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설물 유지·관리 기술은 기울어진 건물을 바로 세우고, 좌우로 이동시키며, 위아래 층고를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췄다. 사진은 국내 시설물 유지·관리업체가 보유한 평행이동 기술을 활용해 중국의 공공기관 건물을 이동, 회전시킨 사례.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제3차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기본계획에 따르면, 국내 시설물 유지·보수 공사는 2000년 1만2877건에서 2010년 5만9359건으로 10년 사이에 4.3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공사금액도 8000억 원에서 2조8000억 원으로 3.7배 늘었다. 이처럼 시설물 유지·관리 시장은 해마다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현재 시설물 유지·관리업종을 보유한 회사는 4600여 개로, 이들 회사가 지난해 수행한 공사 실적은 3조4000억 원에 달한다.
‘국민 행복’과 직결
시설물이란 건설공사를 통해 만들어진 교량, 도로, 건축물 등의 구조물과 그 부대시설을 뜻한다. 모든 시설물은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하기 마련인데, 노후화 정도에 따라 시설물을 개량하고 보수, 보강하는 것을 한데 묶어 ‘유지관리’라 한다. 즉 완공된 시설물의 기능을 보전하고, 이용자의 편의와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점검·정비하고, 손상된 부분을 원상복구하는 모든 활동이 시설물 유지관리업이다.
영국 83%, 한국 8%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는 시설물 유지관리업을 하는 회사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비영리 법정단체다. 정부 수탁사업으로 건설공사의 기성 실적신고 접수 처리와 시공능력평가·공시, 건설업 실태조사, 시설물 유지관리업 관련 통계 작성과 연보 발행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이밖에 시설물 유지관리업계의 발전을 위해 관련 법과 제도 개선을 건의하고, 유관 기관 및 단체와의 협약을 통해 기술적, 학문적 발전을 꾀하기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시설물 유지·관리는 국가의 주요 자산인 사회간접자본(SOC)의 수명을 늘리고 효율적 활용을 가능케 해 미래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건설산업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시설물의 안전을 확보하고, 사용 성능을 향상시켜 국민이 안심하고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 행복에 일조하는 길이기도 하다. 올해 초 국토해양부는 부처별 업무보고에서 시설물의 체계적 유지·관리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국내 시설물 유지·관리 시장 규모는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지만, 선진국과 비교하면 투자 비중이 크게 낮다. 우리나라 전체 건설업 중 유지·관리에 대한 투자 비중이 8%에 불과한 데 비해 독일 26%, 이탈리아 57%, 영국 83% 등 선진국들은 시설물 유지·관리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낡은 시설물을 적정하게 유지·관리하지 않아 앞으로 5년간 2조2000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찌감치 시설물 유지·관리에 투자하지 않으면 이처럼 큰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시설물 유지·관리 투자에 소홀할 경우 향후 막대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중반부터 도로와 교량 등 교통시설이 집중적으로 건설됐기 때문에 30년 이상 된 노후 시설이 많아 안전 보강 및 유지·관리의 필요성이 그만큼 높다. 국토교통부가 관리하는 고속도로 및 일반국도 교량 중 30년 이상 된 것이 242개, 20~30년 628개, 10~20년 3028개, 10년 미만이 7249개다. 전체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10년 미만 교량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노후돼 연쇄적으로 안전 및 유지·관리 수요를 급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건축물도 전체 주택의 50% 안팎을 차지하는 아파트와 상업용 빌딩 및 오피스텔이 대부분 1990년대 이후 공급됐기 때문에 2020년 이후부터는 리모델링 및 재건축 수요와 함께 안전 및 유지·관리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실적공사비에 발 묶여
이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집중적으로 들어선 첨단 초고층 복합 건축물, 인천대교나 광안대교와 같은 장대·특수교량, 고속도로 철도가 지나는 터널 등은 당장 시설물 안전을 위한 유지·관리 필요성이 크다. 시설물 유지관리업계에서는 향후 10~20년 동안 국내 장대교량 시장 규모가 14조 원 이상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용훈 대한시설물유지관리협회장은 “평소 건강검진으로 우리 몸의 상태를 점검하면 큰 병을 예방할 수 있듯, 시설물도 평소에 꼼꼼한 유지·관리 노력을 기울이면 대형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랫동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국내 건설시장 규모는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이후 크게 축소됐다. 하지만 업체 수는 1999년 등록제 전환 이후 급격히 증가해 시장 규모에 비해 건설사가 과도하게 많아졌다. 수요는 줄고 공급이 늘면서 건설시장에는 부실, 불법 건설사 난립에 따른 과당경쟁으로 저가 수주가 만연해 있다.
시설물 유지관리업계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실적공사비에 발이 묶여 일한 만큼 제값을 못 받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실적공사비 제도는 공공부문에 대한 공사비를 산정할 때 이미 수행한 건설공사의 계약단가를 기준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적정 시장가격을 형성하고 계약관련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04년에 도입됐다. 그러나 업계는 실적공사비 제도가 건설공사 가격을 하락시켜 적자 수주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시설물업계 관계자는 “계약단가를 기준으로 실적공사비가 축적되고, 실적공사비를 토대로 다시 예정가격을 매기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 실적공사비는 구조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공사 낙찰자를 선정할 때는 대개 낙찰 하한율에 근접한 가격에 투찰한 업체가 낙찰을 받는다. 이 때문에 공사가액은 예정가격보다 낮은 가격에서 형성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한번 낮게 책정된 계약단가는 다음 발주 때 실적공사비의 기준이 돼 공사비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는 점.
시설물 유지관리업계는 이 같은 구조적 원인 외에도 단가보정 체계가 절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실적공사비 단가는 제시된 공종(工種)의 단가가 현장이나 작업 여건과 일치하지 않을 경우 할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러나 현재 실적공사비 단가집에 포함된 보정항목은 17개 공종에 불과하고, 해당 기준 물량에 미달할 경우에만 단순 할증하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건설공사에서는 투입 노무량이 현장환경과 작업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업계는 이런 다양성이 반영된 실적공사 보정항목을 추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용훈 회장은 “실적공사비 단가를 대형 공사 현장에 적용할 경우 규모의 경제효과가 작용해 현장 경비와 일반관리비 등의 요율이 크게 낮아져 별문제가 되지 않지만, 소규모 공사에선 현장 여건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즉 같은 공사라 하더라도 규모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단가를 현실성 있게 보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용훈 회장은 창틀 공사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대규모 아파트를 지을 때 창틀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공사 비용이 얼마라고 합시다. 그런데 다 지어진 아파트에서 창틀 하나를 바꾸려면 그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듭니다. 작업환경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죠. 주변이 모두 공사장일 때는 들지 않았을 안전장치 설치 비용 등 추가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상황 변화를 감안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공사비는 얼마다’라고 정해놓고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요.”
실적공사비 문제와 관련해 전문건설업계는 적용 대상을 대형 공사로 제한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를 비롯한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실적공사비를 100억 원 이상 공사에 적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자재가격 상승 등 건설공사비 지수의 변동을 고려해 단가가 수시로 보정돼야 한다고 업계는 주장한다. 공사 예정가격을 정할 때 현장 여건이나 물가변동 등을 고려해 단가를 활용하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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