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호

“李, 유동규에게 직접 보고하라는 포괄적 권한 부여”

[추적 | 대장동, ‘보이지 않는 손’은 누구인가] 대장동 판결문에 나타난 ‘5대 핵심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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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5-11-19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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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①이재명 유착? 판결문에 나타난 ‘성남시 수뇌부’는 누구?

    • ②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정당한 추가 이익도 포기”

    • ③민사로 해결? “7000만 원짜리 사건도 그렇겐 안 해”

    • “전두환·노태우 추징금 사건도 ‘민사로 해결하지’…납득 안 돼”

    • ④남은 재판 어떻게? “본전치기가 최선”

    • ⑤대장동 일당 향후 대응? “오히려 가석방 카드 추가돼”

    • 추징금은 ‘버티거나, 내고 가석방’…꽃놀이패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부터) 등 피고인 전원은 대장동 1심 선고에 항소했다. 뉴스1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 남욱 변호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왼쪽부터) 등 피고인 전원은 대장동 1심 선고에 항소했다. 뉴스1

    검찰 기소 4년여 만에 대장동 사건 1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문만 724쪽에 달하는 이번 재판은 방대한 내용 속에 수많은 쟁점이 뒤엉켜 있다. 여기에 검찰의 항소 포기로 1심 판단이 남은 재판을 좌우할 기준점으로 굳어지며 판결의 의미는 더욱 무거워졌다. 이에 재판을 둘러싼 ‘5대 핵심 쟁점’을 정리했다.

    ①李 대통령 유착? ‘성남시 수뇌부’는 누구인가

    재판의 주요 관심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배임을 저질렀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이 대통령의 배임 재판과 별개로 진행된 이번 재판에서도 관련 혐의를 주장해 왔다. 이에 재판부는 주석을 통해 “이재명·정진상에 대한 배임 재판은 별도로 진행 중이며, 이재명은 이 법정에 출석해 증언한 사실이 없다”며 “배임 범행에 공모·가담했는지 여부에 관한 설시는 기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대통령의 유착 의혹에 대해 비교적 선을 그었다. “(이 대통령은) 유동규·정진상 등과 민간업자들의 유착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됐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 방식으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것이다. “수용 방식 결정 무렵까지 민간업자들로부터 직접적으로 금품이나 접대를 받았다는 증거는 없다”는 게 이유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사실상 이 대통령의 유착 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 대통령 배임 재판에 대해 공소 취소를 주장했다. 다만 박 대변인의 해석은 재판부의 판단을 축소 해석했다는 반론도 나온다. 앞선 내용은 이 대통령이 수용 방식을 결정한 때인 2014년 9월경을 기준으로 해 이후까지 포괄하는 판단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판결문에서 이 대통령은 두 명칭으로 지칭된다. 바로 ‘이재명’과 ‘성남시 수뇌부’다. 판결문에는 “이재명·정진상 등 성남시 수뇌부” 같은 표현을 줄곧 사용됐다. 재판부는 유 전 본부장의 업무상 배임죄를 인정하면서 “(유 전 본부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위치는 아니고, 성남시 수뇌부 주요 결정에 의견을 조율하는 등 중간관리자 역할만 한 측면도 일부 나타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재명은 유동규에게 공사 설립 준비, 대장동 개발사업과 위례 개발사업 계획 수립 등 주요 공약 이행 업무를 맡기면서 성남시의 주무부서나 공단 이사장을 거치지 않고 자신 또는 정진상에게 직접 보고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실무 권한을 부여했다”고도 판단했다. 이 대통령의 배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셈이다.

    ②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 “정당한 추가 이익 단념”

    업무상 배임이 인정되면서 자연스레 대장동 개발사업을 ‘단군 이래 최대 공익 환수’로 평가해 온 이 대통령의 주장과 판결문 사이의 간극도 부각됐다. 이 대통령은 20대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5503억 원을 시민 이익으로 환수한 모범적 사업”이라며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 환수 사업”이라고 평가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유동규는 사적 이익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정당한 추가 이익 배분 요구를 단념했다”며 “당초 고지·제안받았던 예상 사업 이익(4000억~5000억 원)보다 훨씬 줄어든 예상 사업 이익(약 3600억 원)을 전제로 민간업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동규·정민용의 일련의 임무위배행위로 인하여 공사의 이익은 A10 블록의 협의 가액인 1822억 원으로 고정됐고, 이는 이 사건 사업 협약 체결 당시 합리적으로 예상됐거나, 민간업자들로부터 제안받은 전체 개발이익 약 4000억~5000억 원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었다”고 평가했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확보할 수 있었던 추가 이익이 유 전 본부장의 위법행위로 포기된 만큼, 이 과정에서 성남시 수뇌부의 지휘와 보고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가 향후 이 대통령 배임 판단의 핵심 쟁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다만 이 대통령의 재판이 멈춘 상태에서 정부와 여당에서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는 점이 변수다. 이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1월 16일 “(배임죄 폐지의) 목적은 결국 이 대통령의 대장동 백현동 법카 유용, 이런 재판을 모조리 처음부터 죄가 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뉴스1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 두 번째)이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협의’에서 모두 발언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뉴스1

    ③민사로 해결? “7000만 원짜리 사건도 그렇겐 안 해”

