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에서 ‘팬택 신화’ 이어간다”
- “세습 재벌은 핏줄로 지배하는 마피아”
- 암 수술 후유증 고통…‘가스 질식사’ 생각도
- 한미FTA 협상 지휘…“실패하면 4명 잘라라” 건의
▼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책을 두 권 냈다. 2012년 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가경제 철학을 소개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 그해 말에는 영화를 인용해 우리나라 경제현상과 대책을 제시한 ‘어떤 경제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가’를 냈다. 암 투병을 하며 틈틈이 썼다.”
두 번 찾아온 癌
▼ 암 투병?
“전립선 이상 소견으로 조직검사를 했는데, 2010년 암 확정판정을 받았다. 의사인 친구 권유로 ‘방사성동위원소 시드 영구삽입술’(방사성동위원소를 종양 부위에 삽입하는 근접치료법)을 했는데, 수술 후 아들을 보러 미국을 방문했다가 공항에 2시간 동안 억류됐다. 방사능 물질을 신고해야 하는데 동위원소 번호를 몰랐던 거다(웃음). 2012년 3월엔 췌장암 판정을 받았는데,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췌장암 환자의 생존율은 5%였다.”
▼ 충격이 컸겠다.
“종종 죽음에 대해 생각해온 터라 큰 충격은 없었다. 상상하던 게 이뤄진 경우가 제법 있었는데, 그때도 ‘죽음을 생각했으니 생각대로 되는가보다’고 여겼다.”
▼ 죽음을 종종 생각했다니…
“‘설국(雪國)’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좋아하는데, 가스를 틀어놓고 생을 마감한 그의 죽음은 언젠가 내가 택하고 싶은 죽음이었다. 췌장암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친구 3명과 ‘생애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시아의 푸른 바다를 보며 죽음을 떠올렸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더라. 정확하게는 ‘슬프지 않았다’. 돌아와 4월 중순 장기 일부를 절제하는 수술을 하고 퇴원했는데, 며칠 뒤 극심한 통증이 와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한 달을 보냈다. 피를 토해냈고…. 오진(誤診)에 이어 췌장 절개수술조차 잘못된 것이었다.
그 후유증으로 1년 고생했는데, 아직도 약간 후유증이 있다. 이후 새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 ‘새 인생’이라면 옵티스 회장으로의 변신 말인가.
“재작년부터 인도네시아 통신정책, 기술 · 자금 등 IPTV(인터넷 TV) 산업전략을 조언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옵티스 이주형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회장 취임) 요청을 받고 새로운 사업 모델로 진출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아 합류했다.”
회장을 맡기로 결심한 날, 그는 우연히 시 한 편을 보게 됐다고 한다. 이 시는 인터뷰 말미에 소개하기로 한다.
▼ 옵티스, 쏠리드 같은 회사는 생소하다.
“옵티스는 이주형 대표를 비롯한 삼성 출신 인사들이 2005년 설립한 광학기기 전문 중견기업이다. 카메라 모듈과 CD/DVD 등 광디스크 드라이브(ODD)를 만드는데, 2013년에는 삼성전자 필리핀 ODD 생산 공장을 인수했다. 쏠리드는 벤처기업협회장인 정준 대표가 운영하는 글로벌 통신장비회사다.”
팬택과의 묘한 인연
▼ 변 회장의 경력이면 어느 기업에라도 취업할 수 있었을 듯한데.
“그런가(웃음). 경제발전사에서 팬택, 휴맥스 같은 회사는 삼성, 현대에 버금가는 상징적 기업이다. 삼성, 현대가 산업사회의 상징 기업이라면 팬택과 휴맥스는 정보화사회의 상징 기업이다. 그런 기업들이 사라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KT, 삼성 출신 인사들이 설립한 쏠리드와 옵티스는 또 다른 상징 기업이다.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나와 꿈을 찾아 창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회사 아닌가. ‘경력자 창업’의 신화를 쓸 거다.”
▼ 팬택은 삼성, LG라는 거대 기업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안타까움 때문에 인수에 나섰다는 말이 잘 납득되지 않는다.
