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로 시작해 SK로 끝난 盧風 vs 檢風
- SK 사태, 反개혁 세력에 오히려 호기?
- ‘힘 센’ 삼성의 눈부신 행보 관료 출신, 초대 경제팀 장악 내막
- “당료·관료 한 몸…재벌개혁 의지 실종”
- “정부건 검찰이건 재벌이란 ‘말’ 타지 않을 수 없게 만들 것”
검찰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치밀한 사전 조사와 두 차례의 대대적인 압수 수색으로 검찰은 그 어느 때보다 풍부하고 정확한 증거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성과는 대단했다. 지난 3월11일, 수사를 담당한 서울지검 형사9부 이인규 부장검사는 ‘SK그룹 부당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사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최태원 SK(주) 회장, 김창근 구조조정추진본부장이 구속 기소되고, 손길승 SK회장 등 8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수사팀은 애초 목표였던 JP모건 옵션이면거래, 워커힐 주식 부당거래 외에,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분식회계를 적발하는 개가를 올렸다. 이로써 재계 순위 3위 SK는 그룹 해체의 위기에 봉착하게 됐다.
어느 모로 보나 ‘본분을 다한 검찰의 완벽한 승리’로 기록될 SK 수사는, 그러나 그렇게 단순하지도, 명쾌하지도 않다. 수사 시기 및 배경에 대해 온갖 설이 난무했고, 정부와 청와대는 ‘중단 없는 재벌 개혁’부터 ‘사정 속도 조절론’ ‘외압 시비’에 이르기까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검사들은 헌정 사상 초유의 ‘평검사-대통령 공개토론’ 자리에서 ‘SK 수사 외압’을 폭로하는 것으로 대통령을 공격했다. 이 사안은 김진표 부총리,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의 “수사 결과 발표를 늦춰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라는 해명에 대해, 검찰 고위관계자가 “사실상 분식회계 건을 덮어달라는 요구였다”며 정면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수사를 누구보다 환영해야 할 시민단체의 의외로 신중하고 냉정한 반응은 또 어떤가. 관료 중심의 초대 경제팀 인선에 강한 불만을 표시해온 참여연대, 경실련 등은 “SK 수사 그 이후를 주목한다”는 뜻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이번 수사가 ‘돌출성 단발’이 아닌 재벌 개혁과 그들의 불법·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의 시발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시민단체의 기본적 시각은 “정부건 검찰이건 아직 못 믿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판단을 유보한 데는 나름의 설득력 있는 ‘정황 증거’들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SK 수사를 기점으로 재벌 등 보수세력의 ‘규제 완화’ 요구는 높아진 반면, 정부의 개혁 의지는 후퇴한 모습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검찰의 SK 수사는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립, 노정권의 재벌 개혁 의지, 그에 대한 시민단체의 우려와 요구, 재계의 미묘한 손익 계산 등 다각도의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이제 SK 수사, 그 시작으로 돌아가 보자.
2003년 1월, ‘개혁대상’ 검찰의 상황
서울지검 형사9부가 SK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중순이다. 이인규 부장은 “정확히 말해 12월13일이다. 사무실에서 TV 뉴스를 보다 최태원 회장의 워커힐 주식 스왑거래 관련 보도를 접했다. 이거 이상하다 싶어 바로 그 방송사 사회부장에게 자료 협조를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형사9부는 2001년 6월 금융·증권 사범 전담수사부로 신설됐다. 주로 금감원 고발 사건 수사에 진력해 오다, 지난해 8월 이부장검사가 부임하면서 인지·기획 수사로까지 그 외연을 확장했다. 이후 ‘새롬기술 분식회계’ ‘3조원대 주식대금 가장납입’ ‘유명 애널리스트 주가조작’ 등 20여 건의 굵직굵직한 경제사건을 파헤침으로써 주목을 받았다. 수사 욕심이 큰 만큼 ‘보다 큰 물건’에 관심을 가졌을 법도 하다. 이부장 역시 “(재벌은) 공룡인데 검사로서 왜 욕심이 없었겠느냐”는 말로 그러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그로부터 25일이 지난 올 1월8일, 참여연대가 JP모건과의 이면계약 건을 들어 서울지검에 SK증권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9부는 애초 TV 보도를 통해 인지한 주식 내부거래 건과 참여연대 고발 건을 동시에 조사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가 이부장검사가 소개하는 SK 수사 착수 경위다.
