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2월호

인적 청산 안되면 ‘개혁신당’ 띄운다

노무현 당선자 최측근이 작성한 정치개혁 비밀문건 ‘정당 개혁 프로그램(안)’

  • 글: 엄상현 gangpen@donga.com

    입력2003-02-06 09: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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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창당이든 신당이든 취임 전에 마무리
    • 전당대회 통한 지도부 교체 및 인적 청산
    • 재창당 어려우면 노무현 탈당 후 신당 창당
    • 신당은 민주당 50% + 개혁세력 + 한나라당 이탈세력
    • 내각 일부 부처 문호개방해 한나라당 흔들어라
    • 당 개혁방향은 미국식 모델 중심, 유럽식 모델 혼용
    인적 청산 안되면 ‘개혁신당’ 띄운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측이 지도부 교체와 인적 청산을 수반한 민주당 재창당이 불가능할 경우 탈당, 개혁세력과 함께 독자적 신당 창당 추진계획을 세운 것으로 확인됐다.

    노당선자측은 또 내각 일부 부처의 문호를 한나라당에 개방해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유도한 뒤 자연스런 정계개편으로 이어간다는 내부 전략까지 세워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신동아’가 최근 단독 입수한 ‘정당 개혁 프로그램(안)’이란 제목의 문건을 통해 확인됐다.

    노당선자가 정계 개편의 중요한 계기로 삼고 있는 2004년 총선까지 1년2개월 동안의 개혁프로그램을 골자로 한 이 문건은 A4용지 7페이지 분량이며, 오랜 기간 노당선자를 보좌해 온 한 핵심측근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포함한 대규모 정계개편 모색



    “제가 직접 하지는 않겠지만 정계에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2004년 총선을 거치면서 정치권이 새롭게 편성될 텐데 그에 대한 준비도 필요할 것입니다. 제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정치의 틀을 바꿔나가는 일입니다.”

    노당선자가 ‘신동아’ 2003년 신년호 인터뷰에서 ‘취임 1년 동안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하고자 하는 과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변한 내용이다.

    노당선자가 내건 대선 첫째 공약도 정치개혁이었고, 국민이 그를 선택한 것도 정치권의 일대 혁신과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정치권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변화의 바람 앞에 서 있다. 노당선자는 1월11일 대통령직인수위 임명장 수여식장에서 ‘개혁은 중단 없는 과제’라면서 개혁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노무현식 정치개혁’의 전략적 방향과 시나리오는 무엇이며, 어떻게 추진되고 있는 것일까. 이 같은 궁금증 속에 요즘 여야 정치권의 눈과 귀는 온통 노당선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좇아다니며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무리 ‘당정분리’ 원칙이 세워졌다 하더라도 민주당의 변화와 정치개혁 그리고 정치권 전반의 개편으로 이어지는 개혁의 흐름은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최고권력자인 노당선자의 구상과 결코 배치(背馳)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본지가 단독 입수한 ‘정당 개혁 프로그램(안)’은 노당선자측의 시기별 개혁방향과 전체적인 ‘틀’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문건이 노당선자와 정치철학과 비전을 공유하면서 정책을 조언해 온 최측근에 의해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노당선자의 개혁구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당초 세웠던 계획과 전략이 상황에 따라 무수히 변화되고 수정되는 정치권의 특성상 문건 내용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지는 않으리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 문건은 민주당 개혁의 기준으로 신당이나 다름없는 혁신적인 ‘재창당’ 수준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있다. 그리고 ▲민주당 개혁에 대한 기본인식 ▲민주당 개혁의 원칙 ▲신당 창당이냐 재창당이냐 ▲시기별 프로세스(Process) ▲논의가 필요한 주요 사안 등 5개 분야로 나눠 주요 핵심사항을 요약 정리해 놓았다.

