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인 암. 예방수칙에서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암 관련 뉴스가 쏟아진다. 그러나 예방수칙의 경우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 무뎌져서 별 도움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신약의 경우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다 실망하곤 한다. 3상 실험 돌입으로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모은 젬백스의 GV1001과 같은 새로운 암 치료제에 대해서도 보다 냉정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고 장진영 씨가 출연한 영화 ‘국화꽃 향기’의 한 장면.
예방 수칙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이다. 직접흡연이나 간접흡연을 피한다, 채소와 과일을 충분히 먹는다, 짜거나 탄 음식을 먹지 않는다, 술은 하루 2잔 이내로 마신다, 충분한 운동을 한다, 체중을 관리한다, 암으로 진행될 수 있는 B형 간염 같은 각종 질병에 대해 예방 접종을 받는다, 발암물질을 피한다 등이다. 한국에서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살기 좋은 덴마크가 암 발생률 1위
사실 예방에 관심을 두면 정보는 넘치는 듯하다. 암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거의 매주 신문에 실린다. 최근 한두 달 사이에 실린 것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체중이 전립선암 재발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도 있고, 브로콜리 같은 채소를 많이 먹으면 유방암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운동은 당연히 좋지만,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운동하면 자외선에 노출되어 생기는 피부암 발병 위험이 낮아진다고 한다. 아스피린을 매일 한 알씩 먹으면 암을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고, 생긴 암의 전이도 억제된다고 한다.
그리고 살기 좋다는 덴마크가 놀랍게도 세계 암 발생률 1위 국가이며 고지방 위주의 음식 문화가 주원인이라는 소식도 있다. 교훈은 ‘육류를 적게 먹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라’는 것이다. 고기를 먹겠다면 지방이 적은 부위를, 아니면 생선을 섭취하라고 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단백질과 지방이 적당히 섞인 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는 것을 보면서 예방 정보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고기를 먹을 때 암은 남의 일인 듯하다.
암은 우리나라의 사망 원인 중 첫째를 차지한다. 최근 보건 당국이 내놓은 통계자료를 보면, 1999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사이에 암 발생자 수가 남자는 72.3%, 여자는 114.9% 늘었다.
사람들이 암 예방에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렇게까지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 유제품 광고 덕분에 우리는 ‘헬리코박터’라는 세균이 위궤양을 일으키고 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것을 잘 안다. 자궁경부암은 성관계로 옮는 바이러스가 주된 원인이며 백신으로 예방이 가능하다는 것도 많이 알려졌다.
또 우리는 B형 간염 바이러스가 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지나친 음주로 간이 굳는 간경변이 일어나고 이것이 진행되어 간암이 생긴다는 것도 꽤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간암 환자 중 70%는 간경변을 거쳐 간암에 걸린다. 또 흡연이 폐암의 원인이라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최근 간접흡연이 세포 기능을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폐암 환자는 지난 5년 동안 꾸준히 증가했다. 성인 흡연율이 1990년대 이후 서서히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흡연이 원인이 되어 폐암이 발생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리기도 하므로, 보건 당국은 2020년까지 폐암 사망률이 계속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게다가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율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한편 조기 진단과 치료법의 발전 덕분에 암 환자의 생존 기간은 계속 늘고 있다. 물론 생존 기간이 늘어난 데에는 암에 걸린 뒤에 건강관리에 애쓴 덕분도 있을 것이다. 현재 암을 몸에 지닌 채 살고 있는 사람은 80만 명이 넘는다. 이 중 약 25만 명이 5년 넘게 살고 있다.
외면받는 정보들
예방 정보는 넘치지만, 우리는 건강할 때 이런 정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많이 보이면 주변에서 건강 염려증이 아니냐고 놀리기도 한다. 잘못된 문화라고 본다. 심지어 정보를 자기식대로 왜곡하는 사람도 많다.
애주가 중 상당수는 “주중에 계속 퍼마시더라도 주말에 푹 쉬면 간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야기일 뿐이다. 담배를 즐기는 이들은 담배연기를 훅 내뿜으면서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가 결정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 “평생 담배 피우면서 오래 산 사람도 많다”고 말한다. 병원에 가면 폐암으로 입원해 있으면서도 몰래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이 있다. 폐암이 담배 때문이 아니라고 여전히 굳게 믿기도 한다.
많은 사람은 예방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 의료계는 자궁경부암 예방 접종은 남녀 모두에게 유익하다고 말한다. 간염 예방 접종도 암 예방에 좋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는 것도 당연히 좋다. 각종 통계수치가 그렇다고 말해준다. 음주와 간암, 흡연과 폐암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믿지 못하겠다는 이들도 이 상관관계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반면에 넘치는 정보가 올바른 판단을 가로막기도 한다. 암은 종류도 다양하고 원인도 다양하다. 대장암이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암도 원인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나트륨이 가득한 짠 음식을 많이 먹어 발병했을 수 있고, 발암물질이 든 음식을 자주 섭취해서 생겼을 수도 있다. 암과 어떤 한 요인의 인과관계를 따지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 온갖 원인을 다 고려하면서 하나씩 제거하는 복잡한 기법을 적용해야 한다. 세심한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도 허점이 있다는 반론에 직면하기 쉽다.
