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스널 벵거 감독의 고민
- 410만 명 재투표 청원…9월 국회 논의
- “우리나라는 우리 손으로 다스리자”
- “관용, 포용, 개방 정신 흔들림 없다”
- ‘연내 협상 시작 2018년 12월 EU 탈퇴’
- 한국, EU-영국 이중 규제 가능성
“당분간 괜찮겠지만 장기적으로 변화가 예상된다. 그동안 EU 국가 선수들은 영국의 지역 선수들처럼 국경 장벽 없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다. 영국이 EU 안에 있었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도 이처럼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는데, 앞으로도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EU 선수 332명이 떠나야 할 것이라고 영국 BBC가 보도했다. 한국 선수도 파운드 환율 하락으로 큰 손해를 보게 됐다. EPL 구단들은 앞으로 복잡한 절차 때문에 외국인 선수 영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민, 더 시티, EU에 대한 반감
정말 영국 국민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일까. 브렉시트는 그들의 일상을 온통 뒤바꿔놓을까. 영국 중하층 계급에게 축구는 단순히 스포츠 이상이다. 이를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영국 영화 ‘피버 피치’(1997). 애인보다 축구가 더 중요한 영국 남자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아스널 축구 팬인 주인공이 1부 리그 우승을 21년 만에 맛보는 과정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영국의 자부심이던 EPL이 몰락한다면 영국인의 축구 문화도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영국 바깥에서 보면 브렉시트는 분명 영국인의 제 살 깎아먹기 같다.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브렉시트 투표 결과(‘아웃’ 51.9%, ‘인’ 48.1%)가 세 가지에 대한 항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민 급증,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 더 시티) 금융인들, 유럽연합(EU) 관료주의가 그것.
소외된 잉글랜드 하층 백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선거일 아침 영국 전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투표를 포기한 젊은이가 많았다, 거짓 공약에 속아 탈퇴를 결정했다, EU가 뭔지도 모르고 투표했다 등등의 분석도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영국 사람들이 브렉시트를 택하기까지의 긴 역사와 그들의 속내에 대해선 제대로 분석하는 언론이 없었다. 예고된 경제위기를 알면서도 브렉시트를 택했다면 뭔가 정말 다른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 이유를 속 시원히 알고 싶어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자가 런던을 찾은 7월 1일은 브렉시트 투표가 끝난 지 일주일 뒤였다. 저녁에 런던 시내 패링던 역 근처의 퍼브(pub)에 들렀을 때 대형 스크린에선 윔블던 테니스 경기 장면이 나오고 있었고,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경기를 지켜봤다.
런던 외곽에서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사라 클리버 씨는 “EU 잔류에 투표했다. 투표 이전부터 주택 경기가 좋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앞으로 더 나빠진다고 하니 걱정이다”라고 말했다. 글로벌 자동차 기업에서 일하는 K씨는 재투표 가능성을 묻자 “해외 출장 중이어서 투표를 하지 못했는데, 나도 EU 잔류에 투표하고 싶었다”며 “하지만 결정된 것을 뒤집을 수는 없다. 유로 2016에서 잉글랜드가 아이슬란드에 패해 억울하다고 경기를 다시 하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앞으로 닥치는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해나가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런던의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국면 전환 단계 같다. 주말에도 예고된 시위 같은 것은 없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토요일 변덕스러운 영국 날씨처럼 시민사회가 요동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상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주말에 국회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일대가 시위대에 점령당했다. 이주민에 대한 차별 사건이 줄을 잇고 있었다. 금융중심지 ‘더 시티 오브 런던’은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했고, 정치권은 새로운 리더십을 갖추기 위해 요동쳤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민의 속마음과 영국의 미래를 7가지 키워드로 추적해봤다.