“팬택과는 개인적으로도 묘한 인연이 있다. 2007년 청와대 정책실장 시절 팬택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당시 채권자인 산업은행 총재에게 ‘경제발전사에서 상징적인 팬택을 회생시켜보라’고 했다. 2007년은 워크아웃 관련법이 없어진 직후였다. 당시 산은 총재가 워크아웃 관련법도 없는 상황에서 많은 노력 끝에 팬택 회생을 도왔다.”
▼ 박병엽 팬택 창업자와 친분이 있었나.
“지금껏 일면식도 없다. 나는 한국 경제에서 팬택이 차지하는 중요성과 가능성에 주목할 뿐이다. 팬택 인수에 성공하면 팬택 건물에 박병엽 씨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싶다. 팬택은 우리나라에선 3등이지만 기술과 인력 면에선 세계적 기업이다.”
▼ 옵티스 대주주인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최고경영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은 팬택 인수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장관의 의중은 전혀 모른다. 노무현 정부 이후 10년 가까이 따로 만난 적이 없다. 나는 팬택 인수와 성공을 낙관적으로 본다. 이미 유능한 투자회사도 합류했다. 최종 인수는 문제없겠지만, 모든 비즈니스의 핵심은 재무와 영업이다. 향후 영업계획이 중요하다. 3인방(정준 · 이승희 쏠리드 대표, 이주형 옵티스 대표)의 능력과 새로운 사업 모델로 승부를 내면 된다.”
ICT 산업 한꺼번에 수출
▼ 새로운 사업 모델은 무엇인가.
“상품 수출에서 사람 수출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 상품보다 기술, 인력, 서비스로 승부를 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제품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추진해 세계시장을 석권했지만, 이러한 방식이 일자리 창출이나 국민 복지와는 차츰 거리가 멀어지고 있다.”
▼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내가 현직에 있을 때 KSP(Knowledge Share Partnership) 해외원조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인도네시아 등에서 추진하려는 팬택 사업과 같은 개념이다. 단순히 저가 노동력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기술, 자본, 경영방식 등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자체를 한꺼번에 수출하는 새로운 방식의 해외진출 사업을 구상한다.
인도네시아는 ICT 산업에 대한 열망은 크지만 기술역량이 부족한 만큼 팬택 단말기를 활용해 다양한 사업을 펼칠 수 있다. 옵티스의 휴대용 프로젝터, 팬택 스마트폰, 인도네시아 IPTV 사업권을 결합한 ‘TV폰’을 선보일 수도 있고, 인도네시아 ‘자국폰’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첨단 ICT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할 수 있다.”
KSP는 ‘경제발전 경험 공유사업’으로 불린다. 한국개발원(KDI)과 기획재정부가 개발도상국에 우리의 경제개발 노하우를 전수하는 일종의 한국식 원조 모델인데, 전국경제인연합회 등은 이를 우리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 촉매제로 활용한다.
▼ 왜 인도네시아인가.
“인도네시아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2억5000만 인구를 품은 시장도 크거니와, 인적 네트워크가 가동되고 있어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앞으로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 스리랑카, 르완다 등지에서도 비즈니스를 벌일 계획이다.”
▼ 관료가 기업인으로 변신하는 건 쉽지 않을 듯한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의 역할보다 중요한 게 기업의 역할이다. 시작은 정부에서 했지만 끝마침은 기업에서 하고 싶었다. 내가 근무한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은 해고나 좌천이 없어서 오랜 기간 직원들과 함께 일해야 했다. 설득과 이해를 무기로 소통하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기업에서도 그렇게 소통하면서 함께 만들어가려고 한다.”
▼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지 오래다. ‘취업절벽’이란 말이 나올 만큼 청년고용 문제도 심각하다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방식에 대해 몇 마디 하고 싶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유연성’은 고용주의 권한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권한이 돼야 해결 가능하다. ‘국가 정책’은 곧 ‘자원 배분’인데, 1980년대까지는 자본을 선별적으로 지원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연구개발(R·D) 사업 지원을 통해 불특정 기업에 기술지원을 했지만, 결국 대기업 위주로 자원이 흘러갔다. 이런 지원 방식은 수명을 다했다. 이제 매년 18조 원이 넘는 돈을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에 지원해야 한다. 노동자의 기술력과 업무능력을 향상시켜 노동자가 언제든 다른 회사를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해고 우려에 불안해하거나 고용주에 매달릴 일도 없다.”