한 예로 ‘키 큰 여성이 암에 걸릴 확률이 훨씬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의 연구자들이 여성 약 100만 명의 진료 기록을 토대로 암과 키의 상관관계를 조사했더니, 키가 클수록 암에 잘 걸리는 것으로 나왔다. 여성의 평균 키가 커질수록 암 발병률도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이 연구는 통계의 허점을 보여주는 양 비칠지도 모른다.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우리에게 풍족함을 안겨준 모든 것이 암 발병률을 높인 원인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 암 환자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이들은 모호한 통계자료를 구미에 맞게 가공하거나 필요한 통계만을 뽑아내 보여준다. 지난해 췌장암으로 사망한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도 이런 잘못된 정보에 의존하다 병을 키운 사례다. 그는 수술로 종양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민간요법에 치중하는 바람에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그가 치료를 제대로 받았다면 좀 더 오래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IT 분야에서는 천재였을지 모르지만 생의학 분야에서 그의 판단은 썩 좋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확실한 것처럼 보이지만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입증되지 않은 정보도 많다. 뉴스는 딸기, 당근, 브로콜리, 토마토, 마늘, 버섯 등이 암에 좋다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 안에 든 어떤 성분이 암 예방 효과를 낸다고 곁들인다. 베타카로틴, 비타민 A, 비타민 B, 비타민 C 등이 그것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식물 중 암에 좋지 않은 것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나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어느 식물이 어느 암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를 입증해주는 연구 자료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고려대 안암병원 로봇센터 의료진이 로봇을 이용한 암수술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 생물학 체계는 모든 생물이 한 뿌리에서 진화했다는 것을 전제로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이 체계 내에서도 진화를 믿지 않는 연구자가 있다. 암 연구자 중에도 암과 원인의 통계적 상관관계를 불신하는 이들이 있다. 한마디로 통계는 결정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담배를 피우는 연구자는 흡연과 폐암의 상관관계를 이야기할 때, 술을 즐기는 연구자는 술과 간암의 상관관계가 화제에 오를 때 이런 반론을 펼치곤 한다.
여기서 이들이 말하는 결정적인 증거란 유전자의 변형이다. 담배에는 수십 종류의 발암물질이 들어 있다. 그런데 ‘담배의 어떤 성분이 폐 세포의 어떤 유전자에 어떤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암을 유발하는가?’라고 구체적으로 물으면 답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질문 자체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 질문은 발암물질과 유전자가 일대일로 대응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한 발암물질이 한 유전자를 변형시켜서 암이 생긴다는 말과 같다. 암 연구자들은 대체로 암이 이런 일회성 사건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역사적 산물이라고 본다. 유전자와 환경이 장기적으로 상호작용함으로써 빚어낸 것이라는 의미다.
변형되면 암을 일으킬 수 있는 유전자도 있고, 본래 암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변형되면 그 기능을 상실하는 유전자도 있다. 이런 유전자들은 따로따로 고립되어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갈라지면서 뻗어나가는 그물 속에서 활동한다. 주로 세포 분열과 관련된 그물이다. 이 그물의 핵심에 놓인 어느 한 종양 유전자가 변형되면? 그물 전체로 여파가 퍼져나가서 세포를 암세포로 바꿀 수도 있다. 항암 유전자가 이 효과를 억제할 것이다. 또 다른 발암물질이 작용해 항암 유전자의 기능을 망가뜨리면? 변형된 종양 유전자는 억제에서 풀려날 수 있다.
이런 변형 과정을 몇 단계 거쳐야 암세포가 생기는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본래부터 유전자 몇 개가 변형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발암물질에 덜 접촉해도 더 일찍 암에 걸릴 수 있다. 반면에 발암물질을 차단하거나 격리시키는 유전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암에 덜 걸릴 것이다. 세포가 암세포로 변했어도 분열해 증식하지 않고 잠자고 있을 수도 있다.
암이 이렇게 복잡한 양상을 띠므로 생명 분자 수준에서 인과관계의 결정적인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흡연이나 음주를 즐기는 사람은 아마 자신의 암 내성이 강한 편이라고 믿는 사람일 것이다.