한편 검찰이 SK에 관심을 갖고 수사를 진행한 지난해 12월 중순부터 올 2월까지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무엇보다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든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검찰도 큰 바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노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검찰은 첫 번째 개혁대상”이라며 “권력기관의 횡포와 줄서기, 불법에 단호하게 대처하고 개혁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터였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정권 초기면 관행처럼 되풀이돼 온 ‘재벌 손보기’ 작업이다. 개혁을 주창한 YS정권도, DJ정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와중에 기획된 SK 수사를 정권교체기라는 외부 환경과 분리해 생각할 수는 없다. 실제로 검찰은 SK 외에도 몇몇 그룹을 예비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그 효용과 파장에 대해 나름의 저울질을 했던 듯하다. SK에 대한 압수수색이 있던 2월17일, 검찰 고위관계자는 출입기자들에게 “다른 그룹들에 대해서도 변칙 증여나 상속, 부당 내부거래 사실이 있는지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살펴보는 단계이며 혐의가 포착되면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민감한 사안에 있어 ‘이후 수사’에 대한 정보를 미리 흘리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표적’ SK와 ‘선혜원 습격사건’
이와 관련 검찰 주변에서는 “1월 하순경 몇몇 그룹에 대한 검토 결과를 토대로 주 타깃을 정하는 회의가 있었다. 삼성그룹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회의가 끝난 몇 시간 후 SK그룹으로 방향이 전환됐다. 이즈음 SK의 불법행위에 대한 결정적 자료가 검찰 손에 쥐어졌다”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사실 여부를 묻자 이인규 부장은 “황당하다. 아주 무책임한 이야기다. 음해에 가까우며, 그런 회의는 열린 적도 없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SK에 대한 조사는 1월 말 현대상선의 대북 4000억원 지원 문제가 불거지면서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그 역시 형사9부 담당이었기 때문이다. 2월4일 현대상선 사건에 대한 수사 유보가 결정되면서 9부는 다시 SK 건으로 눈을 돌렸다. 비슷한 시기,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부회장인 강금실 변호사가 차기 법무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2월11일, SK에 대한 압수수색 방침이 확정됐다. 이부장이 직접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의 재가를 받았다. 김 총장은 “매우 흔쾌히” 압수수색을 허가해 주었다. 같은 달 17일 오전 10시, 30여 명의 수사관들이 서울 서린동 SK그룹 빌딩에 들이닥쳤다. 그 며칠 전 유승렬 전 그룹 구조조정본부장과 현직 구조본 임원 몇 명이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은 터였다. 그래서 당시 SK의 관심은 온통 ‘검찰이 최회장을 소환할 것인가’에만 맞춰져 있었다. 압수수색은 생각지도 않고 있다 검찰에 허를 찔린 것이다.
