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독법 | 정대철 지음, 안티쿠스, 576쪽, 2만8000원
도덕경은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이라면 반드시 읽고 뜻을 알고 싶어 하는 책이다. 나 또한 그 필부(匹夫) 중 하나로, 최초로 접해본 것은 1980년 전후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 읽지 못했다. 첫 장부터 온통 관념적인 글로 쓰여 있어 피부에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절해고도에서 절벽을 만난 기분이었다. 2000년경 인문학 바람이 불면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특강을 하는데, 선생의 풀이를 반박하는 책이 나왔다. 이경숙의 ‘노자를 웃긴 남자’다. 같은 한문 문장을 놓고 번역과 해석이 다르다는 게 신기했고, 그것을 직접 풀어보고 싶었다. 한문에 일자무식이었던 나의 도전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많은 책을 접하기보다는 노자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노자와 시도 때도 없이 놀다보니 어느 순간 전체가 막힘없이 풀렸다.
기존 풀이서들은 도덕경을 구도서로 보거나, 각 장을 분절해서 해석해 잠언, 처세나 정치를 이야기한 책으로 설명한다. 특히 만물의 고유성을 선언한 말인 ‘天下皆知美之爲美(천하개지미지위미) ’를 상대성으로 해석하고 이를 부정하는 것으로 ‘斯惡已(사악이)’를 해석하는 등 도덕경의 줄기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상대적인 것은 만물의 고유함으로 이야기될 수는 있지만 노자의 근본 사상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인 이승의 삶을 부정한다는 부분에서는 해석이 완전히 반대로 가버린다.
도덕경은 노자의 정치철학에 관한 책이다. 다만 여타 정치서와 다른 것은 자신의 정치관을 술하기 위해 천지만물의 창조주인 도를 끄집어와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점이다. 그래서 정치를 생각하지 않고 본다면 깨우침의 글이기도 하다. 따라서 도덕경을 올바르게 읽는다면 깨우침도 얻을 수 있다. 이는 도덕경이 갖는 특징이자 필부도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노자가 주장하는 정치술은 창조주인 도(道)의 자식인 만물의 고유성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이미 태어남만으로도 창조주의 도성과 덕성을 갖고 있어 각각 역할이 있는 의미체가 되며, 따라서 올바르지 않다고 해서 버려서는 안 되는 존재자다. 또한 노자는 정치술을 펴기 위해 자연에서 도성을 이야기한다. 천지, 물, 천곡, 그리고 강해에서 처세와 자연성을, 박에서 무규정성을, 그리고 자연의 이법과 현상과 성인의 삶 등의 이야기 속에서 정치술을 논한다. 그래서 나온 정치술이 무위와 자연이다.그러나 무위자연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술이 아니다. 노자는 정치 지도자의 자격을 말하고 있다.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전제조건으로 깨우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백성의 마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삼지 못하는 자는 붕당의 우두머리일 뿐, 대통령 재목으로는 자격미달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정치 지도자하고는 너무 먼 이야기다. 성경 속에서 인간은 에덴을 잃었지만, 노자는 도덕경에서 그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어머니의 마음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지도자, 즉 성인의 정치(성인지치)가 있다. 이 책을 읽고서 에덴동산을 그리고, 원불교의 원을 보고, 초승달의 이야기 속에서 보름달을 읽을 수 있는 독자가 많이 나오기를 기원한다.