    문건은 먼저 첫 장에서 당 개혁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밝히고 있다. 이번 대선을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대한 ‘사망선고’로 결론짓고 ‘민주당의 혁신적 변화는 새 정부의 성공과 2004년 총선 승리를 위한 기본토대’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는 당 개혁이 최종적으로 2004년 총선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나라당보다 한 발 앞서 변화해야 정치권의 완전한 재편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대목은 한나라당을 포함한 대규모 정계개편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인적 청산 안되면 ‘개혁신당’ 띄운다

    민주당 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김원기·왼쪽)가 당 개혁방안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사진은 1월13일 부산상공회의소 상의홀에서 열린 ‘제1차 국민대토론회’

    문건은 둘째 장에서 ‘민주당의 개혁 원칙’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노무현당이 아닌 21세기형 신당 구축’ ‘절차적 민주주의 확보’ ‘권력투쟁이 아닌 정치적·제도적 출입시스템 구축’ 등 크게 세 가지 원칙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내용은 각론의 인적 청산 및 당 지도부 탄핵 부분. 문건은 ‘당의 법통과 국민경선·당정분리·상향식 공천 등 발전된 정당시스템은 계승’하고 그 이외의 ‘제도적 청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인적 청산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인적 청산은 권력투쟁이 아니라 전당대회를 통해 현 지도부를 탄핵하고 선출직 희망자는 상향식 공천절차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는 것. 이는 ‘무혈혁명’을 통해 당의 지도체제 자체를 송두리째 뒤집겠다는 것이어서 명분은 그럴 듯하지만 현 지도부의 거센 반발로 인해 실현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그렇다면 벽에 부딪혔을 경우 어떻게 추진해 나갈 것인가. 문건의 셋째 장은 그런 의문에 대한 답으로써, 노당선자 측근들이 내부 논의를 거쳐 내린 결론에 해당한다.

    ‘신당 창당이냐, 재창당이냐’. 문건은 우선적으로 재창당형 프로세스를 상정했다.

    ‘당내 논의기구 구성→당내 논의기구에서 새로운 정당 모델 구축에 대한 의견 제시→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교체 및 제도를 통한 인적 청산 방법 합의→제 개혁세력과의 연대 및 통합’.

    ‘김대중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떠 안겠다’는 노당선자의 원칙과 신념 그리고 이 문건에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확보방안으로 내세운 당의 법통계승을 위해서라도 재창당이 우선적으로 검토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문건은 그러나 내부의 반발로 재창당이 벽에 부딪힐 경우 노당선자가 재창당의 당위성과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거나 필요할 경우 개혁세력 ‘당직 사퇴’ 카드로 반발세력들에 대해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최후의 선택은 ‘탈당’이다.

    외부 개혁당은 ‘신당’ 히든카드

    문건은 이 같은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재창당 추진과 동시에 신당 창당도 준비해야 한다며 ‘신당형 프로세스’까지 상정해놓았다.

    상징적 원로 및 개혁적 원외위원장 등 일부 세력을 민주당이 아닌 개혁당에 입당시킨 뒤 재창당이 어려워질 경우 노당선자가 민주당내 세력 50% 이상을 이끌고 탈당한 후 개혁당과 합당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는 것. 여기에서 개혁당은 유시민(柳時敏)씨가 대표로 있는 개혁국민정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노당선자측은 향후 개혁국민정당과의 관계를 정치개혁 과정에 적절히 활용할 계획인 것으로 해석된다.

    그 다음 장은 ‘시기별 프로세스’. 문건은 주요 핵심과제를 노당선자 대통령 취임 전과 취임 후부터 8월말까지 2단계로 나눠 정리해놓았다. 이는 민주당 개혁파 의원들이 올해 초부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2단계 전대론(全大論)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문건은 1단계 취임 전에 재창당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신당 창당으로 갈 것인지 큰 틀을 정리하고, 어떤 경우에도 지도부의 교체와 제도적 청산에 합의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 이를 기초로 취임 전 1차 전당대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것.

    이어 2단계인 취임 후부터 8월말까지는 2004년 총선을 위한 본격적인 당 개혁시기. 새로운 당 내용 생산과 외연확대, 당 내외를 포괄하는 공청회나 TV토론 등 공개적 방식의 논의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개혁세력과 전문가그룹, 한나라당 이탈세력 등을 받아들여 당의 외연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

    또 재창당이든 신당 창당이든 새롭게 태어날 당의 당헌과 당규, 정책 최종안을 확정하고 전국 지구당 위원장과 차기 공천자에 대한 개방경선으로 인적 청산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문건은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문건은 마지막 장에서 얼마 전 새롭게 꾸려진 ‘당 개혁특별위원회’ 등 당내 기구에서 논의해야 할 5대 주요 사안을 정리해 놓았다. ▲원내정당화의 내용과 전국조직의 구성 형태 ▲상향식 공천방식 ▲중앙당의 지도체제와 규모, 재정확보 방안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도 개선을 통한 지역정당 문제 해결가능성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등 정치개혁을 뒷받침하는 법적 틀 등이다.

