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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연재’ 멀티미디어시대의 클래식 캐릭터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팜파탈과 카리스마, 그 영원한 매혹

  • 정여울│문학평론가 suburbs@hanmail.net│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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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다스리는 것이 소망이다, 비록 지옥에서나마, 천국에서 섬기는 것보다는 지옥에서 다스리는 것이 좋다.
  • - 밀턴, ‘실락원’ 중에서
미실과 클레오파트라

영화 ‘클레오파트라’(1961)에서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그녀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선과 악을 가르는 판단의 잣대를 잃어버린다. 그녀의 잔혹하지만 아름다운 독설, 타인의 안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소름끼치는 무심함 앞에서도, 사람들은 선뜻 반기를 들지 못한다.

올여름 안방극장에서 가장 매혹적인 캐릭터 중의 하나는 단연 ‘선덕여왕’의 미실이다. 주인공 선덕여왕보다 오히려 강렬한 흡인력으로 시청자를 끌어당기는 미실의 매혹, 그 비밀은 무엇일까. 왜 시청자는 미실 앞에서 윤리적 잣대를 슬그머니 내려놓는 것일까. 그녀가 잔혹한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 줄 알면서도 왜 우리는 미실의 카리스마와 관능적 매혹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걸까. 왜 우리는 순수하고 지혜롭고 강인한 선덕여왕보다 ‘색공술(色供術)’로 권력을 얻은 악녀 미실에게 이끌리는 것일까. 아니, 미실은 정말 상상을 초월할 ‘사악함’ 때문에 매력적인 것일까.

‘악녀’라는 단순성의 베일을 벗겨내고 보면 미실의 복잡다단한 매력이 드러나지 않을까. 요부이자 악녀로 유명하지만 천하를 호령한 정치가로도 악명 높은 한국의 클레오파트라, 미실. 우리는 미실의 매력과 클레오파트라의 매력을 비교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팜파탈적 매력을 동시에 지닌 두 사람이 현대사회에서도 대중에게 갖는 짙은 호소력의 진원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그녀들은 색공술로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나쁜 것이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도 얻기 힘든 권력을 쟁취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공포와 혐오감을 자극했던 것이 아닐까. 흥미롭게도 미실과 클레오파트라의 중요한 공통점 중의 하나는 두 사람 모두 살아서는 최고의 권력을 얻었지만 죽어서는 승리한 남성들의 역사에서 철저히 배제당한 역사의 타자가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그녀들은 남자도 아닌 여자가, 정당한 방법이 아닌(?) 육체적 사랑으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더럽혔다는 역사적 혐의로 소환되곤 했다.

팜파탈의 끝없는 귀환



안토니우스와 이집트 여왕의 관계는 추문 성격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 기원전 37년,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처음으로 영토를 내준 일은 이집트 여왕을 유리하게 해준 것으로, 로마 영토를 탕진하기 시작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요컨대 안토니우스가 맹목적인 정열로 인해 나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악녀에게 영토를 탕진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들의 진짜 목표는 클레오파트라를 악녀로, 이집트를 로마를 위협하는 왕국이자 라틴 문명의 미덕을 타락시키는 나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밀접하게 결합되었다. 동방에 대한 혐오감, 이방적인 것에 대한 공포감 그리고 여성 혐오증이 그것이다.(‘마지막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마르탱 콜라 지음, 임헌 옮김, 시공사, 267쪽에서 인용)

미실은 한국사에서 철저하게 은폐·말살되었다. 미실이라는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동방예의지국의 이름을 더럽힌다고 여겨졌기 때문일까. 현대 한국은 국가라는 이데올로기를 세우는 데 역사를 동원했다.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에도 엄연히 그 나름의 법률과 도덕이 존재했으나 민족사는 단군 이래 한국사의 무대에 등장한 모든 사람들에게 현대의 윤리, 도덕의 옷을 입혀버렸다. 따라서 현대 한국사학의 학문적 권력을 장악한 연구자 집단이 만든 역사체계로는 미실이란 존재를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그들은 미실 이야기가 담긴 ‘화랑세기’를 한낱 소설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미실의 존재는 근원적으로 부정된다.(‘색공지신 미실’, 이종욱 지음, 푸른역사, 7쪽에서 인용)

버나드 쇼는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98)에서 시저의 남성적 카리스마를 강조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를 강인한 팜파탈이 아닌 새끼고양이처럼 깜찍한 어린아이로 만들어 그녀의 성적 매력을 은근슬쩍 삭제해버리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607)에서는 스물한 살의 요염하고 성숙한 여성으로 그려졌던 클레오파트라가, 쇼의 작품에서는 위급할 때마다 유모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철부지 16세 소녀로 폄하되었다. 클레오파트라의 나이를 줄임으로써 천하의 시저와 안토니우스마저 무장해제시켜버린 팜파탈의 공포감을 지울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승리자의 역사 속에서 아무리 제2, 제3의 클레오파트라를 마녀로 몰아붙여도, 그녀들의 숨길 수 없는 매력에 중독된 수많은 예술가가 매번 그녀들을 다른 빛깔로, 각 시대의 가장 위력적인 담론과 예술사조로 다시 소환해냈다는 것이다. 낭만주의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주제가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비극적인 사랑이었으며, 오랫동안 ‘화랑세기’의 위작 논쟁으로 역사의 테두리 바깥에 추방되어 있던 미실은 ‘알파걸의 시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했다. 셰익스피어가 클레오파트라에게 바친 찬사는 아마도 미실에게 매혹된 수많은 신라남자에게도 해당되지 않았을까.

“나이도 그녀를 시들게 하지 못하고, 아무리 자주 만나도 그녀의 무한한 변신은 지겹게 여겨지지 않아요. 다른 여자들은 그들이 채워주는 욕망에 싫증나게 하지만, 그녀는 가장 만족스럽게 채워주었을 때 오히려 더 큰 욕망을 느끼게 하지요. 가장 야비한 일도 그녀에게는 그럴듯하게 어울려서 거룩한 사제들도 그녀의 방종을 축복해줄 정도랍니다.”(셰익스피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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