1. 웨스트민스터 시위대 ‘유럽으로 행진’
7월 2일 오후 1시 런던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광장. 화창한 날씨 같은데 마른하늘에서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유럽으로 행진(March for Europe)’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트라팔가 광장 부근에서 국회의사당이 있는 웨스트민스터 광장까지 약 3km 구간에 차량이 전면 통제되고, 약 3만 명의 시위대 행진이 이어졌다. 브렉시트 이후 최대 시위다. 거짓 공약 때문에 국민투표 결과가 잘못 나왔다며 항의하는 시위지만 거리로 나선 이들은 축제에 참가한 사람들처럼 즐거운 표정이다. 시위를 하다가 인근의 퍼브로 몰려가 맥주로 목을 축이기도 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으로 전파된 이번 시위 계획은 이러했다.
7월 2일 토요일 오후 런던, ‘유럽으로 행진’에 참가합시다.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입니다. 이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음악 도구, 깃발, 배너를 들고 나오세요. SNS에 #MarchForEurope 단어를 퍼뜨립시다.’
출발지: 런던 파크레인 30
시간: 오전 11시부터
복장: 컬러풀
행진구간: 파크레인에서 국회의사당 광장까지
시위대에는 EU 깃발을 든 이도 있고, 집에서 만든 배너에 갖가지 눈에 띄는 글귀들을 적어 나온 이들도 있었다. 북소리에 맞춰 ‘Bremain(British+ remain)’ ‘거짓 공약으로 결정된 브렉시트(BREXIT, Built in Lies)’ ‘우리는 모두 EU가 필요하다(We all need EU)’ ‘Eton Mess’(사립학교인 이튼스쿨 출신 정치인들이 망쳐놓았다는 뜻) 등을 외쳤다.
코미디언 마크 토머스는 “분노와 실망, 뭔가 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이 시위를 조직했다고 밝혔다. 그는 “국민투표가 공정한 과정 속에서 나온 결과라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 탓에 그런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좌절감에서 벗어나 뭔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사당 광장에 설치된 단상에 오른 토머스는 파크레인에서부터 행진해온 시위대를 맞이하며 비틀스의 ‘헤이 주드’를 선창했다. 시위대가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음악인 자비스 코커는 비디오 메시지를 통해 세계지도를 들고 “여러분은 지리적 여건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영국은 유럽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기서 벗어나죠?”라고 말했다.
“영국에 고립되고 싶지 않다”
“우리는 EU를 사랑합니다”라고 적힌 배너를 들고 행진 중이던 타티아나 수아레즈(43) 씨는 “EU를 떠나든 남든 장단점이 다 있다. 나는 영국을 사랑하고, 런던을 사랑한다. 모든 유럽인이 나와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콜롬비아 출신 영국인 스페인어 강사인 그녀는 18년간 런던에 살고 있다고 했다.‘브리버스(BREVERSE IT, 영국의 투표 결과를 뒤집어라)’라고 적힌 배너를 든 케이티 토슨(59) 씨는 “탈퇴 캠페인은 거짓 공약이었음을 사람들이 이제야 깨닫고 있다. 이번 선거는 무효다”라고 외쳤다. 초등학교 음악 교사인 아이린 마하니(55) 씨는 왜 잔류에 투표했느냐고 묻자 “얼마나 멋진 질문인가”라면서 “왜냐하면 우리는 유럽인이니까”라고 답했다.
“나는 평생 유럽인으로 살아왔다. 유럽과 함께 가고 있다. 유럽연합으로 인해 지난 60년간 세계 평화가 유지됐다. 무역, EU뿐 아니라 지구상 어디에서든 누구든 이곳에 와서 살 권리가 있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도록 해왔다. 영국에만 고립되고 싶지 않다.”
