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호

인터뷰

74년 만에 첫 직선제 선출 남영준 한국도서관협회장

“도서관과 사서는 4차 산업혁명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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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19-08-23 14: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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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선제, 도서관계 결집 계기”

    • “사서의 전문직 위상 확보 위해 노력할 것”

    • “도서관 격차 해소 위해 시민 역할 중요”

    • “회원 하소연 들어주는 것도 협회장의 소통”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선거는 민주주의의 학교다. 투표를 통해 이해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한국도서관협회는 창립 74년 만에 처음으로 직선제를 통해 회장을 선출했다. 남영준 중앙대 문헌정보학과 교수가 63.1%의 득표율로 제29대 한국도서관협회 회장에 당선됐다. 처음 실시한 직접선거다 보니 우여곡절도 있었단다. 남 회장은 선거 과정을 이렇게 회고했다. 

    “도서관을 방문할 수 없었다. 그것이 선거 ‘룰’이었다. 도서관에서 선거운동을 하면 자칫 이용자들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본 것 같다. 대신 전화와 문자메시지·SNS를 통해 선거운동을 펼쳤다. (당선된 까닭은) 도서관계에서 제가 그나마 미움을 덜 산 덕 아닐까 싶다(웃음).” 

    간선제와 비교해 직선제 회장의 정통성은 클 수밖에 없다. 회원들이 직접 투표를 통해 권한을 위임하기 때문이다. 정통성은 곧 힘이다. 남 회장은 “(협회장으로서의) 권한은 간선제 때보다 크다. 직선제가 도서관인들을 결집시키는 좋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신적 처우와 경제적 처우

    남 회장은 중앙대 도서관학과 졸업 후 동 대학에서 문헌정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도서관협회에서는 기획정책위원장과 부회장을 지냈다. 이론과 실무에 두루 밝은 셈이다. 8월 1일 서울 서초구 한국도서관협회에서 그를 만나 도서관계의 현안과 도서관의 미래에 대해 두루 물었다. 

    - 협회 규모가 크다. 조직을 이끄는 데 별 어려움이 없겠나? 

    “교수로 일하면서 대학의 도서관장과 발전위원장을 역임했다. 가장 큰 학회 중 하나인 정보관리학회를 맡아 운영해보기도 했다. 조직을 운영하는 데 큰 두려움은 없다.” 



    - 도서관 하면 4차 산업혁명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리어 도서관과 사서가 4차 산업혁명의 중추 기관이자 핵심 인력이라는 주장을 해서 흥미로웠다. 

    “1,2,3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했다는 데 있다.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인간의 사고력을 대신하는 것이다. 도서관은 인간의 지적 산물이 집합돼 있는 곳이다. 사서는 도서관에 모인 지식을 분류·평가·활용하는 사람이다. 기계도 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한다. 지식과 경험은 도서관 자료에 있다. (구글이) 알파고에 바둑 기보를 다 집어넣었다고 한다. 과거의 기보가 어디에 있나. 도서관에 있다. 수많은 기보 중 의미 있는 기보 찾는 걸 누가 하겠나. 거대한 정보 중 의미 있는 것을 분류·배열하는 역할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하다. 또 인간이 잘못된 지식을 기계에 넣으면 기계는 잘못된 쪽으로 반응한다. 올바른 지식이 어디에 있고 누가 이 지식을 기계에 넣느냐고 물었을 때 (도서관과 사서라는) 답이 나온다. 도서관과 사서가 4차 산업혁명의 꽃이요 핵심 인력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남 회장의 말대로라면 결국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렇다면 뒤따라오는 질문은 ‘제대로 일할 환경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도서관계 최대 화두 중 하나는 사서의 처우 개선이다. 이에 대해 묻자 남 회장은 “처우 개선의 경우 정신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나눠 살펴야 한다”면서 운을 뗐다. 

    “공공도서관은 불특정 다수 이용자를 접할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도서관에서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을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분들도 있다. 폭언, 성희롱 등에 노출돼 스트레스 받는 사서도 많다. 정신적 차원의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 자유롭고 안전하게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의미다. 물론 이는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청원경찰이나 안전요원이 도서관에서 근무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 물질적 처우 개선의 경우 사서수당 인상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던데. 

    “그렇다. 선거 때 많은 분이 제 공약을 허언이라고 했다. 하지만 (협회장으로서) 반드시 실현해보고 싶은 일이다. 보통, 사서 중 사무관 직급 미만인 분들은 2만 원, 사무관 직급 이상인 분들은 3만 원을 받고 있다.” 

    - 수당이 시간당 제공하는 금액인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전문직 수당이라고 받는 금액이 그 정도다.” 

    - 한 달? 

    “그렇다. 액수도 액수지만, 전문인으로서 대우를 못 받는 소외감이 크다. 수당을 인상하기 위해 정부와 계속 접촉하고 있다. 협회장 자격으로 이르면 9월 안에 현장 사서들과 함께 인사혁신처 담당자들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눌 것이다. ‘원하는 대로 해달라’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정부 당국에) 인상해야 할 타당한 이유를 이해시켜야 한다.”

    “쏟아야 책도 산다”

    - 한국 사회 풍토에서 사서가 전문직이라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시민사회를 상대로 적극적인 홍보, 캠페인 활동도 필요해 보이는데. 