정대철 | 공무원, ‘노자의 마음으로 도덕경을 읽다’등 |
New Books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 전수연 지음
올해는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등 세계적인 오페라를 작곡한 이탈리아 대표 음악가 베르디 탄생 200주년인 해다. 이탈리아 독립·통일 운동과 함께한 베르디의 삶과 작품을 시대적 맥락에서 살펴본 책이다. 이탈리아 독립 전쟁, 가족, 이탈리아 통일, 말년의 걸작 등 베르디의 인생을 오페라처럼 총 4막으로 나눠 구성했다. 인간 베르디, 정치적 베르디, 음악적 베르디가 교차하는 인문적 예술 읽기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19세기 이탈리아 역사를 무대로 90년에 가까운 생애와 반세기가 넘는 긴 창작 기간을 두루 살피고 있어 베르디의 삶과 예술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페라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각 장에서 주요하게 다룬 오페라 내용을 별면의 ‘오페라 읽기’를 통해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책세상, 340쪽, 2만 원
천년 恨 대마도(전 2권) | 이원호 지음
광복 후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에 대마도를 반환할 것을 60여 차례에 걸쳐 요구했다. 저자는 1830년 일본이 만든 ‘조선국도’ 등 역사 자료를 조사해 대마도가 조선 영토였음을 밝히고 있다. 대마도에서 1000년간 대를 이어 살아온 김무 가문과 서귀 가문의 파란만장한 인연을 통해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까지 이어진 1, 2, 3차 대마도 정벌과 임진왜란, 관동 대지진, 그리고 현재까지 계속되는 일본의 한민족 침탈사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도를 넘보는 일본의 야욕에 맞서 남북한이 함께 대마도를 수복하기 위해 펼치는 합동 군사 작전을 긴박하게 그려냈다. 저자 특유의 힘 있고 강한 문체, 큰 스케일, 현재와 과거(고려, 조선시대)를 넘나드는 짜임새 있는 구성은 긴장의 끈을 한순간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맥스미디어, 1권 318쪽, 2권 334쪽, 각 권 1만3000원
슬프다 할 뻔했다 | 구광열 지음
20대에 홀연히 멕시코로 떠난 시인은 인디오 마을에서 목동이 돼 시를 썼고, 멕시코 국립대에서 중남미 문학을 공부했다. 멕시코문학협회 특별상, 브라질 문학예술인연합회 문학상 등 굵직한 상도 수상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6권의 시집을 펴낸 중견 시인이다. 서로 다른 두 언어를 오가는 건 완연히 다른 세상을 오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는 어떤 틀의 안과 밖에 동시에 놓인 시인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번 시집엔 한국으로 돌아와 겪은 정체성의 혼돈과 자아 분열을 바탕으로 내면의 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시는, 글이라는 새장 속에 갇힌 새인지 모른다. 새장을 열어 그 새를 풀어주고 싶지만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새장의 크기를 늘리는 쪽을 택했다”고 말했다. 문학과지성사, 160쪽, 8000원
저자가 말하는 “내 책은…”
오래된 서울 | 최종현·김창희 지음, 동하, 364쪽, 2만 원
서울에 대한 책이 차고 넘친다. 500년 조선의 수도였으니 온갖 이야깃거리가 쌓인 것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에 최근의 답사 붐까지 가세하고 보니 서울의 이모저모를 뜯어보는 책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한 권 더 얹는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뭔가 허전한 것도 사실이었다. 서울의 역사를 다룬 책들은 장소에 대한 감각이 부족하고, 서울의 도시 양상을 다룬 책들은 역사 감각이 부족했다. 요컨대 장소성을 놓치지 않고 지리 감각도 분명하게 갖춘 서울의 도시사 이야기가 절실했다. 한 가지 더 고려하자면, “옛날 옛적에” 투의 ‘전설 따라 삼천리’는 이제 극복할 때가 됐다고 봤다. ‘서울학(Seoul Studies)’이 정초된 지도 20년이 넘은 마당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만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엄밀한 역사적 사실과 정확한 장소 고증에 바탕을 둔 서울 이야기! 그렇게 ‘과거의 서울’ 모습을 복원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현재의 서울’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미래의 서울’을 궁리하는 데에도 중요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과거의 서울’은 도대체 어느 시점의 서울을 말하는 것일까.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서울은 어느 한순간도 정지해 있던 적이 없다. 매년, 아니 매 순간 어떤 방식으로든 조금씩 달라져 오늘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예 서울의 시공간적 원점(原點)을 찾아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일종의 생각의 비약이었다.
