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커피전문점 ‘스타벅스(Starbucks)’의 본산인 미국 시애틀. 이 도시를‘별 가루’처럼 뒤덮고 있는 건 스타벅스 매장만이 아니다. ‘시애틀 기후행동계획(Seattle Climate Action NOW)’. 시애틀시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지구온난화 방지 환경 캠페인은 이 고급스러운 도시의 새로운 가치가 되고 있다.
미국 시애틀 도심.
시애틀의 인구는 56만여 명(2000년)이다. 벨뷰, 에버렛 등 주변 위성도시를 합쳐도 200여만명으로 인구밀집지역인 캘리포니아나 동부와는 멀리 떨어져 있다. 내수 시장이 작고 고립되어 있다는 건 성장의 단점요인이다. 엘리엇만을 따라 길쭉하게 형성된 도시 구조도 불리한 점이다. 출퇴근 시간 도심과 위성도시들을 잇는 고속도로에선 차량이 밀린다.
친환경이 도시 미래 결정
그럼에도 옛 인디언 추장의 이름을 딴 이 중급 규모의 도시는 세계적 도시의 명성을 얻고 있다. 고품격 문화 아이콘들로 ‘상징’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근거로 성장한 세계 최대 항공사인 ‘보잉’, 세계 최대 IT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인 ‘아마존닷컴’,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인 ‘스타벅스’, 그리고 인류가 인터넷 시대로 들어섰음을 알려준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특색 있는 다운타운 풍광은 시애틀이라는 도시 브랜드를 드높였다.
그렉 니컬스 시장(중앙 양복 입은 사람)과 시애틀 시민들이 ‘기후행동계획’에 적극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있다.
그런데 수년 전부터 전세계의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로 인해 도시의 트렌드도 바뀌고 있다. 친환경이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맑음, 차가움, 녹색은 도시를 멋있고 쾌적한 곳으로 만드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시애틀은 세계 주요 도시 중 가장 발빠른 결단을 내렸다. 강력한 친환경 정책을 펴며 ‘그린 시대(Geen Era)’의 주역이 되려 하고 있다.
시애틀 인근의 한인(韓人)밀집지역인 페더럴웨이(Federal Way)에서 만난 재미교포 성유영(50)씨는 “시애틀은 여름철에 선선한데 지난 여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동안 푹푹 찌는 날씨가 이어졌다”며 “환경문제는 이 도시가 당면한 최대 위기 중 하나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위기는 생존의 필수품인 ‘물’에서부터 찾아왔다. 시애틀의 발전은 물 문제와 직결돼 있었다. 지난 30년 동안 물 사용 효율을 높여 인구를 25% 늘렸다. 강에서 식수를 얻는 우리나라의 관점에서는 신기하게 보이는 일이지만 인근 카사드산의 스노 팩(snow pack·들판을 덮고 있는 눈 덩어리)이 시애틀의 식수원이다. 또한 이 산의 눈은 수력발전으로 이 도시에 막대한 양의 전기를 공급해왔다. 덕분에 시애틀 의회는 1970년대 원자력발전소 설치를 막았다.
눈 녹아 식수원 고갈 위기
그런데 수년 전 “카사드산의 스노 팩이 줄어들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서가 공개됐다. “50년 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고 2050년에는 사라진다”고 했다. 물과 전기 공급에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였다. 카사드산의 설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같은 재앙은 지구 온난화에 의해 초래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크리스토퍼 B. 필드 연구진의 보고서 내용이다.
“1955년부터 2005년까지 북아메리카의 연간 평균 대기온도는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이러한 온난화 징후는 온실가스, 황산염 및 자연적 외력이 결합해 발생한 것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서부 산맥에 위치한 기상관측소의 74%에서 눈보다는 비 형태로 강하하는 강수량의 비율이 증가했다. 온난화로 인해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캐나다 서부와 대초원 지역의 총 강설량이 감소했다. 미국 서부지역도 봄·여름철 눈 덮개(snow cover)가 줄었다.”
또한 ‘에메랄드 시티’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시애틀은 급속하게 숲을 잃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애틀시 자료에 따르면 1972년 이 도시 전체 면적의 40%를 나무가 덮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녹지 점유율은 18%까지 급전직하로 추락했다. 도시 팽창 및 생태계 이상현상이 원인이었다. 시는 “기존 나무들은 나이를 먹어 죽어가는데 해로운 생물이 번성하여 다음 세대 나무들의 숨통을 끊어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 자료에서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이러한 상실은 단순한 경관미의 상실 이상이다. 나무는 시애틀의 도시 가치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폭풍이 불거나 호우가 왔을 때 물을 흡수해 홍수를 막는다. 대기를 정화시키고 물을 맑게 한다. 나무는 우리의 자산 가치를 높였다. 나무는 삶의 질을 구성하는 직물과 같았다.”
