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나라 유학자 장횡거(1020∼1077)는 젊어서부터 기개와 포부가 남달라 병사(兵事)에도 뜻을 두었다. 그는 대신이자 유학자인 범중엄을 찾아가 병사를 논하고자 했지만, 범중엄은 장횡거를 꾸짖었다. “유학자라면 인륜의 가르침을 즐겨야 하는데 어찌 병사를 일삼겠는가.” 그리고 범중엄은 장횡거에게 ‘중용’을 직접 가르쳤다. ‘중용’을 접한 장횡거는 자성하고 진정한 도를 추구할 뜻을 품게 됐다.
부끄럼 없는 부모가 당당하다
대입 수능시험을 끝낸 청소년들의 방황은 최근 들어 해마다 되풀이되는 뉴스다. 합격한 학생은 합격한 학생대로, 그렇지 못한 학생은 또 그들대로 마음을 가라앉히기 힘든 시기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도 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시기일수록 그 시기에 읽은 좋은 책 한 권이 미래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마련. 앞서 거론한 두 인물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희비가 엇갈려 마음이 흔들리는 요즘 청소년들에게 어떤 책을 권할까? 물론 처한 상황이 각기 다르다 보니 각자 적합한 책도 다르다. 하지만 드물게나마 일반적으로 적합한 책도 있다. 대표적으로, 18세기 영국의 외교관이자 정치가인 필립 체스터필드(1694∼1773)의 저서 ‘내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을유문화사)를 들 수 있다. 네덜란드 주재 영국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을 모은 책인데, 영미권에선 고전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 책의 특징은 소제목 하나하나가 훌륭한 격언이란 점. 그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의 향상에 지나친 노력이란 없다’ ‘작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은 크게 뻗어 나간다’ ‘자신의 가치관만으로 세상을 헤아리지 말라’ ‘인생 최대의 교훈은, 언행은 부드럽게 의지는 굳게’.
이 정도 충고의 말을 자신 있게 자녀에게 들려줄 수 있는 부모라면, 세속적 출세와는 별도로 성공한 삶을 산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돌이켜 부끄럼 없이 산 사람만이 자녀에게 당당하게 충고하고 준엄히 꾸짖을 수 있다.
최근 청소년 문제의 주된 원인으로 사회환경을 지목한다. 사회환경이 감수성 예민한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은 물론 크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부모들 각자가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부모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거울로 삼기에 충분하다.
창조적 예술 꿈꾸는 젊은 세대
청소년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층의 삶에서 게임은 빼놓을 수 없는 일부다. 프로게이머를 지망하는 경우는 물론이고, 게임 개발 관련업종에 종사하길 원하는 청소년도 많다. 사회 전체 차원에서도 게임은 디지털시대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문화산업으로 간주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일본 게임계의 우상 이노 겐지의 자서전 ‘게임’(뜨인돌)이 지니는 의미는 각별하다.
이노 겐지는 이른바 롤플레잉 게임인 ‘D의 식탁’(1995), ‘에너미 제로’(1996), 시각장애인을 위해 소리로만 즐길 수 있게 만든 ‘리얼사운드: 바람의 리그렛’(1997) 등을 발표, 일본 게임계에서 늘 태풍의 눈이었다. 한국 못잖은 학력위주사회인 일본에서 이노 겐지는 고교 중퇴 학력으로 워프라는 무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사를 일약 정상급 회사로 성장시켰다.
이 책을 보면, 어릴 적 이노 겐지는 컴퓨터나 전자오락과 거리가 멀었다. 초등학교때 비틀스에 심취하는가 하면 신서사이저 음악의 매력에 빠져 ‘예술적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꿈꾸기도 했다. 중·고교 시절 억압적 교육환경에서 반항아가 된 그는 여행, 독서, 클래식 음악감상 등에 빠져 지냈다. 그 때문인지 그가 만든 게임은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과 창조적 발상으로 가득하다. 게임CD 케이스에 허브씨를 넣어 구매자에게 새로운 사랑을 싹틔워볼 것을 권한다든가 하는 발상도 그답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정신, 창의적 일에 매진하는 창조적 열정, 자기 나름의 철학과 원칙을 지키는 일관된 태도. 이제 막 서른을 넘긴 이노 겐지가 보여주는 범상치 않은 미덕들이다. 그는 디지털시대 첨단 정보기술(IT)의 총아이면서도 단순한 엔지니어라기보다는 창조적 예술가와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게임에 빠져 지내는 청소년이라면 이 책에서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역할 모델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게임에 빠진 자녀를 이해 못하는 부모라면 이 책에서 젊은 세대의 감수성을 엿볼 수도 있다.