    “도서관에서 (이용자가) 연구·조사형 질문을 던지면 반드시 사서를 연결해주게 돼 있다. 누군가 ‘‘‘신동아’ 창간호에 실린 가장 좋은 기사는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사서가 나설 수밖에 없다. 사서들은 이런 업무를 바라고 있다. 이용자 입장에서도 (질문에 대한 피드백이 오면) ‘도서관에 오니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라고 판단하게 되지 않겠나. 이것이야말로 사서들이 전문직으로서의 위상을 확보하는 지름길이다. 시민들께서 도서관을 ‘책만 가지고 있는 곳’으로만 본다. 저부터 나서서 도서관에 지식·정보 서비스전문가인 사서가 있다는 걸 인식시키고자 한다.” 

    - 일각에서는 도서관이 복합문화공간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서관에는 안락한 휴식 공간도 필요하다. 우스갯소리로 ‘어디 대학 총장이라도 되면 도서관 1층에 스타벅스 넣고 싶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이 일본 쓰타야 서점을 이야기하더라. 그곳은 (커피숍과 유기적으로 공간을 구성해) 책을 노출해 판매하는 게 목적인 곳이다. 도서관은 책을 파는 곳도, 커피를 파는 곳도 아니다. 이용자에게 최상의 서비스와 휴식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하기 위해 커피숍 등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이 필요하다. 내가 교수직을 더 잘하기 위해 운동하는 거지, 운동하기 위해 교수 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게 내가 바라보는 도서관과 복합문화공간의 순서 차이다.” 

    - 커피를 판매하는 공공도서관도 있다. 반면 음료를 갖고 입장하는 것조차 막는 공공도서관도 있다. 음료 반입에 도서관이 더 유연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진 이용자도 있을 텐데. 

    “도서관에 뚜껑이 덮여 있지 않은 음료를 못 갖고 오게 하는 곳은 (이용자가) 음료를 쏟아 책이 손상될 수 있는 점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나는 ‘쏟아야 책도 산다’고 말하곤 한다. 이용자가 너무 많이 봐서 (종이가) 막 부풀어 오른 책들도 있다. 사서들이 테이프로 오래된 책의 등을 고정하는 노력도 많이 한다. 그렇게까지 많이 본 건 예산이 모자라더라도 사야 하는 것 아닌가? 귀중본은 별도로 모아두고 말이다. 귀중본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정가에 살 수 있는 책에 대해서는 (손상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지속가능 발전과 도서관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책의 역사가이자 하버드대 도서관장을 지낸 로버트 단턴은 ‘책의 미래’에 “아마도 언젠가 2000년 전의 코덱스 페이지처럼 한 손에 쥘 수 있는 스크린으로 책을 읽으며 눈이 즐거워할 날이 올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전자책은 구텐베르크의 위대한 발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닌, 보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남 회장의 생각도 이와 결이 통한다. 

    “자녀에게 종이책 한 권 사서 메모를 써 선물하는 게 좋을까. 전자책 파일 하나를 다운로드해 건네주는 게 좋을까. 아직 꼰대여서 그런지 몰라도 앞의 것이 더 감동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책이 전자책 형태로만 나온다면 도서관에는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쇄 자료가 나오고 부산물로 전자책이 나오고 있다. 즉 전자책은 보조적 수단으로는 굉장히 좋다. 둘은 양립할 수 있다.” 

    - 전자저널의 경우 사정이 다를 것 같다. 대학원생들도 논문을 전자 형태로만 본다. 

    “전자저널은 오픈 액세스(누구나 장벽 없이 학술 정보를 인터넷에 접속해 읽고 쓸 수 있도록 한 것) 전략에 따라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과거에는 우리보다 (학문적 수준이) 앞섰다는 국가에서 나온 학회지를 보러 도서관에 갔다. 지금은 대학에 속한 저조차 집에서 학교 시스템에 로그인해 읽다 보니 도서관 가는 빈도가 줄었다.” 

    - 대학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간 환경의 차이가 크다. 공공도서관 안에서도 지역마다 재정·인력 등 여건 차이가 작지 않다. 도서관 간 격차를 해소할 방안이 있나? 

    “시민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서나 한국도서관협회가 지방자치단체장들께 계속 요구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지자체를) 움직이는 힘은 지역 주민에게서 나온다. 시민이 ‘우리 동네 도서관 환경이 옆 동네 도서관과 비교해 열악하다’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한다. 정부도 생활형 SOC사업을 통해 도서관 증축이나 리모델링에 과거보다 많은 예산을 쓰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시민들이 어필해야 (도서관 격차 해소가) 이슈가 된다.” 

    - 올해 전국도서관대회 모토가 ‘지속가능 사회를 위한 도서관의 역할’이더라. 

    “과거에는 도서관에서 글을 못 읽는 분들을 대상으로 쓰는 법과 읽는 법, 책 고르는 법을 가르쳤다. 지금은 전자 환경으로 넘어왔다. (읽고 쓰는 것을 넘어) 웹상의 정보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전자책과 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검색어를 넣어야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지도 알아야 한다. 마침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이 유엔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2030 어젠다’에 따라 도서관이 (지속가능 사회를 위해) 해야 하는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도서관이 몰라서 혹은 겁이 나거나 돈이 없어서 4차 산업혁명의 혜택을 못 누리는 분들을 끌어안고 더불어 잘살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이 주제를 두고 논의할 것이다.”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답할 것”

    인터뷰 내내 남 회장은 ‘그렇죠’라는 단어를 많이 썼다. 상대의 말에 공감한다는 뉘앙스를 빈번히 내비친 셈이다. 그가 지향하는 소통 방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남 회장의 말이다. 

    “회원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 듣는 것도 있지만, 하소연이나 속상함을 (협회장이) 들어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물어온 것에 대해서는) 답하고자 하는 것이 임기 중 소통 원칙이다.”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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