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식시장의 ‘꽃’이라는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그들은 객관과 주관, 직관의 세계에서 날마다 숨 막히는 승부에 직을 건다. 객관적으로 알려진 정보는 누구나 아는 것. 결국 자기만의 분석과 정보만이 ‘스타’를 만든다. 문제는 투자철학과 진정성 없이 부나방처럼 이윤만 좇다 투자자를 나락의 길로 빠뜨리는 이들이다. 이번 호에서 ‘시골의사’는 지난 1월 폭락장세에서 극심한 타격을 입은 한 대형 펀드에 메스를 댄다.
자료 분석의 ‘컨센서스’
국책연구소나 일반 경제연구소 연구원도 하는 일은 대동소이하지만, 그들은 국가 경제정책이나 기업 전략에 필요한 자료들을 가공한다는 점에서 분석의 목적이 다르다. 물가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면 국책연구소는 인플레이션 예방을 위한 금리인상 가능성을 타진하고 그것이 경제 성장에 미칠 영향을 분석한다. 민간연구소는 금리인상의 여파가 소비에 미칠 영향을 검토하고 기업의 대응 전략을 모색한다. 하지만 증권사의 애널리스트(이코노미스트)는 시중 유동성이 감소함으로써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미칠 영향을 체크하는 것이 주 임무다. 같은 칼인데 용도가 다르다.
애널리스트는 여러 섹터에서 일한다. 업종이나 기업별로 각자 담당분야가 있어 해당 섹터의 현황과 전망을 분석한다. 업종별, 산업별 전망치를 추측하고 개별기업의 실적과 현황을 예측하는 게 주업인데, 이들이 근거로 삼는 자료는 다양하다. 국가기관의 공식 연구자료, 기업의 공정 공시 내용, 외국의 동일업종 기업 자료, 기업 탐방을 통해 수집한 개별 자료 등을 버무려서 자신이 담당한 섹터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 판단한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마다 현재에 대한 판단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예측도 다르다. 어느 애널리스트가 ‘반도체 가격이 지나치게 하락해서 반도체 업계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전망을 내면 다른 애널리스트는 ‘그렇기 때문에 자금력이 떨어지는 업체는 어려움을 겪겠지만 삼성전자처럼 시장지배력이 있는 회사는 오히려 좋아질 것이다’라는 상반된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같은 자료를 두고도 해석이 다르고 업황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애널리스트는 경제지표에 대한 계량분석 능력뿐 아니라 경험도 풍부해야 하며, 아울러 기업을 탐방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필요한 폭넓은 인맥과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
애널리스트의 힘과 한계
하지만 이런 자료들은 대개 ‘컨센서스’라는 이름으로 평준화가 이뤄진다.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면 같은 자료에서 전혀 딴판인 견해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반도체 현물가가 5달러에서 3달러로 하락했는데 ‘업황이 좋다’고 해석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기업들도 이 애널리스트에게는 실적이 좋다고 하고 저 애널리스트에겐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대개 엇비슷하다.
애널리스트에게 삼성전자의 다음 분기 영업이익 예상치를 물어보면 대부분 ‘1조~1조2000억원’에서 답이 일치한다. 5000억원, 혹은 2조원이라고 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언론매체는 애널리스트들의 이런 의견을 모아 현재 삼성전자의 영업실적 예상치는 ‘1조1000억원이 컨센서스’라고 기사화한다.
그런데 주가 전망치는 편차가 꽤 심하다. 기업 실적이 주가의 변동과 1대 1로 대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한 기업의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당장의 실적 외에도 미래 가능성, 수급, 시장상황, 투자자의 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애널리스트는 다들 알고 있는 정보에 자신의 직관 등을 담아 주가 전망치를 발표한다. 주관의 영역과 객관의 영역이 공존하는 셈이다.
실적이 20%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는 기업이 있다 치자. 어떤 애널리스트는 즉각 주가 목표치 역시 20% 올려 잡지만, 그 20%가 이 기업 실적 개선의 최고점이라고 여기고 오히려 주가 목표치를 낮추는 애널리스트도 있다. 기업의 경영진이 그릇된 판단을 내릴 경우 주가 목표치를 어느 정도까지 할인해야 할지도 고민이다. 그래서 애널리스트마다 목표치는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다시 말해 주가 목표치는 애널리스트가 객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의한 것과 그것에 다시 주관적 요인이 감안된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전자는 차이가 거의 없고 후자는 차이가 크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 차이는 애널리스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결정적 잣대가 된다. 결국 이런 예상치가 얼마나 실제와 들어맞느냐에 따라 ‘스타 애널리스트’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이런 사정 때문에 애널리스트가 받는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나치게 주관성을 부여해 다른 사람의 예측과 거리가 있는 예측치를 내놓았을 때, 그것이 맞으면 스타가 되지만 틀리면 업계에서 회복하기 힘든 오점을 남긴다.