    문건 말미에 첨부된 ‘참조사항’도 눈길을 끈다. 문건은 정당 개혁 주체세력들이 단시일 내에 가시적 성과를 얻으려 할 경우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문건은 또 노당선자 취임 이전(1단계)에 재창당이나 신당 창당의 가시적 성과를 확보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부연 설명해놓았다. 취임식 이전에는 당과 국민의 모든 눈과 귀가 노당선자에게 쏠리고 힘의 축이 당선자 중심으로 형성돼 있는데 이 기회를 놓치면 정당 개혁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

    문건은 이어 취임 이후 당 내부에 관여할 경우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소지가 크기 때문에 노당선자는 신당 창당 논의와 추진 세력에 간접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당을 개혁하면서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 유도를 통해 자연스러운 정계개편으로 갈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됐다. 문건은 한나라당과는 국정의 파트너로서 상호협력을 증진하는 일관된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이는 대외 전략적 차원에서다. 문건은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내부 분열을 유도할 수 있는 국민적 대의명분을 축적하는 한편 ‘흔들기’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른 한편으로 내각 일부 부처의 문호를 개방해 한나라당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것도 정계개편을 위한 또 다른 방안으로 제시됐다.

    마지막으로 ‘정당 개혁의 외국사례 검토’결과를 정리해놓은 것을 보면 문건은 내부적으로 매우 심도 깊은 논의를 거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문건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당정치 개혁안에서 미국식과 유럽식이 충돌하고 있다고 전제한 뒤 국민경선을 도입한 개방화 방향인 미국식 모델을 중심으로 유럽 등 외국식 모델을 혼용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어떤 식으로든 변화되고 개혁될 수밖에 없는 민주당 그리고 정치권. 과연 문건에서 제시한 방향대로 정치개혁이 진행될지 아니면 전혀 딴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치개혁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개혁의 성공은 바로 ‘죽느냐 사느냐’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권력다툼에서의 승리이며, 패배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건대로 추진될 지는 미지수

    민주당 내부에서는 벌써부터 당내 개혁을 위한 당 지도체제 개편방법 등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2단계 전당대회론을 주장하는 개혁파 의원들과 이를 반대하는 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현 지도부간의 대립구도가 형성돼 있는 것.

    2단계 전당대회론은 민주당의 현 대의원 구조로는 ‘신당 창당’ 수준의 당 개혁이 어려운 만큼 우선적으로 현 지도부가 전원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노당선자 취임 전 1차 전당대회에서 과도 지도부를 구성해 개혁의 틀을 마련한 뒤, 오는 8∼9월께 2차 전당대회를 열어 2004년 총선에 대비한 당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에 대해 한대표를 비롯한 현 지도부는 거듭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한대표는 1월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이 바라는 여망을 당권 장악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인사들의 생각은 당 개혁추진과 노당선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당 개혁특별위원회는 개혁안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하고, 개혁안이 만들어지는 대로 당에서 채택한 뒤 전당대회 시기도 당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같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특위에서 마련한 개혁안이, 개혁파 의원들이 주장한 2단계 전대론이나 그 대안으로 제시된 당무회의를 통한 과도 지도부 구성안으로 결론지어질 경우 현 지도부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특위안이 마련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 따라 신주류와 구주류간의 갈등과 당내 진통은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에 따라 특위 협의과정에서 2단계 전대론은 조금씩 수정되고 변형돼 가고 있다. 앞서 문건에서 제시한 당 개혁안과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당과 당, 세력과 세력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변화무쌍한 정치권. 어쩌면 이 문건은 단순한 ‘문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끝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향후 빠르게 진행될 정치권 대변화의 흐름을 흥미롭게 지켜볼 수 있는 비교표의 역할은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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