흔히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서울로 수도를 옮긴 1394년을 시간적 원점으로 잡지만 이전에는 이곳에 도시적 양상이 없었던 것일까. 또 그렇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때 서울 지역의 공간적 원점은 어디라고 할 수 있을까.
그 탐색의 결과로 고려 숙종이 ‘1104년 5월’ ‘지금의 경복궁 향원정 서쪽 언덕 위’에 남경 행궁을 완공하고 백관의 축하를 받던 장면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식으로 최소한 900년은 되었을 고려시대의 길도 서울 안팎에서 꽤 여러 곳 추적했고, 당시의 남경역(驛)을 동대문구 신설동 대광고등학교 자리로 추정했다.
이렇게 서울의 원점을 찾고, 이를 통해 다시 서울의 원형을 추적하는 일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 걸 아는 것이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넘어서서 무엇에 도움이 될까. 문제는 시선(view)이다. 땅과 물길로 이뤄진 자연 속에 안긴 집과 도시를 보는 과거 사람들의 시선을 다시 확보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안평의 앵글’ ‘겸재의 시선’ ‘이인문의 시각’ 등은 그렇게 해서 서촌에서 확보된 결과물들이다. 이런 것들은 아마도 우리의 오래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김창희 | 저널리스트 |
New Books
스마트한 선택들 | 롤프 도벨리 지음, 두행숙 옮김
독일의 경영인이자 작가인 롤프 도벨리는 똑똑한 사람들이 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그가 깨달은 것은 후회하지 않을 탁월한 선택을 하는 노하우란 잘못된 선택을 피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이다. ‘후회 없는 결정을 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52가지 심리 법칙’이란 부제의 이 책은 그의 전작 베스트셀러 ‘스마트한 생각들’보다 더욱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생각의 오류들을 집대성했다. 원금을 갉아먹기 시작한 펀드를 왜 해지하지 못하는지(후회에 대한 두려움), 스티브 잡스는 동경하면서 친구 아들이 획기적인 앱을 개발해 큰돈을 버는 것은 왜 배 아파하는지(질투의 심리학), 신년 계획과 예산은 왜 항상 틀어지는지(계획 오류) 등 자신의 성격만 탓하던 문제들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걷는나무, 335쪽, 1만4000원
금융오디세이 | 차현진 지음
돈은 우리의 삶을 쥐고 흔들 만큼 위력적이지만 돈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는 경제학자는 아직 없다. 30여 년간 한국은행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도입부터 ‘돈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해답을 찾기 위해 하나씩 풀어나간다. 돈에 대한 서양과 동양의 개념 차이 등 돈과 은행, 금융의 역사를 저자만의 경제관과 철학으로 유쾌하게 풀어낸다. 또한 유명인들과 관련된 숨은 일화를 엿보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에 대해 색다른 평가를 내리고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의 변덕스러움 등을 묘사했다. 돈의 탄생부터 은행을 둘러싼 사건과 사람들의 흥미로운 사례와 다양한 구성으로 접목돼 있어 학생부터 성인까지 금융 지식을 이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인물과사상사, 392쪽, 1만5000원
한국의 100억 부자들 | 노진섭 지음
강남 지역 빌딩 소유자부터 100억 원대 이상 금융 자산가까지, 자수성가형 부자 100인이 공개하는 대한민국 신흥 부자의 모든 것.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밀과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고 늘려나가는 노하우를 집중분석했다. 그들이 돈을 다루는 방식, 돈을 부르는 습관, 어떻게 투자금을 마련하고, 어떤 정보를 수집하며, 어떤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지 등 자산관리와 투자 원칙을 소개한다. 그들의 삶을 통해 배울 점을 찾고 투자 대상을 정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향후 경제 전망을 기반으로 한 그들의 투자 전략에 대한 정보도 담았다. 이들 100명 중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부자는 19명뿐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비즈니스북스, 296쪽, 1만4000원
역자가 말하는 “내 책은…”
오늘도 두려움 없이 | 틱낫한 지음, 김영사, 224쪽, 1만2000원
