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은 계엄군을 내세워 난폭하게 시위를 진압한 행위도 ‘폭동’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는데, 시위를 진압한 계엄군이 폭동을 했다는 것이 아니라 전두환이 계엄군을 도구로 이용해 폭동을 한 것으로 봤다. 시위를 진압한 계엄군은 도구에 불과했기 때문에 무죄가 된다.
이석기 의원의 녹취록에 통신, 철도, 가스, 유류저장시설 등을 파괴한다는 내용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러한 기간시설이 파괴된다면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치는 정도를 넘어서게 될 것이므로 폭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란음모는 내란을 실행하기 위해 무기나 식량을 제조 또는 구입하는 등의 준비행위를 하자고 통모 내지 합의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다수의 사람이 모여 내란을 도모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거나 뜻을 모았다는 것이 입증돼야 처벌할 수 있는 범죄다. 이러한 범죄를 위해 다수가 모여야 성립될 수 있는 범죄를 집합범이라고 한다.
음모죄에서 가담자들 간에 범죄 실행의 합의가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범죄 결심을 외부에 표시하거나 전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객관적으로 보아 내란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라는 것이 명백히 인식되고, 그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이 인정될 때 비로소 음모죄가 성립한다(대법원 1999.11.12 선고 99도3801 판결).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들의 회합에서 오간 대화들이 누가 봐도 내란죄의 실행을 위한 준비행위로 볼 수 있는 것일지, 또 그들 간에 내란을 하자는 단순한 의견의 교류를 넘어 ‘합의’를 했다고 볼 만한 수준이었을지, 나아가서 그러한 합의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합의에 실질적인 위험성을 인정할 수 있을지가 재판에서 쟁점이 될 것이다.
이 경우 위험성 판단 기준으로는 미국 대법원이 확립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의 원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석기 등의 합의 내용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해악을 가져올 것이 명백하고 그 위험이 현존하는 것인지도 또 하나의 쟁점이 될 것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
검찰은 이석기 의원 등에게 당초 내란음모죄를 적용했다가 후에 내란선동죄를 추가했다. 지금까지 본 바와 같이 내란음모죄가 성립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첩첩산중이기 때문에 내란음모보다 상대적으로 범위가 넓은 내란선동을 추가해 무죄판결의 여지를 피해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내란선동은 내란음모의 정도까지 구체적인 준비단계에 나아가거나 내란을 합의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성립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말이나 행동 등으로 자극을 줘 정당한 판단을 잃게 해서 내란을 결의하게 하거나 이미 내란 결의를 하고 있는 사람의 결심을 더 강하게 만들면 성립하는 범죄가 내란선동죄다. 내란음모보다 더 포괄적인 범죄인 셈이다. 내란선동죄의 법정형은 징역 3년 이상으로 내란음모죄와 같다.
검찰이 내란음모죄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한 사건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 33년 만이다. 가장 근래의 사건이 무려 33년 전에 있었고, 그나마 그 사건에서 사형 등 중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문익환, 송건호 등 20명의 피고인 중 18명이 20여 년 후 제기된 재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