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호

“안철수연구소 직원은 안철수 책 독후감 써야 했다”

  • 허만섭|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11-09-21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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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연구소 직원은 안철수 책 독후감 써야 했다”

    안철수 연구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안철수 교수.

    2009년 6월 MBS TV 황금어장 ‘무릎팍 도사’의 안철수 편. 시청자는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을 비로소 만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한 네이버 블로거의 표현)

    이 프로그램에서 안철수 당시 KAIST 교수(현 서울대 교수·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는 “내가 할 일은 영혼을 불어넣는 일” “운이라는 것은 기회와 준비가 만난 순간입니다”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씁니다” “회사의 CEO라는 게 더 높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14년의 의사 경험은 사업 후 거의 쓸모가 없어졌고요” “인생에 있어 효율성이 전부는 아니죠” “자기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 쓰는 시간은 정말로 값진 시간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한 마디 한 마디가 10, 20대 젊은층의 가슴을 파고든다. 왜냐하면 IT문명을 주도한 화려한 경력의 성공한 엘리트가 이렇게 약자에 대한 이해와 따뜻함, 겸손함을 보여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40, 50대 중장년층도 안철수의 희망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안철수가 거쳐온 서울대 의대 박사, 국내 최대 보안업체(안철수연구소) CEO,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MBA) 석사, KAIST 교수 등은 부모세대가 보기에 자녀의 롤 모델(role model·모범)로 손색이 없었다.

    2011년 수많은 시민은 한국 사회를 엄혹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빈부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법과 제도는 생계와 자아실현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의구심에 휩싸여 있다. 여기에 정부와 집권여당이 겉으로는 공정사회를 외치면서 장관 딸을 특혜 채용하고 탐욕스럽게 편법을 일삼아온 점이 드러난다. 보수성향의 시민들도 지금의 상황을 불편해하고 불쾌해하기는 마찬가지. 분당 보궐선거의 표심이 이를 입증한다. 그러나 10년 실정(失政)을 심판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민주당이나 과격해 보이는 다른 야당은 영 미덥지 못하다.

    지금이야말로 2004년 미국의 오바마 상원의원이 주창한 ‘담대한 희망(The Audacity of Hope)’이 한국 사회에 절실한 때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정치참여 의사를 조심스럽게 밝힐 때 시민들은 그에게서 이런 변화를 향한 희망을 느낀 것이다. 이것이 아니고서는 벼락같이 치솟은 그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무릎팍 도사로 충분하다?

    그러나 시민의 단꿈을 깨울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안 교수가 5000만의 희망제작소가 될 만한 재목인지와 관련해 정보가 빈약한 것은 사실이다. ‘무릎팍 도사에서 충분히 보여주었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출연자의 약점이나 모순을 드러내지 않고 손쉽게 인간미 넘치는 유명인사로 만들어내는 건 분명하다. 시청자도 이런 연출에 관대하다. 그러나 언론은 정치인에겐 이런 특혜를 거의 주지 않는다. 안 교수가 지난 수년간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미디어의 후광을 최대로 누려왔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다니엘 부어스틴은 현대의 영웅은 미디어에 의해 현실보다 더 현실처럼 조작되는 이미지의 덩어리라고 말한다. 현대의 영웅은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적 ‘업적’이 아닌 영웅적 ‘말’에 의해 영웅이 되는 존재다. 조셉 캠프벨에 따르면 모든 영웅은 그 신화 속에 진실을 감추고 있다.

    ‘안철수 신화’의 핵심 기반은 ‘V3 백신’으로 유명한 ‘안철수연구소의 성공신화’다. 안 교수는 이 회사의 대주주이자 이사회 의장이다. 안 교수의 아버지는 안 교수가 지금도 회사 업무에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다.

    안 교수의 정치참여 후 ‘안철수연구소의 성공신화’에 대해 업계에서 회의적인 말이 나온다. “나쁜 회사는 아니지만 부풀려져 있다”고 한다. 매출은 3년째 600억원대에 머물러 있고 국제경쟁력의 지표인 해외진출에도 별 진척이 없으며 무엇보다 안 교수가 외부에서 혁신과 변화를 강조하고 다니는 것과 달리 정작 안철수연구소에선 기술 혁신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풀려진 신화”

    지난 8월 네이트와 싸이월드에선 고객 수백만명의 개인정보가 해킹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네이트 관계자는 기자에게 “네이트의 관제는 안철수연구소가 맡고 있었다”면서 “안철수연구소에 해킹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안업체인 SGA의 김상철 소장은 안철수연구소가 정부부처 공기업 은행 등 공공기관의 관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이 회사의 기술력에 대해서도 공개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김 소장은 “국내에서 발생한 바이러스에 대해선 안철수연구소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에는 그만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했다.

