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업은 3차 서비스 산업
- 물길 따라 테마마을, 명품마을
- 농어촌에 매력적 일자리 창출
비슷비슷한 이름이 나왔다 들어갔다 해 ‘한국농어촌공사’라는 현재의 기관명을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주변에 많지 않다. 이 회사는 경기 의왕시에 있는데 상당수 수도권 시민은 “한국농어촌공사를 아느냐”고 물으면 “잘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다. 도시에 살면 ‘농어촌~’에 관심이 적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대다수 공기업의 경우 한전은 전기, 도로공사는 도로, 주택공사는 주택…이렇게 이름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농어촌공사는 ‘농어촌의 무엇?’이라는 추가 의문을 갖게 한다. 도시 빼고 농어촌이면 국토의 대부분으로 광범위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도시민에게 친숙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국가적으로 한국농어촌공사(이하 농어촌공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농어촌공사는 신용등급 AAA의 한국 대표 공기업 중 하나다. 총자산은 5조1496억원이고 2008년 2조6361억원 매출에 37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아무리 사회가 복잡해져도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다’는 진리는 변함없다. 식량생산의 근간인 농업과 어업의 발전, 국제경쟁력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농어촌공사는 이러한 농·어업의 발전을 위한 각종 인프라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예를 들면 땅만 갖고는 곡물을 재배할 수 없다. 강이나 저수지에서 재배지까지 물길을 내야 한다. 개인이 하기엔 벅찬 농수로를 농어촌공사가 건설해준다.
MB가 칭찬한 이유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를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 중이다. 공기업은 적자 기업, 업무 성과에 관계없이 월급 받고 정년 보장되는 ‘신의 직장’으로 여겨져 왔다. 민간의 대기업보다 더 쌩쌩 돌아가는 공기업, 고객에 대한 투철한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한 공기업, 흑자 경영하는 공기업, 기업윤리를 준수하는 공기업, 국익증진에 기여하는 공기업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다. 이명박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도 이런 공기업을 만들어보자는 의도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08년 12월2일 국무회의에서 “공기업 구조조정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다그쳤다. 그러면서 “임용된 지 얼마 안 되는 농어촌공사 사장이 이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던 것은 정부 방침을 적극 따르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농어촌공사 사장을 거론했다. 농어촌공사의 대규모 인력구조조정 과정을 대통령이 좋은 사례로 인용한 것이다.
한국농어촌공사 노사가 노조의 경영인사불개입 원칙을 담은 협약을 체결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특히 농어촌공사는 농업에도 대중화, 서비스 정신, 기업 마인드를 불어넣으려 하고 있다. 1차 산업으로 각인되어온 농업을 3차 서비스산업으로 개혁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농촌을 도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고 즐기는 매력적인 관광지로 바꿀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와 국회는 그 ‘도전정신’에 공감해 행정·입법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 농업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실험하고 있는 홍문표(62) 농어촌공사 사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홍 사장은 운동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구에 목소리도 시원시원하고 우렁찼다. “승용차는 불편해 카니발 승합차로 전국 현장을 다닌다”고 했다. 홍 사장의 가장 큰 특징은 ‘정치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1985년 야당인 신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한나라당 국회의원(17대), 이명박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 경제2분과 위원을 역임했다. 2008년 4월 총선 때 충남 홍성·예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자신에게 이 지역구를 물려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에게 패한 뒤 2008년 9월 농어촌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쉽게, 신선하게, 상품성 있게
홍 사장은 농과대학을 졸업했고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에서 의정활동을 했으며 대통령직인수위의 농어촌 정책수립에 참여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홍 사장은 25년 경력의 정치인 출신답게 관행에 따르기보다는 전략적으로 결단하고 실행하는 것 같다”고 했다.
홍 사장에게 “농어촌공사는 무엇을 하는 기관입니까”라고 첫 질문을 던져봤다. 이럴 때 과거의 일부 공기업 사장은 “농업인프라 구축을 위한 농촌용수 개발, 배수개선, 농지정보화…”라고 밑에서 써준 ‘말씀자료’를 보고 읽듯 답변한다. 아니면 “그런 기초적인 내용은 홈페이지에 있는데…”라며 불쾌해 한다. 그러나 사실 최고경영자의 자기정체성 규정능력은 조직의 미래를 좌우한다. 홍 사장은 한마디로 대답했다. “농어촌공사는 4900만 국민의 먹을거리를 만들어주는 기관입니다.” 쉽게, 신선하게, 상품성 있게 자사를 홍보하는 것으로 보였다.
