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은 미중 대립 계곡에서 자라난 ‘독버섯’
북핵 완성 이전과 이후 정책 완전히 달라져야
미국의 핵우산은 우리에게 ‘보호망’이자 ‘그늘망’
‘통일’은 계획 세워 추진할 수 있는 목표 아냐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지호영 기자
북핵 위협이 현실이 된 상황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가(Make America Great Again)’를 외치며 재등장한 후 세계질서까지 급변하고 있다. ‘국방부’를 ‘전쟁부’로 바꾼 트럼프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을 벌이고 있다.
북핵은 ‘변수’ 아닌 ‘상수’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에게 ‘북핵’과 ‘마가’라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낯선 환경에 처한 우리나라가 안전보장을 확실히 하고, 국익을 지켜나가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해법을 들었다.현시점에 한반도 비핵화는 가능한가.
“북한이 핵무기를 완성한 2017년 말에 한반도 비핵화는 끝났다. 6차례에 걸친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을 만큼 작고 가볍게 만드는 이른바 ‘소형화·경량화’를 이뤄 북한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됐다. 역사상 스스로 핵을 포기한 유일한 나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인데, 1990년 당시 백인 소수 정부가 흑인 정부에 권력을 이양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미리 핵을 폐기해 버린, 일종의 ‘예방적’ 조치 성격이 강했다. 북한에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경우다.”
북한 핵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인가.
“북핵은 변수가 아니라 이제 상수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연목구어와 같은 것이다. 북한에 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모든 정책을 맞춰가야 한다.”
그러면서 송 전 장관은 이렇게 강조했다.
“지금 한국은, 가까운 미래에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난 ‘한반도 비핵화’를 통일 정책의 관문으로 삼고 있다. 통일을 앞세우지만 본질적으로 불안한 현상을 유지하는 길이다. 그런 현상의 ‘유지’보다는 ‘변경’을 통해 안정과 평화, 그리고 통일로 가는 길을 더 넓힐 수 있고 비용도 덜 드는 경로가 있다면 당연히 생각을 바꿔야 한다.”
송 전 장관은 2005년 중국에서 열린 6자회담에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참석해 9·19공동성명을 이끌어낸 당사자다. 그런 그가 “북핵을 인정해야 한다”고 얘기한 까닭은 뭘까. 계속해서 그의 얘기다.
“핵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협상을 통해 핵 개발을 지연시켜 해결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이후 협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북한이 핵을 완성했다. 북한이 핵을 완성하기 전과 이후 정책은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그는 “만약 중국이 (북한의) 뒤를 받쳐주지 않았다면 북한은 핵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중국이 직접 (북한 핵 개발을) 도운 것은 아니지만, 중국이 뒤를 받쳐줬기 때문에 북한이 핵 개발을 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폭격하지 않았나. 만약 중국이 아니었다면 미국은 이란의 경우처럼 북한 핵시설을 일찌감치 폭격해서 제거하려 했을 것이다. 북핵은 미국과 중국이 대립하는 계곡 속에서 자라난 독버섯과도 같다.”
北 레짐 체인지? 희망 사항에 불과
북한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은 없나.“레짐 체인지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송 전 장관은 6·25전쟁을 예로 들었다.
“만약 중국이 1950년 10월 한반도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유엔군이 지배하는 가운데 통일이 됐을 거다. 그런데 중국이 들어오면서 좌절됐다. 당시 중국은 1949년 국공내전을 끝내고 정권을 수립한 취약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최강 미국 중심의 유엔군과 싸워 6·25전쟁을 비긴 전쟁으로 만들었다. 미국이 역사적으로 처음 비긴 전쟁이 6·25다. 중국은 결코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 만약 북한이 붕괴돼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통일이 되면 중국은 옆구리에 치명적 안보 위협이 생기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현재의 국제 정세를 볼 때 앞으로 상당 기간 북한 붕괴나 레짐 체인지를 전제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통일을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북한이 핵을 갖게 되면서 우리 안보는 그만큼 취약해진 것 아닌가.
“취약해진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지금 북한 핵의 위협에 미국의 핵우산이라는 위력으로 균형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미국의 핵우산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북핵을 겨냥한 위력은 ‘보호망’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그 위력하에 움츠리고 살아야 하는 ‘그늘망’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지금 이대로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재등장 이후 세계질서가 급변하면서 ‘미국 핵우산은 과연 튼튼한가’라는 우려가 나온다.
“트럼프가 한국의 안보 우산을 협상 카드로 들었다 놨다 할 경우 미국 핵우산 위력 밑에 있는 우리는 더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핵우산은 공격에 대한 방어를 의미하는데, 만약 한반도에서 핵이 사용됐을 때 과연 미국이 핵을 사용하면서까지 우리를 방어하려 할지도 미지수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추진하고 있는 점도 우리의 안보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미동맹은 재래식 군사 충돌 때는 재래식 군사력이 우수한 한국이 방어하고, 만약 북한이 핵을 쓴다면 미국 핵으로 대응한다는 방어와 억지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런데 만약 중국이 대만을 공격할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을 빼서 그곳에 투입할 수 있도록 탄력적으로 운용하겠다는 게 전략적 유연성이다. 그런데 이미 주한미군은 전략적 유연성에 적합하게 개편돼 있다.”