    안 교수는 최근 정치행보에서 대기업과 중소·벤처기업의 동반성장을 역설해왔다. 그러나 한 보안업체 간부 A씨는 “안철수연구소가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어지는 A씨의 말이다.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면 다른 보안업체를 함께 끌고 가야 하는데 예를 들어 디도스 같은 사건이 터지면 안철수연구소가 맨 앞에 나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회사로 홍보된다. 그러나 사실 모든 백신회사가 인터넷진흥원으로 불려가 백신 샘플을 같이 분석하고 굉장히 열심히 일해준다. 안철수연구소가 보안업계의 전체인양 포장되고 있어 우리 같은 후발주자는 허탈한 거다.”

    안 교수가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쓴다고 말하면서부터 대중에게 안철수연구소는 매우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회사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컴퓨터 보안 전문가 B씨는 “‘안철수연구소 직원들은 안철수 사장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야 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한 인사는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라면 안철수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너 권위주의로 평가할 만하다”고 말한다.

    자료에 따르면 안철수연구소가 지정한 직원 필독서 중엔 안 교수가 쓴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도 포함되어 있다. 다음은 안철수연구소 관계자들과의 대화 내용이다.

    기자▶ 몇 년 전 자료 보니 필독도서가 몇 권 있더라고요?

    담당자 A▶ 네.

    기자▶ 거기에 안철수 교수가 쓴 책도 있더군요.

    담당자 A▶ 네네.

    기자▶ 그러면 이걸 읽고 직원들이 독후감을 쓴다고 하는데….

    담당자 A▶ 그건 신규 입사자가 들어왔을 때 그렇게, 그런 게 있었어요.

    기자▶ 이런 일을 지금도 시행하고 있습니까?

    담당자 A▶ 지금…. 잠시만요. (다른 자리에 있던 간부급인 담당자 B가 이후 답변함)

    “승진심사 때 제출”

    기자▶ 신규 사원에게 필독도서 읽히고 독후감 받으셨다면서요?

    담당자 B▶ 신입사원 대상으로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고요. 승진 대상자 분들에게 도서 지정해서 독후감 제출받고…승진심사 과정에서 그렇게 한 적 있고요.

    기자▶ 필독도서에 안철수 교수가 쓴 베스트셀러도 포함돼 있나요?

    담당자 B▶ 포함이 안 됐던 것 같아요.

    기자▶ 자료에는 포함된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담당자 B▶ 안 교수님 책을 독후감으로 낸 적은 없었던 것 같고.

    기자▶ 이 자료에 보면 안 교수님 책 독후감 냈다고 되어 있는데….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

    담당자 B▶ 네. 그 독후감은 강제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하는 거고.

    기자▶ 그런데 승진심사에도 반영된다고 하면 조금 신경을 쓰지 않을까요?

    담당자 B▶ 승진심사가 독후감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요.

    안철수연구소 측은 네이트의 해킹사고에 대해 “우리가 관제하는 영역 밖에서 사고가 일어났다. 우리 책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매출의 정체와 관련해선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IT 소프트웨어업계 전체의, 전반적 저성장 추세로 봐야 한다. 안 교수님이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에 와도 성공하기 힘들다’고 한 게 이런 환경을 언급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기술혁신의 정체에 대해선 “산업 토양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토양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했다.

    ‘안철수 신화’의 무대인 안철수연구소는 실제로는 가끔 이상한 일도 벌어지는 평범한 회사일까.

    “안철수연구소 직원은 안철수 책 독후감 써야 했다”
    안 교수는 국민의 잠자던 욕망을 일깨우고 정치판을 뒤집어놓았다. 그러고는 신속한 출구전략. 기성 정치인보다 몇 수를 더 내다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여의도엔 다시 평화가 찾아왔지만(이종훈 박사), 한번 변화의 맛을 본 국민은 그를 다시 호출할지 모른다. 그가 대선 판에 다시 등장해 돌풍을 몰고올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신비주의의 신화 속 주인공으로서 그러는 것은 국민이나 국가에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우리는 ‘샐러리맨의 우상’에게 500만표 차의 열광적 성원을 보냈다 실망한 ‘아픈(?) 기억’을 이미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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