▼ 사장 재임 1년이 되었는데 그간 추진해온 개혁과제와 성과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공기업 개혁에 공감했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우리 공사가 해온 것은 그냥 ‘선진화’가 아니라, ‘고통분담 선진화’였습니다. ‘고통분담’, 이 말을 꼭 써주세요.”
“항아리에 삼각자 댔다”
▼ 현 정부에서는 ‘구조조정 없인 선진화도 없다’는 시각인데.
“오자마자 조직진단을 해봤어요. 배는 불룩하고 다리는 부실한 항아리형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방만한 인력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피라미드형으로 만들기 위해 항아리에 삼각자를 대어 넘치는 부분을 구조조정했습니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주최한 2009 농어촌산업박람회.
“노사합의를 통해 전체 인력의 15%에 해당하는 844명을 감축했습니다.”
▼ 고통의 ‘분담’은 무슨 의미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남은 직원들이 자신의 연봉에서 5~30%인 87억원을 떼어 퇴직 직원들에게 드렸어요. 나는 절반을 내놓았습니다.”
▼ 공공기관이 회사 돈이나 국민 세금으로 명예퇴직금을 과다하게 지급해 문제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었는데….
“직원들이 자신의 월급에서 드린 것이니 윤리적 문제가 없는 일이죠. 공기업 직원들이 나가는 분들에게 이렇게 예의를 갖춘 경우는 없었어요. 또한 우리 노사는 공기업 최초로 ‘노동조합의 경영 및 인사 불개입 원칙’을 선언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농어촌공사 사업 중 정부 정책사업 비중은 98%에 달한다. 정부 예산이 없어 농업 종사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홍 사장은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충남 당진 도비도 개발권 등 여러 자체 수익사업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과거 농어촌공사는 승진인사를 둘러싼 잡음으로 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농어촌공사 관계자는 “불합리한 인사제도와 취약한 부패척결 시스템이 근본 원인이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농어촌공사 직원들은 인사-승진에서 까다로운 평가를 받게 된다고 한다.
“개방형 승진심사 제도를 도입해 투명성을 확보했다. 승진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심사 때마다 심사위원 인력 풀(pool)에서 위원을 무작위로 선정한다. 위원 10명 중 3명은 감사원, NGO 등 외부인사로 채울 예정이다. 부정 승진자는 한 직급 강등된다. 이와 함께 ‘상시퇴출프로그램’도 전격 시행했다.”(홍보팀 박재근 차장)
공기업 경영평가에서 농어촌공사는 A등급을 받았다. 홍 사장은 “단기간에 구조조정, 상생 노사문화 구축, 사업구조 개편을 이뤄냈다. 일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경영선진화의 토대가 마련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내부정비는 중요한 일이지만 농어촌공사의 본질적 가치는 고객인 농어민과 국민에게 보다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이와 관련해 홍 사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일 중 하나는 ‘저수지 주변 개발 사업’이다.
▼ 저수지 주변 개발 사업은, 말 그대로 저수지 주변을 개발하겠다는 취지인 듯한데 이 사업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저수지 주변이 무분별하게 난개발되고 오염되는 것을 막아야 해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방치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습니다. 저수지 주변 개발사업은 우리나라 농어촌의 저수지 주변을 친환경적으로, 체계적으로 개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이에요. 낙후되어만 가는 농어촌을 되살리기 위해선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국 저수지를 관광명소로”
▼ 구체적으로 저수지 주변에 어떤 것을 들여놓겠다는 건가요?
“먼저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사고파는 농수산물 직거래장터를 세울 겁니다. 해당 시장 군수가 품질을 보증하는 친환경 고품질 농수산물만 취급합니다. 대신 시중가격보다 10% 정도 싸게 판매해 도시의 실수요자들이 찾도록 할 겁니다.”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농수산물 사러 시골 저수지까지 갈까요?