그래도 기본 근거는 PER
그래서 요즘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은 애널리스트의 예측치를 통일화하는 주가예측 모델을 선호한다. 너무 튀는 전망을 했다가 틀리면 리서치센터 전체의 신뢰성에 금이 가기 때문이다. 리서치센터장의 기능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리서치센터장은 소속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을 모아 통일화, 균질화하고, 여기에 자신의 철학을 더해 예측치를 발표한다.
한 기업의 주가를 주당 수익(EPS)으로 나눈 주가수익배율(PER)을 보자. PER은 해당 기업의 주가가 이익에 비해 적정한지를 살피는 도구다. 가령 PER이 10이라는 것은 이 기업에 투자하면(주식을 사면) 투자한 돈(매수한 주가)을 10년 만에 뽑을 수 있다는 의미다. 즉 본전을 뽑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뜻. 물론 여기서 ‘본전을 뽑는다’는 것은 배당만으로 10년 만에 본전을 뽑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업이 낸 이익은 배당이 될 수도 있지만 재투자되거나 새로운 투자를 위해 기업 내부에 쌓아두는(유보)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가의 적정성을 평가할 때 1차적 기준이 되는 것은 PER이다. 건물을 살 때도 임대수익률이 우선이고, 식당에 투자할 때도 얼마 만에 본전을 뽑을 수 있느냐가 투자 기준점이 되듯 주가 또한 마찬가지다.
어쨌든 PER=주가/EPS이니 주가=EPS×PER이 될 것이고, PER을 얼마로 정하느냐에 따라 예상 주가가 달라진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때 어떤 애널리스트는 적정 PER을 10(2008년 1월말 국내 기업 전체 PER)으로 잡고, 다른 애널리스트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비슷한 PER인 13~15가 적당하다고 볼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애널리스트는 우리도 곧 선진국 수준에 이를 것이라 여기고 15 이상이 적당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리서치센터장이 우리 과거 증시와 비교해 적정 주가를 찾는 게 옳다고 여겨 다른 나라는 무시하고 우리나라 주가지수의 PER 변동폭인 6~15 사이에서 금리와 비교한 적정선을 찾는 게 좋겠다고 기준을 제시하면 그 리서치센터의 PER 기준 목표치는 그것을 근거로 정해진다. 투자자들은 이런 다양한 의견 중에서 어느 것을 취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대개는 공신력 있는 리서치센터에서 발표한 의견을 모아 나름대로 공감할 수 있는 수준(컨센서스)을 정하고 그것을 참고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물론 PER은 수많은 잣대 중에서 가장 초보적이고 일차적인 것이며, 실제로 각 애널리스트가 내놓은 자료들에는 그것말고도 수백 가지 다양한 변수와 잣대가 반영된다. 애널리스트의 책임은 여기까지다. 이들의 주 임무는 ‘기업의 실적과 성장성을 파악하고, 주가 대비 적정 수준을 평가하는 것’일 뿐이다.
이들이 내놓은 자료는 펀드매니저나 일반 투자자가 주식을 매수, 매도하는 데 자료로 이용된다. 대개 신뢰할 만한 증권사의 리포트는 펀드매니저의 책상 위에 올라가고, 외국계 투자자가 한국 기업에 투자하고 싶을 때 어느 증권사와 거래할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즉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제도권과 사이버
국내 한 증권사의 펀드매니저 집단회의.
이들은 대개 증권정보 사이트나 증권전문 방송 등에서 자기 의견을 판다. 제도권 애널리스트가 만든 자료는 리서치센터에 제공되고 애널리스트는 그 대가로 소속 증권사에서 월급을 받지만,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정보는 대개 개인 대 개인(P to P) 거래의 성격을 띤다. 이들은 오랜 경험이나 자신이 만들어낸 주가 예측 모델을 기준으로 기업이나 업종에 대한 의견을 제공한다. 이들의 수익은 주로 인터넷, 080 전화 서비스를 이용한 유료회원 모집이나 증권정보 사이트의 원고료 혹은 강연회 수입 등에서 나온다.