    이번 재판에서 검찰은 7814억 원의 추징금을 구형했다. 건설 비리 사건으로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다. 그러나 1심 재판부가 6% 수준인 473억3365만 원(김만배 428억165만 원, 정민용 37억2200만 원, 유동규 8억1000만 원)만 인정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형사절차를 통한 환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성남시는 검찰이 청구한 손해배상액(4895억 원)을 기준으로 손해배상소송을 확대 진행할 방침이지만, 이 역시 난망이다. 재판부는 “성남도시개발공사가 대장동 관련 형사소송 결과가 모두 나온 뒤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1월 10일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며 항소 포기에 관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1월 10일 경기 과천 정부과천청사에 출근하며 항소 포기에 관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동아DB

    여권은 피해 회복을 앞당기자는 기조 아래 형사 제도를 손질하고 있다. 범죄 혐의자의 소재 불명이나 공소시효 만료 등으로 기소가 불가능하더라도 범죄수익을 몰수·추징할 수 있게 하는 독립몰수제 도입이 대표적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11월 6일 국회를 찾아 해당 입법을 촉구하며 피해자 보호 강화를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대장동 사건에 대해서는 “민사 대응으로 충분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형사 단계에서 국가가 선제적으로 피해를 회복시켜 주는 방향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하면서, 정작 대장동에서는 ‘형사는 접어도 된다’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대표변호사는 “대장동은 피해자(성남도시개발공사, 성남시민)가 있는 사건이고, 형사절차에서 검찰은 피해자를 대리한다”며 “7000억 원은커녕 7000만 원짜리 사건이라고 해도 변호사가 ‘형사는 여기서 멈추고 민사로 가자’고 하면 누가 그 변호사를 수임하겠나”고 지적했다. 이어 “검찰의 대응은 매우 이례적이며, 여권 기조와도 맞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내란·뇌물 혐의로 추징금을 선고받았는데, 그때 ‘민사로 해결하면 된다’며 항소를 포기했다면 누가 납득했겠느냐”고 비판했다.

    ④ 남은 재판 어떻게? “본전치기가 최선”

    대장동 일당에 대한 항소심은 서울고법 형사6부(재판장 이예슬)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해당 재판부는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초 항소심은 형사3부로 배당됐으나, 재판부 구성원 중 한 명이 피고인 남욱 변호사와 사법연수원 동기(37기)라는 점을 이유로 ‘연고관계 변호사 선임사건 재배당 기준’에 따라 재배당을 요청했다. 서울고법은 이를 재배당 사유로 인정했고, 사건을 담당했던 부패전담부 다음의 부패전담부인 형사6부에 사건을 새로 배당했다.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2심 역시 대장동 일당에게 불리하지 않게 흘러갈 전망이다. 형사소송법 제368조는 피고인만 항소한 경우 원심보다 무거운 형을 내리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사실상 징역, 추징금, 벌금 등이 줄어들 가능성만 열린 셈이다.

    법조계는 항소심과 민사재판의 판결이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곽 변호사는 “본전치기가 최선”이라며 “민사사건 역시 형사사건을 준용하도록 돼 있고, 대장동 사건의 경우 형사와 민사의 쟁점이 상당 부분 겹치는 만큼 검찰과 피해자 측이 유리한 방향으로 판세를 뒤집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장 교수도 “최종 결과는 누구도 모른다”면서도 “검찰이 2심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전망했다.

    ⑤대장동 일당 향후 대응은? “오히려 가석방 카드 추가돼”

    검찰의 항소 포기로 피고인이 언제라도 항소를 취소하면 재판은 멈추고 1심 판결이 확정된다. 재판이 중단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법조계는 그 가능성을 낮게 전망했다. 추징금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은 사라지고 줄어들 가능성만 열린 만큼 재판을 이어가도 딱히 손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대장동 일당에게 ‘가석방 카드’가 추가로 주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석방의 주요 요건 가운데 하나는 ‘벌금 및 추징금의 완납’이다. 가석방 업무지침 제21조는 “벌금 및 추징금이 있는 자는 예비회의 개최 전일까지 이를 완납한 경우 가석방 적격심사를 신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장동 일당이 개발사업으로 막대한 수익을 얻은 상태에서 추징금마저 예상보다 낮게 청구되면서, 남은 재판 결과에 따라 추징금을 신속히 납부하며 가석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남은 재판에서 추징금이 마음에 드는 수준까지 줄어들지 않는다면 버티는 등 환수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 밑져야 본전인 ‘꽃놀이패’를 쥔 상황이다.

    곽 변호사는 “피고인들이 대장동 개발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얻은 상황에서, 추징금 규모가 예상보다 크게 줄어든 만큼 ‘이정도 추징금이면 빨리 정리하고 가석방을 통해 자유를 얻자’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며 “초범이라는 점 또한 가석방 심사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검찰의 항소 포기로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 셈”이라고 평가했다.

    추징금이 선고되지 않은 피고인은 1심 이후 적극적으로 재산권을 행사하고 있다. 남욱 변호사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건물에 대한 추징 보전을 풀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또한 강남구 역삼동 부지(709㎡)도 500억 원에 내놓은 상태다. 남 변호사는 2021년 300억 원을 주고 해당 부지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져 부동산 거래가 성사되면 약 200억 원의 시세차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2020년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주간동아를 거쳐 신동아로 왔습니다. 재미없지만 재미있는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가정에서도, 회사에서도, 사회에서도 1인분의 몫을 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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