“유스호스텔, 오토캠핑장, 텐트야영장을 농수산물 직거래장터와 함께 만들 겁니다. 향토문화역사관 등 다양한 볼거리 시설도 설치합니다.”
▼ 메말라 있거나 주변이 지저분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떨어지는 저수지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전국에 1만7679개의 저수지가 있어요. 이 중 만들어진 지 50년 이상 된 저수지가 1만981개로 전체의 62%에 달합니다. 노후화가 심각해요. 저수지가 풍부한 수량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할 겁니다.”
농어촌공사는 “저수지 주변 개발 사업을 전국에 걸쳐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이 사업을 지원하는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직거래장터, 유스호스텔 등 상업시설, 숙박시설을 저수지 주변에 짓는 건 현행법으로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공사 측은 해당 정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 여야 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이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별법을 발의해 통과시켜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지난 4월 ‘농업생산기반시설 및 주변 지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경기 의왕시 한국농어촌공사 전경.
대다수 공기업은 간섭받기 싫어한다. ‘철밥통 신화’는 공기업 특유의 폐쇄성, 특권의식에 기인한 측면이 많다. 이 때문에 공기업은 대체로 외부 힘센 기관과의 접촉을 피하려는 수동적 태도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선, 농어촌공사가 자사의 신규 사업 추진을 위해 행정부와 입법기관을 상대로 설득에 나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 한 관계자는 “공기업은 국회와의 관계를 바꿔나가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국회는 국감 때마다 공기업을 도마 위에 올려놓기 때문에 공기업은 국회를 기피대상으로 여긴다. 국회에서 연락이 와야 응하지 먼저 찾지는 않는다. 그러나 홍 사장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의원 출신이어서 ‘여의도 알레르기’가 없었던 것 같다. 공기업의 성장에 입법 지원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공기업이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하지도 않는데 국회에서 법률을 통과시켜 줄 리 없다. 초일류 공기업이 되기 위해선 모든 국가기관 자원을 활용하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농어촌공사가 정부와 국회의원들을 설득해 통과시킨 법률은 ‘저수지법’ 하나만이 아니다. ‘한국농촌공사법’이 ‘한국농어촌공사법’으로 개정되는 데에도 힘썼다. 이로써 어촌개발권은 국토해양부에서 농어촌공사로 이관됐다. 농어촌공사 입장에선 농촌뿐 아니라 어촌에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홍 사장은 “시키는 일만 하겠다는 타성으로는 아무 것도 안 된다. ‘정부와 국민이 못하는 일은 우리가 한다’는 적극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어촌공사는 저수지 개발예정지 주변에 태양광·풍력·소수력 발전 등 신재생 에너지단지도 조성할 계획이다. 친환경 에너지를 확보하면서 저수지 주변에서 다양한 경관이 연출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공사 측이 관리하는 전국 3319개 저수지의 경우 주변 유휴부지 활용이 용이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공사 측은 금수강촌 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이 사업은 4대 강 유역 저수지 중 자연경관이 수려한 30개소를 선정해 농산물 직거래, 숙박, 휴양 시설은 물론 승마공원, 테마문화 마을, 체험프로그램, 휴양프로그램, 식품클러스터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공사 측은 이 사업을 실행하기 위해 금수강촌사업단을 발족시켰다.
사업단은 저수지와 숲이 어우러진 자연 속에서의 승마는 좋은 여가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수훈 팀장은 “함께 조성되는 테마문화 마을은 해당 지역의 문화, 특산품을 상징하는 관광단지로 개발된다. 예를 들어 2009년 폐기되는 우체통 1083개로 ‘러브레터 마을’을 만들 수 있고, 포도가 많이 나는 지역에선 ‘와인 마을’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수강촌 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면 주변 농어촌 마을도 관광지 성격에 맞게 ‘명품마을’로 바뀐다고 한다. 사업단에 따르면 상하수도, 진입로, 마을공동시설 등 인프라가 정비되고 생활편의시설이 확충된다. 노후주택 개량 등 ‘마을종합개발’이 실행된다.