재투표에 대한 의견은 제각각이었다. 마하니 씨는 “투표 결과를 따르는 것이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나는 52대 48은 너무 근소한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재투표가 이뤄지거나 의회에서 재고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카디프에서 온 안과의사 라크 데스터는 피자 박스 뒤에 ‘평화, 사랑, 유럽~통합(Peace, Love, EUnity)’이라고 쓴 배너를 들고 있었다. 그는 “만약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성취되지 않는다 해도, 영국인 모두가 브렉시트에 찬성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유럽의 이웃에게 알릴 것이다. 우리는 유럽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시위대는 오후 3시께 해산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바람이 과연 어디까지 이뤄질지는 알 수 없다. 2일자 ‘파이낸셜타임스는’ 브렉시트 결정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다른 국민투표’라는, 유명 소설가 이시구로 가즈오의 글을 게재했다. 영국 정부는 재투표는 없다고 못 박았다. 하지만 410만 명이 재투표를 청원해 하원은 9월 5일 이에 대한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국민투표는 원래 법적으로 효력은 없고, 정부가 참고용으로 시행한 것이다.
2. 뉴몰든 퍼브에서 만난 탈퇴파
웨스트민스터 광장 시위대와 대척점에 있는 탈퇴파들의 층은 다양하다. 노년층과 지방 거주자, 소외된 백인 노동계층, 보수적 지식인 등 처지마다 제각기 탈퇴를 주장한 이유는 다양하지만, 모든 이가 동의한 하나의 핵심 구호는 선명했다.
‘우리나라 통치권을 되찾아오자(Let′s take back the control of our country).’
그동안 영국이 스스로 자국을 다스리지 못했다는 말인가. 브렉시트에 찬성한 컨설턴트 마이클 지포드 씨가 그 이유의 일단을 설명했다. 그는 1973년 영국의 EU(당시는 European Community) 가입 국민투표에선 찬성했던 이다.
“영국은 EU 공동 시장에 가입하기 위해 투표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EU의 목표가 정치적, 재정적 통합으로 가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당시 EU 가입을 원한 영국인들이 생각한 것이 아니었다.”
지포드 씨는 EU가 바나나 형태나 진공청소기의 최대 전력, 백열전구 세일 금지 같은 것까지 규정하는 기관이라며 EU가 점점 관료화됐다고 주장했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영국 법관들이 내린 결정을 계속 뒤집었다. 예컨대 영국은 죄수가 감옥에 있을 때는 투표권을 부여하지 않는데, 유럽사법재판소가 반대의 결정을 내렸다. EU에 임명되는 핵심 관료들은 임무가 막연하고, 직무나 성과에 대해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면서도 처우는 매우 좋은 편이다. EU의 2만3000여 직원 가운데 5분의 1 이상이 연간 14만2000파운드(약 2억1500만 원)를 받던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다고 2년 전 일간 ‘더 텔레그라프’가 보도했다.
“1980년대 대처 총리가 영국을 흔들어놓은 이후 영국 정부, 비즈니스와 문화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내 생각엔 나라를 이끌어가는 방식에서는 영국 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EU는 중간이나 처진 회원국의 속도에 영국을 맞추느라 영국의 발전을 지체시키는 작용을 해왔다. 따라서 영국이 EU 간섭 없이 스스로 법과 세금, 삶의 방식을 정할 수 있어야 하고, 영국의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다.”
“부자 나라에 인재 빼앗겨”
보수당 국회의원 크리스 그레일링은 브렉시트 찬성파다. 그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기고에서 ‘EU 탈퇴는 영국에 번창할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브렉시트를 놀라움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영국은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다. 우리는 거대하고 풍부한 문화 자산을 물려받았으며, 전 세계에 강력하고 활기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민족은 늘 개척정신이 강했으며,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능력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런던 서남쪽 한국 동포가 많이 사는 뉴몰든의 한 퍼브에서 만난 마거릿 콕스 킹스칼리지런던대 명예교수도 탈퇴파다. 지금은 작고한 남편이 전 노동당 의원으로 EU 가입 당시 EU 의원에 추천까지 됐더랬다. EU 가입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지금은 다른 이유로 탈퇴를 주장하고 있다. 원자력공학을 전공하고 40년 이상 IT 교육 분야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EU의 부자 나라들이 인재를 흡수해 가난한 나라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의 자유 이동에 관한 EU 정책은 동유럽과 남유럽 가난한 나라에서 서부와 북부 부자 나라로 ‘우수 두뇌와 전문가 유출’을 야기한다. 3주 전 불가리아에 갔을 때도 그곳 학자와 관리들이 ‘불가리아가 EU 멤버가 되면서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 대거 서구로 떠나 불가리아가 서구를 따라잡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라고 말했다.”
