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신전 오디세이’<br>이종호 지음/ 신인문사/ 403쪽/ 2만원
신문에 큼직하게 소개된 책에는 아무래도 눈길이 더 가게 마련이다. 책 표지 사진에다 저자 얼굴 사진까지 곁들이면 더욱 이목을 끈다. 이런 ‘대접’을 받는 신간 서적은 행운을 누리는 셈이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행운의 주인공은 대부분이 번역 도서다. 대상 출판사도 거개가 ‘메이저’급이다. 서평 담당 기자에게는 아무래도 저명한 외국인 저자나 이름 있는 출판사의 책이 더 믿음직하리라.
흔히 국내 출판사 기획자들은 “역량을 갖춘 국내 저자를 찾기가 힘들다”고 개탄한다. 예비 저자군(群)인 대학교수들은 학술 논문 쓰는 일이 바빠 대중용 저술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단다. 적잖은 교수는 고생하며 책을 써봤자 1쇄 몇 백 권만 팔리는 허탈감을 맛보았기에 다시 집필할 의욕을 잃었다.
한국에서 출판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됐다. ‘지식 생태계’도 국내 저자의 빈곤 현상 탓에 위기를 맞았다. 그래서 국내 저자가 쓴 좋은 책을 만나면 반가워 독서 애호가에게 소개해주고 싶다. 과학자이자 고대 문명 탐사가인 이종호 박사의 ‘고대 신전 오디세이’가 그런 책이다.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범상치 않은 삶의 역정을 걸었다. 그는 고려대 건축공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페르피냥대학에서 공학박사 학위와 과학국가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외유치 과학자로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에서 연구했다. 100여 편의 과학 논문을 발표했으며 신문, 잡지, 인터넷을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프랑스 유학 시절부터 세계의 유적지를 탐사·연구했다. 기초 없이 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는 ‘역피라미드 공법’으로 20여 개 국가에서 특허권을 얻었다. 저서로는 ‘과학으로 여는 세계 불가사의’ ‘세계사를 뒤흔든 발굴’ ‘세계 최고의 우리 문화유산’ 등이 있다.
저자가 이번에 펴낸 책은 세계 9개 지역의 고대 신전을 찾아 현장 사정을 전하며 축조의 의미를 살피는 내용이다. 쉽게 읽히는 문장에다 화려한 컬러 사진이 수두룩해 고대 문명 공부에 적격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고대 신전은 고대인들이 온갖 지혜와 삶의 정수를 담았던 성스러운 공간”이라면서 “그들은 절대적이고 성스러운 세계를 3차원 공간으로 만들어 절대자가 그 안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하였다”고 밝혔다.
저자가 탐방한 신전을 개인이 일일이 찾아가려면 적잖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이 책은 고대 문명 탐사가가 독자를 위해 대신 찾아가 작성한 충실한 보고서 같다. 책을 천천히 넘기며 신전 여행을 떠나보자. 이 서평을 쓰는 필자는 이 책에 소개된 9개 신전 지역 가운데 5개를 방문한 바 있다. 저자와 같은 전문적인 식견이 없었기에 신전 탐방 때 미처 보지 못한 점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미진함을 보완했다.
마을 소년이 발견한 라스코 동굴벽화
저자가 소개하는 곳은 △크로마뇽인의 동굴벽화 △솔즈베리 평원의 거인, 스톤헨지 △신전의 나라, 이집트 △중국 우하량의 신비의 왕국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성전 △에페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신전의 대명사, 델포이와 파르테논 신전 △테오티와칸과 치첸이트사의 피라미드 신전 △잉카 수도 쿠스코와 마추픽추 등이다.
먼저 라스코 동굴을 살펴보자. 1940년 9월12일, 프랑스 남부의 몽티냐크 마을의 동굴에서 소년들이 벽에 그려진 많은 동물 그림을 발견했다. 소년들은 학교 교사에게 알렸고 곧 유명한 고고학자인 브뢰이 신부가 찾아왔다. 이렇게 해서 1만7000년 동안 잠자던 라스코 동굴벽화는 다시 인간을 접하게 됐다. 크로마뇽인이 그린 이들 벽화는 주술 용도인 것으로 추정된다. 동굴을 발견한 소년은 브뢰이 신부의 당부대로 동굴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고 여기고 40여 년간 관리인으로 일했다고 한다. 라스코 동굴은 일반인에게 공개된 후 오염이 심해졌다. 결국 부근에 복제 동굴을 지어 관람객을 받는다.
