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에 둘러싸여 한 폭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하롱베이 인류유산지역의 저녁 풍경.
아오자이 차림의 아가씨들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고 무리지어 질주하는 베트남 수도 하노이. 이곳에서 하롱베이로 향하는 자동차 창 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풍광은 관광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최고급 승용차와 구형 자전거가 나란히 달리고 세련된 신축건물과 쓰러져가는 옛 가옥, 최신형 에어컨이 설치된 화려한 상점과 재래식으로 연탄을 만드는 공장이 공존하는 경치는 전혀 다른 세계들을 혼합해놓은 듯 묘하다.
‘용(龍)이 내려온 곳’이라는 뜻을 가진 하롱베이의 풍경 또한 마찬가지다. 길고 완만한 바위부터 바다에서 하늘을 향해 곧장 뻗은 기암괴석,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섬, 고기를 잡는 어부들의 배와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판매하는 작은 상선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볼거리가 모퉁이마다 가득하다.
수천 개 섬 곳곳에 숨은 석회암 동굴
하롱베이의 자랑인 3000여개의 석회암을 가리켜 ‘바다의 구이린(桂林)’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 구이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규모도 크고 풍광 또한 훨씬 다채롭다. 하롱베이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아쉽게도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더욱 아쉬운 점은 3000여개나 되는 섬 가운데 두 발로 직접 걸으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10여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롱베이 타운에서 만난 아낙. 야채와 식료품을 팔기 위해 이동중이다.
반면 바다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잔잔하다. 유람선을 타고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파도를 볼 수 없다. 물론 인류유산지역을 벗어나 통킹만으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높은 섬에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또 다른 하롱베이를 감상할 수 있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섬들을 바라보노라면 기암괴석과 숲의 조화가 하롱베이의 가장 큰 매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것이 하롱베이의 전부는 아니다. 엄청난 규모의 종유석 동굴과 바위터널이 곳곳에 숨어 있는 까닭이다.
섬을 관통하는 터널형 동굴부터 길이가 1km가 넘는 초대형 동굴에 이르기까지, 하롱베이의 여러 섬에 흩어져 있는 수십 개의 동굴은 저마다 모양새와 크기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간직하고 있다. 석회암 동굴이라 그 안에 종유석이 자란다는 사실이다. 그 가운데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승소트 동굴(Sung Sot Cave). 한반도의 종유석 동굴과 흡사하면서도 사뭇 분위기가 다른 이곳에서 눈여겨볼 것은 동굴의 높이와 종유석의 크기다. 천정 높이가 10m가 훨씬 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종유석도 대부분 5∼7m가 넘는 까닭이다.
하롱베이의 관문인 하노이의 불교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있는 시민들.
매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이용하는 유람선에서 뿜어내는 매연도 만만치 않은 문제다. 이로 인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었던 붉은왜가리와 백로 같은 조류는 이젠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일부 남아 있는 새들도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20년 후에도 여전히 ‘용이 내려온 땅’을 만나고 싶다면 관광객들이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