콕스 교수는 이민자 문제를 언급하며 영국의 인구밀도가 너무 높다고 지적했다. 영국 인구는 6300만 명으로 인구밀도는 ㎢당 256명. 503명인 한국에는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EU 국가 중에선 매우 높은 편이다.
“이민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자원을 늘려야 한다. 런던 남부 서리카운티의 경우 지금 당장 중학교가 8개나 필요하다. 이민자 자녀들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의 재정도 한계가 있으니 적정 수준으로 이민자를 받아야 하는데, EU 안에선 우리 스스로 그것을 결정할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생각이 브렉시트의 또 다른 주요인이 됐다. 국민투표 전 영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이민자수는 정부가 예측한 10만 명보다 훨씬 많은 33만5000명이었다. 이 통계가 불에 부은 기름이었다.
3. 잉글랜드 북부 웨이크필드의 이주민들
브렉시트 이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탈퇴에 투표한 과반은 세계화 속에서 자신들이 늘 루저(패배자)라고 느끼는 소외된 영국인들이다. 그들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지역으로 몰려오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투표 결과를 보니 잉글랜드 중북부 돈카스트(69% 탈퇴), 웨이크필드(66.4%)에 그런 이들이 사는 듯했다. 돈카스트는 철강도시였다가 몰락한 뒤 제과업이 성하면서 소비도시로 변했고, 웨이크필드는 여전히 섬유산업이 발달한 곳이다.
이들 지역은 또 우익 궐기 지역이다. 인근에 EU 잔류 캠페인을 벌인 조 콕스 의원 살인사건이 일어난 버스톨이 있다. 콕스 의원 지역구인 바틀리앤드스펜은 커클리스 투표구로 54.4%가 탈퇴에 투표했다. 애초 이보다 더 탈퇴 여론이 높았지만, 콕스 의원 사건 이후 잔류파가 늘었다고 한다.
3일 아침 런던에서 기차로 2시간 10분 거리의 웨이크필드를 찾았다. 웨이크필드 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칸은 파키스탄 출신으로 아버지 세대에 이주한 이민 2세다. “EU에 남는 게 경제에 좋기 때문에 잔류에 투표했다”는 그는 “웨이크필드에도 폴란드 불가리아 등 유럽에서 오는 이민자가 아주 많아 새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12시께 웨이크필드 중심가에 있는 탈봇 앤드 팔콘(The Talbot and Falcon) 퍼브. 실내엔 젊은 여성 바텐더 1명과 백인 할아버지 5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서부영화에 등장하는 늙은 총잡이들 같은 표정으로 낯선 동양인을 쏘아보았다. 바텐더에게 포스터스 칼링 맥주를 한 잔 주문하고 투표했냐고 묻자 “나는 나와 이 나라를 위해 잔류에 투표했다. 그런데 퍼브에선 정치 얘기하는 거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개의치 않고, 팔에 문신을 한 험상궂게 생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브렉시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자신을 폴이라고 소개한 그는 “브렉시트에 투표했다. 우리 일은 우리가 해야 한다”라고 짧게 말했다. 자신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소개한 다른 사람은 “잔류에 투표했다. 더 이상 얘기하지 않겠다”며 스마트폰으로 자동차 경주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인근의 이탤리언 레스토랑 루스티코 주인 안토니아 바스라스 씨. 영국에 정착한 지 20년째이지만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은 그는 “이탈리아 여권을 갖고 두 나라를 오가며 사는 게 좋다”며 “노동력이 필요하니 이민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요일인 데다 사전 약속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방문한 터라 이민자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우익 단체 취재는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인종차별 문제가 이 지역의 새 문제가 되고 있음을 지역신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무슬림인 남부 웨이크필드 시장은 “브렉시트 투표 결과 발표 뒤에 길거리에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인종차별 비방을 들었다”라고 7월 1일자 지역 신문 ‘웨이크필드익스프레스’에 밝혔다.
