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호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장교…우리 기술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VSL코리아 신흥우 회장

  • 최호열 기자 │honeypapa@donga.com

    입력2014-01-22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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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대교, 거가대교 등 주요 교량 시공
    • 내실 경영으로 위기 때 오히려 사업 도약
    • 정부, 전문건설업체의 해외 진출 도와야
    • 원도급사의 하도급 단가 후려치기 근절해야
    ‘건설 산업’하면 대형 종합건설업체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형 건설사로부터 공정별로 하도급을 받아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야말로 우리나라 건설 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주역이라 하겠다. 대표적인 전문건설업체를 찾아 우리나라 전문건설 기술의 우수성을 살펴보고, 그들의 애환을 통해 건설업계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보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차를 타고 가다보면 종종 크고 긴 다리를 만나게 된다. 강이나 바다 위에 교각 몇 개 없이 수백, 수천m 이어진 다리를 보면 그 기술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콘크리트는 압축력에는 강하나 서로 당기는 인장력(引張力)에는 취약해 교각의 간격이 길어질수록 휘어짐이 커진다. 그래서 콘크리트만으로는 장대교량을 건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한 게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공법이다. 콘크리트에 미리 압축력을 가해 인장력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원리다.

    보통 이런 장대교량은 대형 건설업체가 발주처와 계약을 하고 공사 전체를 총괄 수행하지만, 다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핵심기술인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공법으로 다리 상판을 실제 시공하는 전문건설업체는 따로 있다. 우리가 감탄하는 장대교량을 만든 진짜 주인공은 이들 전문건설업체인 셈이다.

    VSL코리아는 대표적인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구조물 전문건설업체다. 포스트텐셔닝(Post- Tensioning) 공법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로, 국내 관련 공사의 4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신흥우(66) VSL코리아 회장은 전문건설업체 오너임에도 전문기술인 출신이 아니다. 외국어를 전공한 문과 출신이 최첨단 기술을 보유한 회사를 만들고 키웠다는 게 놀라웠다.

    연 1500억 원 매출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장교…우리 기술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 어떻게 전문건설업계에 뛰어들었나.

    “1970년대 건설업계에 해외 진출 붐이 일었다. 건설사가 외국에 나가 공사를 하면서 벌어들인 외화로 조선소, 제철소 등을 만들었다. 건설업이 우리나라 발전의 주춧돌이 된 셈이다. 나도 대림산업에 입사해 5년 동안 중동에서 일했다. 거기서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지지도 않은 신기술을 많이 경험했다. 대학에 나가 강의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웃음).”

    ▼ VSL은 어떤 회사인가.

    “스위스 융프라우에 가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터널이 있다. 그걸 100년 전에 만든 회사가 로징거라는 스위스 최고 건설회사다. VSL은 그 자회사다. 지금은 세계 건설회사 1, 2위를 다투는 프랑스 브이그 그룹에 인수됐다. 세계 3대 프리스트레스트 회사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 VSL코리아를 만들게 된 계기는.

    “VSL은 내가 중동에 있을 때 알았다. 물탱크 공사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그때 그 회사 부사장이 나를 인상 깊게 본 모양이다. 1980년 독립해서 양성무역이란 무역회사를 운영하고 있을 때 에이전트 일을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당시 페낭교를 수주한 현대건설과 연결해준 것을 계기로 1982년 VSL과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 간단하게 회사를 소개한다면.

    “VSL 포스트텐셔닝 공법을 활용해 프리스트레스트 콘크리트 구조물의 설계 및 시공을 주로 수행한다. 지난 32년간 국내 주요 고속도로, 고속철도 및 도서산간지역을 연결하는 교량 200여 개와 초대형 사장교 20여 개를 건설했다. 그 외 침매터널 박스 시공, 빌딩, 중량물 인양공사 등 특수구조물 사업을 수행해왔다.”

    ▼ VSL 포스트텐셔닝 공법이 뭔가.

    “7연선의 고강도 강선을 꼬아서 만든 강연선을 콘크리트 안에 넣고 잭으로 당기는 기술이다. 이를 통해 취약한 인장력에 대한 저항력을 강화해 콘크리트 구조물이 휘어지거나 무너지는 것을 막는다. 고강도 강선인 7연선의 사용은 VSL의 특허 기술로, 다른 인장재를 사용하는 공법보다 더 경제적이며 더 큰 힘을 다룰 수 있는 장점이 있다.”