▼ 기술력이 좋은 노동자도 교육비, 주거비 때문에 가처분 소득은 줄어든다.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재정금융 확대정책은 필요하지만, 성장은 삶의 질 향상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저금리 · 저물가 · 저성장으로 상징되는 ‘뉴 노멀(New Normal ·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 시대’에 진입했다. 이런 시대엔 ‘소비하기 좋은 사회’가 돼야 한다. 고정관념의 전환이 중요하다.”
“재벌 실명제” 하자
▼ 고정관념의 전환?
“예를 들어, 주요 명산의 케이블카 건설을 불허하는 방침은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어린 손자, 손녀와 산상에서 차 한잔하는 소비 장소를 무슨 권리로 빼앗는가. 인구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살고 있는 만큼 동해안 바닷가까지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단풍철 설악산 가는 길이 왜 주차장이 돼야 하나. 이런 관점에서 소비하기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 최근의 ‘롯데 사태’는 어떻게 보나.
“기업의 투명성이 부족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명성은 정말 중요하다.”
▼ 투명성이라….
“재벌을 이야기할 때 흔히 헌법 119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말한다. 나는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계급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헌법 11조 정신을 말하고 싶다. 핏줄로 이어지는 특권계급이 한국의 재벌 아닌가. 필리핀과 남미가 쇠락한 것도 몇몇 특권 패밀리가 다스리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었다. 상당수 재벌 가문은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경영한다. 핏줄로 지배하는 마피아 가문과 뭐가 다른가.”
그의 설명은 길었다. 할 말이 참 많은 듯했다.
“재벌 견제를 위해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 순환출자금지 등을 얘기하는데, 골목상권에 진출한 재벌을 규제하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 재벌이 빵집, 문구류 사업을 하는 데는 큰돈이 들지 않는다. 사업도 쉽다. 직원은 대부분 비정규직을 쓰고, 업무는 아웃소싱한다. 이런 사업이 번창하면 비정규직과 빈곤층만 는다. 재벌은 시민과 언론의 힘으로 견제해야 한다.
그 힘을 키우는 게 투명성이다. 재벌이 어떤 경제활동을 하는지 감춰진 부분이 많은데, 이걸 정부가 공개하는 거다. 실시간 파악할 수 있으면 재벌 횡포를 견제하는 시민과 언론의 힘이 절로 생긴다. 재벌도 스스로 조심하게 된다. 서민 좌판 장사까지 집어삼키는 일은 부끄러워서라도 못한다. ‘투명이 권력’이다. ‘재벌 실명제’를 해야 한다.”
한미 FTA 음모론
▼ 노무현 정부의 경제 컨트롤타워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할 때는 어땠나. 정부 지지층에 맞서는 정책을 추진하느라 내부 갈등도 있었을 것 같다.
“갈등도 많았고…. 이건 처음 얘기하는 건데, 2007년 4월 1일, 한미 FTA 협상 타결 전날 노 대통령께 ‘주한 미국대사가 본국으로 갔다고 하니 아마 미국도 최종 결심을 할 모양이다. 오늘 밤 내가 책임지고 지휘하겠다. 편히 주무시라. 쇠고기를 제외한 분야에서는 문제가 없는 한 타결 쪽으로 지휘하겠다’고 말씀드렸다.”
▼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나. 당시 언론은 대통령이 한미 FTA 협상을 최종 지휘했다고 보도했다.
“특별한 말씀이 없었다. 노 대통령은 국가적 차원에서 한미 FTA를 추진했지만, 사실 지지세력의 극렬한 반대에 고뇌하고 있었다. 그런 대통령을 위해 아무도 몰래 내가 지휘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언론은 대통령이 밤을 새우면서 지휘한다고 보도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 협상이 불발됐을 때 대응 방안은 뭐였나.
