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친람式 자의적 통치 체제
‘수석비서관’도 권위주의 유산
“尹 국정 철학 이해하는 사람들”
“차관, 국무회의 의제 실무 조율”
부처가 대통령실 ‘세종시 출장소’
“정치 존중 않는 이상한 통치자들”
윤석열 대통령이 7월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임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그런 청와대는 사라졌지만…
“청와대는 대통령제를 유사 군주정으로 이끄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을 국민주권의 구현자로 여기고, 의회나 정당들로부터 간섭받지 않는 국가 지도자이기를 바란다. 대통령을 대신해 자신들이 모든 것을 관장하고 지휘하지 않으면 일이 되지 않을 것 같은 강박관념은 ‘청와대가 권력이 되는 정부’를 낳는다. (…) 그런 청와대는 ‘민주적 책임 정부’와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다. (…) 한국의 대통령제를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 쪽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는 것은 청와대였다.”우리가 아는 ‘수석비서관’도 권위주의의 유산이다. “부처별 수석 체제는 수석이 장관 위에 군림해 부처를 무력화하고, 엄격한 관할권으로 인해 부처 간 협력을 저해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는 “행정부 통제를 목적”으로 한다. 신현기 가톨릭대 교수의 논문 ‘민주화 이후 제도적 대통령의 재구조화에 관한 연구’(‘한국행정학보’, 제49권 제3호)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기다 문재인 정부는 장관급인 정책실장을 부활시켰다. 정책실장 밑에 경제수석·사회수석과 별도로 일자리수석과 차관급인 경제보좌관·과학기술보좌관을 뒀다. 정책기획비서관과 통상비서관도 정책실장 밑에서 일했다. 가히 부총리급 위상이다. 자연히 내각의 존재감은 약해졌다. 전형적인 ‘청와대 정부’다.
그런 청와대는 사라졌다. 공간은 그대로지만 국정의 컨트롤타워 자격을 상실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집무실을 서울 용산으로 옮겼다. 한동안은 서초구 자택에서 출·퇴근했다. 언론과 소통하겠다며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탈피하겠다는 취지였다. ‘청와대’라는 단어가 사라진 자리는 ‘대통령실’이 채웠다. 여권 인사들은 사석에서 약칭으로 ‘용산’이라는 말을 애용한다. “용산의 기류” “용산의 구상”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용산 시대’에 과연 민주적 책임 정부는 구현됐는가. 실상은 청와대만 떠난 ‘청와대 정부’다. 내각과 여당이 강해지기보다는 ‘용산’의 힘이 다른 형태로 세졌다. 최근 회자되는 ‘차관 통치’라는 단어에서 그 성격이 도드라진다.
윤 대통령은 6월 29일 단행한 인사를 통해 15명의 장·차관급 인사를 교체했다. 이 중 11개 부처 차관 12명이 새로 임명됐다. 장관급인 국민권익위원장(김홍일)을 빼면 실제로 장관이 바뀐 부처는 통일부(김영호)뿐이다. 사실상 ‘차관 개각’이다. 윤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1·2차관과 환경부,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 자리에 대통령실 비서관을 기용했다. 김오진 국토부 1차관(전 관리비서관), 백원국 국토부 2차관(전 국토교통비서관), 임상준 환경부 차관(전 국정과제비서관),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전 국정기획비서관),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전 과학기술비서관)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개각 당일 “과거에도 비서관들이 차관으로 나가는 것은 상당히 일반화된 코스”라면서 “집권 2년차를 맞이해 개혁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부처에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그런 사람들이 가서 이끌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비단 윤석열 정부에서만 나타난 일은 아니라고 강조한 셈이다.
국정 핵심 파이프라인 교체
차관은 국정의 핵심 파이프라인이다. 대통령실 수석과 직통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상하관계가 있다. 수석이 차관급이니 부처 차관과 수평적으로만 일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민주당 정권에서 두 차례 차관을 지낸 전직 관료는 “청와대 정책실에서 어떤 이슈에 관해 소관 부처에 검토를 지시하면 각 부처가 보고서를 쭉 올린다. 궁극에는 조정을 위해 청와대에서 수석들이 참여하는 회의가 열리고 부처 차관들이 간다”고 했다. 이어 “수석들이 차관들을 질책할 경우를 대비해 미리 준비를 많이 한다. 그 자리에서 수석과 차관 사이에 실질적인 안(案)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그러니 차관 교체는 국정의 핵심 실무 라인을 재조정했다는 말과 같다. 그 자리로 비서관들이 직행했으니 대통령실이 더욱 강하게 그립을 쥐겠다는 뜻이 된다. 윤 대통령은 차관에 지명돼 대통령실을 떠나는 비서관들에게 “공직사회에 나가서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카르텔을 잘 주시하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부패한 이권 카르텔을 외면하거나 손잡는 공직자들은 가차 없이 엄단해야 한다”는 것이다.(김은혜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6월 30일 브리핑) 공직 기강 확립용 인사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 당시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의 당대표실 부실장으로 일한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차관이 대통령실과 직통으로 여러 사항을 결정할 것”이라면서 이렇게 부연했다.