17일 언론은 일제히 검찰의 SK 압수수색 건을 톱 뉴스로 보도하면서, 대체로 ‘새 정부 재벌 개혁의 신호탄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을 곁들였다. 사건 당사자인 SK도 충격을 애써 털어내며 수사의 배경과 의도 파악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결론은 달랐다. ‘새 정부는 수사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통령 취임식을 코앞에 둔 시점에 재벌에 대한 전격적 수사가 이루어진 데 대해 당황 혹은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도 이인규 부장에게 “압수수색이 있던 날 여기저기 연락을 해봤다. 아무도 모르고 있더라.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압수수색이 있은 다음날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내정자)은 기자들을 만나 “새 정부와 전혀 상관없이 검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참여연대 고발사건에 대한 수사일 뿐, (검찰이) 다른 것을 기획해서 하는 것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사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은 바 없으며, 이는 대통령(당선자)도 마찬가지”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17일 압수수색이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이때만 해도 SK는 그렇게 호락호락 물러서지만은 않을 생각이었다. 법적으로 따져 아주 승산이 없지는 않다는 나름의 계산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월19일부터는 말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어떠한 항변도, 구명을 위한 적극적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손길승 회장은 한 술 더 떠 “젊은 검사들이 잘하고 있다”는 다소 낯뜨거운 격려의 말까지 덧붙였다. 검찰의 ‘선혜원 습격사건’ 때문이었다.
첫 압수수색이 있은 다음날, 수사팀은 ‘SK글로벌 측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서류를 밖으로 빼돌리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동처는 평소 연수원 겸 회의 장소로 쓰이던 서울 삼청동 ‘선혜원’. 19일 아침 10시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을 때, SK 창업주 고 최종건 회장의 사저였던 ‘선혜원’은 라면상자 100개 분(2.5t 트럭 분량)의 회계장부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막 파쇄기로 들어가려다 검찰 손에 넘어간 이 장부들로 인해 최태원 회장은 그룹 지배권 유지에 결정적 타격을 입게 됐다. SK글로벌의 분식회계 전모가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왜 하필 이 때, 왜 그러한 방식으로 SK 수사에 뛰어든 걸까. 여기에는 대강 4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수사 초기 일반적으로 이야기된 것은 ①현대상선 대북 지원 파동을 가라앉히기 위한 대체재 ②새 정권의 재벌 개혁 신호탄 ③노대통령의 ‘의중’을 헤아린 검찰의 ‘자진 납세’ 등 3가지다. 그러나 ①, ②의 경우 말 그대로 추측일 뿐이며, ③은 당시 이미 노대통령(당선자) 측과 검찰 사이에 상당한 긴장이 조성돼 있었음을 감안할 때, 부차적 이유는 될 수 있으되 결정적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 검찰 주변의 견해다. 그래서 제기된 것이 ④검찰의 ‘준법투쟁’이라는 시각이다.
압수수색이 벌어진 17일, 서울지검 평검사들은 ‘대통령의 검찰 불간섭 선언’ 등을 촉구하는 건의문을 작성, 당시 유창종 서울지검장을 통해 김각영 검찰총장에게 전달했다. 이는 인수위나 시민단체 등 외부의 일방적 잣대에 따라 검찰 개혁이 좌우되는 듯한 분위기에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인 동시에, 검찰 개혁을 추진중인 노대통령(당선자)에 대해서는 ‘집권 세력으로서 가질 수 있는 검찰 프리미엄’을 포기하라고 요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 전 총장 또한 이 개혁안에 대해 적극 수용의 뜻을 내비쳤다. 검찰 개혁론과 세대교체론에 대한 상-하의 공동대응적 성격마저 띤 듯했다.
사실 이렇듯 전례 없는 검찰의 새 정권에 대한 ‘반항’은 ‘강금실 법무부장관 카드’에 자극받은 면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강금실 장관 입각설이 구체화되면서 서울지검 주변 술집에는 이를 성토하는 검사들의 취중고성이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 만큼 검찰의 SK 수사에는, 다분히 “정치권 영향 안 받고 법대로 할 테니 두고 보라”는 식의 정서가 깔려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 ‘준법투쟁론’을 주장하는 이들의 분석이다. 또한 “지금도 얼마든지 정치적으로 독립해 고위공직자나 재벌기업 비리를 수사할 수 있다”는 과시의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 더 깊은 곳에는 “새 정권 측에서 먼저 정치적 독립을 강조하고 나선만큼, 수사 방향이나 규모 등에 대해 이런저런 간섭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을 법하다. “분위기 봐가며 살살 하라”는 식의 외압 행사는 도덕성과 개혁성을 무기로 하는 노무현 정권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실제로 ‘평검사-대통령의 공개토론’ 자리에서 불거져 나온 김진표 부총리, 이근영 전 금감위원장의 외압설로 인해, 새 정부는 집권 후 최초로 도덕성에 상처를 입을 위기에 처해 있다.