사는 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두려움과 끊임없이 맞닥뜨린다. 작게는 ‘버스를 놓치면 어떡하나’ ‘지각하면 어떡하나’에서 ‘부장이 결재를 안 해주면 어떡하나’ ‘우리 아이가 남보다 뒤지면 어떡하나’를 비롯해 ‘당장 내일이라도 해고당할 수 있다’ ‘암 때문에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등의 두려움까지, 현대인은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과 두려움이 주는 스트레스로부터 끝없이 압박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두려움’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강한 감정 중 가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 인 것 같다. “나 화났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나 두려워!”라든지 더 나아가 “나 무서워!”라는 말은 잘 하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그러하듯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두려움 자체가 없어질 것처럼 생각하든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그런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까. 틱낫한 스님은 이 책에서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 두려움이며, 그 두려움의 존재를 인정하고 두려움과 친해지며, 나아가 두려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행복하게 잘 살아갈 수 있고 또 잘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또한 그러기 위해서 살아가며 짬짬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행법을 알려준다. 이 책에는 틱낫한 스님이 펴낸 모든 책 중에서 가장 많은 수행 방법이 수록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아마도 자신의 존재가 영원히 사라진다는 생각, 즉 죽음일 것이다. 올해로 88세인 틱낫한 스님은 이 책에서 자신의 죽음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나의 존재가 멈추리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나의 수행공동체와 끝까지 함께할 겁니다. 내게 그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내 안에서 모든 사람을 보고 또 모든 사람들 속에서 나를 보기 때문입니다.”
마치 죽기 전에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가려는 어버이처럼, 스님은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수행법을 이 책에 집대성했다. 그리고 ‘함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 생활 속에서 깊이 보기를 수행해 영적인 차원을 우리 삶에 들여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도 단지 설법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승으로서 매일 깊이 보기를 수행하고 있다는 틱낫한 스님! 스님의 말씀대로 삶이라는 커다란 꽃밭에서 우리 모두 훌륭한 정원사가 되어 ‘남들’이라는 꽃을 행복하게 해주는 예술을 배우고, 그를 통해 ‘나’라는 꽃뿐 아니라 ‘우주의 꽃밭’을 풍요하게 가꿔보면 어떨까.
틱낫한 스님은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전 세계인의 영적 스승으로 불린다. 베트남 출신인 그는 베트남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운동을 벌이다 베트남 정부의 박해를 받고 프랑스로 망명했다. 1980년대 초 보르도 지방에서 명상수련센터 ‘플럼빌리지(자두마을)’를 세웠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많은 이가 종교 간의 벽을 허물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수행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진우기│번역자·‘틱낫한 스님의 심리 처방전 화해’‘힘’등 번역│
New Books
도쿄 산책자 | 강상중
전작 ‘고민하는 힘’ ‘살아야 하는 이유’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강상중 세이가쿠인대학 교수가 도쿄의 이곳저곳을 걸어다니며 산책자의 시선으로 도쿄를 탐색했다. 저자는 대도시 도쿄에서 각 공간이 지닌 역사와 의미를 살핀다. 롯폰기힐스나 하라주쿠에서는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보여주고, 샤넬 긴자점과 신오쿠보 등에서는 도쿄의 경제와 가치관과 문화의 변화를 읽어낸다. 디지털 시대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꿋꿋이 버텨온 진보초 고서점가나 로쿠고 공연장인 요세나 가부키자 등에서는 도쿄의 문화 장치에 대해 점검한다. 또 아키하바라와 고양이카페, 노동자 주거 지역인 산야 등에선 빈곤과 노령화 등 도시문제를 짚었다. 이방인의 눈으로 들여다본 도쿄의 내밀한 풍경을 들어볼 수 있다. 사계절, 248쪽, 1만3000원