연구를 하면 할수록 암의 발생 기전이 복잡하고 다양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암 치료의 방향도 변해왔다. 과거의 암 치료는 일종의 무차별 폭격과 같았다. 유독한 화학물질을 몸에 집어넣거나 방사선을 쏘여 암세포를 죽이는 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도 피해를 보곤 했다. 머리카락이 빠지거나 심한 구역질을 하는 것은 정상 세포도 해를 입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그러나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하나둘 발견되고, 암이 세포 내에서 어떤 단계를 거쳐 일어나는지가 서서히 밝혀지면서, 무차별 폭격 대신에 정조준 사격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정상 세포에는 거의 피해를 안 주면서 암세포만을 저격할 수 있다면? 이러면 암 치료의 부작용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암세포만 저격하려면 암세포만의 특징, 취약점을 찾아야 한다. 먼저 암세포가 지닌 변형된 유전자가 있다. 이 유전자의 활동을 막을 수 있다면 암세포도 없앨 수 있다. 또 이 유전자들이 활동하는 그물을 공략할 수도 있다. 그밖에 암세포만이 새롭게 획득한 특징들이 있다. 새로운 혈관을 만드는 능력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런 특징을 표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
새 치료제가 새 돌연변이 낳아
이런 표적 항암 요법 시대를 연 것이 허셉틴이다. 허셉틴은 특정한 유방암 세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종양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 약물이다. 이 종양 유전자는 세포막에 끼워지는 단백질을 만든다. 이 단백질은 세포 바깥의 정보를 안으로 전달해 여러 유전자를 켜거나 끔으로써 유방암 세포를 마구 증식시킨다. 허셉틴은 이 단백질에 결합해 활동을 차단한다. 이러면 유방암 세포가 증식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허셉틴 이후 종양 유전자와 그 산물을 공격하는 표적 항암제가 계속 개발됐다. 백혈병에 쓰이는 글리벡도 이 중 하나다. 종양 유전자의 활동 그물을 표적으로 삼는 약물도 개발됐다. 새로운 혈관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약물도 나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임상실험에서 별 효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에는 암세포의 불멸성을 공략하려는 시도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 몸의 정상 세포는 대개 수십 번 분열한 뒤 죽는다. 분열할수록 염색체가 짧아져서 결국은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세포는 불멸성을 획득했다. 짧아지는 염색체를 다시 늘여주는 텔로머라아제라는 효소가 계속 활성을 띠고 있어서다. 이 효소 활동을 막으면 암세포를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이 효소가 없다면 암세포도 정상 세포와 마찬가지로 분열할수록 염색체가 짧아져서 결국 죽을 것이다.
이 효소는 염색체에 결합해 길이를 늘이는 일을 한다. 짧은 핵산을 부착시켜 이 효소가 염색체에 결합하지 못하게 한다면? 혹은 이 효소의 단백질 서열을 면역계에 적으로 인식시켜 면역계가 이 효소를 지닌 세포, 즉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한다면? 최근 임상실험 3상에 들어가면서 의료산업계와 증권시장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젬백스의 GV1001은 후자인 면역 요법으로 암세포를 공략한다.
새로 개발된 약물이 임상실험 3상에서 탈락하는 사례가 많기에 지금으로서는 이런 약물들의 성공 여부를 점치기 어렵다. 그러나 암세포의 불멸성을 타파하는 방법 자체는 암을 공략하는 유효한 수단일 수 있다.
표적 항암제는 화학요법에 쓰이는 끔찍한 약물과 달리 부작용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다. 암세포만 선택적으로 공격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각의 암에 맞는 표적 항암제를 개발한다면, 암도 대수롭지 않은 질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암은 세포 역사의 산물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돌연변이가 쌓이면서 암세포는 계속 진화한다. 암세포는 한없이 증식하는데 이렇게 불어난 세포 중에는 새로운 돌연변이를 획득하는 것도 있다. 표적 항암제가 다른 암세포를 다 죽일 때 새 돌연변이를 얻은 암세포는 그 항암제에 내성을 띨 수도 있다. 이러면 새로운 표적 항암제가 필요해진다.
허셉틴도 글리벡도 이렇게 내성을 띤 새로운 암세포와 맞닥뜨렸다. 표적 항암제 투여로 사라지는 것 같던 암세포가 다시 맹렬하게 증식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새로운 암 치료제에 대해 냉정하게 결과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암과의 군비 경쟁
그러니 표적 항암제는 암과 일종의 군비 경쟁을 벌이는 셈이다. 포식자가 날카로운 발톱을 갖게 되면 먹이 동물도 더 날랜 다리 근육이나 단단한 껍데기를 진화시킨다. 마찬가지로 암세포도 자신을 저격하는 표적 항암제에 맞서 새로운 돌연변이를 획득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무한히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면서 암 치료는 개인별 상황에 맞는 맞춤 의료로 나아갈 것이다.
동시에 암 환자의 수명은 계속 늘고 이에 따라 암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도 증가할것이다.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를 쓴 싯다르타 무케르지는 암을 ‘우리 자아의 일그러진 초상’이라고 했다. 암은 불멸성을 추구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일그러진 형태로 보여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