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임금의 의미
근로기준법상 임금은 ‘사용자가 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임금, 봉급, 그 밖에 어떠한 명칭으로든지 지급하는 일체의 금품’으로 정의돼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임금을 평균임금과 통상임금으로 구분해 각기 다른 용도에 맞춰 사용하고 있다.
‘평균임금’이란 평균임금을 산정해야 할 사유가 생긴 날로부터 3개월 이전의 기간에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을 말한다. 퇴직금을 예로 들면 퇴직일 직전 3개월간 퇴직자가 받은 임금 합계액을 90일로 나눈 것이 평균임금이 된다. 평균임금은 퇴직금, 휴업수당, 휴업보상, 장해보상, 유족보상, 장의비, 실업급여, 산업재해보상 등의 산정기준으로 쓰인다.
‘통상임금’은 근로자에게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소정(所定)근로 또는 총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한 급여를 말한다. 통상임금 여부를 결정하려면 정기성, 일률성, 고정성의 3가지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한다. 통상임금은 연장근로, 휴일근로에 대한 수당, 연차유급휴가수당, 해고수당 등 각종 수당 산정의 기준으로 사용된다.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평균임금이 통상임금보다 적으면 통상임금을 평균임금으로 보기 때문에 통상임금은 근로자의 최저생계비를 보전하는 기능도 한다.
평균임금은 근로기준법에 정의돼 있지만 통상임금은 법률이 아닌 대통령령에서 정의하고 있다. 문제는 근로기준법에서 대통령령으로 통상임금을 정하도록 위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처럼 중요한 임금의 정의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법률로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서 현행 법령체계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
기형적 임금구조
통상임금 논란은 노동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가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간 209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를 차지할 정도로 길다. 근로자의 장시간 근로를 억제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은 시간외 근로와 휴일근로, 야간근로에 대해 각각 50%의 가산금을 수당으로 지급하도록 했다. 연장근로를 시킬 경우 사용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마이너스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 장시간 근로관행을 없애지 않는다면 기업들로서는 막대한 시간외 수당 지출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그런데 기업들은 근로기준법의 취지에 따라 연장근로를 줄이는 대신 비용부담을 피해갈 수 있는 편법을 찾았다. 기본급을 줄이고 식대, 교통비, 체력단련비 등 각종 명목의 수당으로 총액을 맞춰 지급하는 편법을 개발한 것.
기본급은 움직일 수 없는 통상임금이지만 각종 수당은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급여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낮게 책정된 기본급만을 기준으로 연장근로, 휴일근로 수당을 산정해준 것. 기업주 처지에서는 비용도 줄이고, 근로자를 장시간 노동시킬 수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2년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의 소정근로시간 시급은 1만8000원인 데 반해 초과근로시간 시급은 1만4000원에 불과했다. 법적으로는 초과근로시간 시급이 소정근로시간 시급보다 1.5배 많아야 하는데도 많기는커녕 0.8배로 오히려 더 적은 것으로 조사됐다. 고용주들이 기가 막힌 해법을 찾아낸 결과다.
대법원은 수당의 이름과 무관하게 실질적으로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된다면 그것은 통상임금 산정의 기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와의 임금단체협상을 통해 결정된 근로자의 개인연금보험료를 지급한 경우, 근무성적과 무관하게 1년 단위로 일정금액을 가산해 지급하는 근속수당, 가족이 없는 직원에게도 가족수당을 지급한 경우는 모두 통상임금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례다.
대법원은 기업들이 기본급을 낮게 유지해 통상임금을 낮추기 위한 방편으로 수당제도를 악용하고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이러한 시도가 법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을 판결을 통해 고용주들에게 계속 경고해왔다.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5월 8일 미 상공회의소 주최로 열린 CEO 라운드테이블 및 오찬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래는 댄 애커슨 GM 회장.
기업의 꼼수를 누구보다 잘 알고 노동자 편을 들어야 할 노동부가 어찌된 일인지 대법원 판례를 무시하고 기업에 유리한 행정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들은 대법원 판례를 외면하고 대법원 판례와 배치돼 법원이 그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노동부 지침을 그대로 따르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여금은 통상임금?
통상임금 산정기준이 되는 임금의 ‘총액’에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상여금은 포함되지만 임시로 지급된 임금 및 수당, 상여금과 돈이 아닌 형태로 지급된 임금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상여금의 경우에는 정기적 고정적으로 지급되는지 여부에 따라 통상임금 포함 여부가 달라진다.
상여금은 액수가 크기 때문에 연장, 휴일근로수당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통상임금에 포함되는 상여금일 경우 평균임금 산정 사유 발생일로부터 12개월 이전에 지급된 상여금 총액에 12분의 3을 곱한 금액을 임금총액에 더하는 식으로 계산한다.
연간 수차에 걸쳐 지급되는 상여금에 대해 2012년 이전에는 통상임금에 포함시킬지에 대한 법적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대법원은 이러한 논란을 일단락시켰다. “분기별 상여금이 재직기간에 비례해 지급되고, 퇴직자에 대해서는 월별로 계산하여 지급되는 경우에는 고정적 임금으로서 통상임금에 포함된다”라고 판결한 것. 다만 이 판결은 대법원이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때 택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이 아니라 일반적 절차를 취했기 때문에 통상임금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 데는 실패했다. 이 때문에 지난해 3월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하급심 법원에서는 여전히 상여금에 대해 통상임금성 인정 여부가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이 모든 형태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연 고정적 성격이 있는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것.
이러한 혼란을 해결하고 현재 진행 중인 100건이 넘는 통상임금 관련 소송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대법원은 통상임금 사건을 전원합의체에서 판단하기로 하고 9월 5일에 공개변론을 열기로 했다. 10월 이후에 내려질 대법원 판결 선고의 내용에 귀추가 주목된다.
소모적인 임금 논쟁
박 대통령의 언급으로 통상임금 문제를 전 국민적 이슈로 만든 계기가 된 한국GM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한국GM 근로자 1025명은 업적연봉과 조사연구·조직관리수당, 가족수당 중 본인분, 귀성 휴가비, 개인연금보험료, 직장단체보험료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시간외 근로수당과 연월차수당을 다시 지급하라며 2007년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업적연봉은 근로자의 근무성적에 따라 좌우돼 고정 임금이라 할 수 없어 통상임금에 속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나머지 부분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지난 7월 26일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항소심에서 1심 판결에서 통상임금에 포함시키지 않은 업적연봉까지 통상임금으로 보고 원고들에게 더욱 유리한 판결을 했다. 서울고등법원의 담당 재판부가 대통령의 사법권 침해행위를 의식해 보란 듯이 판결을 한 것인지는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법원이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사실을 국민에게 분명히 확인시켰다.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언급하지 않으면 망신당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깨닫게 해준 것이다.
임금은 단일임금으로 취급하면 간단할 텐데 평균임금, 통상임금으로 나누고 경우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하다보니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임금을 이렇게 구분한 데에는 근로자에 대한 배려가 배경에 깔려 있지만, 고용주들의 편법 행위로 인해 그 취지가 많이 퇴색했다. 연봉제가 채택된 경우에는 임금은 총액으로서의 임금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연봉제는 통상임금제 논란을 잠재울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