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육·해·공 포트폴리오 완성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중심 방산 사업 일원화
치솟는 주가, 커지는 존재감… ‘광폭행보’ 김동관
최대 실적 경신 전망, 美·中 兩分 시장 뚫기가 향후 과제
지난해 10월 미국 YUMA사격장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생산한 K9 자주포(앞쪽)와 K10 탄약운반장갑차가 각각 사격 및 운용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한화그룹은 공격적 인수합병(M&A)으로 성장한 대표적 기업이다. 특히 최근 수년 사이에는 방산 부문 M&A가 두드러졌다. 삼성그룹·두산그룹의 방산 사업을 흡수하며 업계 1위에 올라섰고 이제 글로벌 10위를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중심에는 ‘태양광 전도사’를 벗어나 그룹 주력 사업 전 영역에서 존재감을 키우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있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한화그룹]
세계 10위권 방산 기업 도약 위한 승부수, 대우조선해양 인수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세계 10위권 방산 회사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승부수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방산 사업 재편 계획을 발표하며 한국형 록히드마틴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육군에 치중된 사업 영역을 해군·공군까지 넓혀 2030년까지 세계 10대 방산 회사가 되겠다는 포부다.목표에 차근차근 다가서는 모양새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여러 계열사로 나누어져 있던 그룹 내 방산 사업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모은 데 이어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육·해·공·우주까지 아우르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게 됐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내 수상함 분야 명가(名家)다. 40척 이상의 수상함을 건조했다. 이지스 구축함 율곡이이함이 대표적이다. 노르웨이 해군의 군수지원함 수주, 영국 해군의 첫 해외 발주 군함 수주, 대한민국 최초로 잠수함 수출 등 성과를 내왔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윈-윈으로 평가받는다. 대우조선해양은 유상증자를 통해 한화그룹으로부터 2조 원에 이르는 인수대금을 수혈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 대우조선해양의 부채비율은 1542.4%에 이르렀다. 2조 원의 자본이 더해지면 400% 대까지 낮아진다.
단순 수치를 떠나 최대주주 한화그룹의 후광이나 그룹 내 시너지 등 비재무적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든든한 새 주인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수주전에서 한화오션의 대외 경쟁력을 한층 높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수직 계열화도 완성했다. 최근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가 늘면서 핵심 기자재인 선박엔진 확보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한화그룹은 이미 계열사 한화임팩트를 통해 선박엔진을 만드는 HSD엔진의 지분 33%를 사들이기로 했다. 이에 대한 기대감은 한화오션 주가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화오션 주가는 올 들어서만 2배 이상 올랐다. 1만8000원대로 새해를 맞은 주가는 6월 장 중 4만 원대도 찍었다.
한화그룹은 5월 인수가 마무리되자마자 사명을 대우조선해양에서 한화오션으로 바꾸고 이사진을 전면 교체했다. 임원 46명 가운데 35명이 회사를 떠났다. 특히 전무 이상 고위 임원은 모두 한화그룹 출신으로 채웠다. 권혁웅 대표이사 부회장과 정인섭 사장, 김종서 사장뿐 아니라 부사장 2명과 전무 7명까지 모두 더해 12명이 한화그룹에서 이동했다.
예상보다 컸던 물갈이 폭이 의미하는 건 크게 두 가지다. 그만큼 쇄신 의지가 강하다는 것, 그리고 한화그룹 출신이 주축이 돼도 한화오션의 정상화를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특히 이번 인수는 무려 15년 만에 성사됐다는 점에서 한화그룹에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한화그룹은 2008년에도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했다. 당시는 조선업황이 한창 정점을 찍던 시기다. 대우조선해양의 몸값 역시 6조3000억 원으로 손꼽힐 만큼 높은 수준이었다. 한화그룹이 인수를 추진하기 직전인 2007년 대우조선해양 매출은 7조8442억 원, 영업이익은 2612억 원이었다. 2008년 매출은 12조2207억 원, 영업이익은 9753억 원에 달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한화그룹을 제외하고도 포스코그룹, GS그룹, 두산그룹 등이 관심을 보인 데서도 당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이렇듯 쟁쟁한 기업들 가운데서도 재계 상위권 도약을 노리던 한화그룹으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매물이었다.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그룹의 명운을 가를 승부수로 판단해 계열사 총동원령을 내리기도 했다.
인수는 결국 무산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KDB산업은행의 요구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수대금 분할 납부를 요청하면서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지만 이마저 거절당했다.
새옹지마라던가. 매각 무산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특히 14년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는 물론 극심한 조선업 침체를 겪으면서 숨어 있던 부실이 드러났다. 당시 한화그룹이 인수에 성공했다면 그 부담을 그대로 떠안았을 가능성이 높다. 말 그대로 전화위복인 셈이다.
방산 사업 핵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021년 10월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ADEX 2021’에서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핵심 장치인 75t 액체로켓 엔진이 전시돼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사업 초기 단계부터 엔진·터보펌프·시험설비 구축 등에 참여했다. [뉴스1]
통합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4월 공식 출범했다. 당시 김동관 부회장은 뉴비전 타운홀 행사를 열고 “새로운 기술로 미래를 개척하고, 지속 가능한 내일의 가치를 만드는 초일류 혁신 기업이 되자”는 비전을 제시했다.