    VSL코리아는 정규사원 220명과 현장 상시근로자 1000여 명이 연간 약 15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내실 있는 중견기업이다. 철근콘크리트 공사업 시공능력평가액 순위가 전국 2위, 서울지역 1위다. 2000년 행자부로부터 국가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15개 특허 보유

    ▼ 대표적인 건설 교량을 꼽는다면?

    “올림픽대교, 노량대교, 서해대교, 여수대교, 경부 및 호남 고속전철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콘크리트 교량은 거의 우리가 했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목포대교는 총연장 3060m의 사장교(케이블교량)로 수려한 외관과 더불어 5만 t급 선박이 교량 밑으로 통행할 수 있으며, 하루 평균 1만5000대의 차량이 통행한다. 거제도와 부산 가덕도를 잇는 해저침매터널과 사장교인 거가대교(3주탑)도 우리의 기술로 완공했다.”

    ▼ 교량 외에 어떤 게 있나.

    “우리 기술은 교량뿐 아니라 일반 건축물, 돔 구조물, 저장탱크 등 다양한 형식의 구조물에 적용된다. 싱가포르 동남부 주롱 섬에 18만KL급 액화천연가스 저장탱크 3기의 콘크리트 외부 구조물 공사를 완료했다. 우리가 직접 한 것은 아니지만 버즈두바이와 홍콩아일랜드 건물 대부분이 VSL의 포스트텐셔닝 기술로 건설한 것이다.”

    ▼ 기술은 대부분 VSL에 의존하는가.

    “자체 연구소를 만들어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한다. 토목공학박사 3명과 전문 분야 기술사 6명 등 연구 인력 20여 명의 노력으로 콘크리트 교량 건설과 관련한 15개 특허를 보유하는 등 기술을 선도해왔다. 현재도 프리캐스트 모듈러 구조, 고품질 그라우트 기술, 주요 구조물을 위한 고성능 정착시스템 등을 개발 중이다. 이는 타사와 차별되는 기술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 동종의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이곳만의 장점이라면?

    “포스트텐셔닝 및 교량 상부 시공은 설계도만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경험 없는 회사가 교량을 시공하면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국내 최고의 전문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 경영 위기가 있었다면.

    “처음부터 내실경영, 건전재무구조를 추구해 위기 때 오히려 빛을 발했다. 그러나 우리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었다. IMF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 관계에 있던 회사들이 부도로 무너져 회사 연매출액보다도 많은 보증금액을 배상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고객들을 찾아가 우리가 끝까지 마무리할 테니 믿고 맡겨달라고 설득, 최대한 효율성을 높여 공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되자 부도난 회사의 일감까지 우리가 인수하게 돼 위기를 극복한 것은 물론 사업이 더 확장되었다. 위기가 도약의 기회가 된 것이다.”

    ▼ 건설업계 불황이 심하다.

    “복지예산을 늘리려 SOC(사회간접자본) 예산을 감축하는 바람에 공공건설 물량이 너무 줄었다. 복지가 현재에 투자하는 것이라면, SOC는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 SOC 투자를 줄이면 부실해질 수 있다는 걸 유념해야 한다.”

    위기 때 빛 발한 ‘내실경영’

    ▼ 정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국내시장이 워낙 위축되다보니 해외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데, 준비된 게 너무 없다. 그동안 해외 진출이 종합건설업체 중심으로 지원돼왔기 때문이다. 정부에서도 이젠 전문건설업체가 직접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 하도급업체인 전문건설사들이 원청 회사들과 일하면서 고충이 많은 것으로 안다.

    “회사 특성상 외국 건설사들과 일할 기회가 많다. 그때마다 우리나라 건설업이 상당히 선진화했지만 여전히 미진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우리 회사는 전문기술력이 있고 재무구조가 튼튼해서 수주물량 확보나 저가 수주의 고충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지만, 대다수 전문건설업체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게 현실이다.”

    ▼ 향후 사업목표가 있다면.

    “해외시장 개척에 역점을 두려고 한다. 이를 위해 대림그룹 고려개발 대표이사를 지낸 유장현 대표를 경영CEO로 모셨다. 장기적으로는 통일 이후 북한지역의 교량 건설에 일조하고 싶다.”

