있었어요. 이제는 서로 뜻을 모았으니 우리의 권익을 찾기 위해 싸워나갈 겁니다. 환우들의 치료와 복지를 위한 재단을 만드는 게 꿈이에요.”

    인터넷 덕분에 ‘세상 밖으로’

    지금껏 음습한 곳에 소외되어 있던 희귀병 환자들이 빛이 드는 세계로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 주역은 인터넷이다. 1998년경부터 본격화한 일부 희귀병 환자들의 인터넷 모임은 이제 거의 모든 희귀질환자 모임으로 확대됐다. 이들은 정기 모임을 가지면서 정보를 공유하고 권익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환자들의 외로움을 달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수단이다.

    각종 희귀병 게시판에는 자녀의 증세에 대해 묻는 부모들의 글이 꾸준하게 올라온다. 이미 그 병의 전문가가 다 된 환자들은 성실한 답변을 올리고 재빠른 조치를 충고한다. 병원과 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환자들 스스로가 인터넷을 빌려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연구와 토론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그러나 인터넷을 벗어난 오프라인에는 이들이 마음을 터놓고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

    “모임을 한번 가지려면 모이는 장소의 장애인 편의시설에서부터 교통수단 등 갖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임을 거듭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하우가 쌓이더군요. 인터넷이라는 존재가 이들에게 부족했던 사회성을 길러주고 있습니다.”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www.kord.or.kr) 신현민(49)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신씨는 국내 희귀질환 환우회의 중심에 서 있다.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어 혼자서는 거동하기 힘든 몸을 이끌고 2년간 연합회를 이끌며 환자들의 복지 증진을 위해 뛰고 있다.

    다발성경화증은 뇌와 척수 등 중추신경계 손상으로 발생하는 면역체계 이상 질환. 하반신 마비에서 시작해 평행 및 운동장애를 일으키고, 심하면 시각장애와 전신마비를 초래할 수도 있다. 대개 20∼40대에 발병하며, 여자의 발병률이 남자보다 2배 정도 높다. 원인으로는 자가면역, 유전적 요소, 바이러스 감염 등이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신회장이 이 모임 회장을 맡아 보건복지부와 국회 등을 부지런히 뛰어다닌 결과 2001년부터 다발성경화증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시작됐다.

    “이 병의 치료제인 ‘인터페론’ 한 달분 비용이 130만원이었습니다. 보험 처리가 안될 때는 180만원이었고. 2001년에는 정부가 50%를 지원해 환자의 부담이 65만원으로 줄었습니다. 지난해엔 20% 수준인 26만원으로 떨어졌죠. 더구나 올해부터는 정부가 전액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 이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신회장은 비단 다발성경화증뿐 아니라 40여 종에 이르는 희귀병 환자들이 회원으로 가입한 연합회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병에 대해 혜택을 보게 됐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수십종의 희귀병 가운데 의료비 지원을 제대로 받고 있는 것은 10개 남짓밖에 되지 않습니다. 소수집단 안에서 더 소수의 집단이 차별받는 상황이 우리 복지체계에서 빚어지고 있어요. 수혜대상과 폭을 계속 늘려가야죠. 정부의 지원이 본격화한 지 3년째에 불과한 우리 실정에서 미국, 일본 같은 선진국 수준의 지원체계를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우선 희귀병에 대한 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관리 프로그램, 예를 들어 환자 등록제와 의료시설 등을 정비하고,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보 공유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적 지원이 시급합니다.”

    “모든 병은 난치병”

    ‘Incurable but treatable(치료는 어렵지만 관리는 가능하다).’

    영동세브란스병원 근육병 클리닉에서 만난 연세대 의대 문재호 교수(재활의학교실)는 난치병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따지고 보면 모든 병은 난치병이므로 체계적인 의료시스템을 작동시켜 관리가 가능한 병으로 만드는 게 국가와 의사들의 의무”라고 했다.

    “세상에 특효약이 있는 병은 없어요. 당뇨병, 신장병 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 흔한 감기도 난치병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발견하고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치료하느냐인데, 우린 아직 멀었어요.”