“그것도 보고했다. 3월 31일 오후였을 거다. 토요일이라 관저로 대통령을 찾아뵙고 문제점을 말씀드렸다. 그때 시중에는 미국의 과도한 요구를 이유로 막판에 협상을 깨고, 한미 FTA를 결사반대하는 진보진영을 결집해 다가올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는 음모론이 돌았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정치공학적인 작전을 안 하는 분이었다.”
▼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으면 음모론이 설득력을 얻었겠다.
“협상이 결렬되면 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없어지고, 완전히 작전에 의한 것이라고 뒤집어쓸 판이었다. 그래서 음모론을 재차 환기시켜드리고, 협상이 결렬되면 1차적으로 당시 권오규 재경부 장관, 박흥수 농림부 장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그리고 정책실장인 나를 즉각 해임하라고 말씀드렸다.”
▼ 책임자 해임을 통해 음모론을 불식하고 진정성을 얻는다?
“권오규 장관은 대외경제장관회의 의장으로 대외경제 정책조정의 책임자였고, 박흥수 장관은 미국과의 협상이 결렬된다면 가장 큰 이유가 농업 부문일 것이기 때문이었다. 김현종 본부장은 협상실무 책임자였고, 나는 협상에서 대통령을 대리하고 청와대를 대표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는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듯 잠시 눈을 감았다.
▼ 요즘 기업 경영 외에는 어떤 일을 하나.
“젊은이들을 위해 모병제를 연구하고 있다. ‘모병제를 희망하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 모병제? 뜻밖이다.
“지난해 전방 GOP 총기 난사사건 소식에 무척 놀랐다. 2002년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수도방위사령부 초병 2명을 제압하고 총기를 탈취한 사건이 있었다. 근본 대책을 세울 때다. 40년 전 내가 군생활 할 때는 우리나라가 농업사회였지만, 지금 군대도 여전히 농업 · 산업국가 시절의 군대다. 이젠 첨단장비를 갖추고 유사시 중무장 기동타격대가 출동해야 한다. 북한의 노동집약적 군대에 발맞추기보다 기술집약적 군대로 바꿔 정예군대로 가야 한다. 국내총생산(GDP)의 1.5%만 국방비에 투입해도 북한 전체 GDP의 50%에 해당한다. 강제 징집은 전투에 임하는 정신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ARTBIS와 韶容
▼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을까.
“생각해보라. 젊은 인력을 낮은 급여 줘가며 쓰고 있으니 예산을 절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월 200만 원 받는 인력이 입대한다고 가정하면 연간 12조 원의 사회적 비용을 국방비에 쓰는 거다. 모병제를 하면 제대로 된 일자리 수십만 개가 생기고, 여성에게 군 문호를 넓히는 효과도 있다.”
인터뷰 전반부, 변 회장이 읊은 시는 미국 목사 로버트 슐러의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였다.
절벽 가까이로 나를 부르셔서 다가갔습니다. (…) 물론 나는 그 절벽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 시를 들려주고는 ‘고용절벽’으로 암울하더라도 청년들이 주변 환경을 긍정적이 되도록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자신의 비법도 들려줬다.
“티베트의 영적 지도자 소갈린포체는 ‘삶과 죽음에 대한 티베트의 책’에서 스승의 얼굴을 ‘언제나 미소를 지을 준비가 돼 있는(Always Ready To Break Into a Smile)’이라고 묘사했다. 생사를 초월한 마음의 평화 없이는 나타날 수 없는 묘사다. 그래서 내 최초의 ID는 그 말 첫 글자를 딴 ‘ARTBIS’로 정했다. 컴퓨터 로그인할 때마다 그 얼굴을 떠올려봤다.
얼마 전에는 ID를 소용(SOYONG)으로 바꿨다. 소용(韶容)은 ‘젊은이처럼 자신감과 생기가 넘치는 환한 노인의 얼굴’이란 뜻이다. 살아보니 얼굴 표정만으로도 주변 환경을 바꾸고, 나아가 운명이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