이들 중에는 나름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꽤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 정보의 질이 고르지 않다. 특정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정보를 파는 업종의 성격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그 점이 바로 불신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이 데뷔하는 경로에 문제가 많다. 어느 날 증권정보 사이트에 ‘증권전문가’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대체 어떤 경험과 신뢰성을 지닌 사람인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정보를 구입하는 사람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이런 사람들이 활동할 공간이 열려 있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제도권이 반성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1999년은 국내 증권시장의 빅뱅 시기였다. 당시는 제도권도, 사이버도 기본에서 벗어나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1년에 1억, 2억원도 못 버는 회사의 시가총액이 1조원에 육박해도 “신(新)경제는 다르다”며 2, 3배 이상의 주가 상승 전망을 내놓았다. 절벽(2000년의 성장주 몰락)이 코앞에 있는데도 달리는 마차에 올라타라고 부추기는 행태는 제도권과 사이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뿐 아니다. 2000년 주식시장이 한없이 추락하는 와중에도 마치 고장난 시계가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것을 증명하듯, 제도권 애널리스트들은 늘 낙관론에 서 있었다. 아무도 투자자의 편에 서서 위험을 경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한 제도권에 대한 불신이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활동할 공간을 넓혀준 것이다.
간접투자 문화가 정착하고, 제도권 보고서들이 나름대로 기업의 가치에 좀더 몰두하면서 최근 2, 3년간은 제도권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에 따라 사이버 애널리스트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할 무렵인 2008년 벽두의 증시 폭락은 투자자에게 또 한번 제도권에 불신을 품게 했다. 그 결과는 ‘사이버’들의 활동공간을 다시 넓혀주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자기 판단 중시하는 펀드매니저
건전한 투자자의 처지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의 능력 여부를 차치하고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방대한 인력과 축적된 자료, 그리고 노하우는 개인이 따라잡을 수 없는 인프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다수 사이버 애널리스트가 의지하는 기술적 분석이라는 도구는 경우에 따라서 ‘양날의 검’이 되는 위험한 잣대다. 따라서 건전한 투자자들은 웬만하면 ‘미워도 다시 한번’ 제도권 애널리스트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편이 낫다.
증권업계의 진짜 꽃은 애널리스트가 아니라 펀드매니저다. 자산운용사에서 이른바 ‘운용역’이라 불리는 사람들. 아무리 스타 애널리스트라 해도 연봉이 2억, 3억원을 넘는 경우는 드물지만 운용역, 즉 펀드매니저는 실적과 능력에 따라 그야말로 무한의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이들은 펀드에서 주식을 실제로 사고파는 사람이다.
지난 1월말 코스피지수 1600선 아래로 폭락한 증시.
특히 이들 사이엔 ‘방화벽’이라는 장치가 있어 서로 의견을 주고받을 수 없게 돼 있다. 펀드매니저끼리도 그렇고,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사이도 그렇다. 일반인들은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이 제도는 정말 필요하다. 특정기업의 주가를 조작하거나 심지어는 둘이서 짜고 정직하지 못한 행위를 할 개연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어디까지나 공개된 자료를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 외국계 펀드매니저는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털어놓았다. 펀드에 모 제과회사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던 이 펀드매니저는 현시점에서 해당 기업의 실적과 미래를 알고 싶어 회사에 방문을 통보했다. 오래전에 그 기업 주식을 많이 사뒀지만 주가의 움직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기업을 방문해 기업의 상황이 나빠 보이면 보유지분을 매각할 참이었다. 하지만 그가 기업을 방문했을 때 그를 맞은 사람은 홍보를 담당하는 대리급 직원 한 명뿐이었다. 이 펀드가 해당회사의 2대 주주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문전박대를 당한 셈.
하지만 홍보담당자의 말을 들은 그는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부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원료를 구하기 위해 벌써 일주일째 출장을 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밀가루와 전당의 수급상황이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기업 경영진이 원료를 더 확보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소식이었다. 더구나 기업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었다면 회사는 이를 감추기 위해 펀드매니저의 방문에 대비하고 있을 터였다. 그는 회사를 나오는 길에 수위실에 들러 수위에게 말을 걸었다.
“요즘 회사에 차량 출입이 많나요?”
그가 누군지 알 길이 없는 수위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아이고, 몇 달 사이에 납품차량이 얼마나 들락거리는지 정신이 없어. 그 뭐야, ○○○하고 △△△라는 과자가 그렇게 잘 팔린다지? 내가 먹어보니 맛이 영 아니더만….”