한화그룹에 인수될 때(당시 삼성테크윈) 주당 3만 원대에 팔리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식은 6월 장 중 14만 원대까지 가격이 뛰었다. 역대 최고가다. 한화디펜스 인수와 계열사 이합집산, 한화오션 인수 등으로 기업가치가 4배 이상 높아진 셈이다.
자연스럽게 김 부회장의 존재감도 더 커졌다. 그는 지난해 8월 말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전략부문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한동안 김 부회장 하면 태양광 사업을 떠올렸지만 몇 년 사이 이런 이미지는 옅어졌다. 한화그룹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솔루션, ㈜한화 등 핵심 계열사들의 교통정리를 하는 사이 김 부회장은 방산과 화학 등 태양광 외 다른 사업으로도 영역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6월 7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산업전 한화오션 부스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앞줄 오른쪽)이 전시된 수상함 모형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고 있다. [한화오션]
그러다 2020년 1월 ㈜한화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으로 선임되며 태양광 밖으로 첫걸음을 뗐다. 한화큐셀앤드첨단소재가 한화케미칼과 합병해 출범한 한화솔루션을 맡으며 소재와 화학으로 폭을 넓혔다.
같은 해 9월 사장으로 승진하며 한화솔루션 전략부문 대표이사로 선임됐고, 지난해 부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에서도 전략부문 대표이사를 겸임하게 됐다. 5월에는 한화오션이 출범하며 한화오션의 새 이사진에도 이름을 올렸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에서 기타비상무이사를 맡고 있다.
김 부회장은 한화오션 인수가 마무리된 직후인 6월 초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을 직접 방문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부산 벡스코로 이동해 국제해양방위산업전(MADEX) 2023에 참석했다. 한화시스템 부스를 방문한 뒤 한화오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부스를 차례로 찾았다. 한화오션이 ‘한화’ 간판을 달고 처음 MADEX에 참석한 자리였다. 첫 외부 행사에 김 부회장이 참석하면서 힘을 실어준 셈이다.
어느 때보다 좋다
한화그룹은 세계 10위권 방산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향후 본격적으로 사업 확대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한화그룹은 세계 방산 시장에서 30위권을 오가고 있다. 몇 년 사이 순위에 큰 변동이 없어 사실상 ‘박스권’에 갇혔다.한화그룹이 글로벌 방산업계에서 처음 존재감을 드러낸 때는 2014년이다. 당시 삼성그룹의 방산 회사인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 등을 인수하며 처음 이름을 알렸다. 미국 국방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가 매년 집계하는 ‘세계 100대 방산업체 순위’에 이름을 올린 것도 2015년이다. 당시 한화그룹은 매출 15억4500만 달러로 53위였다.
이후 추가로 방산 회사들을 사들이면서 순위도 차츰 올라갔다. 2016년 두산그룹에서 두산DST(현 한화디펜스)를 인수하면서 2017년에는 순위가 19위(매출 42억1500만 달러)까지 올랐다. 다만 이후 경쟁사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현재 순위는 30위권에 머물고 있다. 2018년 23위로 떨어진 뒤 2019년 27위, 2020년 32위, 2021년 28위, 2022년 30위 등을 기록하며 30위권 안팎에 머무르고 있다.
현재 분위기는 어느 때보다 좋다. 사업 목표는 2030년 매출 40조 원, 영업이익 5조 원 달성이다. 지난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잭팟’을 터뜨렸다며 내놓은 성적이 매출 6조5396억 원, 영업이익 3753억 원이었으니 짧은 기간 내 비약적 성장을 자신한 셈이다.
자신감의 근거는 해외 수출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자주포, 장갑차, 발사대, 대공 무기 등을 수출해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지난해 방산 분야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른 폴란드와 8조 원 규모 무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또 한 번의 최대 실적을 예고한 상태다. 올해 1분기에는 사상 처음으로 수출 실적이 내수 실적을 넘어서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폴란드에 첫 유럽 현지법인도 세운다. 궁극적으로는 생산기지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이 밖에 루마니아에서 1조 원, 호주에서 5조 원에 달하는 자주포 및 장갑차 수주 계약이 추가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7월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국 제너럴다이내믹스, 독일 라인메탈 등 글로벌 방산사를 제치고 호주 정부로부터 24억 호주달러(약 2조1000억 원) 규모 장갑차 사업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증권가에서 추정한 올해 말 수주잔고 규모는 26조9000억 원이다. 지난해 말 수주잔고 19조8000억 원에서 36%가량 증가한 수치다.
현재 글로벌 10위권의 방산 회사들은 미국과 중국이 양분하고 있다. 영국의 BAE시스템스를 제외하면 미국의 록히드마틴·레이시온·보잉 등과 중국의 항공공업집단공사·국영조선회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거친 전쟁터, 험난한 비포장도로를 뚫고 가야만 하는 한화그룹이라는 장갑차가 어디까지 진격할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