“차관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가 국무회의에 올라가는 의제를 실무적으로 조율하고 결정하는 거다. 인사 조치도 과감히 하라는 (대통령의) 엄명까지 받지 않았나. 차관한테 힘이 쏠릴 수밖에 없다. ‘차관 통치’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 장관은 허수아비 만들고 대통령실에서 (차관을 통해) 직할 통치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차관들이 1년 동안 비서관으로 일하면서 대통령의 의지와 판단, 생각을 잘 읽고 있을 것 아닌가. 그대로 행정부가 움직이겠지.”
“민주주의 정부 운영 원칙에 어긋나”
‘차관 통치’를 변형된 ‘청와대 정부’라고 표현하는 건 그래서다. 대통령실 수석과 부처 차관 사이의 연결고리가 좀 더 또렷해졌다. 이 연결고리에 대통령이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수석과 차관은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다. 권력을 위임받는 절차가 생략됐다. 이렇게 임명된 차관이 굳이 장관을 건너뛰는 ‘하극상’을 연출할 필요도 없다. 원래 차관이 하던 일, 즉 수석과 소통만 잘하면 된다. 대통령실의 헤게모니가 큰 상황에서는 그것만으로도 차관에게 힘이 실린다.성과를 내지 못한 차관은 교체하면 그만이다. 장관보다는 차관을 바꾸기가 훨씬 쉽다. 실권 없는 장수(長壽) 장관이 나오기 딱 좋은 구조다. 장관의 리더십은 위태로이 흔들린다. 대통령의 전·현직 참모가 대통령의 대리자로서 현안을 챙기면서도 막상 책임은 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기 쉽다. 자칫 각 부처가 대통령실의 ‘세종시 출장소’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올 수 있다. 여당을 ‘여의도 출장소’라고 부르듯이 말이다. ‘출장소’의 횡행은 결국 강력한 대통령제의 방증이다.
‘청와대 정부’ 개념의 고안자인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에게 직접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이런 설명이 돌아왔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아는 사람이 (차관으로) 간다는데, 안 될 말이다. 현대 정부론에서는 권력을 쪼개 균형을 만든다. 대통령의 철학을 아는 사람이 부처도 장악하고 정당도 장악하면 큰일 난다. 부처의 자율적인 역할이 있다. 부처 견제는 정당과 국회가 할 일이다. 대통령은 어떻게 보면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이를 뒷받침하는 존재고, 비서관들은 스태프(staff)에 불과하다. 대통령실 자체가 정부조직법에 없다. 청문회를 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데, 이들을 (부처에) 파견하는 건 민주주의 정부 운영 원칙에 어긋난다. 현 정부도 (대통령실) 인원만 줄이고 장소만 청와대에서 옮겼을 뿐, (전 정부와) 구조는 비슷해지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청와대가 대통령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내각과 정당을 다양한 형태로 수직 통합하는 게 문제인데, 윤석열 정부도 같은 모습이다.”
기실 윤 대통령도 ‘청와대 정부’의 폐해를 알았다. 20대 대선 당시 국민의힘의 공약집 329쪽에는 “기존 대통령실은 부처 위에 군림하며 권력을 독점” “수석비서관 폐지, 민정수석실 폐지, 제2부속실 폐지, 인원 30% 감축 등 조직 슬림화” “총리 및 장관 자율성, 책임성 확대”라는 표현이 나온다. 마치 공약의 설계자가 ‘청와대 정부’라는 책을 본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실제로 민정수석과 제2부속실은 폐지됐다. 조직도 슬림화했다. 그 외의 약속도 실현됐는지 묻는다면 답은 물론 ‘회의적’이다. 정책실장을 없앴다지만 그에 비견할 국정기획수석이 있다. 책임장관제 약속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더 흥미로운 포인트가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임기 초에 거의 똑같은 얘기를 했다. 2017년 5월 11일 윤영찬 당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청와대 조직 개편을 발표하면서 “문 대통령은 부처 위에 군림하지 않고 정책 어젠다의 기능을 강화한 청와대가 되기를 바란다”며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한편 국정 핵심 어젠다에 대한 추진 동력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실은 윤 수석의 공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말하자면 집권 기반이 이질적인 문 정부나 윤 정부나 분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적폐청산과 反카르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청년 200여 명과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 등을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대통령실]
고로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사명감이 커질수록 역설적이게도 ‘청와대 정부’의 성격이 짙어진다. ‘복지부동하는 공직사회’와 ‘발목 잡는 야당’이란 프레임이 내면화한다. 이들과 맞서려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통치 구조를 더 단단히 다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미끄러질 개연성이 생긴다. 남는 결과는 정치의 실종이다. 박상훈 초빙연구위원의 우려를 소개하며 갈무리한다.
“그것은 일종의 개혁군주에 가까운 태도인데, 민주주의가 아니다. 대통령이 민주적이냐 판단하는 기준은 딱 하나다. 정치를 존중하느냐 안 하느냐다. 내가 ‘청와대 정부’를 문제 삼았던 이유는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들이 출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김은 정치를 기본으로 했고, 노무현·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정치의 기능이 없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정치에서 스스로 멀어지는 이상한 통치자들이 나온다. 정치에서 멀어지면 무슨 방법으로 견제하나. 정말 문제다.”
신동아 8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