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호

기계가 인간 대체… 저출산이 재앙인가

[김세연의 다른 관점] 지구상 최초 소멸 국가 한국? 거꾸로 보면

  • 김세연 前 국회의원

    입력2023-08-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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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 증가=국력 증대’의 근거

    • “인구 줄어야 사람이 귀해진다”

    • ‘제조업 일자리 증대’는 신기루

    • ‘노동소득분배율’도 줄게 된다

    • 연금 고갈 상황은 우려되나…

    서울 강서구 한 키즈카페. 6월 29일 오후 2시인데도 고객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

    서울 강서구 한 키즈카페. 6월 29일 오후 2시인데도 고객이 없어 썰렁하기만 하다. [전영한 동아일보 기]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인구학 명예교수는 2006년 유엔 인구 포럼에서 한국의 저출산 현상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대한민국이 인구 소멸로 인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방한한 그는 강연에서 “동아시아 지역의 종말을 말하기는 이르지만 현재의 인구 추세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2750년 국가 소멸 위험에 처할 것이며, 3000년까지 일본인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2750년에 인류가 별탈 없이 생존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합계출산율 0.78명’ 쇼크에 직면한 대한민국에서는 그의 견해에 수긍하는 반응이 보편적일 것이다.

    그런데 저출산은 정말 재앙일까. ‘저출산은 재앙’이라는 진단이 합당한 명제가 되려면 그 전제도 합당해야 한다. 그 전제가 예전에는 타당했겠지만, 앞으로도 계속 타당할지는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저출산 재앙론과 그에 대한 반론

    “저출산을 재앙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0.78 합계출산율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말과 같지는 않다. 특히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려하면 상황이 심각하다. 원래 그런 취지로 설계되지는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출산율 급감으로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 형태로 바뀌며 결과적으로 폰지(Ponzi) 사기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 이 구조를 유지한 채 2040년대에 접어들면 위험한 상황이 닥치게 된다.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려하면 저출산이 재앙이라는 진단에도 타당성이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원본부 외관. [뉴스1]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 문제를 고려하면 저출산이 재앙이라는 진단에도 타당성이 있다. 사진은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원본부 외관. [뉴스1]

    그걸 알면서도 연금제도 개편에 반대하거나 이를 회피한 정치인, 공무원은 지금 범하는 직무유기에 대해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경착륙을 피하기 어렵겠지만, 고통의 시기에 대비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국가의 틀을 그릴 계기로 삼을 준비를 차곡차곡 할 필요가 있다.

    아무튼 ‘저출산은 재앙’을 뒤집어보면 ‘인구 증가는 곧 국력 증대’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 같은 믿음은 대체로 다음 두 가지 측면에 근거한다.



    첫째, 안보 측면이다. 충분히 많은 인구는 외침(外侵)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할 안전판이 돼왔다. 러시아가 인구 100만 명의 체첸과는 달리 인구 3700만 명의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고전하는 이유 중 하나가 후속 병력을 충분히 동원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인구에 있다는 분석은 타당하다. 물론 전쟁의 결과를 좌우하는 데에는 군대의 사기와 기강, 국민 일반의 전쟁 의지, 보유 무기의 양과 질 등 인구 변수를 능가하는 다른 변수도 있긴 하다. 그럼에도 국가 간 물리적 충돌 국면에서 전투 병력의 규모를 결정짓는 인구라는 변수가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했다는 점은 틀림없다.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서는 안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지만, 평시에 더 많은 관심을 모으는 건 경제이기에 이제 이 대목을 살펴보자.