농어촌공사는 자체 개간한 영산강 주변 간척지엔 IT, BT, 경관농업, 식품산업, 서비스산업, 원예단지를 결합한 복합농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귀농인력을 적극 유치해 ‘농어촌 뉴타운’도 만든다고 한다. 이 사업 역시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 박재근 차장은 “네덜란드 쿠겐호프 공원을 참조할 것”이라고 했다. 32ha의 쿠겐호프 공원은 3~5월 2개월 개장하는데, 100만명 이상의 국내외 관광객이 방문해 입장료 수익만 160억원을 올린다고 한다.
“새로운 레저문화 연다”
홍 사장은 저수지 주변 개발 사업, 금수강촌 사업, 영산강 복합농업단지 사업은 별개의 사업으로 추진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연계돼 시너지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이들 사업은 4대 강 사업과도 연결돼 있다. 홍 사장은 종합적 구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저수지는 낡아 방치되거나 낚시터로만 이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완료되면 4대 강 유역 100여 개 지역은 풍부한 수량의 저수지, 숲과 농장, 먹을거리, 야외 캠핑, 숙박시설, 테마마을, 승마공원, 자전거길, 명품마을, 체험프로그램, 식품클러스터, 역사문화관, 에너지단지가 어우러진 경쟁력 있는 관광지가 될 거예요. 강을 따라 많은 명소가 생겨나 도시민들에게 새로운 레저문화를 제공하는 거죠. 서울에서는 체험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주게 됩니다. 농촌에는 도약의 기회가 될 거고요.”
▼ 96개 농업용 저수지의 둑 높임 사업은 4대 강 사업의 일부로 3조4000억원의 예산이 들어가는데….
“아까도 말했지만 저수지 노후화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요. 저수지 물이 경작지까지 한번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수량 확보, 농업용수 공급, 수질개선을 위해 꼭 필요합니다. 4대 강 논쟁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다만 농업 인프라의 보완-확충이 시급하다는 점, 물 확보와 공급은 인프라의 핵심이라는 점은 이해해주었으면 합니다.”
▼ 저수지가 노후화하긴 했지만 1만7000여 개나 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저수지는 저장능력이 가장 중요합니다. 상당수 저수지는 사토가 많이 쌓여 있어 접시 물 같아요.”
농어촌공사는 2008년 11월~2009년 1월 600억원을 투입해 저수지 301개소를 준설했다. 홍 사장은 “한겨울에 직원들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논밭으로 물이 시원스레 나가는 것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농업은 위기상황”이라고 진단한다. “식량자급률이 낮고 농업의 국제경쟁력도 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FTA(자유무역협정) 이후에도 농업이 살아남으려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 식량자급률이 낮다는 건 무엇을 기준으로 한 건가요?
“쌀, 밀, 콩, 보리, 옥수수 등 5대 곡물 중 우리나라가 자급자족할 수 있는 건 쌀뿐입니다. 자급률이 96% 정도 되니까. 나머지 곡물은 95% 이상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우리 국민은 쌀보다 밀을 4배 이상 더 소비하는데 밀은 98% 수입합니다.”
▼ 원론적인 얘기지만 미래에도 모든 것을 자급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기후변화 등에 따라 곡물 가격 급등, 식량 무기화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죠. 먹을거리는 생존과 직결되는 핵심 자원입니다. 식량의 안정적 확보, 농업 경쟁력 강화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 곡물 자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토가 좁다는 거 말고요.
“사실 1모작밖에 할 수 없는 논보다는 3모작도 가능한 밭이 곡물생산량을 늘리는 데 효과적이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논의 80%는 곡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경지 작업이 되어 있는 반면 밭은 경지 작업이 되어 있는 게 10% 내외에 불과합니다. 밭에 대한 경작기반 조성이 시급해요. 먹을거리 생산기반이 흔들려서는 앞으로 도래할 식량난에 대비할 수 없어요.”
몇 차 산업이죠?
▼ 젊은층의 이농현상이 심각합니다.
“농촌 자체가 싫다기보다는 좋은 일자리가 없으니 떠나는 거죠.”
▼ 우리나라의 2차 산업과 3차 산업은 국제경쟁력이 있는데 왜 농업은 그렇지 못한 걸까요.
“농업은 몇 차 산업이라고 생각하나요.”
▼ 1차 산업 아닌가요.
