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저희 어머니가 10여 년 전부터 한쪽 다리에 관절염이 와서 고생이 심하신데요. 병원에선 ‘관절이 다 닳아버렸으니 인공관절로 바꿔 끼워야 한다’고 했답니다. 수술비가 500만 원쯤 든다는데, 휴…. 아시다시피 제 수중에 돈이 별로 없어요. 선배가 병원을 많이 아시니까 싸게 수술받을 방법이 없을까요? 여동생 돈까지 박박 긁어모아도 당장 만들 수 있는 돈이 200만 원밖에 안 됩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 숫제 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시는데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김 군의 어머니는 경북 김천에서 아픈 다리를 끌며 쌀농사를 짓고 계신다. 친환경농법으로 지은 쌀은 밥맛이 일품이다. 상황이 워낙 딱해 이리저리 전화를 걸었다. 5개 병원에 전화를 걸었는데, 인공관절 수술비용은 병원마다 제각각이었다. 환자가 부담해야 할 병원비는 350만~500만 원. 로봇 수술을 하는 곳은 800만 원을 훌쩍 넘겼다. 병원장들은 한결같이 “다른 수술은 모르겠는데 인공관절 수술은 재료값이 비싸서 할인을 많이 못해 준다”고 손사래를 쳤다. 최고로 배려해 준 가격도 300만 원이 넘었다. 결국 김 군은 어머니의 무릎 수술을 포기했다.
“수술비에 거품 많았다”
지난 2월 중순 서울 강남의 제일정형외과병원 신규철 병원장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신동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척추관절학개론’ 칼럼과 관련해 의논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신 병원장이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은 노인성 질환인 척추 및 관절 관련 질환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으로 과잉진료나 검증되지 않은 시술·수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균 기대수명이 남녀 모두 80세를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노년을 얼마나 행복하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입니다. 무릎 관절은 내구 연한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평생 쪼그려 앉아 생활을 해온 할머니들은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게 흔한 일이 됐죠. 그런데 지금껏 인공관절 수술비용에 거품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병원 내 관절 분야 원장님들과 논의한 끝에 환자 본인이 내야 할 치료비용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리기로 했어요. 몸 상태가 좋은 분은 100만 원만 내면 되고, 무통치료를 받거나 정밀한 진단을 받아도 150만 원이면 충분합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저희 병원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
‘반값 아파트’ ‘반값 등록금’ ‘반값 임플란트’ 이야기가 나오더니 이제 반값 인공관절 수술이 등장한 것이다. 인공관절 수술비용이 100만 원대라면 반값보다 더 낮다. 더구나 ‘반값 인공관절 수술’은 국가 복지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한 민간병원의 자발적 시도라 의미가 남다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60세 이상 노인 중 80% 이상이 퇴행성 관절염을 앓고 있으며, 무릎 인공관절 치환술 건수는 2001년 1만4887건에서 2010년 7만5434건으로 10년도 못돼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수술받은 환자의 대부분이 60~70대이며 70대는 2006년 1만3212건에서 2010년 2만4751건으로 4년 만에 187% 증가했다. 80대도 2010년 2928건으로 2006년보다 261% 늘었다. 퇴행성 관절염이 백내장처럼 나이가 들면서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반려질환’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인공관절 치환 술 건수는 더욱 가파른 증가세를 보일 전망이다.
퇴행성 관절염은 무릎 관절 사이에서 쿠션 작용을 해주는 연골이 나이가 들면서 닳거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찢어져 발생하며 극심한 통증을 동반한다. 초기와 중기에는 약물치료, 내시경 수술, 줄기세포술 등 다양한 치료법으로 통증을 제거할 수 있지만 연골이 다 닳아 뼈와 뼈가 부딪칠 정도가 되면 인공관절 치환술 말고는 치료법이 없다. 60대 이상 노인 중 다리가 O자형으로 변한 사람들은 연골이 얼마 남아 있지 않을 확률이 높다.
비급여 항목 크게 줄여
70대는 물론, 80대 노인들 사이에도 인공관절 수술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기술 발전과 함께 수술의 절개 부위가 작아지고 척추마취 대신 부분마취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덕분에 요즘은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들도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인공관절의 수명도 늘어나 되도록 쪼그려 앉지 않고 의자 생활을 하면 15~20년도 거뜬하게 쓸 수 있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인공관절의 회전 반경도 늘어나 웬만한 동작은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게 됐다.
국민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11년 기준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518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0.5%를 차지한다. 이는 2004년 대비 38.3% 증가한 수치. 노인 인구 증가보다 더욱 눈에 띄는 것은 노인 의료비 증가폭이다. 2011년 노인 의료비는 15조3893억 원으로 7년 사이 약 300% 급증했다.
2010년 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평생 쓰는 의료비(생애의료비)는 평균 1억 원 정도인데, 남성은 65세 이후에 생애의료비의 47.2% (4526만 원), 여성은 52.2%(585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처럼 노령층에서의 의료비 비중이 높다보니 진료비용에 대한 민감도도 그만큼 높다는 점. 다시 말해 당장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질환이 아닌 이상 고가의 비용이 드는 치료는 일단 미루게 된다는 얘기다.