    둘째, 경제 측면이다. ‘근로자’이자 ‘소비자’이면서 동시에 ‘납세자’인 국민의 숫자가 줄면 ‘생산’의 감소, ‘소비’의 위축, ‘세수’의 감소로 이어져 경제시스템이 악순환에 빠진다는 논리다. 이 논리를 택하면 인구가 유지되거나 늘어야 생산과 소비가 증대해 경제성장이 순조롭게 지속될 수 있다. 이에 따른 세수 증대도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지식인이 대개 이와 같은 이유로 저출산 현상에 깊은 우려를 표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 관점에서 제기되는 ‘저출산 재앙론’에 대해 사회·생태 관점에서 제기하는 반론이 만만찮다. 조엘 코헨 록펠러대 인구학 교수는 국제인구과학연맹(IUSSP) 기고에서 “인구 감소와 증가의 둔화는 인류에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주장했다. 많은 인구나 빠른 인구 증가가 번영의 필수 조건이 아니며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히는 핀란드의 1인당 합계출산율(1.39명)은 미국(1.66명), 일본(1.3명), 중국(1.16명)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밝힌다.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은 2.1명이다. 행복한 나라는 출산율이 높을 것으로 여기면 오산이라는 얘기다.

    또 인구 증가 속도가 느려지면 국내총생산(GDP) 성장은 느려져도 1인당 GDP는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고도 한다. 룩셈부르크, 스위스, 노르웨이, 싱가포르 등은 인구가 적지만 교육과 기술에 대한 투자로 1인당 GDP가 높은 대표적 나라들이다. 이는 “인구가 줄면 유한한 생태 자원에 대한 경쟁자도 줄어든다” “인구가 줄어야 사람이 귀해진다”라는 왕펑 UC어바인 교수(사회학)의 논지와 맥이 통한다. 자원과 재화가 유한한 상태에선 인구가 늘지 않거나 줄어들어야 양육, 교육, 보건 등에서 1인당 투입 비용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다는 뜻이다.(중앙일보 2월 27일자 ‘“인구 감소는 축복” 인구통계 전문가의 주장 맞을까’ 참조)

    인간의 노동력 투입이 생산량을 결정짓는 핵심 생산요소라는 전제의 타당성은 그간 의심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술 발전의 양상과 속도를 고려하면 사회·생태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경제 관점에서도 ‘저출산 재앙론’을 기존 시각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생긴다.

    ‘제조업의 농업화’가 다가온다

    현생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20만 년간, 특히 농업이 시작된 이후 1만 년간 노동력의 원천은 인간과 일부 가축에 국한됐다. 산업혁명 이후 육체노동의 상당 부분을 기계 노동이 대체해 왔으나 지금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인간의 노동력을 투입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는 1817년 출판한 ‘국부의 원칙’에서 ‘토지, 노동, 자본’을 생산의 3요소로 제시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안토안 오귀스틴 쿠르노는 1838년 출판한 ‘경제학의 연구’에서 토지(자연 자원), 노동(인간 노동), 자본(생산 도구)이 생산과정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해 경제 활동을 결정하는지 수학적으로 분석했다. 이후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솔로우는 생산성 증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기술 발전을 꼽으며 생산요소에 ‘기술’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내고 위험을 감수하는 ‘기업가 정신’을 생산요소에 추가하자고 했다.

    농업시대에는 다른 생산요소보다 토지의 비중과 중요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1,2차 산업혁명을 거쳐 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혁명, 현재의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오면서 토지는 농업이나 부동산업 같은 특정 분야를 제외하면 경제에서 차지하는 생산요소로서의 비중이 현저히 줄었다. 1,2,3,4차 산업혁명이 지나간다고 해서 비중은 줄어들지언정 농업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여명기에 서 있다. 1,2,3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왔어도 농업이 건재하듯, 4차 산업혁명 시대 이후에도 제조업은 건재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 투입되는 생산요소 중 노동은 더욱 낮은 비중을 차지하는 쪽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21세기에는 제조업도 농업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농업은 1만 년 가까이 경제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가 약 200년 전부터 핵심 산업의 지위에서 밀려났다. 농업시대가 지나도 토지가 여전히 생산요소의 하나로 남아 있듯 산업시대가 지나도 인간 노동이 생산에 필요한 요소로 남아 있겠지만, 이전과 같은 비중일 수는 없다. 현대 농업에서 극소수 인원이 종사하면서도 생존에 필수적인 농산물이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 것처럼, 미래 제조업에서는 극소수 인원이 일하면서도 필수 공산품 대부분이 공급될 수 있는 ‘제조업의 농업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위한 제조업 일자리 증대’ 운운하는 처방이 조만간 얼마나 허망한 주장이 될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성장’은 지향해야 하나 ‘제조업 일자리의 증대’는 신기루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규모 기계농업을 통해 생산성 증대를 이루고 자국 소비분 외의 농작물을 수출하는 농업 선진국의 경우를 보자. 토지와 함께 자본이 농업에 대규모로 투여되고 있지만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미미하다.