가족간 단절된 대화를 이어라!
한편 부모와 자녀, 특히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됐다는 위기론이 팽배해 있다. 대다수 아버지들이 자녀에게 다가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단순한 일상사 차원의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사회와 역사에 대해, 심지어 정치에 대해서도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자식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 고민에 빠진 부모에게 희소식이 될 만한 책이 있다. 독일의 자유기고가이자 방송작가 우르줄라 하우케가 쓴 ‘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해나무)란 책이다. 독일 라디오방송에서 3년간 인기리에 방송된 방송극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호기심 많은 여덟 살 아들과 국세청 공무원으로 일하는 중산층 아버지가 나누는 35편의 대화로 이뤄져 있다.
사회의식이 깨어있는 가정에서 사는 찰리를 친구로 둔 호기심 많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꾸만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빈부격차, 남녀평등, 노인문제, 환경문제, 이웃 사이의 배려, 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의 간단치 않은 질문들이다. 중산층의 허위의식에 젖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사는 아버지에게 ‘아빠, 찰리가 그러는데요’라는 말로 시작하는 질문은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여덟 살짜리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대화 주제를 감안할 때 이 책은 결코 아동도서가 아니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벌이는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사고의 다양성을 키울 수 있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시각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신체적으로 빨리 성숙하고 정신적으로도 예전에 비해 너무도 빨리 세상 물정을 알아버린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도 하지만, 풍족하고 편리해진 세상 때문인지 요즘 청소년들에게선 성장에 따르는 아픔이나 고민을 찾기 힘들다. 물론 그들 나름의 아픔과 고민이 있겠지만 그것의 질감이 예전에 비해 얕아진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접기 힘들다. 직접 겪는 아픔은 아니더라도 이른바 성장소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성장의 아픔을 체험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성장소설 통해 추체험하는 ‘성장통’
성장소설의 대명사 가운데 하나인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동녘)가 최근 완역, 출간됐다. 이미 오래 전 번역, 소개된 책이고 번역본도 여러 종 나와 있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번역상 오류를 바로잡고 빠져 있던 부분도 모두 번역했다. 주인공 소년 제제는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주는 뽀르뚜가 아저씨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지독한 통과의례를 경험한다. 그러나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던 라임오렌지 나무가 처음 꽃을 피우던 날 제제는 자신의 환상세계, 곧 유년시절과 작별을 고한다. 성장소설의 백미로도 일컬어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다분히 철학적이라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는 동화에 가깝다.
지금까지 거론한 네 권의 책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부모와 청소년 자녀가 함께 읽을 수 있으며, 또 함께 읽으면 더욱 좋은 책들이란 점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불안하기만 한 인생의 한 시기에 부모로부터 뜻밖에 건네받은 책 한 권의 의미는 자녀로서도, 건네는 부모로서도 각별할 것이다. 물론 부모 자식간에 책을 주고받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려면 부모가 평소에 노력해야 할 일이 있다. 다름 아니라 책 읽는 부모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황금가지)가 낙양의 지가를 올리기도 했지만,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의 대비가 반드시 재테크의 성공 여부만을 기준으로 해야 할까? 부모 노릇 제대로 한다는 증거가 자녀의 호의호식에만 있는 걸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른바 지식정보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부자 아빠=책 읽는 아빠, 가난한 아빠=책 읽지 않는 아빠’라는 대비가 더욱 분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식정보가 부가가치의 원천이 되는 사회일수록, 지식자산의 질적·양적 수준을 끊임없이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결과적으로 성공적인 재테크와도 연결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