    근육병 재단을 만들기 위해 연예인 디너쇼, 카드 판매, 거리모금 행사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문교수는 “정부가 최근까지도 재활의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바람에 수많은 환자들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해 고통을 겪어 왔다”고 질타한다. 정부의 지원이 이뤄지는 분야에서도 불합리한 지원체계 때문에 환자와 가족들의 고충이 크다.

    “예를 들어 근육병 환자의 경우 말기에는 호흡기를 달고 살아야 합니다. 폐 근육에 힘이 없어 스스로 숨을 못 쉬는 거죠. 그런데 호흡기 값이 1000만원이 넘고 임대비만도 월 70만원에 이릅니다. 그 비용을 정부가 다 부담하고 있는데, 이건 결국 업자들 배만 불리는 겁니다. 그처럼 환자 개인 단위로 지원할 게 아니라 가령 공동 요양소를 건립해서 같은 병을 앓는 환자들을 함께 치료한다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죠. 우리가 그렇게 하겠다고 나서도 정부는 먼 산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난치병 환자들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하지만 국가의 영역을 과도하게 설정해선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동덕여대 장창곡 교수(보건학)는 환자단체에게 적극적인 활동을 주문한다.

    “복지부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듯합니다. 외국과 비교해보면 우리 정부의 지원 수준도 상당해요. 국가더러 질병에 대해 100% 보장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더구나 건강보험이 엄청난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희귀병 환자에게만 특혜를 주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환자단체들이 이리저리 분열되어 자립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 문제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재단을 만드는 등 자조(自助)하는 경향이 강한 선진국 환우회와는 대조적이죠. 또한 연맹(한국희귀질환연맹)과 연합(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그리고 반관(半官) 형태의 희귀의약품센터 등이 제각기 후원금을 모으고 있는데, 이것도 일원화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지난 연말 탤런트 남성훈(57)씨가 지병으로 별세했다. 남씨는 4년 전부터 ‘다발성 신경계 위축증’이라는 희귀병을 앓아왔다. 그의 경우에서 보듯 난치성 희귀병은 중·장년기에도 갑작스레 찾아올 수 있다. 그 대상은 가계의 유전자 검사를 다 해보기 전에는 알아낼 수 없다.

    희귀병의 80% 이상은 유전질환으로 추측된다. 병력이 없는 가계에서도 돌연변이에 의해 인구 5000명당 1명꼴로 희귀병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일단 발병하면 후손에게 유전될 가능성이 50% 이상이다. 누구도 잠재적인 질환자 집단에서 예외가 될 수 없는 셈이다.

    희귀병의 원인을 유전이라고 100% 확신할 수 없는 만큼 이 대목에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더구나 유전병은 대개 모계를 통해 유전되므로 희귀병의 경우에도 어머니에게 비난과 책임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이 때문에 취재중에 만난 많은 환자들은 “제발 기사에 유전병이라고 단언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병을 당당히 유전병으로 내세우면서 유전병 질환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연구하자고 주장하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국가 차원의 유전병 연구가 미흡하다”고 지적하며, “국립유전병연구소를 만들어 유전질환 연구와 신약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희귀병의 원인이 유전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의학적 연구 차원을 떠나서는 별 의미가 없다. 그런 것을 따지고 있기에는 고통을 함께 나누는 환자와 가족 간의 유대와 결속력이 더없이 끈끈하기 때문이다. 최근 루게릭병(근위축성축삭경화증)을 앓는 한 소녀는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 게시판에 이런 글을 남겼다.

    “어제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렀어요. 3년 내내 잘해왔는데, 이번 시험에서 점수가 너무 안 나와서 속상해요. 엄마에게 꼭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저는 병 때문에 엄마의 도움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가 없어요. 초등학교 6년, 그리고 중학교 3년. 엄마는 제게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죠. 그런 엄마에게 우등상장을 선물하고 싶었어요. 건강한 아이들을 다 제치고, 최고의 점수를 받아서 졸업식 날 엄마와 함께 당당히 운동장을 가로질러 나가 졸업생 대표로 우등상을 받는 게 중학교 3년 동안의 꿈이었는데…. 그동안 엄마한테 짜증내고, 속 썩이고, 눈물 나게 한 거 다 너무너무 미안해요. 울 엄마 3년 동안 정말 고생하셨어요. 커서는 잘 안했는데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엄마, 정말로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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