그는 이어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적인 사건이 점점 늘어나서 고민이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인데,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사람들이 EU 탈퇴를 결정했지만 인종차별적 시각과 투표는 구별해야 하고, 영국은 이민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최근 이민자를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사건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경찰은 7월 8일 EU 국민투표(6월 23일) 전후로 외국인 혐오 사건이 42%(3000건 이상) 정도 늘었다고 밝혔다. 6월 16~30일 사이 하루에 200건 이상의 혐오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4. 런던 폴란드 예술센터의 화해
6월 26일 아침 런던 해머스미스 폴란드 예술문화센터 출입구 유리창에 인종차별 문구로 보이는 낙서가 등장했다. 우편함에는 ‘폴란드인 해충 더 이상 안 돼’라고 적힌 카드도 들어 있었다. 런던 메트로폴리탄 경찰청은 폴란드인이 많이 거주하는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적인 동기로 저지른 범죄행위”로 보고 수사에 들어갔다.7월 2일 오후 기자가 해머스미스 예술문화센터를 찾았을 때 유리창의 혐오 낙서는 깨끗이 지워지고 없었다. 대신 로비 오른쪽에서 낯선 이를 반긴 건 수많은 꽃다발과 엽서들. 이 지역 이웃이 폴란드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 센터로 보내온 것들이다.
“평생 런던에 살면서 가장 멋지게 생각한 것은 이 도시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폴란드인 거주지가 내 이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연대를 위해, 톰 맨스필드)
“친구들이여, 절망하지 마시오. 그자들의 혐오는 우리의 것이 아니오. 아름답게 그대로 살아요.” (당신의 영국인 친구 소말리)
엽서를 읽고 있던 폴란드 이주민 안나 쿠린스카는 영국의 이민정책이 좀 더 유화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했다.
“요즘 걱정이 많다. 나는 폴란드인이자 유럽인으로 영국에 합법적으로 체류 중이다. 물론 당분간 영국이 이전과 같은 이민 정책을 유지하겠지만, 대개의 핵심 정치인들이 이민자에 대해 매우 엄격한 정책을 펴고 있다. 사실 이민자는 이 나라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내가 영국 법과 문화를 존중하듯 그들도 우리 이민자를 존중해야 한다. 마음을 열고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컨설턴트 빅토리아 매킨지 씨도 영국이 더 열린 이민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민은 현대사회에서 필수적인 부분이다. 이민은 다문화를 촉진하고, 일반인에게 개방적인 정신을 갖게 하며, 새로운 것을 더욱 잘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한다. 더욱이 분쟁지역 사람들이 새로운 터전을 일구고 그곳 사회에 기여하면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훌륭한 일이다.”
영국의 전반적인 정서는 표출된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외국인 혐오 사건 등에도 불구하고 영국 사회 전반적으로는 외국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 개방의 정신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전핀(safety pin) 달기 캠페인이 대표적 사례다. 재킷 등에 안전핀을 꽂고 사진을 찍어 소셜미디어에 게재하는 것이다. 안전핀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주기 때문에 이민자에 대한 연대감을 상징한다.
5. 더 시티 레스토랑과 영국 경제
7월 4일 저녁 7시께 영국 금융 중심지 더 시티의 고급 레스토랑 ‘롬바르드 스트리트’. 이곳 손님은 대부분 금융권 종사자다. 몇 테이블 건너에서 여성 두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웨이터를 통해 ‘한국에서 브렉시트 영향을 취재하러 온 기자인데 금융권 종사자이면 몇 마디 물어보고 싶다’는 내용의 쪽지를 전달했다. 한 여성이 손짓하며 쪽지를 적어 보냈다.