만약의 경우 대비, ‘핵잠재력’ 확보해야
북핵이 현실화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안보 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우리도 자체 핵무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북한 핵 위협과 미국의 핵 위력하에서 움츠리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있도록 ‘핵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
송 전 장관은 “일본과 독일이 핵잠재력을 확보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두 나라보다 훨씬 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일종의 보험과도 같은 미국의 핵우산이 흔들릴 우려가 있거나,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보험료가 비싸질 가능성도 있다”며 “만약 찻값보다 보험료가 더 비싸면 보험 가입을 포기하는 것처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핵잠재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양국이 최근 발표한 공동 설명자료(팩트시트)에 따르면 우리의 핵추진잠수함 건조 및 보유, 우라늄 농축,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에 합의한 것으로 돼 있다.
“한국의 국방 예산 증액과 미국 무기 구매, 그리고 미군 방위비 분담 부분은 구체적 수치와 행동으로 규정돼 있는 반면, 한국의 핵연료주기(농축과 재처리) 부분은 모호하게 표현돼 있다. 미국은 ‘미국 원자력법’과 ‘의회 절차’를 거쳐 한국이 이를 확보할 수 있는 ‘절차’를 지원한다는 3중의 걸음장치를 만들어두고 있다. 더욱이 국가안보와 국방경제(defense economics) 차원에서도 ‘핵잠 건조’의 타당성을 수긍할 수 없다. 핵연료주기를 확보하지 않고 핵잠을 보유한 나라가 없다는 점도 중시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할 ‘잠재적 핵 능력’이다. 그런데 핵잠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핵잠 관련 조항만 하더라도, 미국은 핵잠 연료 확보를 위한 ‘경로’, 건조에 필요한 ‘조건의 진전’, 그리고 이를 위한 ‘긴밀한 협력’이라는 모호한 단어로 쿠션을 넣어두고 있다. 안보를 위한 가성비는 낮고, 실제 보유 가능성도 높지 않은 ‘핵잠’이라는 구호에 많은 대가를 치를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우려스럽다”
최근 ‘좋은 담장, 좋은 이웃’ 제목의 책을 펴냈다. 어떤 메시지를 독자와 국민에게 전달하려 한 건가.

송민순 전 장관은 최근 ‘좋은담장 좋은이웃’ 제목의 책을 펴냈다. 생각의창
송 전 장관은 ‘서해 해수부 공무원 피살사건’과 ‘북한 어부 강제 북송 사건’을 예로 들었다.
“공무원 피살 사건은 해난 구조에 관한 국제협약대로 처리하고, 한국에 온 북한 어부의 경우 국제난민 협약 등 국제법대로 처리했으면 남한 내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없는 간단한 문제다. 두 사건 모두 남북 간 경계가 분명치 않아 우리 내부적으로 혼란이 생긴 경우다. 남북이 지금처럼 경계를 불확실한 상태로 내버려 두면 통일이 될 가능성도 더 멀어진다.”
경계를 확실히 하면 완전히 ‘남남’이 되는 것 아닌가.
“지금은 (남북 간) 경계가 불확실해 잦은 다툼이 생기고 있지만, 경계를 확실히 해서 서로 싸우지 않고 이웃으로 살다 보면 오히려 ‘말도 비슷하고 역사도 같으니 같이 살자’는 생각이 양쪽에 생겨 통일로 가는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지금처럼 ‘특수관계’라면서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계속 싸우게 돼 점점 더 원수처럼 돼간다. 통일은 이웃으로 살아가면서 결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지, 계획을 세워 추진한다고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확실하게 경계를 그어 좋은 담장을 세워도 북한이 좋은 이웃이 돼줄는지 모르는 일 아닌가.
“미국 핵우산이 받쳐주고, 우리가 핵잠재력을 확보해 경계를 확실히 하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토머스 셀링 교수의 이론처럼 ‘그 선(경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움직이면 쏜다. 단 네가 움직이지 않으면 나도 쏘지 않겠다’는 자세를 유지하는 거다. 북한이 자신들 정권 유지에 치명적일 일을 왜 벌이겠나.”
남북 관계는 미중 관계의 축소판
송 전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서로 경쟁하면서도 공존을 추구하지 않느냐”며 “남북 관계는 미중 관계의 축소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북이 경계를 분명히 하고 왕래하고 교류하는 경험이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되면 담장이 낮아져 서로에 대한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이재명 정부 들어 대북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은 남북 교류가 아니라 남북 간 경계를 분명히 할 때다. 핵을 가진 북한에 ‘우리가 이렇게 할 테니, 핵으로 위협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경계를 분명히 하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사는 거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북한도 자기 행동을 바꾸려 할 것이다.”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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