    ◆ 전문건설업체 울리는 최저가 낙찰제

    VSL코리아와 같이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전문건설업체들은 침체된 건설경기와 하도급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업계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그나마 건실히 회사를 꾸려나간다. 하지만 대다수 전문건설업체는 건설경기 침체에 따른 수주 가뭄에 더해 수직·종속적인 건설업계의 생산체계 속에서 하도급업체로서 겪는 ‘을’의 고충까지 감내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전문건설공제조합에 따르면 하도급 전문건설업계가 직면한 애로사항은 크게 수주물량 급감, 적정 공사비 부족, 불공정 행위에 따른 피해라고 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힘든 게 저가 수주로 인해 수주 단계부터 공사비가 부족한 문제라고.

    전문건설공제조합 관계자는 “많은 업체로부터 원도급사가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하도급 입·낙찰제도를 통해 하도급단가를 후려친다는 하소연을 듣는다. 하도급업체는 부당함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공사를 수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하도급 저가 수주 문제는 발주 단계에서 시작된다. 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300억 원 이상 대형 공공공사를 최저가낙찰제로 발주한다. 이로 인한 ‘덤핑 입찰’로 부실시공, 건설업체의 경영난 가중, 산업재해 증가, 안전관리비 축소, 내국 건설근로자 고용감소 등의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원도급 건설사들이 저가낙찰을 불사하면서 하도급업체는 큰 피해를 보고 있다. 결국 일선 건설 현장에서 공사를 수행하는 생태계 최말단인 전문건설업계의 시름이 깊어만 가는 것이다.

    원도급사가 저가 수주의 부담을 하도급사에 전가하는 방법은 불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한 하도급 입찰이다. 원도급사가 자체적으로 정한 예정가격을 넘으면 고의로 유찰시키고 재입찰을 반복하며 하도급 금액을 낮추는 것이다. 낙찰이 되더라도 네고(수의계약)를 통해 하도급 금액을 더 낮출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게 전문건설공제조합 측 주장이다.

    2013년 10월 전문건설협회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하도급 전자입찰시 64.9%가 2회 이상 투찰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 100대 종합건설사 중에 하도급 계약을 최고 6회까지 재입찰한 업체도 있었다. 자신들이 정한 예산 안에 들어오지 않으면 유찰시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간공사의 경우 64.5%가, 공공공사는 53.3%가 원도급 금액의 80%에도 못 미치는 금액에 낙찰이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가 발주공사의 경우 발주 예정가격 대비 원도급 평균 낙찰률이 70%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실제 하도급 공사는 절반 정도가 발주자 예정가격의 50%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시행되 는 것이다.

    문제는 고의적인 하도급단가 후려치기 같은 불공정 행위가 있더라도 적발 자체가 어렵고, 입증자료 확보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적발된다고 하더라도 제재 처분이 미약함에 따라 하도급 입찰 과정에서의 불공정 행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실정이다.

    국회 하도급법 개정안 발의

    국민권익위원회는 하도급자 보호 및 하도급계약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종합건설업자가 하도급 계약 시 체결한 내용을 일반인에게도 공개토록 관계법령 개선을 권고했다. 국회에서도 경쟁 입찰을 통한 하도급사 선정 시 입찰 절차가 종료된 후 즉시 하도급 계약의 예정가격, 최저가로 입찰한 금액, 낙찰가격 및 낙찰자를 공개하도록 강제하고, 위반 시 최대 하도급 대금의 2배에 상당하는 금액 이상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하도급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이에 대해 종합건설업계는 하도급계약 금액 공개는 사적자치권을 침해한다며 법 개정을 반대한다. 하지만 법률전문가들은 원사업자가 침해받는 계약의 자유보다 공정한 하도급 거래 질서의 확립 등을 통한 사회적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헌법이념에도 부합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문건설업계는 비록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분야지만, 건설 현장의 최일선에서 실제 시공을 담당하며, 건설산업의 기초를 떠받치는 뿌리산업이다. 하지만 ‘을(乙)’이라는 이유로 일한 만큼 제값을 받지 못한다. 하도급단가를 인상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일감을 보장해달라는 것도 아닌 그저 공정하게 입·낙찰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하도급 전문건설업계의 생존을 위한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사장교…우리 기술 없었으면 불가능했죠”

    VSL코리아가 건설한 거가대교, 목포대교, 싱가포르 LNG 저장탱크(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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