영국 솔즈베리 평원에 우뚝 솟은 스톤헨지. 높이 4m, 무게 25~30t의 거석(巨石)을 둥글게 늘어놓은 이 축조물은 멀리서 보면 기괴한 느낌을 준다. 로마인들의 발길이 닿기 전인 선사시대에 세워졌다. 고대인들은 이를 왜 세웠을까. 고대인의 천문관측대 또는 제사 장소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최근 학자들이 스톤헨지와 가까운 곳인 우드헨지 등을 함께 발굴하면서 스톤헨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가 풀렸다. 집단 주거지역인 우드헨지의 주민들이 장례용 신전으로 스톤헨지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이집트에는 신(神)이 700여 명이나 있었다. 태양, 하늘, 땅 등을 상징하는 신은 물론 고양이, 악어, 따오기, 쇠똥구리 등 동물도 신으로 추앙받았다. 이들 신을 추모하는 신전이 이곳저곳에 지어졌다. 이집트 신전은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 못지않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룩소르에 있는 카르낙 신전은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여러 왕조의 숱한 파라오에 의해 증축됐다. 신전 앞에는 숫양 머리를 가진 스핑크스들이 늘어섰다. 이곳을 지나 입구의 첫 번째 탑문(塔門)을 통과하면 안마당이 나온다. 이어 두 번째 탑문이 보인다. 높이 20.7m, 둘레 9.8m의 거대한 돌기둥이 즐비하다. 여러 탑문을 지나 가장 어두운 곳인 지성소(至聖所)에 들어오면 좁은 공간인 이곳이 신상(神像)을 모시는 신성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이집트 파라오 가운데 전국 곳곳에 거대한 기념물을 세워 ‘건축의 대왕’이라 불린 람세스2세. 그가 세운 대표적인 신전이 아스완에서 320㎞ 떨어진 돌산의 벽면을 깎아 만든 아부심벨 신전이다. 신전 정면은 람세스2세의 모습을 닮은 거상 4개로 장식됐는데 각 조상(彫像)의 높이가 20m에 달할 정도로 크다. 이 신전은 한때 수몰 위기에 몰렸다. 이집트 당국이 아스완 하이댐을 세워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면서 신전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1960년 3월 유네스코는 전체 회원국에 유적 보존을 호소해 50개국에서 구난 작업에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신전을 통째로 65m 높은 지점으로 옮기는 공사를 벌여 성공했다. 한국도 50만달러를 기부했다.
고조선 실재 알려주는 홍산문화
중국인은 한족이 이룬 세계 4대 문명 가운데 하나인 황하문명에 오랫동안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 한족 중심의 역사관을 접고 과거 오랑캐로 업신여기던 지역의 민족을 중화민족에 포함시키는가 하면 중국 역사의 상한선을 더 고대로 끌어올렸다. 이는 동이족의 무대로 알려진 중국 우하량 홍산에서 기원전 3500년 무렵에 세워진 여신전(女神殿)이 발견되면서부터다. 이는 단군신화를 신화로만 치부하며 고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던 한국의 많은 학자에게도 충격을 줬다. 단군조선 건국 연대(기원전 2333년)는 물론 그보다 1000년 전에 우하량 일대에 나라가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적들이 1982년에 대거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우하량 여신전은 길이 175m, 너비 159m의 널찍한 터에 자리 잡았다. 이곳에서는 여신상, 인물 조각상, 동물 조각상, 도기 등이 발견됐다. 이 가운데 실제 사람 얼굴 크기인 여신 두상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홍산문화가 모계 중심의 여왕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세계 3대 유일신 종교의 성지다. 이를 증명하듯 유대인의 성소인 ‘통곡의 벽’, 예수의 묘가 봉안됐다는 기독교 성(聖)분묘 교회, 이슬람교의 성지인 바위 사원 등이 있다. 통곡의 벽 앞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순례차 방문한 유대인들이 벽 틈 사이에 자신의 소원을 적은 쪽지를 끼워 넣고 기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예수가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걸어간 ‘고난의 길’을 기독교 신자들은 요즘도 눈물을 흘리며 걷는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앉아 기도를 드렸다는 성스러운 바위에는 그가 탄 말의 발굽 자국이 남아 있다.
터키 서해안의 고대 도시 에페수스에 있는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와 소아시아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높이 18m의 기둥을 127개나 사용한 길이 120m, 너비 60m의 초(超)대형 건물이다. 그리스신화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는 제우스와 레토의 딸로 등장하며 아폴론과는 쌍둥이 남매 사이다. 순결, 정절, 사냥을 상징하는 신이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인간은 물론 동식물들에게도 최후의 피난처 구실을 했다. 그 지역 일대의 에페수스인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주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이 신전은 기독교가 득세한 이후 우상 파괴의 대상이 돼 훼손됐고 지금은 흔적만 남았다.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의 언덕 아크로폴리스에는 파르테논 신전이 자리 잡고 있다. 신전 건축의 대명사로 통하며 서구 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길이 69.5m, 너비 30.8m, 높이 10m 규모이며 대리석 기둥 58개를 사용했다.
마야문명은 중미를 중심으로 발달했고 8세기 후반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당시 60~70개의 도시가 번성했다. 멕시코시티 근교의 테오티와칸과 치첸이트사의 거대한 피라미드 신전이 유적지 가운데 돋보인다. 테오티와칸은 중미에서 최대 피라미드인 ‘태양의 신전’이 있는 곳. 이 도시는 전성기인 서기 300~700년에는 인구가 12만5000~20만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적인 ‘태양의 신전’은 각 변의 길이 215m, 높이 61m의 계단식 피라미드. 이집트 피라미드처럼 돌을 사용하지 않고 커다란 돌과 흙, 잡석을 함께 써 매우 견고하다.
치첸이트사는 마야문명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엘 카스티요 피라미드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이루어지던 신전이다.
남미 잉카문명의 중심지였던 쿠스코에도 태양신전이 있었다. 지금은 코리칸차라 불리는 신전의 일부 흔적만 남아 있다. 해발 2280m 고지대에 세워진 도시 마추픽추(늙은 봉우리란 뜻)는 잉카인들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는 점에서 불가사의한 곳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