무릎 인공관절 수술이 크게 늘고, 인공관절의 소재와 수술법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대다수 중증 관절염 환자는 아직도 300만~500만 원(한쪽 무릎, 로봇수술은 800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용 때문에 소염제와 진통제, 물리치료로 근근이 버티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릎을 거의 못 쓸 정도가 돼 일상생활에 엄청난 지장이 있지만 미안한 마음에 자식들에게 말을 꺼내지도 못한다. 저축한 돈이 좀 있거나 연금생활자라 하더라도 선뜻 수술을 선택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은 노인들의 이런 말 못할 어려움과 고통을 덜기 위해 병원 수익을 최소화해 수술비를 절반 이하로 낮추기로 했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은 어떻게 해서 수술비용을 이만큼 파격적으로 줄일 수 있었을까. 답은 한 가지다. 진료비용 중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급여 항목을 완전히 없애거나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비급여 항목은 치료에 필수적이진 않더라도 환자가 통증을 줄이고 좀더 편안한 병원 생활을 하기 위해 선택하는 진료다. 예를 들어 1~4인실 등 상급 병실료와 선택진료비, MRI(자기공명영상장치), 초음파 검사, 무통주사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 병원은 환자의 기본 검사 자료를 바탕으로 비급여 항목 중 최소한의 비용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패키지 형태의 수술 프로그램을 마련해 환자와 협의 후 수술을 진행한다. 신규철 병원장은 “무릎 인공관절 수술에 기본적으로 필요한 진료 항목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병원급 기준으로 보험급여를 포함한 총 비용의 20% 정도인 100만 원대면 수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한쪽 무릎에 인공관절 수술을 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먼저 입원료. 보통 2주 정도 입원을 하게 되는데,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일반병실(6인 이상 사용 병실)의 경우 환자는 식대를 포함해 하루 1만4000원 정도 부담하면 된다. 5인 이하 환자가 사용하는 상급 병실 입원료는 병원이 임의로 사용료를 정할 수 있어 하루 5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상급 병실이 일반 병실보다 하루 10만 원 정도 비용이 추가된다고 가정하면 15일 입원할 경우 150만 원을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400만 원 → 135만 원
심장초음파, MRI, 체열측정, 무통치료 등도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큰 비급여 항목들이다. 수술 환자에게 모든 검사를 실시하는 경우가 있어 병원에 따라 100만~150만 원이 환자 몫으로 추가될 수도 있다. 최정근 제일정형외과병원 원장은 “인공관절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엑스레이 촬영으로 기본적인 검사가 가능하고, 기본 검사에서 심혈관 질환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심장초음파 등의 정밀검사가 꼭 필요하진 않다”고 말한다. 다만 수술 환자가 60~80대의 고령이라 수술 전 기본 검사비용 이외에 환자의 병력이나 건강 상태에 따라 초음파 등 정밀검사나 치료비용이 추가될 수는 있다.
실제로 제일정형외과병원이 한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기준으로 반값 인공관절 수술 시행 전과 시행 후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 진료비를 비교했더니 본인 부담금이 60% 이상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반값 수술 시행 이전의 총 진료비가 850만 원(4인실 기준)이고 이 중 환자 본인 부담금은 400만 원(나머지 450만 원은 보험급여)이었지만, 반값 수술 시행 후 비급여 항목을 대폭 줄인 결과 총 진료비 477만 원(6인실 기준)에 본인 부담금이 135만 원(보험급여 342만 원)으로 줄었다. 환자 본인 부담금은 물론 건강보험공단에서 부담하는 보험급여도 108만 원 줄어들었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에도 크게 기여한 셈이다.
환자 본인 부담금 가운데 60만 원에 달하는 특진의사 선택진료비가 사라졌다. 비급여이던 4인 입원실을 보험급여가 적용되는 6인실로 바꾸고 입원기간을 15일에서 10일로 단축함으로써 180만 원에 달하던 입원료 본인 부담금도 없어졌다. 무통치료 때 사용하는 장비나 약품 비용을 없애거나 줄여 40만 원을 절감했다. 이렇게 하면 본인 부담금이 400만 원에서 120만 원으로 줄어야 하는데, 해당 환자가 심혈관계 질환 우려가 있어 초음파진단 비용으로 15만 원이 추가돼 총 135만 원이 됐다.
필요한 치료인지 꼼꼼히 따져야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건강보험 항목으로만 치료를 받으면 행여 치료 결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진 않을까,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나 약품의 질이 낮아지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다. 제일정형외과병원 조재현 원장은 “국내에서 인공관절 수술이 한 해 7만5000건 정도 시행될 만큼 일반화한 데다 수술방법도 정형화돼 있어 건강보험 적용 항목만으로 수술을 해도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다. 비급여 항목에 꼭 사용해야 할 수술기구나 약품은 포함돼 있지 않아 수술의 질이 낮아질 우려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병원들은 왜 이 병원처럼 반값 인공관절 시술을 하지 않는 것일까. 신규철 병원장은 “치료비용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비급여 비용은 병원의 재정 상태나 경영방침에 따라 차이가 크다. 경영 상태가 안정적이지 못하거나 원가 절감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병원이라면 비급여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은 최상의 진료를 위해 의료서비스 인력은 최대화하는 한편 비의료 행정인력은 경험 많은 소수 정예로 구성해 고정비용을 최소화하고 업무효율을 높였다. 일반 대형 종합병원의 병상수:직원 비율이 대개 1:2~1:3인 데 비해 이 병원은 1:1.1 수준(85병상에 인력 95명)으로 1인당 업무 효율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또한 10년 이상 고정거래처를 이용, 실거래가 상한제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의약품이나 의료 기자재를 구입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신규철 병원장은 “의료비 부담을 줄이려면 병원도 경영 합리화 등을 통해 환자에게 전가되는 비용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하지만, 환자 스스로도 병원들의 진료비가 합리적인지, 자신이 받는 치료가 꼭 필요한지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을 취재한 후 후배 김 군에게 전화를 걸었다. “100만 원대에 어머니께 인공관절 수술을 해드릴 방법이 생겼다”고 전하자 그는 “당장 어머니 모시고 가야겠다”며 기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