“브렉시트 때문에 홍콩으로 옮겨가야 하는 금융인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기를 강력히 권한다.”
역시 더 시티 지역에서 근무한다는 금융인 C씨는 “회사를 위해서는 잔류에 투표했어야 하는데, 이민자 문제 때문에 탈퇴에 투표했다”며 “2008년 금융위기 때와는 달리 EU와의 협상 일정이 나오고 불확실성만 제거되면 이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후 영국은 소비 심리가 위축돼 있었다. 7월 6, 7일에 3개의 부동산 펀드가 환매를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다. 현재 3년간 집값이 두 배 가까이 뛰었지만, 최근 주춤한 상태다. 소매업종인 스포츠 다이렉트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봤다. 막스 앤드 스펜서 백화점, 존 루이스 고급 백화점 등도 마찬가지.
브렉시트가 경제에 미치는 후폭풍은 아직 제대로 가늠하기 힘들지만 이처럼 대체로 비관적이다. 영국중앙은행(BOE) 하워드 데이비스 경은 7월 6일 BBC 인터뷰에서 “파운드화 가치가 큰 폭으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국 경제의 약점은 부동산 시장이다”라고 말했다. 컨설턴트 매킨지 씨는 “더 시티의 미래는 매우 불확실하다. 앞으로 몇 년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초미의 관심사다”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정치적 불확실성만 해결되면 전망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마크 볼리트 런던금융특구 정책위원회 의장은 6월 28일 ‘런던 이브닝 스탠더드’ 기고에서 ‘브렉시트는 강펀치이지만 더 시티는 여전히 세계 금융 허브다. 더 시티에서 은행과 금융기관들의 대량 이탈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브렉시트 영향으로 EU 각국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유로존의 3대 경제강국인 이탈리아는 특히 은행권이 문제다. 이탈리아 정부가 긴급구제 방안을 생각하고 있지만 EU법상 상한액을 정해두고 있어 어떻게 결론 날지 관심사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이탈리아가 2020년대 중반까지 경기침체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저성장·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그리스와 키프로스,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 상황도 가시밭길이다.
6. 다우닝가 10번지와 문제아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가 땅에 추락했다. 보수당이나 노동당 리더십 모두 엉망이다.”(컨설턴트 매킨지 씨)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정치인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브렉시트를 주도한 정치인들의 거짓말도 집중포화를 맞았다. 그들이 내세운 공약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거나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막대한 EU 분담금을 영국인의 복지 향상에 돌려 쓰겠다던 주장이 대표적인 거짓말이었다.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은 영국이 EU에 주는 돈이 매주 3억5000만 파운드에 달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약 7400만 파운드가 적었다. 분담금 중 1억1500만 파운드는 영국의 농업 보조금, 대학생, 기업을 위해 쓰는 돈이었다. 브렉시트 진영의 대표주자인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는 자신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비난이 쏟아지자 패라지는 결국 대표에서 물러났다. 잔류 캠페인을 이끌던 제러미 코빈 노동당 당수도 장관들의 쿠데타로 큰 저항을 받고 있었다.
국민투표 직후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사퇴를 선언한 뒤 테리사 메이(59)가 신임 총리로 선정되기까지 약 20일간 집권 보수당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다. 가장 유력한 총리후보이던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이 측근 마이클 고브 법무장관의 배신으로 경선에서 물러나고, 유력했던 고브 또한 지지율 부진으로 도중 하차했다. 메이 내무부 장관과 안드레아 레드섬 에너지기후변화부 부장관의 부상 이후 9월 9일 총리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레드섬 부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자녀가 없는 메이 장관보다 내가 더 나은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경선 탈퇴를 하고 말았다.
생각보다 손쉬운 승리를 거머쥔 테리사 메이 신임 총리는 브렉시트 투표에 반대했지만 브렉시트는 결론이 난 것으로 여기고 있다. 7월 11일 총리가 확정된 뒤 한 연설에서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를 뜻한다. 우리는 이것을 성공적으로 해낼 것이다”고 밝혔다. 그녀는 또 자신의 총리 경선 캠페인의 핵심은 세 가지였다고 밝혔다.