세계에서 가장 열정적인 시장
시애틀에서 지구온난화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절박한 현실의 문제로 다가왔다. 그렉 니컬스 시애틀 시장은 취임 초에는 기후변화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물의 고갈을 의미하는 스노 팩 감소 보고서를 접하고는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세계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열정적인 시장이 됐다.
2005년 2월16일 교토의정서가 발효됐다. 38개 국가는 2008~2012년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해야 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전세계의 28%)이지만 자국 산업보호를 위해 2001년 교토의정서를 탈퇴했다. 니컬스 시장은 연방정부와는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그는 교토의정서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미국 시장들의 연대를 주도했다. 미국 132개 도시의 시장이 참여했다.
시장들의 연대는 미국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았다. 니컬스 시장은 2006년 4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위(연방정부)에서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밑에서 하겠다”며 자력해결의 의지를 피력했다.
시애틀은 연방정부와는 별도로 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에 비해 7% 감축한다는 목표를 설정해 자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연간 68만6600t을 줄여야 한다. 시는 이를 위해 2006년부터 공공기관, 기업, 시민 전체가 참여하는 전방위적 온실가스 감축 캠페인인 ‘시애틀 기후행동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논쟁은 끝났다. 이제는 행동에 나서자’는 취지였다.
이 캠페인을 비롯한 지구온난화 방지 정책은 시애틀시의 지속가능 환경부(OSE·Office of Sustainability & Environment)에서 주로 맡고 있다. 최고 책임자 마이클 만 본부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카사드산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시장을 움직였다. 시애틀시는 가장 소중한 자산인 자연을 복원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시애틀 시내 곳곳에서 시민들은 나무심기 녹화사업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오른쪽). ‘녹색지붕’이 설치된 시애틀 공공청사.
“니컬스 시장은 기후의 도전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이 도시의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걸맞은 고안물들로 채워진 것이 기후행동계획이다.”
▼ 실행에 옮기면서 가장 먼저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가.
“시민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이어 시가 전력을 다해 온난화 방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을 알렸다. 그 다음으로 시민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환경정책은 시민이 참여해야 성공할 수 있다.”
“기후변화에 태클 걸었다”
▼ 결과는 어떠했나.
“시민들은 ‘지금 당장의, 실제의 도전’이라는 점을 잘 알게 됐다. 그 다음 질문은 ‘우리가 온난화를 막아낼 수 있을까’였다. 우리는 ‘그렇다. 막아낼 수 있다’고 답했다. 시민들은 ‘기후행동계획에 참여하는 것은 위대한 첫발(Joining SCAN is a great first step)’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됐다.”
▼ 기후행동계획의 구체적인 콘텐츠는 무엇인가.
“공공기관, 기업, 주택, 개인이 참여하는 13개의 실행계획과 6개의 정책적 지원계획으로 구성돼 있다. 계획별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설정하고 도구와 자원을 제공한다. 이후 지속적으로 실행과정을 모니터한다. 이어 성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는 식이다.”
환경 문제는 도시 문제다. 지구적 가치에 대한 도시 차원의 노력은 세계 곳곳에서 진행돼야 한다. 시애틀이 전환점을 만든 셈이다. 마이클 만 본부장은 “우리는 기후변화에 태클을 걸었다”고 강조했다.
기후행동계획은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 축소 △에너지 효율성 제고 및 바이오연료의 사용 △가정 및 직장의 온실가스 저감 등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이를 통해 2012년까지 세 부분 각각 17만t, 20만600t, 31만6000t씩 총 68만6600t의 온실가스를 감축해 니컬스 시장이 천명한 ‘1990년 수준 대비 7% 감축’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도시 녹화도 함께 추진된다.
온실가스 발생에 자동차 운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자동차에 대한 의존성 축소’를 위한 세부안으로 시애틀시는 △대중교통수단의 확충 △자전거 및 보행 인프라 증설 △도로요금 징수체계 개선 △도심 주차요금 인상 △교외의 자족기능 향상 △친환경 자동차 개발 및 보급 추진하고 있다.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기 위해 무료 탑승구역을 두고 있고 저가의 일일승차권을 발행하고 있다. 시 동남부에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는 등 자전거 이용률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다. 도심 중앙의 워터프런트에도 보행과 자전거 통행을 위한 오솔길을 확충하는 한편 해안 접근로도 만들 예정이다. 시 관계자는 “시 외곽 교외지역에서 주거, 상업, 엔터테인먼트, 교육, 일자리가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이럴 경우 도심과 외곽을 오가는 승용차는 줄어드는 대신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는 증가한다”고 했다.
태평양전쟁 때 미군이 출병한 곳이기도 한 시애틀은 미국 제2의 항구다. 디젤 차량, 디젤 선박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편이었다. 디젤 기관은 휘발유 기관 보다 훨씬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는 시 소유 디젤차는 전량 하이브리드차와 바이오디젤차로 교체했다. 시내버스도 하이브리드차로 바꾸고, 선박은 바이오디젤 선박으로 전환하고 있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시 통계에 따르면 시애틀 선단(船團)에서 바이오디젤 연료의 사용은 2003년 대비 4.5배 증가한 반면 시애틀 항구의 화석연료 사용은 1999년 대비 12% 줄었다.