이른바 ‘준법투쟁론’에 대해 이인규 형사9부장은 “따지고 들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순수하게 최선을 다한 수사였지만 우연이 필연이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이 SK를 수사할 적기라고 판단했다. 경제 개혁과 검찰 독립이 무엇보다 중시되는 요즘 아닌가”라는 다소 애매한 답변을 했다. 그는 아울러 “이번 수사는 기업의 건전한 지배구조 확립과 회계 투명성 확보에 일대 전기가 될 것이다. 그런 성과는 외면한 채 음모론적 잣대만을 들이대는 외부의 냉소적 시각에 분노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신을 불러온 데는 검찰의 책임이 적지 않으니 감수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검찰이 흔들리면 법질서가 흔들린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의 눈부신 행보
그렇다면 왜 하필 SK였을까.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 고발당해 사정당국의 사정권 안에 들어 있는 재벌기업에는 SK 말고도 삼성·한화·두산 등이 있다. 이 중 시민단체가 가장 끈질기게, 가장 높은 목소리로 수사를 요구해온 기업은 삼성그룹. 서울지검에만도 곽노현 교수(방송대) 등 전국 법학과 교수 43명이 삼성 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 및 에버랜드 이사 전원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고발장이, 2년 9개월째 특수2부 검사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다.
그럼에도 SK가 ‘선택’된 것은, 내수산업 위주 기업이라 국내외 경제에 끼칠 파장이 상대적으로 작은 데다, 정치적·사회적 영향력 또한 뒤떨어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대해 이인규 부장은 “SK가 어디로 봐서 만만한 기업인가. 지금껏 어떤 검사가 그렇게 큰 재벌을 생짜로 친 적이 있느냐”며 ‘삼성 대신 SK 선택설’을 다시 한번 강하게 부인했다.
2월28일 상견례를 가진 새 정부 1기 경제팀. 왼쪽부터 박봉흠 기획예산처 장관, 윤진식 산자부 장관, 김진표 부총리,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 권오규 대통령 정책수석비서관
실제로 두 달 남짓 활동한 대통령직인수위는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다양한 자료 협조 및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경제팀에서 활동한 한 인사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동북아 경제 전문가인 P연구원과 함께 일했다. 비공식 파견 근무였던 셈이다. 또 삼성경제연구소로부터 동북아 프로젝트와 관련한 상당히 많은 양의 자료를 제공받았다”고 밝혔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인수위는 삼성경제연구소에 12대 국정 목표 설정 관련 프로젝트를 맡기려 했다. 해외에서는 미국 공화당계인 헤리티지재단과 민주당계인 CSIS, AEI(공공정책연구소) 등이 함께 작업을 하고 국내에서는 매킨지와 삼성경제연구소에 용역을 준다는 복안이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민간에 정책 연구를 맡기는 열린 모습을 보여주자는 취지로 추진한 것이었다. 내가 직접 그 쪽을 방문, 협의하고 연구계획서도 받았다. 그러나 2월 초 정식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취소하고 말았다. 주변 여론을 들어보니 부정적인 의견이 많더라. 관두자고 하니 그쪽에서 ‘참고나 하라’며 독자적으로 만든 안을 가져왔기에 받았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기용된 것 또한 삼성의 대 정부 채널 만들기와 무관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장관은 최고경영자 출신이 한 사람쯤 있으면 좋겠다는 노대통령의 뜻에 따라 10배수로 압축될 때부터 물망에 올랐다고 한다. 이를 안 삼성이 진대제 장관 만들기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풍문이다.