    눈을 돌려 제조업의 생산요소 투입을 보면, 토지나 노동의 비중은 지속 감소하고 자본과 기술 등의 비중이 계속 높아진다. 인간 노동의 비중이 빠르게 낮아지는 만큼 그 공백을 자본과 기술, 달리 표현하면 기계 노동이 메워가게 된다.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기계 노동

    훨씬 적은 숫자의 사람만 있어도 기계와 협업해 과거에 상상하기 어려웠던 수준의 양(量)과 질(質)의 과업 수행이 가능한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한 덕이다. 자본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생산현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 육체노동이 기계 노동으로 대체되는 일이 일어났다. 코로나19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경험한 영세 서비스업은 어떤가. 노동 비중이 낮아지고 주문 키오스크, 조리로봇, 서빙로봇 도입 등 자본과 기술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가 나타났다.

    챗GPT 출시로 모두가 실감하듯 지식노동에서도 기계에 의한 인간 대체가 가속화할 것이다. 대본, 디자인, 음악, 영상 작업과 같은 창의적 재능이 필요한 업종, 법률 및 회계와 같은 고급 서비스 업종, 영상의학 자료의 판독 등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에 이르기까지 지식 노동에서도 기계 노동에 의한 인간 노동 대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광물과 원유를 원료 삼아 생산설비를 거쳐 제작된 하드웨어 제품의 시대와 반도체·전자 및 통신 장비를 거쳐 세상을 연결하고 장비를 작동시켜 주는 인터넷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시대가 열렸다. 여기에 새로운 지식 노동 주체로 떠오른 인공지능이 인간 육체노동을 대신할 로봇과 결합하고 ‘21세기의 원유’라고 불리는 데이터를 더하면 인간 노동의 비중은 더 빠른 속도로 줄게 될 것이다. 그 결과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줄게 된다.

    경제 측면에서 ‘저출산은 재앙’이라는 진단은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연금 고갈 상황에 한정해 본다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 기술발전을 고려하면 재앙이 아니라 인류 역사 발전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토지를 더는 핵심 생산요소로 바라보지 않듯이 인간노동도 더는 핵심 생산요소가 아닌 시점이 머잖아 다가온다는 점을 인식하자.

    바야흐로 노동소득이 이전만큼 충분히 발생하지 않는 경제사회 시스템이 도래했다. 사회복지 차원에서 보면, 임금소득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생계를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인권 차원에서는 인간으로서 존엄성 있는 삶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우리의 고민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즉 줄어드는 인간 노동의 비중만큼 인공지능, 로봇, 데이터 등 새로운 생산요소가 만들어내는 국민소득을 분배할 방법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정책 모델의 수립과 검증에 착수해야 한다.

    다만 앞서 논의한 사항 중 첫째 2040년대에 직면할 국민연금의 급속 고갈 문제에 어떻게 대처할지, 둘째 안보 면에서 군 병력의 감소를 어떻게 보완할지에 대해 별도의 후속 논의가 필요하다.


    김세연
    ● 1972년 출생
    ●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 제18·19·20대 국회의원
    ● 여의도연구원 원장
    ●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
    ● 저서 : ‘리셋 대한민국’(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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