시애틀시는 기업, 시민단체 등과 함께 파트너십을 구성하는 등 친환경 에너지 산업을 적극 육성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면서 동시에 신성장동력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바이오연료 시장 규모는 2016년 809억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시애틀시와 그 주변에는 500여 개의 친환경 테크놀로지 기업이 들어섰다. 이들 기업은 2만5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 중 임페리움 리뉴어블스사는 미국 최대의 바이오디젤 생산회사로 연간 1억 갤런의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성 바이오디젤은 석유를 대체하는 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는데 론 퍼닉의 저서 ‘친환경 기술혁명’에서 8가지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선정됐다. 시애틀에 있는 유명 전기자동차 회사인 ZAP는 50분 충전으로 500㎞ 이상 달릴 수 있는 전기SUV를 개발 중이다.
시애틀은 그린 주택, 그린 빌딩 분야에서도 선도적 지위에 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2월4일 시애틀 소재 매킨스트리사를 방문해 “이 회사가 하는 일이 꿈의 직업이며 미국 경제의 미래”라고 연설했다. 이 회사는 일반 빌딩을 에너지 효율이 높은 빌딩으로 개조하는 사업을 한다. ‘녹색 지붕(Green roof)’은 건축물 지붕에 다단계 방수, 배수설비를 갖추고 흙을 덮어 풀과 나무가 자라도록 하는 사업이다. 실내 냉·난방 에너지 절감, 대기오염 감소, 소음공해 저감, 건물 수명 연장 효과가 있다. 이러한 녹색 지붕을 가진 그린 주택, 그린 빌딩 건축이 시애틀에서 성행하고 있다. 시애틀 발라드 도서관의 녹색지붕은 가장 적은 비용으로 설치된 것으로 유명하다.
시애틀 도심에서 바라본 만년설에 덮인 레이니어산. 시애틀시의 하이브리드 관용차.
주택과 빌딩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면 온실가스 감축에 큰 도움이 된다. 니컬스 시장은 “시애틀을 미국 그린 빌딩의 수도로 만들겠다.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이 20% 향상되도록 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시는 최근 7건의 그린빌딩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또 건물 내부 대기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축허가 기준을 높였다. 그린빌딩 확산을 보다 조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그린빌딩 태스크 포스’도 구성했다. 공무원뿐 아니라 민간의 부동산업자, 빌딩건축가, 그린빌딩 전문가, 주택 공급업자, 법률가, 에너지 전문가, 재정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시애틀시는 훼손된 녹지를 회복하는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75에이커 토지를 녹화했고 6개의 마을 정원을 설치했다. 또 시내 주요 도로 주변에 4000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공원에서의 살충제 사용을 80% 줄였다. 2025년까지 시내에 2500에이커의 녹지를 새로 확보한다는 게 시의 목표다. 이를 위해 시민들의 동참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7500명의 시민 자원봉사자가 녹지의 보존과 확산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음은 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시 전체 토지의 4분의 1정도는 개인이 소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사유지에 보다 많은 나무가 심겨지기를 원한다. 토지 소유주에게 녹지 확보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주는 한편 토지개발허가를 내줄 때 녹지 확충에 유리한 방향으로 인센티브정책과 규제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시애틀시는 음식물 퇴비화를 포함해 자원-쓰레기 재활용 사업에도 적극적이다. 마이클 만 본부장은 “우리의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17일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가 미국 655개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시애틀은 공기청정도, 친환경 건물, 녹지 공간, 에너지 재생, 에너지 절약, 쓰레기 재활용, 교통, 수질 분야에서 고르게 높은 점수를 얻어 ‘미국에서 가장 친환경적인 도시’로 선정됐다.
한국 vs 시애틀
한국은 2000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4억3400만t으로 세계 9위다. 세계 전체 배출량의 1.8%를 차지한다. 1990년 이후 배출량 증가는 85.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온실가스 저감 의무를 져야 한다는 국제적 압력은 앞으로 가중될 게 틀림없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주요 국가시책으로 추진 중이다. 친환경 자동차, 대체에너지 등 몇몇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총론적으로 봤을 때 아직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부적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열정을 쏟는 ‘4대 강 사업’은 ‘온실가스 감축’과 일부 접점은 있겠지만 정책목표는 다른 사업이다.
재계에서는 “전면적으로 저탄소 정책을 시행할 경우 경제 마비를 불러올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라는 현존하는 환경적-경제적 위협 앞에서 한국은 어떠한 속도로, 어떠한 방향으로 가야할지 결정은 못하고 논란은 커지는 형국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온실가스 감축 관련 홍보, 정책집행에서는 잘 정리된 느낌, 국제적 책임감, 지역사회 위기의식, 통찰력,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여론을 움직이는 메시지나 행동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시애틀의 선제적, 총체적 대응은 국내 현실과 비교했을 때 상당한 시사점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