‘모피아 부활’과 외압설
참여연대 인사는 “새 정부 관료들이 삼성그룹을 사실상의 경제 정책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노대통령 개인에 대한 믿음은 그대로지만 대통령은 경제 전문가가 아니지 않은가”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또 그는 “검찰이 손대지 않겠다던 SK의 분식회계를 수사하는 걸 보고, 국민의 관심을 삼성과 관련 깊은 ‘배임’에서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물타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검찰에도 ‘삼성 유착’에 대한 혐의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참여연대는 지난 2월13일로 예정돼 있던 삼성전자 주주대표소송의 고법 판결이 미뤄진 경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삼성그룹에 관심이 옮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거의 ‘피해의식’에 가까울 정도의 이같은 반응들은 참여연대가 삼성그룹과 관료·사법 조직에 얼마나 큰 불신을 갖고 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사실 시민단체와 일군의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새 정부의 경제 개혁 의지에 대해 인수위 시절부터 의구심을 표명했다. “경제팀 구성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 주 이유였다. 개혁의 비전과 정책 방향을 정권 출범 후에도 힘있게 밀고 갈, 쉽게 말해 청와대나 내각의 요직에 진출할 인물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시민단체의 시각은 ‘대통령의 개혁 의지는 믿어 의심치 않으나 당과 재계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대통령에게 일관된 개혁성을 심어준 인사들을 중용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선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두 달여가 지난 지금, 분위기는 그 때보다 상당히 악화됐다. “재벌 개혁 의지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들은 SK수사와 관련한 노대통령과 경제 각료들의 발언 및 반응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속사정이야 어떻든 표면적으로는, 검찰이 빼든 재벌 개혁의 칼날을 대통령과 경제 각료가 나서 ‘속도 조절론’이나 ‘후속 수사는 없을 것’이라는 류의 발언, 전화·방문 등의 ‘외압’을 통해 무뎌지게 만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그 기저에는 재벌에 대한 부정·비리 조사가 우리 경제에 끼칠 영향에 대한시민단체와 정부 사이의 분명한 시각 차가 존재한다. 시민단체측은 그러한 시각 차의 주원인으로 ‘모피아의 부활’이라 할 만한 재경부 관료 출신 중심의 경제팀 구성을 들고 있다. ‘모피아’란 옛 재무부의 영문 약칭 MOF와 폭력조직인 ‘마피아’를 합성한 용어다.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과 남다른 결속력을 갖고 있는 ‘이너 서클’이라는 의미다.
지난 2월27일 단행된 새 정부 조각은 재경부 관료 출신들의 축제와 같았다. 정통 재경부 관료인 김진표씨가 재벌 개혁론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제치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됐다. 윤진식 재경부 차관은 산업자원부 장관에, 옛 재경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박봉흠 기획예산처 차관은 그 장관에,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출신인 이영탁 KTB네트워크 회장은 국무조정실장에 기용됐다.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도 기획예산처 출신이다. 경제 부처 가운데 비(非) 재경부 관료가 등용된 곳은 정보통신부와 해양수산부뿐이다. 재경부 인맥 중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속 차관급 인사에서 국세청장에 역시 재경부 출신인 이용섭 관세청장이, 관세청장에 김용덕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이 발탁됐다.