죽음학개론 | 최준식 지음
2005년 한국죽음학회를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지낸 저자가 펴낸 죽음학 시리즈 첫 권. 죽음을 회피하고 부정하는 한국인에게 자신의 인생에서 죽음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인간의 죽음을 단지 생물학적인 죽음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장례나 제례 및 유족들의 슬픔 치유부터 죽음교육에 이르기까지 죽음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죽음을 ‘양지’로 끌어낸 이 책을 읽다보면 섬뜩한 느낌보다는 “죽음의 이해는 곧 삶의 이해이고, 죽음을 배워야 삶이 보인다”는 저자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함께 출간된 2권 ‘임종 준비’에서는 죽음에 다다랐을 때 알아야 할 실질적인 문제들의 해결 방법, 임종자와 그 가족, 의료진이 취해야 할 행동과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단계별로 상세히 설명한다.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192쪽, 9000원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 | 이영돈 지음
무당이나 역술가는 사람의 운명을 얼마나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까, 좋은 운명과 나쁜 운명이란 무엇인가…. 운명에 대해 과학적, 논리적 분석을 시도해 화제를 모았던 채널A의 다큐멘터리 ‘이영돈 PD의 운명, 논리로 풀다’가 책으로 나왔다. 관찰 카메라와 뇌파 분석 같은 과학적 실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사주, 궁합, 관상, 굿에 대한 속설을 파헤쳤다. 사주가 운명을 좌우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년월일은 물론 태어난 시까지 같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일란성 쌍둥이를 만나고, 유명인 부부의 실제 사례와 비교해 궁합의 허와 실을 조명했다. 운명에 대한 무수한 궁금증을 풀어주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해법을 제시한다. 방송에서 못다 한 이야기도 수록하는 등 알차고 흥미진진하게 구성했다. 동아일보사, 220쪽, 1만2800원
편집자가 말하는 “내 책은…”
조선사연구下 | 정인보 지음, 우리역사연구재단, 959쪽, 4만5000원
3년 전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정재형 교수로부터 전화가 왔다. 1935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의 ‘오천년간 조선의 얼’(조선사연구의 원 제목) 번역본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학생들에게 전공필수로 영상미학 과목을 가르치는데, 서양의 미학뿐 아니라 한국의 미학, 그 정신사적 계보와 겨레 얼의 실체를 가르치고 싶어 국학의 태두였던 정인보의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도서관에서 찾아봤으나, 책 모두가 1935년 동아일보 게재 당시의 어려운 한문체와 어휘들을 답습하고 있는 영인본뿐이라는 것이었다. 도저히 요즘말로 ‘독해’가 불가능하니 번역본이 없으면 이제라도 현대 한국어로 풀어 출간할 의향은 없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무슨 놈의 나라가 이렇게 평생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문화적 독립운동에 헌신한 대학자의 명저를 현대어로 번역도 안 하고 도서관 구석에 방치해놓느냐”며 비분강개했다.
편집자 역시 당시 육당 최남선의 ‘불함문화론’을 현대어로 역주해 발간한 뒤라 정 교수의 말에 적극 동감을 표했다. 마땅히 선학들의 정신적 유산을 후대에 계승해야 하는 본령을 다하지 않고 선학들의 명저들을 소 닭 보듯 방기하는 무지한 우리나라 정치인들, 사뭇 괴이한 학계와 학자들, 그 숱한 관련 국책기관을 바라보고 기대할 것 없이 스스로 번역서 기획에 나서기로 했다.
우리나라 국학계의 거목은 단재 신채호, 육당 최남선, 위당 정인보, 민세 안재홍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이 지난 20세기 초중반에 저술한 저서 거의 모두가 21세기 초인 현재까지도 현대 한국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문제는 그들이 그저 그런 범인이 아니요, 100년 전 개화기 이래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정신문화와 얼을 부단히 형성시키고 그 작용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데 있다. ‘조선사연구’는 정인보의 수많은 저작 중 단연 첫머리로 꼽히는 명저다. 당시 일제의 압제하에 점점 더 심해지는 역사와 민족정신의 상실과 침탈을 보다 못해 붓으로 항거코자 들고나온 것이다. 그는 일단 오천년 한국의 통사를 서술하기로 하고 서문을 ‘오천년간 조선의 얼’을 관통하는 불굴의 민족정신에 할애했다. 오천년 민족사의 시작을 ‘시조 단군’에 두고 역사의 주체로서 고조선을 개국한 인간 단군을 확고히 부활시켰다.