그는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그 기업의 지분을 크게 늘렸다. 그리고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그 기업에서 상당한 이익을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펀드매니저는 계량화된 자료보다 자신의 판단을 대단히 중시한다. 그래서 펀드는 운용하는 사람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 만약 펀드매니저가 애널리스트의 실적보고서만 믿고 투자한다면 모든 펀드의 매입종목과 실적이 비슷할 것이다.
펀드의 안전판 ‘벤치마크’ ‘베타계수’
펀드매니저의 스트레스도 거의 초주검 수준이라고 한다. 애널리스트의 성과는 나름대로 컨센서스의 연관관계 속에 존재하지만, 펀드매니저의 성과는 펀드의 성과와 직결된다. 애널리스트 보고서는 활용하는 사람의 몫이지만, 운용 성과는 펀드의 수익률에 따라 수능 점수처럼 정확히 매겨진다. 더구나 운용회사의 처지에서는 펀드매니저의 주관적 판단이 때로는 독배가 될 수 있다. 결과가 좋으면 문제가 없지만, 펀드매니저의 주관에 의해 결과가 나빠지면 회사의 존망이 갈릴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운용사는 기준을 세운다. 각 펀드매니저가 책임질 수 있는 한계(운용금액 한도)를 설정하고, 회사의 철학에 따른 운영 잣대를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눈앞에 성과가 보여도 그 기준을 벗어나면 매매가 금지된다. 또한 펀드매니저끼리 의견을 교환하고 운용사의 기준을 세워 주관보다는 객관을 중시하는 장치를 두게 된다. 주관을 중시하려는 펀드매니저와 그것을 견제하려는 운용사 간에 접점을 만드는 작업인 셈이다. 펀드매니저의 개인재산이라면 결과에 스스로 책임을 지면 되지만, 수많은 투자자의 귀한 자산을 맡고 있는 처지에선 무엇보다 안정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기준이 ‘벤치마크’다. 주식시장에서 만들어진 여러 가지 기준 지수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시장에선 종합주가지수로 알려진 코스피가 중요한 기준이고, 세계적으로는 FTSE, MSCI 지수 등이 있다. 하지만 더 세분하면 국가나 업종, 섹터에 따라 수 백 가지의 기준이 있다.
우리나라의 코스피 200에는 한국시장의 대표종목 200개가 시가총액 비율로 포함돼 있다. 만약 펀드가 코스피를 벤치마크로 삼을 경우에는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차, 현대중공업과 같은 우량 종목을 주로 편입하되 비율은 주관에 의해 달리할 수 있다. 이밖에 중소형 종목들도 비율에 따라 조금씩 편입하지만 코스피 내의 비율에 비해 터무니없는 비율을 담진 않는다. 이 펀드의 성과는 ‘코스피 대비 30% 초과수익 달성’과 같은 형태로 표시된다. 이는 코스피 해당 종목을 원래의 비중대로 고스란히 담을 경우(인덱스펀드) 60%의 이익이 났지만, 펀드매니저가 그 비율을 잘 조절해서 90%의 이익이 났다는 의미다. 물론 비율 조절이 잘못되면 ‘코스피 대비 30% 초과 손실’도 가능하다.
펀드 안정성의 두 번째 기준은 ‘베타계수’다. 베타계수는 흔히 ‘변동성 계수’라고 부르는데, 예컨대 오를 때는 크게 오르지만 내릴 때는 크게 내릴 경우 ‘베타가 크다’라고 한다. 공격적 성향의 펀드매니저는 경기 민감주인 고(高)베타 종목을 많이 편입해 높은 수익률을 내려 하지만 일이 잘못되면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매니저의 이런 성향을 억제하는 것도 운용사와 펀드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따라서 베타가 각기 다른 종목들에 분산 투자해 위험에 대비하는 게 중요하다. 경험이 풍부한 글로벌 펀드일수록, 또 신뢰도가 높고 역사가 오랜 펀드일수록 이런 장치들이 잘 갖춰져 있다. 이런 펀드는 펀드매니저의 영웅심리를 효과적으로 견제해 안정성을 확보한다.
펀드 100년사(史)를 돌아보면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주식시장의 평균 상승률을 넘는 수익을 올린 펀드가 채 10%도 안 된다. 이는 펀드매니저의 과도한 주관적 선택에 따라, 혹은 변동성이 큰 종목군으로 펀드를 조합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오죽하면 원숭이와 펀드매니저의 모의투자 대결에서 원숭이(다트를 던져 종목을 골랐다)가 이겼겠는가.