총리의 호피 구두와 노동자
“첫째, 어렵고 불확실한 경제적 정치적 상황의 EU 탈퇴 과정에서 영국을 위한 최고의 협상을 이끌어내고, 세계 속에서 우리의 새 역할을 만들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둘째, 우리나라를 더욱 단결된 하나로 묶을 것이다. 셋째, 미래를 위한 강력하고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소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일하는 나라를 만들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더 통제할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더 나은 영국을 만드는 방법이다.”화려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실제로 보수당을 평범한 노동자를 위한 당으로 만들 수 있을까. 브렉시트 결정 이후 다시 부상한 스코틀랜드 독립과 북아일랜드 국경 문제도 메이 총리의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메이 총리가 새 내각 구성을 마무리한 가운데 브렉시트 시나리오가 일부 공개됐다. 7월 14일 텔레그라프에 따르면 영국은 EU와의 협상을 늦어도 올해 말 시작해 2018년 12월에는 마무리할 계획이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부 장관이 시나리오 초안을 만들었고, 이를 기초로 구체적 계획안을 만들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초안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와 협의한 뒤 올해 말 EU에 탈퇴 의사를 통보하고 협상에 들어간다.
7월 4일자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영국이 EU와 재협상을 할 때 EU 싱글 마켓에 접근이 가능하지만 노동력의 자유 이동을 허용한 노르웨이 방식, EU 내에서 자유롭게 여행할 수는 있되 별도의 관세협정을 맺는 터키 방식, 특정 제품에만 관세를 부과하는 캐나다 방식(미정)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7. 브렉시트와 한국
7월 14일 현재 한국은 대체로 브렉시트 후유증에서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금융 전문가들도 불확실성 확대 등 심리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브렉시트가 우리나라 실물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영국 런던대 SOAS 출신인 최동주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는 브렉시트가 한국 경제에 오히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브렉시트로 단기적 금융 충격은 있겠지만, 안전자산인 엔화에 돈이 몰리면서 엔고가 형성되면 우리나라의 수출 환경이 더 좋아질 것이다. 영국은 세계 제1위 해외 투자국이며, 런던 증시는 이미 6년 전에 시가총액에서 뉴욕 월가를 추월했다. 영국도 정치적 불확실성만 극복하면 경제위기는 곧 극복할 것이다. 한국이 너무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2015년 기준 한국은 영국으로 약 74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다. 16번째 수출 상대국이다. 영국에서 수입하는 규모는 약 61억 달러. 지난해 원유가 하락으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2억5000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영국이 한국에 투자한 규모는 2억600만 달러로 대부분 금융 및 보험업, 화학공업 등이 대상이다. 한국은 영국에 8억9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있다. 미디어 및 통신업, 광업, 금융 등의 순이다. 브렉시트 영향으로 영국의 해외 투자 규모는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따르면 앞으로 한-EU FTA에서 정한 시장 개방 약속에서 영국이 제외되면서 우리 기업은 파운드화 평가절하와 수익성 악화, 특혜관세 미적용에 따른 가격경쟁력 하락 등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영국이 독자적 관세장벽으로 수입 규제 정책을 편다면 현지 진출 기업은 유럽 시장에서 EU 시장과 더불어 이중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면밀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영국이 다자간 질서인 EU에서 빠져나가면서 심리적으로 기존의 개방적 국제 질서가 흐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렇다 해도 기존 질서가 완전히 붕괴되고 보호무역주의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더 중요한 것은 영국과 EU가 어떤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결정될 것이므로 그 내용을 주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영국은 브렉시트 이후 EU 국가뿐 아니라 더 중요한 미국 캐나다 인도 중국 등과의 FTA 협상에 먼저 나설 것이므로 한국과의 협상은 그 다음이 될 수 있다. 이 점을 인식하고 영국과의 협상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