“그렇다면 해결책이 있지 않을까요. 농업이 3차 산업이 되는 거죠. 우리 공사가 추진하는 저수지 주변 개발 사업, 금수강촌 사업도 이런 맥락입니다. 알곡만 생산하면 1차 산업에 머무는 것이고, 식품으로 가공하면 2차 산업이 됩니다. 내가 인수위 시절부터 농업행정과 식품행정을 통합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이명박 정부가 ‘농림수산식품부’를 출범시킨 것도 이런 맥락이죠. 여기에 유통, 판매, 관광, 서비스까지 접목하면 3차 산업입니다. 농촌에서 1,2,3차 산업이 모두 나타날 때 농촌은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매력적인 일자리가 많이 생기고 도시에서 농촌으로 인구가 이동할 거예요.”
▼ 유사한 사례가 있나요?
“일본에서는 자연경관이 좋은 곳을 중심으로 젊은 층의 농촌 이주가 늘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충남 당진의 인구가 증가하는 추세죠. 우리 공사도 농촌의 문화, 교육, 의료 인프라 확충에 노력할 계획입니다.”
“새만금으로 농업 글로벌화”
새만금은 농어촌공사가 참여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다. 새만금 5대 선도 산업(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사업) 중 매립토 조달, 방조제 관광명소 개발, 농업용지 구간 방수제(물막이 둑) 건설이 농어촌공사의 몫이다. 산업용지는 독특한 설계와 다양한 공간 배치가 특징인 개방 해양형 워터프런트(water-front) 형태로 조성된다. 농어촌공사는 농업용지에 녹색성장시범단지, 농업테마파크, 수출농업전진기지, 친환경마을, 생태관광 인프라를 구축할 계획이다. 방조제는 도로 기능 외에 경관조망, 휴식이 가능하도록 조성된다.
▼ 최초 계획보다 농지비율이 축소됐는데….
“70%에서 30%로 줄었죠. 개인적으로 상당히 안타깝고 아쉬워요. 농지는 다른 용도로 바뀔 수 있지만, 다른 용도의 땅은 농지로 되돌아오지 않죠. 그러나 축소되더라도 새로 만들어지는 농지는 8570ha라는 엄청난 규모예요. 개발방향이 중요한데, 우리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첨단 수출농업단지’로 방향을 설정해두고 있습니다.”
▼ 새만금 사업이 주는 경제적 효과는 어떻게 예상하고 있습니까.
“우리 공사는 한반도의 창조적 개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새만금 사업은 산술적 계산 이상의 경제적 효과가 나올 거예요. 농업 글로벌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도록 만전을 기해 추진하고 있습니다.”
▼ 농어촌공사가 어촌 개발도 맡게 되었는데….
“어촌과 농촌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로 떼어놓고 접근할 수 없어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특성상 통합적 정책집행이 필요합니다. 시너지효과가 나올 거예요.”
한반도의 창조적 개조?
▼ 어촌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편익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어촌 주민들과 여러 차례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11개 발전모델을 만들어 실천하고 있어요. 어촌의 문화복지 시설 확충, 체류형 관광프로그램 개발, 어선 감축에 따른 대체소득원 개발, 마을현대화 등이죠. 이외 수산자원 조성, 인공어초 사업, 바다목장 사업, 연안해역 바다 숲 조성, 청정수산물 생산기반 구축에 힘쓰고 있습니다.”
국민의 70~80%는 도시에 거주한다. 농어촌은 인구가 줄고 있을 뿐 아니라 도시 사람들이 잘 찾지도 않는다. 많은 시민에게 국토의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는 땅이 되고 있다. 농어촌공사의 개혁안은 “농어촌을 1차 산업만 있는 무료한 곳이 아닌 천혜의 자연과 인공의 문화, 산업, 엔터테인먼트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곳으로 변화시켜 도시민이 찾게 하고 균형발전의 전기로 삼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 중심에 ‘물’을 두고 있는 점은 이 구상을 기존의 실패한 농업정책과 구분짓게 한다.
농어촌공사는 공기업 선진화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의기관을 설득하는 열의를 보여줬다. 농어촌에 통합마케팅, 지역브랜드 전략을 처음으로 접목해보고 있다. 농업 문제 핵심을 간파해 해결해보려는 적극성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개혁은 첫발을 떼었을 뿐이다. 그 결과가 홍 사장이 기대하는 ‘한반도의 창조적 개조’로 나타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