재계는 ‘안정형 내각’이라며 일제히 환영의 뜻을 비쳤지만 진보적 경제학자나 시민단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새 경제팀에서 개혁적 인사라 할만한 이는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과 허성관 해양수산부 장관뿐이다. 이 중 이정우 정책실장의 경우 김진표 부총리에 버금가는 권한과 무게로 안정-개혁 세력 간 이상적 투톱 체제를 이룬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정 속도조절론의 이면
애초 이정우 실장은 청와대 입성 제의를 완강히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청와대 내에서 정책실장과 호흡을 맞출 정책수석과 경제보좌관마저 각기 관료 출신과 친(親) 관료 인사로 진용이 짜여진 상태였다. 권오규 정책수석은 재경부 차관보 출신으로, 재직 당시 삼성경제연구소의 도움을 받아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계획을 입안한 인물이다. 조윤제 경제보좌관은 보수 성향의 경제학자로 조세연구원 부원장을 지냈다. 정책수석실 산하 비서관 3명 중 2명이 이미 내정된 상태였으며 그 밑의 행정관 30여 명도 대부분 인선이 끝난 다음이었다. 결국 이정우 실장이 직접 선택해 호흡을 맞출 수 있는 수하는 비서관 1명, 행정관 4~5명 선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참여연대는 조각 발표 당일 성명을 통해 “이러한 경제각료 인선은 노무현 정권이 대선 당시부터 약속한 재벌개혁 및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 확립 의지의 후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이렇듯 새 정권의 재벌개혁 의지에 의문이 제기될 즈음 SK 사건이 터졌다. 우선 참여연대는 검찰이 다분히 정치적 계산이 엿보이는 기획 수사를 진행하면서 ‘참여연대 고발’을 명분으로 내세운 것에 다소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어 제기된 문제가 “왜 다른 그룹도 아닌 SK냐”였다. 그러나 이것이 “SK는 수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재벌그룹의 유사한 사안에 대해서도 똑같은 잣대의 강도 높은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여연대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 같은 요구를 담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SK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노대통령과 정부·여당은 수사와 관련한 다양한 반응을 쏟아 냈다. 노대통령(당선자)은 취임식 3일 전인 2월2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재벌개혁이) 어떤 정치적 의도나 기획에 의해 이뤄진다면 개혁에 도움이 되지 않고 성공할 수도 없다”며 “나는 기획해서 본때를 보여주자는 식의 개혁을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위를 쳐다보지 말고 소신껏 수사하되 미뤄왔던 사건 등을 일시에 쏟아놓거나 기획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검찰의 ‘정치적 계산’에 대한 경고인 동시에 불안에 떠는 재계를 향한 ‘달래기’의 성격을 갖는 것이었다.
노대통령은, 2월26일 열린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 회의 자리에서도 “잘못한 것은 원칙을 세워 분명하게 바로잡되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냉정해야 한다”며 “사정 활동의 속도 조절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 국민이 불안감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으로는 “특히 인신 구속의 경우 국민감정의 해소 차원이라는 인식을 갖게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검찰의 최태원 회장 구속 수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나온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SK수사가 막바지에 다다른 지난 3월9일, ‘평검사-대통령 공개토론’이 열렸다. 형사9부에서 직접 SK 수사를 담당했던(2월20일 인천지검 발령) 이석환 검사는 이 자리에서 “변호인이 아닌 외부인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다. 여당 중진 인사도 있고 정부 고위 인사도 있다”며 “혹자는 ‘다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했는데 이는 결국 인사를 통해 날려버리겠다는 것 아니겠느냐”는 발언을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튿날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이 김각영 당시 검찰총장에게 전화를 한 사실이 있음을 시인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이근영 당시 금감위원장이 김총장을 만나 SK수사 결과 발표를 연기해달라는 요청을 했음도 확인됐다. ‘외압’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12일 노대통령은 “나라의 경제 흐름을 책임지는 사람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수사 결과) 발표 시기에 대해 검찰 책임자와 협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부총리 옹호는 더 큰 비판을 불러왔다. 아울러 검찰 고위 관계자가 “수사 연기 요청이 아닌, 사실상 분식회계를 덮어달라는 요구였다”고 주장하면서 외압설 파문은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시민단체들로부터 ‘개혁 대상’으로 지목받아온 이근영 금감위원장이 사표를 제출했다. 그 후임을 놓고 재계와 시민단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금감위원장은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재벌 개혁의 최일선에 설 개혁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금감위원장 인선에 앞서 이루어진 공정거래위원장 인선에선 강철구 부패방지위원장이 등용됐다. 신임 강 위원장은 경실련 창설 멤버로 비교적 개혁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다.