정인보는 신채호의 사관을 계승하되 자신만의 깊이 있는 고대사 연구 결과들을 여기에 쏟아부었다. 특히 ‘광개토태왕비문석략’과 ‘전고갑’‘정무론’ 등은 그야말로 불후의 명저다. 안타깝게도 1936년 중반 동아일보의 정간으로 저술이 중단된 것이 천추의 한일 뿐이다. 번역은 3년에 걸쳐 이뤄졌는데, 번역자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다. 2000쪽 가까운 번역문과 1000개가 훨씬 넘는 각주, 특히 각주에 공을 들였다. 저자가 본문 내용을 인용한 우리나라 사서와 관련 문헌 및 중국 사서, 문헌이 130종을 넘었으므로 역자에게 철저한 고증과 인용 본문의 확인을 요구하고 검증했다. 편집자와 역자 모두 선학의 학문적 깊이와 그 광대함에 경의를 표한다.
정재승 | 우리역사연구재단 편집이사 |
New Books
연평도 통일론 | 이정훈
안보 분야 전문기자인 저자는 남북한이 평화조약을 맺었다고 과연 평화로운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이제는 공개적으로 통일 담론을 논할 때가 됐다”고 말한다. 거대 담론인 통일을 위한 계획을 거론해야 국민이 통일을 진지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통일 담론에서 세밀한 도덕성, 정통성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그는 통일을 하기 위한 좋은 사례로 연평도 사건을 들었다. “북한이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토를 포격한 사건이지만,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응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 당시 정면으로 대응했다면 북한은 급변사태에 빠져 한민족은 역사상 세 번째 통일을 목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 외에도 대한민국 대통령이나 국가 리더들, 군 고위장성들의 안보관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글마당, 312쪽, 1만5000원
병원사용설명서 | 정헌재·윤혜연 지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환자 수칙을 담은 환자 안전 지침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원을 자주 이용하지만 병원을 안전하게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약물이 뒤바뀌어 치료가 더디어지거나, 극단적으로 엉뚱한 병으로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한다. 존스홉킨스에서 환자 안전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가 병원을 이용하기 위한 33가지 수칙을 담았다. 현대의 병원에서 ‘환자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와 보호자가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진료실, 검사실, 수술실, 약물 이용 단계 등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네 개의 치즈에 비유해 쉽고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과학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수칙을 전하고 있는 것이 특징. 비타북스, 288쪽, 1만5000원
골프가 안 되는 108가지 이유 | 김재화·최혜영 지음, 유환석 그림
선수의 컨디션과 그날의 환경에 따라 경기가 좌우되는 골프는 ‘실수와 변명의 스포츠’라고 한다. 그래서 골프가 뜻대로 안 되는 데는 367가지 핑곗거리가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최혜영 프로와 골프 칼럼니스트 김재화가 핑계를 실력으로 바꿔줄 상황별로 최적화된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과음하고 라운딩에 나섰다면 다른 날보다 더 긴 채를 들고 살살 친다는 생각으로 스윙을 해야 한다. 또한 앞 팀을 기다리는 동안엔 반 스윙을 하며 감각을 추스리는 게 좋다. 사람들이 흔하게 대는 108가지 핑계에 대한 진단과 실용적인 처방을 유환석 화백의 친근한 삽화와 함께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이 책에 나오는 팁과 스킬들은 쉽고 간단명료해서 누구나 실전에서 곧바로 응용할 수 있다. 맛있는책, 240쪽, 1만3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