‘몰빵 펀드’의 진실
그래서 펀드 투자자들은 펀드와 펀드매니저의 철학을 잘 살펴 투자해야 한다. 상승장에서 일부 펀드가 지나치게 앞서나가면 그 펀드는 소위 ‘몰빵 펀드’거나 변동성이 큰 종목들로 구성돼 안정성이 낮을 수 있고, 반대로 어떤 펀드가 하락장에서도 잘 버틴다면 그 펀드는 지나치게 방어주로 구성돼 상승 국면에선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지난 1월 주가 급락 때 손실이 유독 컸던 일부 펀드나 지난해 말 한 달 만에 4조원의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며 화제가 된 모 펀드의 종목 구성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우선 4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은 펀드를 분석해보자. 이 펀드는 모집 당시 공식적으로 “MSCI AC World Index 지수를 벤치마킹한다”고 발표했다. ‘MSCI AC World Index’ 지수는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발표하는 세계주가지수로 ‘Morgan Stanley Capital International’의 약자이며 49개국 증시에 대한 투자 비중을 배분해놓은 지수다.
이 지수는 49개국의 주식 모두를 대상으로 하지 않고 그 나라의 대표종목을 골라서 편입하는데, 약 4조달러를 운용하는 전세계 자산운용사들이 각국 자산에 투자할 때 그 비중을 조절하는 참고 기준이 된다. 한국이 MSCI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46%라는 의미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투자하는 펀드매니저가 자신이 운용하는 자산 중 0.5% 정도만 한국에 배분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증시에서도 MSCI 지수에 신규 편입되는 종목이 더러 발표되면 그 종목의 주가는 대부분 상승한다. 이는 글로벌 펀드매니저가 우리나라에 할당된 0.5% 안팎의 비중 안에 그 종목을 포함시킨다는 뜻이므로 이 종목에는 외국계의 신규 매수세가 기대된다. 이 지수는 비중이 1%만 올라도 350억달러의 자금유입 효과가 있을 만큼 글로벌 투자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 지수가 갖는 영향력은 크다.
그렇다면 MSCI 지수를 벤치마크로 삼겠다는 이 펀드는 최소한 이 기준을 참고는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 펀드의 운용보고서에 따르면 놀랍게도 중국과 인도 증시에 50% 가까운 자산을 쏟아 부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벤치마크로 삼는다’는 표현이 ‘그것을 전적으로 따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래도 헤지펀드가 아닌 이상 어느 정도의 참고와 자산배분은 있지 않았겠느냐고 생각한 많은 투자자는 황당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펀드의 철학과 진정성
이 펀드는 최근 전세계 지수가 15~ 20% 하락하는 동안 그보다 더 큰 손실을 기록했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베타(변동성)로 설명된다. 이 펀드는 신흥시장에 거의 ‘몰빵’한 수준이었기에 시장 하락시점에 손실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다. 펀드매니저의 판단에 따라 이후 다른 나라의 편입 비중이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선 애초부터 MSCI 세계지수가 아니라 ‘일본을 제외한 MSCI 아시아 지수(The MSCI AC Far East Free ex Japan index)’나 ‘아시아, 중남미 등의 신흥시장 대상 지수(MSCI EMF, Emer -ging Market Free Index)’를 추종한다고 했어야 옳다.
더구나 이 펀드를 출시한 운용사 CEO는 기자 간담회에서 “몰빵 펀드가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는 질문에 대해 “왜 그렇게 알려졌는지 모르겠다. 이 펀드의 투자전략이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텐데, 이 펀드는 자산배분을 기본으로 한다. 몰빵 펀드란 일본, 중국 등 한 지역에 넣는 것이다. 자산을 배분하고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지역에 대한 고민을 그만큼 덜 수 있다. 또 우리는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 투자의 기본은 리스크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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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은 운용 초기단계이기 때문에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럴 바에야 차라리 기존의 ‘브릭스 펀드’나 ‘신흥시장 펀드’에 가입하면 될 텐데 굳이 최고가의 수수료를 물어가면서 왜 이 펀드에 가입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비판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듯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 그리고 그 주변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펀드와 운용사의 관계는 고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런 관계는 실시간으로 투자자들의 자산을 큰 기회로 혹은 극단적인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투자자들은 이런 경험을 통해 이들의 철학과 스타일, 그리고 진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당장의 성과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종국에는 그런 과정을 거치며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얻은 애널리스트, 펀드매니저, 운용사, 증권사만이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만이 덩치를 키우며 한국 금융시장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