금감위원장 인선과 관련해서는 인수위 시절부터 꾸준히 하마평에 오르내리던 인물들이 있었다. 대통령의 개혁파 측근들은 장하성 고려대 교수를, 당료들은 유지창 금감위 부위원장을, 경제 관료들은 이윤재 전 청와대 재경비서관을 추천했다. 특히 장하성 교수는 “정권에 참여할 뜻이 없다”는 본인의 거듭된 의사표현에도 불구하고 개혁 세력의 ‘와일드 카드’이자 노정권의 재벌 개혁 과업을 완수할 ‘파워맨’으로 관심의 초점이 돼왔다. 만약 장교수가 입각 제의를 받는다면 노정권의 재벌 개혁 의지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 시민단체는 물론 재계 안팎의 판단이었다.
이번 금감위원장 인선에서도 이정우 정책실장을 중심으로 한 개혁 측근들은 권력 핵심부에 수차례에 걸쳐 장하성 교수 중용을 요청했다. 그러나 “너무 부담스럽다, 큰일 낼 사람 아니냐”는 부정적 평가가 이어지면서 무산되고 말았다. 애초 “장교수를 밀되 반발이 크면 한 발짝 물러나 이동걸 전 인수위 위원을 천거한다”는 계획이 있었으나 역시 불발됐다. 대신 김진표 부총리를 비롯한 경제 관료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 이들 또한 처음에는 이윤재 전 비서관을 밀었으나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이정재 전 재정경제부 차관을 천거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대통령이 이정재 카드를 선택함으로써 결국 금감위원장도 재경부 출신 관료의 몫으로 돌아갔다.
“노정권 재벌개혁 의지 의심”
금감위원장 인선 후에도 정부에서는 속도조절론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노대통령은 지난 3월11일 재정경제부 업무보고에서 “시장개혁은 결코 포기하지 않겠으며 반드시, 지속적으로 하겠다”고 거듭 개혁 의지를 밝히면서도 “그러나 방법은 시장친화적으로, 가장 효율성있게 하겠다. 적극적으로 개혁하려는 기업이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갈 것”이라고 해 완급 조절의 뜻을 비쳤다. 공정거래위원회 강철규 위원장도 이날 “대내외 경제여건을 고려해 개혁 속도와 수준을 조절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모두 “개혁을 하긴 하겠지만 상황을 봐가면서 하겠다, 상황이 중요하다”는‘경제상황론’에 입각한 발언들이다.
고건 총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고총리는 3월12일 경제단체장 초청 간담회에서 강철규 공정거래위원장의 ‘속도조절론에 입각한 부당내부거래 조사’조차도 ‘미-이라크 전쟁 및 북핵문제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이 얼마간 해소된 이후로’ 미루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총리의 부당내부거래 조사 연기 방침은 청와대, 재경부 등과 사전 조율을 거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경제상황론에 밀려서는 어떤 개혁도 할 수 없다”며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기류와 관련, 주목할 만한 글 한 꼭지가 있다.
대선 전인 지난해 11월, 장하성 교수가 한국일보에 기고한 ‘노후보의 개혁성에 대한 의문’이라는 시론이다. 장교수는 이 글에서 ‘대선후보 주요 주자 세 사람 중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경제정책이 가장 개혁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현대상선 대출 문제,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 건, 공적자금 문제 등 경제 현안에 침묵을 지키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중대 현안에 대한 침묵이 그의 개혁 의지를 의심케 한다’는 것이다. 이어 장교수는 ‘노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 흔들기라는) 현실정치의 어려움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면 그의 개혁 의지는 더욱 의심받아야 한다. 정치는 끝없는 ‘현실’이고 ‘현실’의 껍질을 깨고 미래로 나가는 것이 개혁이기 때문이다. ‘현실’ 때문에 지금 못하는 것을 나중에 실천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바로 당선 후 ‘경제상황론’으로 경도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문제제기였다.
시장 개혁·재벌 개혁의 상징으로 통하는 장하성 교수가 노대통령의 경제 개혁 의지에 대해 당선 전부터 일말의 의구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장교수는 대선 기간중 공공연히 노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새 정부의 경제 개혁 추진이 지지부진할 경우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정부를 강하게 압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취임 초기에 이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는 사회 전반의 개혁을 기치로 내걸어 당선된 노대통령에게, 정국운영 측면은 물론 정치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노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발판으로 ‘어떤 시각’을 선택하느냐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노대통령의 ‘정치적 눈높이’가 PK 정서에 머물러 있다는 정가의 입소문은 여러 가지를 생각케 한다.
“SK 안됐지만…” 한시름 놓은 재계
한편 대통령과 경제 각료의 입에서 유화 발언이 잇따르자 재계는 비로소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다. 집단소송제 등 법제화와 관련한 ‘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지만 총선 전까지는 어떤 이유로든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SK그룹에는 안됐지만 이번 수사가 오히려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며 숨어서 웃는 분위기다.
한편 이러한 기류에 대해 국민의정부 첫 경제수석을 지낸 김태동 금융통화위원은 한 심포지엄에서 “최근 고조되는 경제 위기론은 상당부분 허구이며, 반개혁 세력에 SK사태는 오히려 호재”라는 주장을 내놓아 관심을 모았다. 그는 새 정부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로 “기업 총수 패밀리 경영 문제와 (재벌이 지배한) 제2금융권 개혁 문제, 여당 국회의원까지 (개혁의) 발목을 잡는 현실”을 제시하며 “중요한 것은 통치자의 의식구조와 의지”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실제 인수위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여당) 당료와 관료가 거의 한 몸이 돼 움직이고 있다”며 “개혁파 친위 세력의 역할과 영향력이 급속도로 축소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말을 했다.
참여연대의 한 핵심인사는 “법제화가 필요한 중장기적 과제 해결을 지금 당장 요구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취임 초기 6개월에서 1년 내에 대통령이 확실한 개혁 철학을 보여줘야 한다. 엄정한 수사를 통한 재벌 비리 척결이 그 지름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기존의 법과 제도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효율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그러나 이러한 과제를 대통령이나 정부, 검찰에만 미뤄놓을 수는 없다. 경제 문제 해결은 피해를 본 당사자가 직접 문제제기를 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민단체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경제가 위축되고 불안심리가 높아질지 모르지만 기업 투명성 확보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다. 오히려 올 하반기 혹은 내년 상반기까지 질질 끌어 문제를 확대시키는 것보다는 SK 수사가 진행된 지금 함께 물꼬를 트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참여연대측은 SK 수사가 일단락된 지금 검찰이 또 자체적 판단에 따라 다른 재벌을 수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인사 파동을 거치면서 사실상 새 정권에 ‘꽉 잡히게’ 된 까닭이다.
“삼성이란 ‘말’, 안 탈 수 없을 것”
실제로 서영제 신임 서울지검장은 지난 3월13일 취임사에서 “어떻게 하면 경제 발전과 국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검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라고 자문한 뒤 “단순히 범죄 혐의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단세포적인 사고에 매달리기보다 국가의 균형적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사항을 검토해 검찰권을 행사하는, 입체적이고 종합적인 사고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경제를 생각하는 수사’ 쪽으로 검찰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삼성그룹 등 서울지검에 걸려 있는 대기업 관련 수사는 당분간 유보될 전망이다.
그러나 참여연대는 “정부건 검찰이건 재벌, 그 중에서도 삼성이라는 ‘말’을 타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의 가장 안정적인 파트너로 인식돼 온 시민단체가 재벌·시장 개혁 문제를 둘러싸고 새 정부와 어떤 각을 형성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